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구

쿠로코의농구 청화 전력 60분 여름

중독된 깡 2014. 6. 22. 00:12








이른 아침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쏟아지고 있는 비 덕분에 그는 험악한 인상을 더욱더 구겼다. 배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멍하니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마라고 했던가. 며칠 전까지는 내리쬐는 햇볕에 안 그래도 까만 피부가 더 타겠다며 소꿉친구의 농담을 들었었는데. 아오미네는 걷어찼던 이불을 대충 침대 위로 끌어올린 뒤, 어둑어둑한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는 빗줄기는 엊저녁보다 더 굵어진 빗방울이 되어 세차게 쏟아 붓고 있었다. 잠깐 창문을 열어보았으나 들이치는 비바람에 곧 문을 닫았다. 우산을 쓰고 나가도 다 젖어버릴 날씨였다. 나가는 건 포기해야 하려나. 귀찮은 일은 싫었지만, 집에만 있기엔 몸이 근질거렸기 때문에 한숨을 토해냈다. 체육관이 있었다면 날씨든 뭐든 상관없이 농구를 할 수 있을 테지만, 연습도 땡땡이치는 그가 일부러 체육관까지 행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 귀찮아. 잠이나 더 잘까.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오늘처럼 눈이 떠진 건 방학한 이래로 매일 같이 연락하는 그 녀석 때문이었다.


‘아오미네, 원온원 하자.’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카가미밖에 없었다. 가끔 사츠키나 키세가 귀찮은 문자를 보낼 때는 있었으니 그거야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카마미만큼은 물고 늘어지는 정도가 달랐다. 마치 테이코 시절에 키세가 끊임없이 원온원을 하자고 들러붙었던 것처럼. 메시지 몇 개야 무시하면 그만이었고, 전화가 오면 휴대폰을 꺼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휴대폰까지 꺼버리자, 그다음으로 카가미가 한 짓은 현관문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쿠로코와 모모이가 앞다투어 알려주었다고 했다. 쿠로코의 의도까지는 아오미네의 생각을 벗어난 일이었지만, 모모이라면 연습에도 나오질 않는 데다 카가미랑 붙는 거라면 어느 정도 제 구미가 당길 것을 생각해 일부러 알려주었을 것이 뻔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새로 도착한 메시지 0건. 아오미네는 귀찮다는 듯 아무렇게나 휴대폰을 던져두었다. 다시 잠을 청할 생각에 침대에 누웠으나 끈적거리는 공기에 잠이 오지 않았다. 거기다 베개를 베고 눈만 감으면 잠이 오던 평상시와는 달리 말똥말똥하게 떠진 눈은 쉽사리 감기질 않았다. 젠장, 그거 며칠 했다고! 방학이 시작한 이래로 일주일간 뻔질나게 저를 찾아온 카가미의 방문에 그는 문자 보내면 갈 테니, 남의 집 현관 좀 그만 부수라고 말을 꺼냈다. 카가미는 안 나오면 찾아올 테니, 연락하면 나오라는 말만을 남긴 채였다. 그렇게 매일 해 뜰 시간에 나가 해 질 무렵에 돌아온 게 3주째. 아오미네 몸의 생활리듬은 카가미가 연락해 오던 이른 아침으로 맞춰진 채였다.


그 새끼 때문이잖아.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열고 나온 아오미네는 이미 텅 비어버린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우유 팩째로 들고 몇 모금을 들이킨 그는 입가에 묻은 것도 귀찮은지 팔뚝으로 슥 훔쳐냈다. 뭐라도 먹을까 싶었지만, 부모님은 아침 식사 후 말끔히 부엌을 정돈한 뒤 나간 지 오래였다.


할 일 없이 쇼파에 몸을 던져 누운 아오미네는 TV를 틀었다. 긴급속보라며 엊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일본 전역에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지 화면에 잡혔다. 강풍이 심한 곳은 나무가 뿌리째 뽑히기도 했고, 34년 만에 최고 강수량을 기록한 시골에서는 마을 전역이 물에 잠겨 버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래 봐야, 도쿄랑은 전혀 연이 닿을 게 없는 이야기잖아. 리모컨 버튼을 꾹꾹 누르며 채널을 돌리던 아오미네의 손이 멈춘 것은 도쿄의 상황을 말해주는 지역방송에서였다.


‘오늘 새벽 5시경, 트럭 하나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야간 버스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통사고였기에 개의치 않고 넘어가려는 순간에 다른 소식이 들렸다.


‘계속해서 아침 7시쯤,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며 건널목을 건너던 학생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학생…? 카메라는 아오미네가 요 몇 주간 자주 갔었던 길목을 비추고 있었다.


‘사고를 당한 학생과 운전자는 중상을 입어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아오미네는 급하게 방으로 달려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버튼을 누르는 손이 긴장으로 계속 엇나갔다. 떨리는 손을 꽉 붙잡은 채, 메시지함을 열었다. 카가미에게서 온 메시지들이 보였다. 오전 7시 5분. 오전 7시. 오전 7시 10분. 오전 7시 4분. 오전 7시 8분. 거의 대부분이 7시에서 10분을 벗어나지 않은 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휴대폰 액정에 떠 있는 시간은 오전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비가 와서 안 보낸 건가? 그랬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었지만, 어지간한 비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원온원을 했었다. 


이런 씨발. 


아오미네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거지 같은 새끼가. 왜 매일같이 그 시간에 보내다가 오늘만 안 보내는데. 뚜르르르 뚜르르르 이어지던 통화음이 끊기고, 친절한 녹음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고객이 통화를 받을 수 없어… 아, 병신아!!! 아오미네는 급하게 저지를 챙겨 입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집을 나섰다. 거실에는 여전히 지역방송의 사건, 사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자를 뒤집어쓴 채, 온몸이 푹 젖어 길거리를 달리는 와중에도 아오미네의 통화는 계속됐다. 휴대폰은 아까부터 들려오는 통화음과 자동 메시지만을 반복하고 있었고, 열받음에 치솟았던 짜증이 슬슬 진짜 뒈진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으로 변해갔다. 찌푸려졌던 얼굴이 이제는 울상으로 변할 무렵에 간신히 통화가 연결됐다.


“어… 으응… 여보세요?”


애가 탔던 아오미네와는 달리 태연한 데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야, 새끼야!”

“아…? 뭐야, 아오미네?”

“씨발, 너 지금 어디냐고!”

“집이지. 어디야. 왜 아침부터 큰소리치고 난리… 어, 벌써 이 시간이네. 미안. 혹시 기다리고 있었어? 우와, 밖에 비 엄청 오는데?”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태연한 카가미의 반응에 차갑게 식어가던 아오미네의 몸이 열로 달아올랐다. 씨발,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걱정하고 있었는데 병신 같은 새끼가 집에서 잠이나 처자고 있었다 이 말이지. 


“…개새끼, 너 집에 가만 기다리고 있어라. 죽빵 날리러 갈 테니까.”

“어, 아오미네? 어? 야, 잠깐….”


아오미네는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급하게 입고 나온 저지도, 농구화도 몰아치는 비바람에 전부 젖은 채였다. 거기다 세수도 하지 않고 뛰어 나온 터라 얼굴 역시 말이 아니었다. 하, 씨발…. 그 새끼 하나 뒈지면 뭐가 어떻다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을 한 채로, 아오미네는 카가미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