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건물 전체를 삼켰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진행된 상태였다. 소장이 말하길 파악된 바로는 인명피해는 없을 거라고 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미 늦었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혹시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래도 현장에 들어가야 했다. 마코토는 떨려오는 손에 힘을 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라. 나는 구할 수 있어.'
심호흡을 마치고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마코토를 붙잡았다. 바짓자락을 붙잡은 네다섯살 돼 보이는 소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아빠가 있는데…."
울먹거리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마코토는 불안감을 날리려는 듯 방긋 웃음 지었다.
"아저씨가 구해 올게. 울지마. 응? 뚝!"
마코토로서는 소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현장파악을 마친 사람들이 인명피해는 없다고 보고했는데.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자신의 손으로 구해낼 수 있다면, 마코토는 불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 직업을 택할 때, 결심했던 것이었다.
카가미가 장비를 챙겨 나오는 사이에 마코토는 먼저 화재가 발생한 건물로 진입했다. 건물로 들어서는 마코토를 보고 카가미도 급히 동료의 장비를 뺐어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저 자식. 저번에도 그러더니. 카가미는 앞서 계단을 오르는 그를 따라갔다. 어이, 마코토! 이름을 불렀지만 마코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걸이도 빨라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아직 불길이 잡히려면 멀었고 너무 깊이 들어가기에는 건물붕괴의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잔 불길을 잡지도 않고, 마코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뒤따라 가던 카가미는 그가 지나치고 간 불씨를 하나하나 끄며 뒤쫓았다. 무슨 말을 듣고 저러는 거야. 인명피해는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런 마코토를 혼자 내버려둘 수 없어, 카가미 역시 뒤를 따랐다. 몇 층 되지도 않는 건물이었지만, 잡히지 않은 불길과 장비의 무게때문에 땀이 쏟아졌다. 카가미는 곳곳에 남아있는 불길들을 잡아가며 마코토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계속해서 꽁무니만 쫓던 카가미는 가만히 멈춰서 있는 마코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이, 마코토!"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마코토의 모습에 카가미는기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수영부에서 활동했던 마코토가 정작 바다에서 다른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는 이유. 화재현장에서 구할 수도 있었던 사람을 구하지 못했던 여러 사건을 카가미는 그 옆에서 수도 없이 지켜봤었다. 어렸을 적 바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어떤 트라우마가 마코토를 굳어 있게 만들어버린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멈춰선 마코토의 앞에는 불길의 근원지로 보이는 커다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코토!"
소리 지르듯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어깨를 붙잡았을 때 카가미가 본 것은 중년의 남성 하나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반쯤 타들어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 * *
집에 도착해서도 마코토는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화재현장에서 본 시체가 충격적이었던 건지, 그 장면이 마코토에게 다른 장면을 떠올리게 한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카가미가 저녁을 준비하며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 두 팔을 다리에 괴고 멍한 얼굴을 파묻은 채였다.
"마코토."
보다 못한 카가미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코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혼자 내버려두면 끝도 없이 파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는데. 냄비 안으로 능숙하게 썰어둔 채소들을 쏟아넣으며 카가미는 그를 살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필시 아까의 그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사람 기억해봤자 인데. 게다가 이미 그때는 숨이 멎어있었고.
카가미는 발견하자마자 남자의 맥박부터 확인했다. 이미 숨은 멎어있었고, 하반신 부분은 무너진 책장에 깔려 불에 타고 있었다. 시체를 구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게다가 이 이상 진행되는 불길을 제압하지 않은 채로 이곳에 있다간 건물이 무너져 다 죽을지도 모른다. 카가미는 위급상황에서 우선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을 뒤로하고 마코토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마코토에게는 그런 결정을 내릴 판단력이 없었다.
"마코토!"
사람이 죽었다. 두고 갈 수는 없다. 마코토는 책장 밑에 깔린 남자를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는 카가미가 붙잡은 팔을 뿌리치고 남자를 빼내려 했다.
