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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개할 즘이었다. 햇볕은 따듯해졌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는 꽃내음이 가득했다. 완연해진 봄의 기운에 새싹 역시 파릇파릇 돋아날 무렵이었다. 맡았던 아이들의 학년이 바뀌고 이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가 교무실에 왔다.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교무실에 둘뿐인 걸 확인한 아이는 내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붉어진 얼굴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고백이었다.
‘마코토, 나랑 결혼하자.’
***
정신이 깨기 전에 손길이 느껴졌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손가락이 기분 좋았다. 옆에 있을 사람은 그 아니면 없었기에 그대로 눈을 뜨지 않았다. 어제 퇴근길에 소스케랑 만났지.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었다. 기분 좋게 마신 후에 집에 들어와서는 침대로 직행했고… 지금은 아침인 건가. 눈을 떠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뜨이지 않았다. 어제 울었던가. 소스케의 목을 매달리듯 끌어안고 운 것까진 기억나는데…. 사뭇 든 생각에 눈을 떴다. 퉁퉁 부어버려 그나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몽롱한 정신에도 온기를 찾아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으으응. 나도 모르게 새어 나간 소리에 옆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쪽하고 얼굴에 와닿은 입술이 부드러웠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스치는 이불 역시 기분 좋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몸 한가득 이불에 베인 체취가 느껴졌다. 내 냄새. 그리고 소스케 냄새. 실눈을 뜨고 보았을 때 소스케는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생일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이제까지도 잘 쓰고 있는 걸 보면 꽤 마음에 들어하는 듯했다. 다행이다.
연하의 남자친구는, 그것도 12살이 넘게 차이 나는 애인은 조금 버거웠다. 조금이라도 유행에 뒤처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 하나하나 너무 나이 든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조심하게 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겨를도 없었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어젯밤의 여운으로 머리가 울렸고 허리는 삐걱거렸다.
피곤해. 아파. 졸려…. 우는 듯 새어나간 소리에 소스케는 내 옆에 누웠다.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떠 그를 봤다. 내 등을 토닥이던 손이 허리에 감겼다. 허리부터 시작해 어깨까지 훑어가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이어지는 쪽쪽 소리에도 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그냥 이대로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웅얼웅얼,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는 내 반응에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배 안 고파? 더 잘래? 다정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었다. 만져지는 단단한 근육을 더듬어 그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더 잘래. 졸려. 꼴사납게 보일지도 모르는데 오늘만큼은 소스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나이 많은 애인이 이러는 거 괜찮으려나. 걱정도 잠시, 소스케는 내 등을 쓸어내렸다.
“마코토, 궁금한 게 있는데.”
“으응?”
눈도 뜨지 못한 채 물었다. 소스케의 손이 뺨에 닿았다. 볼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꿈 꿨어?”
엄지손가락이 입술을 더듬으며 벌어진 틈새로 장난스레 들어왔다 나갔다.
좋은 꿈 꾸는 거 같길래. 입 벌리고 헤 웃더라고. 소스케의 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그럼 똑같이 대답해줄까.
“비밀…!”
그러자 손가락이 내 볼을 잡아 늘였다. 아프진 않은데 주욱 늘어난 볼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마라에. 마랄 에니아…. 어눌한 내 발음에 소스케는 웃으며 손을 놓았다. 가볍게 닿았다 떨어진 입술에 눈을 떴다.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거리에서 그는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나를 보고 있었다.
“소스케 꿈 꿨어. 처음 소스케가 프로포즈 했을 때 꿈….”
부끄러움에 마주했던 눈동자를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다시 듣고 싶어?”
프로포즈를 받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는지 소스케는 씩 웃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변명할 새도 없이 소스케의 손에 이끌려 나는 그대로 그와 몸을 맞댔다. 이제 내 거니까 놔 줄 생각도 없지만. 그 말에 나는 조심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스케는 한참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 곧 졸업반이 되는 나이인데, 서른 중반을 넘어서는 아저씨에게 아직도 그때처럼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제자를 꾀어 찬 선생님이라는 별명도 모자라, 진짜 결혼했다는 걸 나 자신도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때는 소스케 작고 엄청 귀여웠는데.”
“그럼 지금은?”
장난기 어린 질문에 나는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이 차이부터 주변의 시선까지 걸리는 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불안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워하는 나를 붙잡아 준 건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이 남자였다.
“지금은 되게 멋있어졌어. 물론 그때도 멋있었고.”
처음 고백 받았을 때는 당황했었지만, 그 학생하고 정말 결혼할 거라고는 그땐 생각도 못했었으니까. 이야기하고, 몸을 맞대고, 너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어지는 말에 소스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스케.”
“응?”
말하고 나서야 생각났지만, 방금 한 말도 엄청 나이 든 것 같은 말 아니었으려나. 순식간에 몰려오는 후회에 눈을 감았다. 물론 이런 심정을 말하면 소스케는 고개를 내저을 게 뻔했다. 뭐가 늙은이 같냐며 화를 내고 지금도 예쁘다며 풀이 죽은 나를 토닥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래서 더 소스케가 좋아. 그때부터 변치 않고 나만 바라봐 줬다는 게,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참 신기하고 감사해.
감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지만, 이 말만큼은 꼭 눈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간신히 눈을 떴다. 마주 본 푸른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소스케가 좋아. 언제나 그 눈 가득히 나만 담고 있는 소스케가 좋아.
“많이 좋아해.”
여전히 몽롱한 정신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더 입을 열어도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아 침묵을 유지했다. 항상 누울 때면 자연스레 벌어지는 입술에 소스케가 몇 번이고 입을 맞췄지만,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게 한계였다. 쏟아지는 잠에 취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조용히 토닥이는 소스케의 손에 맞춰 새근새근 숨을 뱉었다. 따뜻해서, 부드러워서 또 안심이 돼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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