쿠로코의농구XFree! 농구+수영 농수산물 웹엔솔에 참여한 카가미X마코토 글입니다.
주머니 속의 손이 움직였다. 남자의 커다란 손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담배각을 만지작거렸다. 고민중인 건지 움직임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필까 말까. 이미 포장은 뜯어진 채라 한 개피 손에 집었다가도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손을 뺐다. 계속해서 만지고만 있으려니 더 애가 탔기에 참다 못한 그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탁탁거리는 점화소리가 빗소리에 더해졌지만 좀처럼 불은 붙지 않았다. 칼 같이 불어오는 바람이 그를 방해하는 듯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희미한 불빛이 켜졌다. 카가미는 주먹을 꼭 쥐며 성공했단 제스처를 취했지만, 곧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손에 의해 불은 맥 없이 꺼져버렸다. 카가미는 허망해진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가미의 손에 들려 있던 라이터를 가져갔다. 카가미는 제 물건을 되찾으려 손을 뻗었지만 쿠로코의 말 한마디에 멈추고 말았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들었냐.”
“아시잖아요. 저는 스나이퍼이자, 카가미 군의 파트너입니다. 카가미 군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그 녀석이 널 싫어하는 이유가 그거라고. 엄마도 아니고,”
“차라리 엄마라고 해주시죠. 전 그분처럼 될 맘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타치바나 씨와도 잘 지내고 싶고요.”
쿠로코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카가미는 쥐고 있던 담배각을 구겼다. 그 반응을 놓칠 리 없는 쿠로코가 뒷말을 이으려 했으나 카가미는 그에게 됐다는 손짓을 해보였다.
“…많이 티나냐?”
“아직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저나 키요시 선배 정도겠죠.”
“그럼 보스도 아는 거 아냐.”
“글쎄요. 그건 카가미 군이 판단할 문제 아닐까요.”
“알잖아. 나 무식한 거.”
“알면 숨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회의 때 ‘이와토비’란 단어에 반응하는 카가미 군은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일침을 가하는 그의 말에 카가미는 비어있던 손을 움켜쥐었다. 그 움직임 역시 지켜본 쿠로코는 카가미의 손에 라이터를 쥐어주며 얘기했다.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카가미 군은 너무 착합니다. 착해서 탈이에요.”
바다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카가미는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돌렸다. 하늘빛 눈동자는 맑은 빛을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악의 없는 그의 순수함을 카가미가 모를 리 없었다. 카가미는 멋쩍어져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눌렀다. 몇 년 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유능한 스나이퍼로 소개받아 파트너가 되었을 때는 줄곧 기척 없이 나타나는 덕에 먹던 버거도 토해낼 만큼 놀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곁에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와 카가미는 서로의 보호자이자 감시자였다. 홀로 적을 마주했을 때를 대비해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게 만든 세이린의 파트너시스템은 보호막임과 동시에 언제든 제 목에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적이기도 했다. 세이린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조직 내부의 시스템이 큰 공헌을 했었다.
쿠로코는 조용히 머리 위에 얹어진 카가미의 손을 치웠다.
“그 건은 회의에서 보고한 대로 처리했습니다.”
“아, 수고했어.”
버릇처럼 카가미가 주먹을 들어보이자, 쿠로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져갔다. 두 주먹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파트너는 팀원임과 동시에 감시자다. 하지만 세이린의 모두는 두 사람처럼 신뢰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보스인 휴가와 오른팔인 키요시가 그러하듯.
“…괜찮습니까, 카가미 군?”
“어? 뭐가?”
“못 알아들을까봐 확실히 말하자면, 카가미 군에게 히무로 씨의 죽음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지 묻는 겁니다.”
“아….”
쿠로코가 무슨 이야길 하는 건지 그제야 알아들은 카가미는 체인에 걸려있던 반지를 매만졌다. 며칠 전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반지가 가로등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쿠로코는 안색이 변하지 않는 카가미를 보았다. 오히려 질문을 꺼낸 쿠로코가 무색하게 카가미는 약간 웃기까지 했다. 예전이라면 좀 더 동요했을 것이 분명한데. 이제는 그 사람이 아니면 카가미 군을 움직일 수 없는 겁니까.
