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마코하루 '장마'

중독된 깡 2014. 5. 13. 10:46






눈을 떴을 때부터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새벽에도 번쩍거리는 빛에 깊게 잠들지 못했던 터라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도 정신이 없었다. 창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장마는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물을 퍼부었다. 이제 슬슬 태양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냐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좋지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비는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가 지속되면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하루가 물이 고인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겠다고 할지도 모르고. 이런 날씨와 이와토비의 파도치는 바다까지 더해지면서 좋지 않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 이러면 안 되잖아. 일어나 앉은 채로 고개를 내둘렀다. 아직은 띵한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하루를 데리러 가는 데 늦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깨우기 위해 양손으로 가볍게 뺨을 쳤다. 짝하는 소리가 방에 울렸고 볼은 얼얼하기까지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근처로 다가갔다.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태양을 찾아볼 수 없었다.

 

 

 

*

 

 

하루는 빨간 얼굴을 한 채, 자리에 앉아 훌쩍거렸다. 비 오는 날이 계속 이어지면서 학교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하루는 빗줄기가 약하던 날, 기어이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하는 하루를 지켜보는 건 좋았지만, 학교 수영장에 처음으로 들어간 그때처럼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닐까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바로 감기에 걸려서는 며칠째 달아올라 있는 얼굴은 여름감기가 얼마나 질긴지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집으로 데리러 갔을 때도 몸 상태를 보고 쉬는 게 어떻겠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기어코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얼핏 아침 뉴스에서 들었던 오후 중에 잠시 비가 그친다던 그 이야기를 듣고 수영장에 들어갈 생각은 아닐까 짐작했다. 수영장 열쇠는 선생님이과 내가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게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이런 잔소리는 이미 하루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도 없이 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루는 물에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고 다시 뛰어들 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루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물이니까.

 

수업이 시작되었어도 선생님의 말씀은 머릿속으로 하나 들어오질 않았다. 애써 펜을 들고 가르치려는 선생님도 있긴 했지만, 방학식에 공부하겠다는 학생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루는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멀리 내다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는 정말 여전하다.

막연히 기억나는 어렸을 적 일들을 되짚어보면 기억의 언저리에는 항상 하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는 물을 좋아했다. 항상 물과 함께였다. 수영을 시작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떠날 줄을 몰랐고, 겨울조차도 지금과 별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하루였으니까. 물에서 헤엄치는 하루는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불안했다. 하루카가 그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어디로든 갈 것 같았다. 수영장이라면 모를까 특히 바다는 더더욱. 하루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타고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 하루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물이 정말 싫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이 마셔야 하는 최소한의 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싫다. 그리고 무생물에마저 질투하는 내가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날 정도로 싫다.

 

언젠가 하루에게 물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던 일이 있었다.

 

'물은 살아있어.'

간단하게 대답하던 하루가 그때만큼은 꽤 긴 답을 했었다. 물은 흐르고 있다든가, 물이 말을 건다든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하루가 그렇게 느낀다면 정말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하는 하루는 수영할 때처럼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여서 보는 사람마저 들뜨게 했다. 그래서 하루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물이니, 나도 좋아해야겠다고 간단히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좋지만, 이런 식의 폭우는 좋아하지 않는다. 얼핏 떠오르는 기억이 다시금 밀려드는 것 같아 눈앞으로 손을 내젓자, 하루가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히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방긋 웃자, 하루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훌쩍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어렸을 적 들었던 다른 사람의 훌쩍임과 합쳐져 묻어두었던 기억을 되살려 냈다.

 

바다는 물의 집합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히 흘러가던 물은 끝에 가서는 결국 바다라는 종착역에 다다른다. 살아있는 물은 모이고 또 모여서 따로 있을 때는 숨기고 있던 본연의 힘을 발휘한다. 물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얕은 곳에서 사람이 죽을 리 없었다.

