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소스마코 11월 17일

중독된 깡 2015. 11. 17. 21:01


*타치바나 마코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삐빅거리던 알람은 금세 뚝 끊겼다. …벌써 아침인가 봐. 간신히 뜬 눈으로 창밖을 보자 아직도 어두컴컴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데도 몽롱한 정신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정신에 다시금 잠에 빠져들 것 같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함에 편히 몸을 누였다. 그것도 잠시 강하게 허리를 끌어안는 소스케의 손길에 이끌려 그대로 품에 안겼다.

일어나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마와 눈, 코, 입까지 몸 곳곳에 입을 맞추는 소스케 덕분에 천천히 눈을 뜰 수 있었다. 간신히 뜬 눈을 몇 번인가 깜빡였다. 파란 눈이 다정히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더 몸을 웅크렸다. 소스케의 품에 안기기엔 큰 몸이지만, 내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장소니까. 따듯한 체온에 더해 느껴지는 피부에 나는 눈을 떴다. 아, 그렇지. 알몸이었구나. 달아오르는 얼굴에 더 소스케의 가슴으로 파고들자, 소스케는 일어나라며 웃었다. 겹쳐진 다리가 뜨거웠다.


시곗바늘이 12시를 넘어가자마자 숨겨뒀던 케이크를 들고 나온 소스케는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다고 웃었다. 소스케도 훈련하느라 바쁘면서. 사온 것 같지는 않고, 범고래니 마코토니 하는 글씨가 적혀 있는 걸 보면 직접 만든 케이크 같았다. 항상 받고만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흘러내리는 촛농에 나는 빠르게 두 손을 모았다. 소원, 소원 빌어야지.

급히 촛불을 끈 뒤에는 소스케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고마워. 소스케. 간단한 포옹으로 시작해 천천히 겹쳐지는 몸에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말렸지만, '안 돼?'하는 한마디에 나는 언제나 질 수밖에 없었다. 소스케는 자기가 지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소스케한테 이긴 적이 없는걸. 그리고 소스케가 가장 큰 선물이니까.


***


출근길에는 지난밤 소스케와 함께하느라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를 읽었다. 십여 통이 넘게 쌓인 메시지. 란과 렌부터 시작해서 나기사와 레이, 린이나 모모타로 군까지. 대학교 친구들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몇몇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중에 정신 차리면 다 답장 보내야겠다. 아직도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생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 보내’ 하는 메시지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수업 준비를 하면서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물을 끓였다. 커피는 좋아하지 않지만, 잠에서 깨어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숟가락을 젓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타치바나 씨.”

“좋은 아침이에요.”

늘 카운터에서 마주치는 마미코 씨였다.

“오늘 생일이죠? 축하해요.”

“네? 아, 감사해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게 다가온 마미코 씨는 내게 상자를 내밀었다. 선물? 생일을 말한 적이 있던가. 직원 관리도 겸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려나.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 일 처음 시작했을 때 참 막막했는데 타치바나 씨가 많이 도와주셔서 살았어요. 답례라기엔 좀 그렇지만, 초콜릿 좋아하시죠?”

“에, 아뇨. 제가 뭘 도와드렸다고… 감사합니다. 같이 먹어요.”

“아뇨. 그건 타치바나 씨 주려고 산 거니까.”

마미코 씨는 한사코 손을 내두르며 거절했다. 아, 단 거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더 권유했다간 오히려 싫어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조그만 상자 안에는 그녀의 말대로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커피를 봤다.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지만 초콜릿이랑 같이 먹으면 괜찮겠지. 고맙다고 재차 인사하자 마미코 씨는 좋은 하루 보내라며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마미코 씨가 준 초콜릿을 먹었다. 초콜릿은 달콤한 맛을 남긴 채 입안에서 녹았다. 소스케가 내게 준 케이크처럼. 이제야 좀 잠이 깨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


낮에 오는 성인반 수강생들은 평균 연령대가 40대 이상인데도 늘 기운이 넘친다. 수강생이 하는 만큼 더 열심히 한 탓일까. 밤의 여파인지 일하는 중에 허리가 조금 아팠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안 한 지도 오래됐었고, 소스케에게 미안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미안해서 자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소스케도 싫어하는 편이고. 