“그건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타치바나씨, 그래뵈도 질투가 심하던데요.”
“…너, 마코토 앞에서 그런 얘기 하지 마.”
“할 리가 없잖습니까. 제가 카가미 군도 아니고.”
“뭐, 임마?”
주인 잃은 반지를 계속 매만지던 그는 빤히 바라보는 쿠로코의 눈에 한숨을 쉬었다. 알고 있어. 낮게 읊조린 카가미는 반지를 들어 보였다. 원주인의 혈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반지였다. 떠오르는 마지막 모습에 카가미는 눈을 감았다.그간 요센에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히무로의 죽음은 당연한 처사였다. 거기에 최근 이와토비와의 동맹 건이 키세 료타에 의해 틀어졌던 터라 그의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이제 히무로가 카가미에게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도 한몫 했다.
카가미는 결심한 듯 반지 두 개를 움켜쥐었다.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체인이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졌고 반지는 그의 손을 떠나 바다로 날아갔다.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으나 반지는 바다로 떨어졌다. 쿠로코는 가만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카가미는 오히려 후련하단 얼굴로 웃고 있었기에 그에게 다시금 괜찮냐고 물으려던 말을 삼켰다.
“풀 죽어 있었다면 보스에게 보고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오히려 안심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어차피 말도 안 꺼냈을 거면서.”
호쾌하게 웃는 카가미의 모습에 쿠로코도 조용히 웃음 지었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 * *
항상 오던 곳이지만 긴장된단 말이지.
카가미는 유리에 비친 모습을 통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슴께에 손을 대자 평소보다 더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지금의 이 떨림이 곧 만나게 될 사람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세이린 혹은 다른 조직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쿠로코가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아마 호텔에 갔다는 것을 안 정도일 것이었다. 카가미는 그림자 같은 파트너에게 감사하며 수트 단추를 잠갔다. 담배냄새가 묻어나진 않을까 킁킁 냄새를 맡아보던 카가미는 곧 단장을 마쳤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어깨와 허리를 쭉 폈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 웃음 지은 카가미는 씩 올라가는 입꼬리가 평소보다 더 즐거운 빛을 띠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몇 걸음을 걸어 나간 후,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만났던 그 방 앞에서 카가미는 심호흡을 했다. 주변을 살피며 감시는 없나 지켜보았으나, 철저한 이와토비의 관리하에 있는 호텔이라 몸에 밴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손이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하는 소리가 울린 뒤, 카가미는 속으로 5초를 셌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길고 긴 5초가 지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이 그를 맞았다. 침대에 앉아 있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개어진 옷이 눈에 띄었다. 맨 몸에 샤워가운만 걸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머리 끝에 어린 물기를 보며 카가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지 마코토에게서 물냄새가 났다. 정확히 비누향인지,샴푸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풍겨오는 그의 냄새에 카가미는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그와 이런 만남을 가지게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냄새였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안에는 마코토의 체취가 가득했다.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카가미는 애써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왔어?”
“어.”
오자마자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모습에 마코토는 그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오랜만에 보았는데 여전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카가미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카가미.”
이름을 불러도 힐끗 눈길을 줄 뿐, 금세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마코토는 작게 웃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워하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마코토는 이번에도 역시 먼저 나서야겠단 생각에 카가미의 코앞까지 걸음을 옮겼다.안고 싶으면 안으면 되잖아. 침대에선 짐승이면서. 그렇게 쏘아주고 싶었지만, 분명 그라면 ‘소중히 대하고 싶으니까’라는 말을 꺼낼게 분명했기에 마코토는 그저 웃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옷차림을 신경 쓰고 올라오는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지켜봤으나 넥타이 매듭은 여전히 비뚤어진 채였다.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 했으면서 왜 내 앞에 서면 아직도 쑥맥인 거야. 마코토는 오른손으로 카가미의 넥타이를 가까이 끌어 당기며 물었다.
“타이가, 나 안 보고 싶었어?”
마코토의 손에 끌려 얼굴을 가까이 한 카가미는 이름까지 불리자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마코토가 저를 올려다 보는 모습에 곧 다시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마코토의 왼손이 카가미의 얼굴을 붙잡았다.