그런 물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마냥 쏟아지고 있는데 내 기분도 마냥 좋을 리는 없었다. 감기에 걸린 원인도 따져 보면 물이었다. 하루가 좋아해 마지않는 물.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뜨겁게 열이 오른 주먹을 꼭 쥐었다. 아마 선생님의 연설이 끝나고, 반 친구들은 모두 방학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루카는 내 손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하루. 오늘은-"

 

"타치바나. 잠깐 교무실로 올래?"

 

여름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방학 중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 텐데. 나기사에게 대신 가달라 부탁하고 싶었지만, 부장으로서 부를 맡은 이상 대충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카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가방을 챙기고 있었고, 언제 온 건지 나기사는 그새 교실 문밖에서 나와 하루를 부르고 있었다.

 

"마코짱. 오늘은 부활 안 하는 거야?"

 

"계속 비가 왔으니까, 오늘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불러서 잠깐 다녀올게. 하루 좀 부탁해."

 

하루는 뭘 부탁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말없이 웃음으로 답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

 

 

 

교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아침보다 더 밝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회색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 탓인지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도 학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교실로 돌아갔지만, 반에 있던 건 나기사와 레이뿐이었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있던 나기사는 레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맞이했다.

 

"기다렸어?"

 

"고우짱은 어차피 연습 못 할 것 같고, 약속이 있대서 먼저 돌아갔어."

"하루 선배도 가버렸고요."

"하루짱도 볼 일이 있다면서 먼저 갔는데."

 

"하루가 볼 일?"

 

불현듯 하루가 어디에 갔을지 생각이 미치자, 시선이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비는 그쳤고 날도 아까보다 좋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오후쯤 잠시 비가 그치겠지만'했던 기상캐스터의 말이 생각났다. 그 뒤로 '거센 폭우가 예상되오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도 연이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위험하다는 경보였다. 그래서 나기사에게 부탁한다고 했던 건데.

 

"나기사, 레이. 미안. 먼저 가볼게."

 

"에에? 마코짱도 볼 일 있는 거였어? 모처럼 방학식이고 다 같이 놀러 갈까 싶었는데."

 

"미안. 나중에 보자."

 

'선배!'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루. 하루가 위험할지도 몰라. 한 손으로 들었던 가방을 급히 들쳐멨다. 잠깐 개었던 하늘에는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늦으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다리가 움직이는 것이 빨랐고, 정신을 차려보니 숨이 차오른 채로 달리고 있었다.

 

하루가 어디 갔을지는 짐작이 갔다. 항상 있던 일이니까 별달리 생각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했을 터였다. 선생님과 내가 수영장 키를 가지고 있고, 이 날씨에 수영을 하겠다고 했다간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했다. 그 와중에 비는 그쳤고, 물에 들어가고 싶다. 여름인데도 며칠 동안 수영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갈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건 하나, 바다뿐이었다.

 

하필 이런 날씨에 꼭 물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아침저녁으로 욕조에 들어가 있는 하루를 보면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루가 내게 그러하듯, 하루 역시 물을 떼어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겠지. 폭우가 올 거라는 말 뒤에는 파도가 높고 바람이 많이 불겠다는 예보가 이어졌었다. 비가 오고, 날도 흐리고 천둥번개까지 쳤었는데. 아무리 잠깐 비가 그쳤다고 해도 하루가 바다에 들어갔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하루가 하던 행동은 그런 틀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기에 그저 빨리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팔과 얼굴에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하루!"

 

바닷가에 도착하자 남자 한 명이 물에 반쯤 잠겨있는 모습이 보였다. 빗소리에 묻힌 건지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지나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루인가 의심할 여지도 있었지만, 하루가 아니라면 이런 날씨에 수영하러 나올 사람은 없었다. 하루가 짐을 내려놓은 곳까지 다가가 다시 그를 불렀다.

 

"하루, 하루! 위험하잖아! 파도가 이렇게 높은데!"

