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소스마코 야쿠자AU - 첫사랑 1

중독된 깡 2015. 8. 26. 20:51











첫사랑 1



그럼 다들 내일 봅시다. 출석부를 덮는 선생님의 말에 반장이 벌떡 일어섰다.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요. 소년이 눈을 뜬 건 반 전체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진 그 시간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탓에 팔이 저려 왔다. 눈을 흘기며 칠판 앞 시간표를 확인한 소스케는 별로 중요한 과목도 아니었다며 팔을 털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중 친한 몇몇은 일부러 그의 팔을 툭 치고 지나갔다. 내일 봐. 저릿하니 울리는 느낌에 인상을 구겨졌지만 그래도 소스케는 잘 가라는 인사로 손을 흔들었다.

자다 깬 직후라 제정신이 아니네. 소스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수업만 존 거잖아. 괜찮아. 학교에선 학교에서 해도 되는 일만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학생이 피곤하면 잘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괜히 찔린 소스케는 변명을 덧붙이며 가방을 들었다. 교과서는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시험 기간이 아닌 이상 집에 가져갈 일은 없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소스케는 창가로 향했다. 어차피 학교 밖으로 나가면 또 그놈들이 미행하겠지. 멀찍이 보이는 교문 근처에 검은 양복의 아저씨 둘이 보였다.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못 미더운 걸까. 초등학생 때 한 번 유괴당할 뻔한 이후로는 한 번도 조직원들이 안 붙은 적이 없었다. 이제 나도 그때 같은 어린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한숨을 내쉬며 돌아선 소스케는 탐탁지 않은 귀갓길에 오르려 발을 내디뎠다.

타치바나, 부탁해!”

. 잘 가.”

내일 봐!”

들리는 소리에 눈길이 간 곳에는 같은 반 친구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서 있었다.

타치바나 마코토. 학급위원을 결정할 때 양호위원에 자진해서 손을 든 걸 보고 천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셔틀 같은 반친구였다. 애가 나쁜 건 아닌데. 소스케는 1학년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교과서가 없다며 다른 반에 빌리러 갔던 동급생들이 거의 뺏어오다시피 타치바나란 이름이 반듯이 적혀 있는 교과서를 가져온 걸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호구란 건 알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호구는 아니겠지. 소스케는 걸음을 멈추고 마코토를 봤다.

마코토는 우물쭈물 교실 앞으로 갔다앞에서부터 뒤로 쓸어 담을 모양이었다가는 도중 소스케와 눈이 마주친 마코토는 방긋 웃었다꿀꺽 침을 삼킨 소스케는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렴풋이 자각은 있었다제 인생과는 손톱만큼도 상관없는 남자애가 자꾸 눈에 들어 오고 있었으니까아주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아이는 있었다유치원생일 때 여느 아이들이 하듯 나 크면 야마자키랑 결혼할 거야라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다 까먹어 버릴 그런 약속이었다그때도 소스케는 야마자키의 이름 아래 있었다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아이는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다음 날 유치원에 와서 야마자키네는 무서우니까 안 돼라며 하루 만에 약속을 깨트렸다.

어렸지만그때도 함부로 아버지나아저씨들에게 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론을 냈다야마자키 소스케로 살기 위해선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고그래서 그 이름 아래 득을 누리고 산 것도 잘 아니 더 마음대로 설칠 수도 없었다학교에서도 소스케는 야마자키의 이름보다는 평범한 중학생으로 행동했다문제아도 아니고 어디에나 있는 15살 남자애로.

야마자키가. 이 일대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야쿠자 집안. 몇 대 전까지만 해도 널린 깡패들과 다를 바는 없었지만, 소스케의 할아버지 대부터 변혁을 시작해 지금은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야쿠자였다. 그래 봤자 매춘이니 살인이니 나쁜 짓을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린 소스케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꽤 충격이었다.

야마자키 가에 태어난 이상 이 이름 아래서 네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사람 새끼가 되지 않으면 네놈이 이 집에서 가지고 갈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어린애한테 뭘 가르치는 건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볼수록 소스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몰랐지만 야마자키라는 이름으로 누렸던 것들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유치원에서조차도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소스케. 야쿠자가 폭력으로만 먹고살던 시대는 다 지났다. 네게 힘이 있다면 그건 약한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하는 거다. 알겠냐.’

그래서 그 약자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지메는 아니었다. 정말 괴롭히는 거라면 말상대는커녕 있는 취급조차 하지 않을 테니까. 나 같으면 그냥 째 버리고 청소당번인 녀석들이 혼나게 내버려 둘 테니까.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코토는 계속 눈에 밟혔다. 단지 약자가 당하고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치바나.”

소스케는 여전히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지켜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이름을 불렀다는 행위만으로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 ?”

청소를 위해 몸을 숙였던 타치바나가 고개를 들고 그를 봤다. 눈동자가 마주치자, 동그렇게 뜨였던 눈이 호를 그리며 휘었다. 청소도구는 계속 손에 쥔 채였다. 1학년 때부터 넉넉하게 맞춰 손끝이 겨우 보일 정도이던 교복은 이제 손등까지 와 있었다. 그 차이까지 눈치챌 정도로 그를 지켜보았단 생각에 괜시리 혼자 얼굴이 붉어졌다. 머쓱해진 소스케는 가슴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가며 마코토에게 물었다. 이상해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별다를 것 없는 아이인데.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착하고 거절을 못 하는 그런 애일 뿐인데. 그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왜 다른 애들 청소 떠맡는 거야?”

목소리 괜찮았나. 평소보다 떨고 있는 걸 눈치채진 않았을까. 흔하디 흔한 말 한마디 주고받는 일에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잠시 당혹스러움이 일었지만, 이내 웃어 버린 마코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바쁜 것 같으니까.”