…고생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항상 신세 지기만 하는 것 같네. 소스케 생일 무렵에도 한창 바쁘다고 대충 지나갔던 것 같고. 나야말로 소스케에게 뭔가 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오늘은 빨리 가야겠다. 일찍 오라고 했던 소스케의 말에 끝나자마자 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빨리 가서 저녁 준비라도 먼저 해놓고 싶은데.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생일 축하 메시지에 대한 답장도 보내지 못한 채였다. 퇴근할 때까지는 여유 없겠는데. 나 몰라라 앞으로 달려가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점심 먹기 직전에야 시간이 나 겨우 전화를 걸었다. 그냥 지나가는 하루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연락은 하는 게 좋겠지. 다행히도 전화는 금방 연결됐다. ‘마코토? 생일 축하해.’ 통화를 받자마자 이어지는 말에 나는 웃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바쁜 걸 아니 전화할까 말까 한참 고민 중이었다며 엄마는 안부를 물으셨다. 이와토비에 가지 않은 지도 꽤 됐나. 밥 먹으러 가자는 동료의 말에 다음번에 시간이 나면 꼭 내려가겠다는 약속 후에 전화를 끊었다. 

나가려는 찰나에, 메시지 착신음이 울렸다.

-지금 어디야?

하루? 막 답장을 보내려는 찰나에 벨소리가 울렸다.


***


“하루, 오늘 연습 있는 거 아니었어?”

급하게 달려온 건지 바람에 휘날린 머리칼이 정리되기도 전이었다. 물기까지 남아 있는 걸 보면 훈련을 마치고 바로 온 듯했다.

“아, 잠깐 시간 내서 들렀어.”

시합을 앞두고 집중하고 있는 시기니까 굳이 보러오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래도 보러 와 줬다는 고마움이 컸다. ‘그 녀석이 잘해 주겠지만, 그래도 생일이니까. 얼굴 보러 왔어.’ 말하지 않아도 잠시 시큰둥해졌던 눈빛이나, 미세하게 보이는 표정변화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면 조금 투닥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소스케도 하루 보면 좋아할 텐데.

“더 따듯하게 하고 다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구.”

나는 활짝 열린 하루카의 잠바를 여미며 말했다. 좀처럼 마주치지 못했던 얼굴이 기분 탓인지 조금 수척해 보였다.

“선수니까 몸 관리 잘해야지.”

그래도 아마 외투 속의 몸은 단단해졌겠지. 여전히 말랐지만, 고등학생 때보다 더 근육이 붙은 하루는 체력이 붙은 만큼 장거리에도 강해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 하루. 그런 하루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 뿌듯한 마음과 함께 풀린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할 일을 마치고 한 걸음 떨어지자 하루가 나를 봤다. 변함없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하얗게 새어 나오는 입김과 함께 하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 마코토.' 한 마디 한 마디 마음을 담아 말하는 하루의 진심이 느껴졌다.

“응. 고마워, 하루.”

멋쩍은지 시선을 피하는 하루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런 점에서는 변함이 없네, 하루.

“생일 선물은 준비 못 했어. 나중에 시합이 끝나면….”

나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에, 아냐, 아냐. 이렇게 축하하러 와 준 것만 해도 기쁜걸. 엄청 바쁜데 시간 내서 와 준 거잖아.”

“…….”

하루는 조용해졌지만, 바라보는 눈빛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나는 웃었다. 응. 고마워, 하루. 하루가 얼마나 날 생각해 주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소스케야 전부 잘해 주고 있는걸.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로 다정해서. 이어지는 내 말에 하루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


퇴근길에는 버스가 붐볐다. 사실 생일이라고 해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인데. 이날은 생일인 사람도 그렇지만, 엄마가 고생하신 게 가장 크니까. 축하받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언제나와 같이 지나가는 일상 중에 하루를 보낸 것뿐인데. 다들 축하해 주고 행복한 하루 보내라는 그 말이 듣기 싫을 리는 없지만.

