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마주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쳐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손안에 쥐어진 마지버거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으로 들어간 햄버거는 몇 번 씹지도 못한 채 덩어리인 그대로 삼켜졌다. 꿀꺽하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서 크게 울렸다. 지켜보고 있던 하루카의 손이 카가미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카가미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는지 하루카와 잔을 번갈아 보았다. 하루는 별말 없이 건넨 잔에서 손을 떼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의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 행동을 본 카가미는 방금 그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간신히 알아챘다.
"고마워! ...요."
빨대를 물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탄산음료는 막혀버린 카가미의 목을 시원하게 뚫어주지 못했다.
'대체 왜... 밥 먹다 체하겠네.'
나나세 하루카와는 키요시 선배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 키요시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선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던 하루카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또한 의문이었다. '하하. 이 녀석 괴짜거든. 물을 엄청나게 좋아해!' 키요시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둘이 아는 사이가 된 게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디서 이런 사람을 만났느냐는 카가미의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에 키요시는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키요시와 마주쳐 소개받았던 그 날에, 비가 와서 생겼던 웅덩이에 몸을 날리려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카가미는 하루카에게 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같은 학교 선배가 그런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신기했지만, 지금 이렇게 카가미 본인과 만나 마지바에서 치즈버거를 먹고 있는 것 또한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다.
카가미는 여전히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하루카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 조옹히 마지버거를 먹었다. 대체 왜 나한테 저런 시선을 보내는 걸까. 의문을 품던 카가미는 관심을 돌려 자신의 앞에 평소 먹던 만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마지버거를 보았다. 대략 30개는 될 것 같은데. 하나당 가격을 생각해보면 금액이 꽤 될 텐데. 혼자 살지만, 대식가인 만큼 식비가 만만찮게 들어가기 때문에 카가미도 쉽게 하루카가 낸 돈이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과연 이게 친구의 후배라는 사람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사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금액인지 생각해보았다. 제 소비에서 엥겔지수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자기 돈으로 선뜻 사주겠다고 한 하루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한테 잘 보이고 싶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거기다 하루카는 햄버거도 시키지 않은 채, 아이스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카가미에게만 먹을 것을 사주었다. 그마저도 커피가 너무 달다며 거의 마시지 않은 덕에 실상 하루카가 카가미를 만난 후로 한 일은 버거를 사주고 자리에 앉아 카가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본 것뿐이었다.
설마 나 하나 보려고 도쿄까지 온 건 아닐 테고. 카가미는 우물우물 햄버거를 먹으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에 대해서 키세한테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카가밋치. 누군가가 카가밋치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분명 그 사람 100% 카가밋치를 좋아하는 검다.'
불현듯 떠올린 생각에 카가미의 입안에 있던 햄버거의 조각들이 풉하고 튀어 나갔다. 하지만 다행히 앞에 있는 햄버거와 하루카에게는 닿지 않았다. 하루카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카가미에게 괜찮냐는 의문을 표시했고 카가미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잠깐 이상한 생각을 해서 ...요."
이상한 생각? 하루카는 다시 고개를 기울였지만 카가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생각해봐요, 카가밋치. 카가밋치는 먹는 양도 장난 아니잖슴까. 도시락을 싸줘도 몇 인분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그에 대해 들어가는 돈과 시간, 정성과 사랑을 생각해보라구요.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제 오랜 경험으로는 그래요. 뭐 물론 카가밋치한테 그런 애정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키세가 농담처럼 했던 말을 떠올리며 카가미는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봤다. 키세 말대로라면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잖아. 카가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하루카 선배가 날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나. 선배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물이랑은 정반대 색이나 다름없고. 설마 수영을 더 잘하고 싶어서 근육이나 점프력이 부럽다는 건 아닐 테고. 스포츠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수영하고 농구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
카가미는 다시 하루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휴대폰을 잡은 하루카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통화하는 건가. 바닥을 향한 그의 눈꺼풀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운동하는 사람 같지 않게 거의 타지 않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여자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날카로운 기운을 품은 푸른 눈동자 때문에 그리 순순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졌다. 남성용 티셔츠일 텐데 덩치가 작아 처진 옷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쿠로코보다는 좀 큰 것 같았는데. 비슷한가. 눈대중으로 하루카를 훑어보던 카가미의 눈에 하루카의 쇄골이 들어왔다. 늘어진 티셔츠 사이로 흰 피부가 보였다. 카가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분명 그 사람 100% 카가밋치를 좋아하는 검다.'
아, 키세.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어느새 통화를 끝낸 하루카와 눈이 마주친 카가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없다. 카가미는 단호히 부정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은숨을 내쉬었다. 키세의 주선으로 나갔던 미팅에서 예쁜 여자라면 얼마든지 봤었다. 험악한 인상 때문인지 그 뒤로 연락이 온 사람은 없었지만, 카가미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도 없었다. 백번 양보해 자신이 호모라 쳐도 하루카보다 더 야리야리하고 작은 쿠로코를 봐도 별 감정이 생기지 않았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친구라는 사람에게 마음이 생길 일은...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건 대체 왜지. 마지버거를 이렇게 사주는 사람은 처음인데. 진짜 키세 말대로인가. 괜히 오해하는 거면 어떡하고. 그런데 이렇게까지 쳐다보는 것도 조금 이상한데. 하루카는 단답형의 통화가 끝난 이후, 푸른 눈으로 카가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카가미는 다시 키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잘 모르겠으면 그 사람 눈을 한 번 쳐다봐요. 6초 이상 눈을 마주하면 그 사람은 카가밋치를 죽이고 싶거나'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뭐였지. 카가미가 생각하는 동안 하루카와 카가미가 시선을 맞춘 채, 시간은 흘러갔다. 6초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갔고, 10초가 넘어서야 카가미는 키세의 뒷말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카가밋치랑 섹스하고 싶은 거에요.'
젠장할. 키세자식!! 되도 안되는 머리를 굴리던 카가미는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 마지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키세의 말을 지우기는 어려웠고 햄스터처럼 볼을 부풀린 채 우걱우걱 음식을 우겨넣는 카가미의 얼굴은 붉게 변해갔다. 하루카는 조용히 카가미를 보며 음료잔에 시선을 보냈고, 별다른 오해 없이 하루의 눈짓을 받은 카가미는 음료 뚜껑과 빨대를 뽑아낸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여전히 타는 듯한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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