"마코토!! 정신 차려!"
카가미가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마코토는 멈추지 않았다.
"카가미. 도와줘. 사람이… 사람이…!!"
"정신 차려. 그 사람은 이미 죽었어! 어서 나가야 한다고!!"
"죽었어? 아니야…. 약속했어. 밖에 있던 그 아이가 아빠를 구해 달라고 했단 말야. 죽지 않았어."
"마코토!"
이어진 것은 짝-하는 소리였다. 보다 못한 카가미가 마코토의 뺨을 세게 친 것이었다. 카가미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대체 뭘… 누굴 보고 있는 거야? 여기 있는 건 나야. 카가미 타이가라고!! 죽은 건 네 친구가 아냐!"
* * *
카가미는 마코토의 코앞으로 방금 완성한 카레라이스를 내밀었다. 마코토가 기운이 없는 것을 고려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린 카레를 얹은 식사였다. 마코토는 룸메이트의 배려에 살며시 웃음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사건이 끝난 직후에 처음으로 마코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카가미는 제 몫의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은 정신이 좀 돌아왔나. 밥맛이 없다며 거부하면 억지로라도 입을 열고 먹일 생각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고마울 정도였다.
하지만 숟가락을 쥐었다고 해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몇 입을 꾸역꾸역 넘기던 마코토는 숟가락으로 접시 위의 음식물을 건드리며 깨작깨작하기를 반복했다. 금세 한 그릇을 해치우고 그를 지켜보던 카가미는 결국 그의 그릇을 뺐어 들고는 네가 안 먹으면 내가 다 먹겠다는 듯 단숨에 그릇을 비워냈다. 그를 걱정하기에 카가미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마코토도 잘 알고 있었다. 마코토는 그런 카가미를 보고 슬쩍 웃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마냥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카가미가 아무리 그에게 잘 대해준다 해도, 머릿속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지를 붙잡던 소녀의 울먹이던 눈망울은 기억 속의 그와 닮아있었다.
'마코토…. 구해줘.'
"…하루."
카가미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숟가락질을 멈췄다.
"하루…. 미안해… 하루…."
2개월만인가. 카가미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가늠하며 웅크린 마코토에게 다가섰다.
"괜찮아. 괜찮아, 마코토."
동거하기 시작한 지 2년째였다. 그리고 여전히 마코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나나세 하루카라는 존재 역시 몇 년째 마코토를 떠나지 않았다. 카가미로서는 유년시절부터 함께했었던 그의 친구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마코토는 발작적으로 하루카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나곤 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다녀올 때마다 구하지 못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괴로워했다. 그 하루카와 마코토의 관계가 친구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였다면 이렇게까지 카가미가 신경 쓸 일도 없었겠지만, 그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은 마코토도, 카가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루…."
마코토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복받치는지 어느새 훌쩍이던 울음이 흐느끼고 있었다. 카가미는 품에 웅크린 마코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마코토.. 나는 죽지 않아. 계속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그 말을 뱉지 못해 카가미는 입을 다물었다. 울지 말라는 말 만큼 잔인한 말도 없었다. 감정을 어느 정도 토해내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울지말라고 한다면 마코토의 속은 또 고여서 썩을 대로 썩어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울어도 괜찮다고 한다면? 슬퍼하는 마코토를 보는 카가미 역시 괴로웠다. 결국, 어느 쪽도 좋은 대답은 될 수 없었다. 죽지 않겠다는 말도 당장 내일 거짓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일 화재가 발생해서 현장에 출동했다가 혹시나 카가미가 불길에 휘말리게 되면... 카가미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괴로워하는 마코토를 눈앞에 두고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약속 하나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가 네 곁에 있잖아. 애타는 듯한 이 마음이 마코토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카가미는 마코토의 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마코토의 슬픔이 멎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고개 숙인 마코토의 머리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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