너도 집에 가서 할 일 있을 거 아냐. 저 녀석들 보나 마나 겜방이나 갈 게 분명하고.”

이어진 소스케의 말에 타치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코토라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일이 있다며 부탁한 친구가 향할 곳은 어차피 집이나 학원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그래도 마코토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니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소스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친구였다면 멍청한 새끼라고 한마디 쏘아붙였을 텐데, 마코토에게는 그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조차도 귀여웠으니까. , 혹시 지금 내가 한 말에 상처받진 않았을까. 마코토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조마조마한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다 퍼뜩 드는 생각에 그는 가방을 내려놨다. 마코토는 조용히 소스케를 지켜보고 있었다. 청소도구함으로 가 빗자루를 꺼내 든 소스케가 말했다.

부탁하는 녀석들이 나쁜 거지만, 너도 가끔은 거절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당하고만 살면 어떡해?”

그 녀석들 미행도 피하고 싶고. 청소 다 끝내면 집까지 같이 갈 수도 있겠지.

같이 해 주는 거야?”

놀란 듯 크게 뜨인 눈에 소스케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마코토의 옆에 선 그는 눈도 맞추지 않은 채 비질을 시작했다.

안 바쁘니까 도와줄게. 빨리 끝내고 가자고.”

, !”

힐끔 쳐다본 마코토의 웃는 얼굴에 소년의 손이 신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

 

고마워. 야마자키 군.”

마코토는 웃으며 방금 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땡큐. 잘 먹을게.”

아직 여름까지는 멀었지만, 날은 더워졌다. 막 지기 시작한 노을이었지만, 주황색 햇볕도 조금 뜨거워진 듯했다.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겨우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이토록 더운 건 마코토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팔로 슥 땀을 훔치는 상대를 보면 그만 더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인 마코토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야마자키 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나 봐.”

? 야쿠자 집안이라?”

그야 이런 일은 집에서 안 하지. 방 청소나 가끔하면 했지, 소스케가 집에서 청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건 전부 형, 아저씨들의 몫이었고 소스케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됐다. 물론 학교에서 하는 당번 같은 건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고 있었지만. 타치바나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땅을 쳐다보던 마코토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얘기해 보니까 전혀 아닌걸?”

애초에 소스케는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처진 눈이 그나마 완화시켜 주는 것뿐, 올라간 눈썹이나 무표정한 인상이 남에게 호감을 주는 상은 아니라고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코토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이야길 듣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일단 점수는 땄다는 거겠지. 너라서 잘해 주는 건데. 와그작 깨문 아이스크림을 삼키고 소스케는 마코토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거절해.”

으응. 일이 있을 때는 나도 제대로 거절할 테니까. 하하,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야마자키 군이라고 부르지 마.”

?”

야마자키라는 이름이 신경 쓰였던 걸까. 야마자키 군이 야쿠자라는 사실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는데 너무 성으로 부른 걸까. 그치만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은 걸까? 망설이는 마코토의 얼굴에 소스케는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 진짜 왜 생각하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나는 건데. 귀엽다고, 진짜.

소스케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넣어 버렸다. 차갑고 단맛이 녹아드는 동안 옆에 있는 마코토의 얼굴을 바라봤다. 당황한 마코토는 사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모양새였다. 점점 더 울상이 되어 가는 얼굴을 지켜보던 그는 얼음덩어리를 목으로 넘겼다. 꿀꺽하고 넘어가는 소리에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같이 침을 삼켰다.

소스케면 되니까.”

그 한마디에 심란했던 표정은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는 모습에 소스케는 다시금 교실에서처럼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 그럼 나도 마코토라고 불러 줘.”

청소만 도와준 것뿐인데, 이름까지 부르게 됐어. 그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져나갈 듯했다. 언젠가 들었던 총소리보다도 더 크게 심장이 울리고 있어 소스케는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걸음이 멈췄다. 서너 걸음 앞서가던 마코토는 멈춘 소스케를 돌아봤다. 가슴에 손을 얹은 그를 보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소스케?”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소스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 소리가 마코토에게 들리진 않을까. 세차게 뛰기 시작한 가슴은 이내 멈출 수 없을 만큼 요동치고 있었다. 그제야 소스케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

 

저기 타카하시 군. 오늘 청소.”

너무나 조용하다 싶어 겨우 말을 걸었는데, 친구는 손으로 그를 막아섰다.

, 그거 내가 할 테니까.”

타카하시는 순순히 청소도구함으로 걸어갔다. 이상하네. 당연히 부탁할 줄 알았는데. 매번 부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며칠간 잠잠했던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자기가 청소하겠다고까지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마코토는 두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리둥절해하는 마코토의 앞에 타카하시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섰다. 직접 청소할 모양이었다.

그동안 청소 대신해 줘서 고마웠어.”

? , .”

다시는 부탁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이 들려 마코토는 벙쪄 있었다. 가방을 들고도 믿기지 않아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 사이 타카하시는 청소를 시작했다. 힐끔 뒷자리를 흘기는 타카하시의 시선의 끝에는 자리에 남아 창밖을 보는 소스케가 앉아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교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사이로 맑은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코토는 비질을 하는 타카하시를 보며 생각했다. 혹시 청소를 못했다고 선생님께 혼났나? 그런 건 아니겠지? 마음이 바뀐 걸 수도 있고. , 더 남아 있으면 청소하기 불편하겠지. 서둘러 교실을 나서는 마코토의 등 뒤로 소스케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코토,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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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 AU를 꾸준히 적어 모아 언젠가 책으로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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