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구

쿠로코의농구 청화 전력 60분 배틀

중독된 깡 2014. 7. 6. 00:08









“씨발!!”


간발의 차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 총알에 욕이 절로 나갔다. 흔히 쓰일 법한 이야기였으나 이젠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이야기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어 어안이 벙벙했으나, 손은 본능대로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탄알이 시멘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내가? 천하의 아오미네가? 철컥 소리와 함께 장전을 마친 뒤 깊은숨을 내뱉었다. 침착하자. 나는 겨우 이딴 데서 죽을 놈이 아니라고. 진정해.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나는 살아서 돌아간다. 어디로? 집으로.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그 순간, 총알 수십 발이 기댄 기둥으로 쏟아졌다. 워낙에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이었기에 총에 맞진 않았지만, 답을 정정해야만 했다. 이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하지? 답해 줄 상대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표정을 살필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얼굴을 보러 가는 수밖에 없잖아.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며 어려운 일을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야만 했다. 지금 그 녀석이 왜 내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기억을 더듬어 아침을 떠올렸다. 점심이 다 되도록 침대 위에 뻗어 있다가 일어났을 때, 카가미는 이미 옆에 없었다.


-다녀올게. 햄버거 만들어놨어.


간단히 남긴 메모를 확인하고 전자레인지에 놓여 있는 버거를 버튼 한 번을 눌러 데웠다. 카가미가 만든 요리는 뭐든 입에 잘 맞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TV를 틀어둔 채 샤워를 하고 씻고 나온 후에 선풍기에 머리를 말렸다. 다림질되어 있는 정장을 꺼내 입고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밖으로 나온 게 3시 반쯤. 정오를 지난 시간인데도 더워 죽을 것 같았다. 셔츠 윗단추를 몇 개 풀러 내고 연신 부채질을 하다 료를 만났다. 최근 토오의 기밀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조직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에, 보고는 료를 만나 직접 들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소문은 예상외로 신빙성이 있었다. 료가 내민 서류뭉치는 던져버리고 한 장으로 요약된 문서가 그렇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거기 적힌 게 전부예요. 간부급만 아는 기밀이 새나가고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보스가 직접….”

“뭐야? 이마요시가 날 의심한다는 거야?”

“아뇨, 보스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럼 와카마츠냐?”

“아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이상은 정말 보스께 들으셔야 할 거예요.”


죄 없는 아랫놈을 쪼아서 뭐하나 싶은 마음에 그 이상 캐묻는 짓은 하지 않았다. 정보가 빠져 나가고 있는 건 확실했으니까. 그간 조직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쪽에 주의를 기울여 왔으니 남이 돈 불리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녀석들이 일을 벌인 걸지도 몰랐다. 짐작 가는 곳은 어디인지 살펴보다 몇몇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카이조. 슈토쿠. 세이린. 상권다툼에서 이쪽과 맞붙어 깨진 적이 있는 곳은 모두 의심해 볼 필요가 있었다. 특히 요근래 묘하다 싶을 만큼 조용한 놈들이었기에 사쿠라이에게 사람을 붙이라 말하고 금방 자리를 떴다. 관할 지역을 둘러보는 와중에 카가미에게 몇 번인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뭐하길래 전화를 안 받냐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메시지를 받은 상대가 저 너머에 서 있다. 그냥 호신용으로 총을 갖고 다닌다고 말하기엔 총을 다루는 솜씨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적어도 초보는 아니라는 얘기. 혹시나 싶어 잠깐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이쨩이 애인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해서 좋네. 가슴이 큰 사람. 맞지?’


카가미를 처음 소개했을 때 모모이가 했던 말이었다.


‘그래도 그 기준으로 고른 것치고는 제대로 된 사람이잖아. 다이쨩 항상 돼지우리 같이 해놓고 사니까 걱정이었는데. 카가미 씨가 옆에 있어주면 안심일 거 같고. 잘됐네.’


좀처럼 애인에 대해 좋은 평을 하지 않던 소꿉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기에 아오미네는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영원토록 오래오래 사랑했습니다까지는 아니어도 신혼의 단물이 빠지기 전까지 카가미와 어긋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카가미는….


기둥 두 개 너머에 있는 녀석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세이린이었나. 마지막으로 료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는 카가미 타이가에 대해 말했다. 세이린 소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그 녀석이 뭐? 착해 빠진 데다 아이들이나 사람들 돕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고 지금쯤이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야 할 녀석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뒤이어 휴대폰이 몇 번인가 더 울렸지만, 날아드는 총알에 메시지를 볼 여유는 없었다.


총알세례가 끝나고 상대가 탄창을 갈아 끼우는 틈을 타, 앞쪽으로 몸을 날렸다. 갈아 끼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사이 기둥 하나를 건너가지 않으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가 선물한 구두 발소리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울려 퍼졌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멎을 때쯤, 몸을 날려 간신히 하나 가까이 다가갔다. 뒤이어 다시 쏟아지는 총알 세례. 아까보다 가까워진 거리에 총을 바꾸는 손길이 다급해졌다.


이유가 무얼까. 혹시 모르는 일이라고. 저 녀석이 다른 조직한테 협박당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머릿속에선 온갖 가능성을 생각해내고 있었다. 카가미가 그럴 리 없다고.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일 뿐이라고. 하지만 본능은 알고 있었다. 카가미는 그런 단순한 녀석이 아니라고.


총소리가 끝나고 기둥 밖으로 뛰어 나갔다. 빨간 머리가 기둥에서 튀어나와 총을 겨눴고, 나 역시 그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사정없이 울리는 총소리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탄이 바닥날 때까지 나도, 그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녀석과 기둥 하나만큼 떨어진 거리였다. 지금까지 저쪽은 백 발도 넘게 쐈을 텐데.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괜한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 카가미? 너는 대체 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거지? 이미 이마요시한테는 보고가 들어갔을 텐데.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이 상황을 만들어낸 건 카가미인데. 이제 곧 그 낯짝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을 수 있단 생각에 힘이 솟았다. 제정신이 아니라면 일단 그 잘난 얼굴에 주먹부터 날리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그를 향했을 때, 카가미 역시 똑바로 서서 총구를 겨눈 채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와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Fin.


@sleep_k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