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구

쿠로코의 농구 흑화 쿠로코X카가미 이벤트 참여

중독된 깡 2014. 5. 30. 17:46

 





 

 

"미안, 쿠로코!"

 

카가미는 제 무릎을 간신히 넘은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난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실 줄 알고... 미리 전화해 볼걸."

 

그는 작은 아이의 손을 어루만지다 유심히 저를 보고 있는 눈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아이는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이나 밑에 있는 아이가 눈을 맞추는 것이 힘들 것 같아, 카가미는 아이에게 맞춰 자리에 앉았다. 목이 부러질 듯 그를 올려 보던 아이의 얼굴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티 없이 맑은 하늘색이 반짝이며 눈동자 가득 그를 담아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순수했다. 적어도 카가미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한 팔로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는 자그마한 몸이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순수함에 울고 화내다가도 금세 웃으며 뛰어노는 것까지 무엇 하나 가릴 것 없이 전부 귀여웠다. 그는 멀뚱멀뚱 저를 쳐다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이의 입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할 말을 생각하는 걸까, 말하기 곤란해서 그러는 걸까. 카가미는 저보다 몇 배는 작은 아이가 입을 열 때까지 보채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자그마한 손이 카가미의 손가락 두어 개를 붙잡았다. 손끝에서 손가락과 바닥이 이어지는 부분까지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카가미의 손가락 끝을 모아 붙잡았다. 그리고 꼭 쥔 손을 놓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카가미 군."

 

겨우 튀어나온 말이 별것 아니라 카가미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군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니까. 토를 달려 했지만, 입을 다문 채 시선을 돌린 쿠로코의 표정이 좋지 않아 카가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다른 곳을 향한 쿠로코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니까 진짜 모르겠단 말이지. 처음 이 유치원에 왔을 때부터 쿠로코는 신기한 아이였다. 분명히 그 자리에 있는데 없는 것처럼 존재감이 옅었다. 자리에 있는 줄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아 버려 쿠로코를 깔아 버릴 뻔했던 일도 있었다. 분명 인원수대로 챙겼는데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간식이 남을 때도 있었다. 처음엔 실수했나 싶었지만, 전부 쿠로코를 놓친 탓이었다. 분명히 옆에 있는데도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시선을 떼면 금세 사라져 버리기에 카가미는 쿠로코를 바래다주려 나서던 길에도 아이를 잃어버리진 않을까 손을 잡았었다.

 

뭔가 이 녀석이 화날 만한 일이 있었나. 오늘은 내내 잘 보고 있었는데. 구연동화 시간에 쿠로코가 잠들긴 했었지만, 평소 같으면 조는 일도 없던 아이가 유난히 피곤해 보이기에 자도록 내버려둔 것뿐이었다. 간식도 잊지 않고 챙겼고. 숙제 검사도 잊지 않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아이들이 잊어버려 구석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던 쿠로코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었다. 관심을 가져달라고 귀찮게 구는 키세나 반을 휘젓고 다니는 아오미네에 비하면 쿠로코에게는 편애가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 건데. 이 녀석은 왜 항상 이렇게 나를 볼까. 아이에겐 하지 못할 말들을 생각하며 카가미는 쿠로코의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친 쿠로코는 카가미의 얼굴을 보자 한숨을 내뱉었다. 또. 또다. 쿠로코는 카가미를 자주 봤다. 그저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라 일부러 카가미만을 주시하는 눈이었다. 마주쳐도 딱히 피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카가미는 눈싸움을 하자는 건가 싶어 몇 번이나 쿠로코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긴 적은 없었다. 또 놀아달라는 말인가 싶어 곁에 다가가면 쿠로코는 별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작게 숨을 뱉었다. 이것도 또.

 

카가미는 꿀꺽 침을 삼켰다. 땅이 꺼져라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에 카가미는 쿠로코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며 아이를 나무랐다.

 

"어린 애가 벌써부터 그렇게 한숨 쉬는 거 아냐."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쿠로코는 맞은 부분을 제 손으로 문지르며 카가미에게 답했다.

 

"무슨 말입니까, 카가미 군. 요즘 유치원생이 얼마나 바쁜지 압니까? 유치원이 끝나면 영어부터 시작해서 미술, 음악, 수학학원에 초등학교 선행학습에 빠른 친구들은 중학교 진도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유치원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겁니까?"

 

"오..오우..."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쿠로코의 말에 그는 수긍하며 입을 다물었다. 사실 쿠로코에게 미움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항상 조용하고, 남들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는 그만큼 남을 보고 관찰하기를 좋아해 그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유독 카가미를 보는 시선의 끝에는 항상 한숨이 나왔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그런 탄식이 터져 나오지 않았기에, 그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놀라곤 했다.