“고개 돌리지 마. 나 보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어지던 말은 마코토의 키스로 인해 끊겼다. 테이블 위에 와인잔은 보았었는데 입안으로 퍼지는 와인향에 카가미는 아찔함을 느꼈다.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선 말캉한 감촉도 오랜만이었다. 담배를 끊고 나서는 입이 심심했던 터라 마코토와의 키스가 더 없이 달았다. 카가미는 안된다 생각하면서도 마코토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샤워가운 밑에 자리한 단단한 근육이 만져졌다. 조금, 조금 더. 그렇게 카가미가 더 그를 바라게 될 쯤 마코토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아쉬워하는 카가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마코토 역시 오랜만인 그를 당장이라도 안고 싶었지만, 그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침대로 가 앉는 연인의 모습에 카가미도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카가미는 입맛을 다시듯 입주변을 할짝였다.
“카가미, 괜찮아?”
카가미는 미리 연습시키는 셈치고 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던 파트너를 떠올리고는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방금 그 질문은 히무로를 말한 거겠지. 그는 마코토가 걱정하지 않도록 웃으며 답했다.
“아, 괜찮아.”
“카이조는 잘 해결 됐어?”
이어진 마코토의 질문에 카가미는 작게 욕을 내뱉었다.
“키세 새끼…. 이제 그 녀석들 하고는 거래 안 해.”
“동맹 건은 얘기가 오가고 있다 하던데.”
“보스가 검토 중이래. 우리도 사이가 틀어지고 싶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자세한 건 다음주쯤에나 알 수 있을 것 같아.”
“잘 됐으면 좋겠네. 이와토비도 세이린도 서로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잖아?”
“그건 그렇고.”
카가미는 아까 전의 감촉을 떠올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포개졌던 마코토의 입술과 가운 하나를 걷어내면 드러날 살결까지. 안되겠다 생각하면서도 입밖으로 나가는 말은 본능에 충실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일 얘기밖에 안 하는 거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마코토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웃었다.
“…타이가. 보고 싶었어.”
다시 카가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간 마코토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넌지시 물었다.
“담배 끊었어?”
“금연 중이야.”
“며칠?”
“2주.”
“와, 나 때문에 끊은 거야? 상줘야겠네.”
“내가 받고 싶은 거. 뭔지 알잖아.”
마코토는 두 다리를 침대 위로 올렸다. 카가미는 눈만 옮겨 그를 지켜보았다. 발 끝부터 천천히 가운을 걷어올리던 마코토는 제 행동을 쫓는 시선에 그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손이 허리춤에 묶여 있던 끈을 풀렀다.
“이런 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마코토의 어깨를 붙잡아 침대로 쓰러졌다. 자연스레 허리에 감겨오는 손에 카가미는 안도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뻔하잖아!”
문을 열자 큰소리가 들렸다. 고우는 방으로 들어서는 마코토에게 웃어보였고, 마코토 역시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삐딱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던 린이 낸 소리였다. 린이 소리칠 만한 일이라면 역시 그 건이려나. 마코토는 자신을 향한 눈동자들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자리로 가 앉았다.
“행동한 게 키세지, 카이조는 결국 그런 놈들뿐이라고.”
“린 말에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카이조의 유대감이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그 내부의 유대감뿐이지, 조직 외에 의리 같은 건 없어. 특히 그 키세 새끼가 들어온 이후부터는.”
동시에 함께 이를 가는 미코시바의 모습에 마코토는 제 짐작이 맞았단 사실을 알았다. 키세 료타. 카이조. 마코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가 자리에 두고 간 서류를 집어들었다. 서류에는 지난 몇 달간의 사건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주된 내용은 타조직들에 대한 정보였다. 라쿠잔이 손 댔던 사업들의 목록은 질이 안 좋다는 소문을 증명하듯 하나하나가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뿐이었다. 어차피 뒷세계에서 일하는 놈들이 좋고 안 좋고를 따질 처지겠냐만, 라쿠잔은 그 정도가 달랐다. 다른 조직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그저 넘어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그들은 커진 조직의 규모를 자랑하듯, 일대의 조직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게 단순한 일회성 도발인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불씨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모든 조직이 이대로 두면 전부 라쿠잔에게 먹혀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아지트가 어디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 라쿠잔이기에 어둠 속에 드러나지 않은 라쿠잔의 규모는 예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떡할까요? 보스.”