 

비는 몇 방울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는 들리지 않는 건지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물은 싫다. 그리고 무섭다. 어렸을 적의 일들이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겠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하루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것뿐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하루는 파도를 타고 휩쓸려 가 다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물인데. 나는 네게 물보다 더 소중했던 적이 있을까. 어쩌면 물과 하나가 되는 게 네 꿈은 아닐까. 다른 것보다도 순전히 내 욕심만으로 하루를 옆에 두고 싶은 마음에 넌더리가 났다.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째서 너에 관련된 일들이면 이렇게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가방을 벗어두고 하루를 데리러 들어갔다. 날씨 탓인지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하루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내게 팔을 붙잡힌 하루는 그제야 나를 돌아봤다. 교복을 입은 채 물에 들어온 날 보고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곧 평상시의 얼굴로 돌아왔다.

 

밖으로 나오자 온몸이 젖어있었다. 바다에 들어간 것도 문제였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세진 탓이었다. 하루는 젖은 채로 모래사장에 두었던 옷을 챙겨 입었다. 수건을 챙기지 않았을 리는 없었지만, 흠뻑 젖은 탓인지 우산을 꺼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뭐하는 거야. 하루. 이런 날에 수영이라니."

 

언성을 높였는데도 하루는 묵묵히 내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가방을 챙겨들었다.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때마다 나는 미칠 것 같은데. 너를 물에, 바다에 뺐겨버릴까 이렇게나 떨고 있는데. 내 마음이 어떤지 알지 못하듯 너는 항상 한결같았다. 태연하고, 덤덤했다. 물 외에 다른 것들에는 흥미 없다는 듯이 무심했다. 타인을 상처 입힌 일 때문에 좋아하는 수영도 그만둘 만큼 섬세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항상 네 곁에 있는 나도 너의 그런 점에 상처받는다는 걸 모르는 걸까.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어. 잠깐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감기 걸린 채로 수영하는 사람이 어딨어!"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 하루의 평소 같은 말에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잘못했다. 방금 건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하지만 역시 화가 났다. 네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네게 상처받으면서도. 그래도 하루. 네가 좋아서 계속 네 옆에 있고 싶어서 언제까지고 친구로 남아 이런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네 곁에 머무른다는 게.

 

"…마코토?"

 

한심했다. 감정조절조차 할 줄 모르는 어린애가 버럭 화를 낸 것과 다름없었다. 하루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비는 더 거세져 이제 가깝지 않으면 하루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퍼붓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려 주먹을 꼭 움켜쥐는 것이 전부였다.

 

"마코토. 무슨 일 있었어?"

 

하루는 숨소리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따뜻한 하루의 손이 볼에 와 닿았다. 그 행동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하루의 손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멋대로 화내고 멋대로 울어버리고. 정말 애 같다. 하루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한 채였다. 따뜻한 손이 볼에 닿는 것이 좋아 하루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루. 하루."

 

이름을 부를 때마다 파동이 일듯 감정이 번져나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상처받더라도 나는 네 곁에 있고 싶어. 하루. 너랑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물에, 저 바다에 네가 삼켜지지 않도록 너를 붙잡을 테니까.

 

"마코토."

 

"…하루."

 

이제는 참아야겠단 생각조차 하지 못한 만큼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새 내 등을 토닥이는 하루의 손에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어졌다. 쏟아져 내리는 비에 하루의 감기가 더 악화되진 않을까, 앓아눕진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샘솟았지만, 지금은 내 앞에 서서 나를 끌어안은 하루의 온기를 마냥 느끼고 싶었다.



Fin

' > 수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Free! 소스마코 '아침잠'  (0) 2014.11.12
Free! 마코하루 '아침의 일상'  (0) 2014.05.13
Free! 마코하루 '시선'  (0) 2014.05.13
Free! 마코하루 '휴일'  (0) 2014.05.13
Free! 마코린 '피'  (0) 201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