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소스마코 집에 가는 길

중독된 깡 2015. 5. 8. 11:38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 강변에는 작은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 걸음 사이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마코토는 앞서 걷고 있는 친구의 등을 보고 있었다. 몸싸움으로 티셔츠 곳곳에 구김이 가 있었다. 괜히 말려들게 만든 것 같단 생각에 마코토는 팔로 슥슥 눈가를 훔쳤다.

너 왜 자꾸 울어?!”

뒤돌아선 소스케의 큰 소리에 마코토는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찌푸려진 얼굴과 날이 선 표정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울면 안 되는데. 더 울면 소스케가 화낼 거야. 그치만.’

마음과는 다르게 초록빛 눈망울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다. 에휴. 울고 있는 마코토에게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길에 서서 울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보였다. 소스케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 마코토한테 화내려는 게 아닌데. 아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만 잔뜩이다. 소스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

 

타치바나, 나 오늘 약속 있으니까 청소당번 대신해 주라.’

가방을 정리하던 아이는 멀뚱멀뚱한 얼굴로 말을 건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스케는 한숨을 쉬었다. 방과 후에는 소스케네 집에서 같이 대전게임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거절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친구 역시 부탁하는 사람으로서 할 태도가 아니었는데도 마코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상대와 소스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오늘 나랑 약속 있으니까 안 돼.’

보다 못한 소스케가 나섰다. 하지만 친구는 물러서지 않았다.

타치바나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네가 나서? 해 줄 거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녀석, 바보같이 착하기만 해서. 반 친구 중 몇몇이 마코토에게 일을 떠넘기는 것도 몇 번 지켜봤었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좋아서 도와주는 건 아닐 텐데.

마코토가 말하면 다 들어준다고 그렇게 이용하지 마.’

소스케의 목소리에 교실 안에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네가 뭔데? 타치바나가 뭘하든 상관없잖아. 그렇지, 마코토?’

그런데도 마코토는 난처한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게 전부였다.

, 나는.’

그러니까, 화를 내라고 화를!! 참다못한 소스케가 책상을 치며 외쳤다.

마코토 괴롭히지 말라고!’

 

***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다시금 차오르는 분노에 소스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엔 싸움까지 이어졌고 교실에 남아 있던 여자아이들이 선생님을 불러와 상황이 끝났다. 선생님은 마코토에게 당번을 넘기려던 친구에게,싸움의 주동자가 돼 버린 소스케에게 주의를 시켰고 남은 청소는 둘에게 맡겼다. 마코토는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소스케의 청소를 돕다가 이제야 돌아가는 길이었다.

네가 거절을 못 하니까 저쪽도 멋대로 하는 거 아냐.”

자리에서 일어난 소스케가 입을 열자, 마코토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아이를 봤다. 아까보다 누그러진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는 않은 듯했다.

소스케. 화났어?”

지금 그게 중요해? 그렇게 되물었다간 더 울 게 뻔했기에 소스케는 고개를 저었다. 우물쭈물 눈치를 보는 친구의 모습에 그는 팔짱을 꼈다. 나는 참을 수 있다. 참을 수 있다. 되뇌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안 났어.”

, 정말?”

안 났다니까!”

, 실수했다. 다시 나온 큰 목소리에 소스케는 혀를 찼다. 화내려는 게 아니야. 마코토한테 화난 거 아니라고. 아이는 머릿속에 다짐하듯 되뇠다. 내가 좀 더 힘이 셌으면 그 녀석이 마코토한테 저러지 못했을 건데. 마코토는 착하니까,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마코토의 상냥함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에 화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마코토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노을빛이 물들어 온 세계가 주황으로 물들었는데도 빨갛게 변해 버린 눈가가 확연히 드러나 소스케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른세수를 하던 소스케는 심호흡으로 화를 억눌렀다. 훌쩍이는 소리 사이로 소스케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울지 마.”

그 목소리에 마코토는 잠시 손짓을 멈췄다. 계속 눈가를 훔친 탓에 소매가 닿은 눈가가 따가웠다.

, 미안자꾸 눈물이 나서.”

아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친구를 봤다. 키도, 체격도 그와 큰 차이는 나지 않는데도 소스케는 마코토보다 한참이나 어른스러워 보였다. 항상 소스케한테 도움만 받고 있으니까. 나도 소스케처럼 강해지고 싶은데. 오늘 싸운 것도 결국엔 나 때문이고, 나는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왜 우는데?

미안하고 고맙고그래서.”

마코토는 또 눈물을 흘렸다. 눈물조차 닦지 못하고 마코토는 소스케를 보며 웃었다. 울면서 웃는 얼굴에 소스케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마코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소스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만 울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친구의 턱을 붙잡은 채 빤히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

소스케?”

입술이 겹쳐졌다. 마코토는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온 소스케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어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수면 위에 퍼진 노을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

 

입맞춤이 끝나고 마코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강물 위에 흩뿌려진 노을빛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울지 마.”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붉어진 얼굴로 뒤돌아선 소스케는 빠르게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도 멈출 수 있던 울음소리는 그친 지 오래였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묻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마코토는 자리에 서서 걸어가는 친구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소스케는 뒤따라 들리지 않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부끄러움에 걸음을 빨리했던 것뿐인데, 마코토는 아까 그 자리에 선 채로 멀뚱멀뚱 그를 보고 있었다.

소스케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되돌아오는 친구의 모습에 마코토는 또 혼날지도 모른단 생각에 몸을 움츠렸지만, 소스케는 말 대신 덥썩 손목을 낚아챘다. 마코토는 그 손에 이끌려 친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동생들이 늘 해주는 뽀뽀였지만, 소스케와의 입맞춤은 조금 다른 것 같아. 손가락으로 입술을 더듬던 마코토는 고개를 들었다. 앞장선 소스케의 등이 평소보다 더 크게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