아이들의 눈을 보면 그게 애정인지, 질투인지 보통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쿠로코는 예외였다. 아이라기엔 이미 세상을 다 산 듯 해탈한 눈빛이었고, 그렇다고 어른이라기엔 아직 무리인 얼굴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안 사정을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조숙한 점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또래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에 카가미는 아이에게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쿠로코를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숨은 좋지 않으니까."

 

멋쩍어진 카가미가 쿠로코의 볼을 잡아 늘이며 말하자, 쿠로코는 그의 손을 붙잡아 내리며 토를 달았다.

 

"그게 누구 때문인데요."

 

쿠로코는 손바닥으로 얼얼해진 볼을 문지르며 카가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아오미네? 키세? 모모이인가? 

 

"응? 누구 때문인데?"

 

궁금한 마음에 눈치도 없이 튀어 나간 선생님의 물음에 쿠로코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카가미 군은 이런 사람이지.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눈치챌 리가 없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지금 유치원에서도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말하면 앞에서 이야기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할지도 몰랐다.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카가미의 멍청함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답을 기다리는 카가미의 눈빛에 쿠로코의 얼굴은 납득하며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쿠로코는 볼을 문지르던 손을 쭉 펴 보았다. 이제 겨우 다섯 살. 지금 좋아한다고 말해 봐야 '선생님도 쿠로코 좋아해!'하고 웃어넘길 답이 돌아올 건 뻔한 이야기였다. 어린 애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말로, 정말로 카가미 군이 좋은데.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는 20살에 가까운 나이 차를 극복할 방법이 없나. 쿠로코는 골똘히 생각하다 고개를 푹 숙여 카가미의 어깨에 기댔다. 아직은 어리고, 카가미에 비하면 살아온 시간도, 경험도 그 모든 것이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생각해봤자 다섯 살이 떠올릴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 어리지만, 쿠로코도 그 정도의 현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카가미 군. 제 꿈 기억하고 있습니까?"

쿠로코는 카가미의 옷자락을 꼭 쥐며 물었다.

 

카가미는 몇 주 전, 미술 시간에 키세키반 아이들이 그렸던 그림을 떠올렸다. 장래희망이라는 주제에 맞춰 아이들은 제각각의 그림을 그려냈었다.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려낸 작품들은 솜씨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만의 순수한 꿈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연예인, 농구 선수, 모델, 현모양처 등등 다양한 직업 가운데서도 쿠로코의 그림은 유독 눈에 띄었었다.

 

"기억하지. 날 그렸는데, 그럼."

 

쿠로코는 자신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빨간 머리의 남자를 그려놨었다. 처음에는 누구를 그린 건가 의심했지만, 알아보지 못할 사람을 위해 그림 밑에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카가미 군을 신부로 맞을 겁니다.' 칭찬해 주길 바라는 건지, 쿠로코는 자랑스레 그에게 그림을 내밀었었다. 그런 아이의 꿈을 깰 수도 없어 카가미는 나를 신부로 맞으려면 빨리 커야겠다며 쿠로코의 머리를 쓰다듬었었다. 하필이면 신부가 남자 선생님인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린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나 크면 아빠랑, 엄마랑 결혼할 거야!'와 같은 말이었다. 쿠로코가 유독 자기를 지켜보는 반 선생님에게 애착을 가지는 거야 얼마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 카가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툴게 그린 삐뚤빼뚤한 선에 열심히 색칠하겠다고 카가미의 눈썹과 빨간 머리까지 몇 번이고 덧칠했던 그림이 생각나 카가미는 피식 웃었다. 그때, 아이의 보드라운 입술이 쪽 소리를 내며 카가미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쿠로코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됐습니다."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에 카가미는 할 말을 잃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쿠로코는 카가미에게서 떨어져 집으로 가려는 듯,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카가미는 저도 모르게 방금 아이가 입 맞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 보드라운 감촉이 남아 있는 볼이 뜨거웠다. 화끈거리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카가미는 소매로 쓱쓱 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녀석, 지금 고백한 건가? 어린 애가, 되긴 뭐가 됐다고. 머리색만큼이나 얼굴도 빨갛게 변한 카가미를 두고 쿠로코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멍하니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복잡해지려는 머릿속을 뒤로하고 쿠로코를 놓칠세라 걸음을 내디뎠다.

 

"야, 쿠로코! 같이 가!"






ㅠㅠㅠ 썼다는데 의의를 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