메시지를 받거나 소스케가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생일이라는 사실은 새하얗게 잊어버린 채로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따듯한 건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해졌기 때문일까. 이렇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더 기운 내서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까. 힘들고 지치기만 했던 퇴근길까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버스에서 내려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먼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이 몇 개 보였다. 정류소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겨울이 다가오는 무렵, 20몇 년 전 이날에. 여기에 태어나게 해 줘서, 이 자리에 살아 있을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기도를 마친 후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현관문을 열기도 전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아, 빨리 돌아온다고 왔는데. 소스케 벌써 와 있는 걸까. 퇴근 일찍 했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 너머로 앞치마 차림의 소스케가 보였다.

“소스케 다녀왔… 우와아!”

나는 인사를 하다 만 채 식탁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소스케는 냄비를 든 채 옆을 지나가며 내 볼에 입 맞췄다.

“얼른 손 씻고 와. 이거 다 먹어야 돼.”

내가 더 먼저 와서 맛있는 거 해두려고 했는데. 벌써 잔뜩 차려 놓은 걸 보면 소스케는 오늘 연습을 줄이고 빨리 돌아온 모양이었다. 으, 나도 미리 관장님한테 말해서 일찍 퇴근할 걸 그랬어.

“이거 다 먹으면 살찔 것 같은데….”

“그럼 더 좋지.”

“에? 요새 살쪘다고 구박했으면서.”

뜨거운 냄비를 조심스레 식탁에 놓은 소스케는 장갑을 벗고는 내게 다가왔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그는 장난스레 목덜미를 깨물었다. 두 손은 이미 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지기엔 더 좋으니까 괜찮아.”

“에, 소스케, 정말…!”

간지러운 느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볍게 입 맞추자 소스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생일이 아니어도 괜찮아. 소스케랑 함께 있을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나한테 선물인걸.


***


남은 케이크까지 먹고 이불 위에 축 늘어졌다. 소스케는 설거지 하고 있나. 너무 먹은 탓에 움직일 수조차 없어진 것 같아.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까.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들었다. 첫 번째 메시지부터.

-정말 고마워. 잘 지내고 있지? 바빠도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올해 가기 전에 괜찮으면 다 같이 만나자.

-답장이 늦었네요. 좋은 하루 보내셨길 바랍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며 만나지 않아도 여전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일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것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 가도 곁에 있는 사람들도, 나도 크게 변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아. 소스케가 옆에 있으니까. 변하는 건 그냥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만 해도 충분한걸.


답장을 마치고 기분 좋게 늘어져 있는 사이에 옆에 그가 왔다. 소스케에. 늘어지는 목소리에 소스케가 내 손을 붙잡았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지만, 옆에 누운 그의 체온이 손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한없이 다정한 사람. 처음에는 분명 소스케도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한참이나 지난 옛날을 떠올리며 웃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스케.”

“응?”

“고마워.”

나는 눈을 뜨고 소스케를 봤다. 정말 고마워. 변치 않고 옆에 있어줘서 정말 기뻐. 더 많은 건 바라지 않아. 나는 그냥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옆에 있고, 언제든 이렇게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천천히 입을 맞추자 소스케가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습관이 된 행동에 나는 소스케를 봤다.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 걸까.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소스케를 봤다. 내 표정에 작게 숨을 내쉰 그는 내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마코토, 피곤해?”

착각한 건 아닐까. 그런 고민도 잠시, 붉어진 소스케의 얼굴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웃으며 손을 붙잡았다. 내가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소스케가 하고 싶은 것보다도 날 먼저 생각해 주는 거지? 겹쳐지는 손가락에 온기가 가득했다. 커다란 그의 등을 끌어안으며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소스케, 고마워."



예쁜 우리 마코토. 천사 같은 우리 마코토.
네가 있어서 힘낼 수 있어. 기운 낼 수 있어.
존재 자체로도 너무나 큰 힘이 돼 줘서 너무나 고마워. 많이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