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힘껏 내젓는 만큼 몸은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은 손을 내저었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데 집중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마자키 군은 빠르네’나 ‘잘한다’ 같이 얼핏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소스케는 수영을 좋아한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잘하게 된 만큼 더 좋아하게 됐다. 수영 역시 좋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건 따로 있었다.
레일의 끝에 도착했다. 터치를 끝내고 수경을 들어내자 환히 웃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굉장하네, 소스케. 엄청 빠르다. 생긋 웃는 얼굴을 보자 소스케도 웃음이 났다. 당연하죠, 선생님. 나 잘한다니까. 항상 수영을 마칠 때면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정말 좋아서 소스케는 연습 이후 주어지는 자유시간에도 몇 번이고 다시 끝에서 끝으로 왔다갔다 했는지 모른다. 노력하는 만큼 알아주는 사람, 그리고 언제든지 웃어주는 사람. 소스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려 애써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풀에서 올라오자, 마코토는 손뼉을 치며 그를 맞이했다. 그럼 잘했으니까, 상 줘야겠다. 뭐 줄 건데요? 물을 새도 없이 남자는 아이를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단단한 가슴에 휩싸이듯 폭 안겨버린 소스케는 당황했지만 이내 저를 안은 마코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손끝에 만져지는 근육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단단했다. 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했다. 꼭 베개라도 안고 있는 것처럼.
차분히 숨을 고르던 소스케는 고개를 들었다. 쨍하니 빛나는 태양 때문에 마코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하, 다른 것도 원하는 거야?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케는 입술을 비죽였다.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길래 저렇게 말하는 거지? 머뭇거리던 소스케가 딴청을 피우는 사이에 마코토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말캉하게 닿는 입술에 소스케는 눈을 감았다. 소란스럽던 주변의 목소리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맞닿은 몸도 상상했던 입술의 촉감도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소스케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마코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선생님. 마코토 선생님, 좋아해.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햇볕이 뜨거운 시간이었지만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태양보다도 더 따갑게 소스케의 귀를 자극했다. 천천히 뜨인 눈이 몇 번 깜빡였다. 현실감 없는 꿈. 선생님이 할 리 없는 행동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나고 드디어 그게 꿈이고, 깨어난 지금이 현실임을 자각한 소스케는 울리는 머리를 짚은 채 몸을 일으켰다.
소독약 냄새가 나고, 누워 있는 침대를 보면 양호실 같았다. 커튼 너머에서 의자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침대 사이에 처져 있던 커튼을 걷어 버린 양호선생님은 다정히 말을 걸었다. 일어났니? …네. 가라앉은 목소리에 소스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몸은 괜찮고? 이어지는 질문에 소스케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수영장에 있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스케의 반응에 양호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잠깐 쉬고 있으렴. 담임 선생님 부를 테니까.”
체육 선생님이 자유시간을 준 게 화근이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끼리 무리지어 어떻게 하면 더 웃기게 수영장에 뛰어들까로 경쟁이 붙었다. 거기에 뛰어든 사람을 올라오지 못하게 누르는가 하면 조금 거칠어진 분위기에 어떻게 휘말렸던 것 같다. 카지였던가. 목에 팔을 걸어 눌렀던 친구를 떠올리며 소스케는 표정을 구겼다.
쓰러지기까지의 일을 기억해 낸 소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이불을 걷었다. 옷은 수영복 대신에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체육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누가 갈아입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스케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축축하게 젖은 아랫도리의 느낌에 소스케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았다. ‘초등학교 5학년씩이나 돼서 이불에…’란 생각도 잠시, 아이는 희뿌연 액체를 확인했다. 이게 성교육 시간에 배웠던 그건가?
수화기를 든 양호 선생님이 ‘타치바나 선생님, 아이가 깨어났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선생님. 지금 담임 선생님보다 다른 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양호실 문이 열렸다. 깨어났어요. 이상은 없는 것 같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잠시 자리 비울 테니 봐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끝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남자의 목소리에 소스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망할, 지금 어떻게 마코토 얼굴을 보라는 거야.
“소스케?”
양호 선생님의 말과 달리 자리에 누워 있는 모양새에 마코토는 침대 옆에 다가갔다. 걱정하는 목소리에 이불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소스케는 마코토를 보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 꿈에서 봤던 마코토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꽉 끼도록 잠겨 있는 하얀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가슴 진짜 크구나. 새삼 깨달은 소스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냐고…!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유심히 그를 살펴보던 마코토는 침대 옆에 앉았다.
“괜찮니? 기억은 나?”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혀 소스케는 손으로 머리를 넘겼다. 길어진 앞머리가 눈을 찔러 마코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더 눈을 맞추려 했을 텐데, 오늘은 가까이 다가온 초록빛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었다. 괜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괜찮아. 멀쩡해. 다 기억나고….”
“다행이다. 장난이었지만, 그래도 수영장에서 그렇게 노는 건 위험해. 다른 친구들에게는 주의하라고 일러뒀으니까, 소스케도 다음부턴 조심하자?”
힐끗 곁눈질로 선생님을 보던 소스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교실로 갈까?”
자리에서 일어선 마코토가 손을 내밀자, 소스케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저기, 선생님.”
“…응?”
“부탁이 있는데.”
“응. 뭔데?”
***
커튼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교실에서 소스케의 옷을 가져다준 마코토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첫 몽정. 어떤 꿈을 꿨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남자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소스케에 알려주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하지만, 소스케의 경우 어른스러운 면도 있는 데다가 성교육 시간에 배웠던 사실을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옷을 갈아입은 소스케는 커튼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방금까지 입고 있던 체육복이 들려 있었다. 축축하게 젖어 버린 바지는 윗도리로 감추듯 꽁꽁 싸맨 채였다. 옷을 건네줄 때 준 휴지로 소스케 혼자 알아서 처리한 모양이었다. 마코토는 심호흡을 하며 소스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똑바로 사람을 보고 이야기할 줄 알던 소스케인데 오늘은 좀처럼 마코토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사건도 사건인 탓일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기, 소스케. 이미 다 알겠지만… 생리현상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상적인 거고. 오히려….”
“신경 쓸 거야.”
“에?”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온 대답에 마코토는 눈을 크게 떴다. 깜빡이는 눈동자에 소스케는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꿈에 좋아하는 사람이 나왔거든.”
선생님을 향했다가 금방 바닥으로 도망가 버린 시선에 마코토는 웃으며 소스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에게서 손을 뗀 마코토는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랬구나. 다행이네. 소스케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나 보다.”
“응. 엄청 좋아하는 거 같아. 잘 몰랐는데 이제 확실해졌어.”
여전히 눈을 돌린 아이의 모습에 마코토는 웃으며 소스케의 짝사랑 상대를 추측해 보았다. 누구일까? 같은 반 친구일지도 모르는데. 소스케가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 몇 명을 떠올려 보았지만, 두루두루 아이들과 잘 지내는 소스케였기에 딱 누군가를 꼽기가 어려웠다.
“아, 혹시 선생님도 아는 사람이야?”
선생님의 질문에 소스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운동장에서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사이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케는 당황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 정곡인가 보다. 역시 그럼 반 친구들 중 한 명일까? 말하기 싫은 거라면 굳이 물을 생각은 없는데. 아이는 흐뭇하게 웃고 있는 마코토를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드르륵 양호실 문이 열리고 소스케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선생님을 향해 아이는 크게 외쳤다.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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