그에 더해 최근 있었던 일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열을 냈듯이 카이조 - 키세료타의 건이었다. 이와토비와 세이린이 동맹을 맺으려던 찰나에 카이조의 키세 료타라는 놈이 이간질 및 방해공작을 폈고, 세이린과 이와토비 사이에서 칼부림이 날 뻔 했던 것을 쿠로코와 나기사가 간신히 막았다. 세이린 측은 바다에서 상권을 쥐고 있던 카이조나 이와토비 둘 다 잘 지내도 해가 될 것이 없는 상대였으나, 조직들 사이에서는 신생이나 다름 없었던 이와토비는 대륙 안으로 더 진출하기 위해서는 동맹관계를 늘려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원인은 이와토비보다는 세이린 쪽에 더 책임이 있었지만,겨우 타 조직원 한 놈 때문에 동맹 건은 파기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일을 진행했던 린이나 미코시바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카는 손가락으로 보고서를 두어 번 치다가 질문을 건넸다.
“레이, 네가 보기엔 어때?”
“두 분의 말과 별 다를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 시급한 건 역시 카이조보다 라쿠잔이겠죠. 다른 조직들 역시 그들을 노리고 있을 겁니다. 다들 한두 번 당한 게 아니고, 이대로 두면 이 일대가 라쿠잔에게 먹히는 건 뻔한 일이니까요.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을 때, 연합해서 치지 않는다면 라쿠잔은 손도 못 댈 상대가 될지도….”
보고서에 간간히 보이는 ‘요센’이란 글자에 그의 눈이 떨렸지만 넘기던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 히무로 타츠야란 이름에 X표시가 있는 것을 보고 마코토는 흐뭇하게 웃으며 종이뭉치를 내려놨다. 카가미가 히무로를 죽였다.마코토는 그 사실에 만족했다. 카가미가 히무로를 향해 칼을 겨눴다. 쿠로코가 그에게 총구를 겨눴지만, 히무로를 죽인 건 카가미였다. 그렇게 나기사에게 전해들었다. 충분했다. 이제 더 이상 카가미에게 히무로 타츠야라는 존재는 없었다. 호텔에서 만났을 때, 허전하기까지 한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웃었던 것도, 유혹했던 것도 전부 그런 카가미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담배를 끊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 하나를 지워버릴 정도로 카가미는 마코토에게 빠져 있다. 그 사실이 마코토를 웃게 했다. 귀엽다니까. 진짜. 터져 나오려는 웃음에 마코토는 고개를 숙였다. 나올 때까지도 그의 허리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손을 떠올리며 마코토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제법 무거웠다.
‘…생각나서 샀어.’
어떤 걸 선물해야 마코토가 좋아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카가미였다. 분명 쿠로코에게도 어디에서 사면 좋을지,또 어떤 디자인을 고르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을 것이다. 결국 남자들은 화려한 것보다는 심플한 게 낫단 직원의 권유에 따라 고르고 또 새겼을 테지. 아마 이걸 산 것도, 이전에 목걸이에 걸려 있던 반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던 걸 기억했기 때문일 거고. 그래서 마코토는 그의 선물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자기 같은 반지라니까. 카가미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한 우직한 반지였기에 마코토는 그의 선물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안쪽에 비밀스레 새겨진 이니셜을 더듬으며 마코토는 또 웃음 지었다.
“…코토. 마코토.”
웃고 있던 마코토는 하루카의 호명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하루카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웃고 있냐고 무언으로 묻고 있었다. 카가미가 이렇게나 생각해준다면 나도 그에 응해줘야지. 일전에 아카시와 마주했을 때, 카가미의 얼굴에 생겼던 상처를 떠올리며 마코토는 반지를 꽉 쥐었다.
“라쿠잔을 쫓자. 레이 말대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야. 그리고 그 아카시에게 갚아줘야 하는 것도 많으니까 말이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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