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편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여름이라 훤히 열어둔 창으로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는 게 보였다. 몇 년 만에 모였으니 그만큼 들뜰 만도 한가. 술을 마신 건지 커진 목소리가 집에서 새어나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무도 없는 이 집은 조용했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면 이곳을 메우는 것은 초저녁쯤부터 계속해서 울어대던 풀벌레의 울음소리뿐이었을 것이다. 나기사와 레이, 마코토의 동생들. 거기에 린까지 합세한 모임은 꽤 즐거워 보였다. 지쳤으니 쉬겠다고 말을 한 건 나였지만, 먼저 집에 돌아온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이었다. 이 집에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할 정도다. 혼자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집에서 시선을 뗐다. 날이 좋아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은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실로 이렇다 할 만큼 느긋하게 쉬어본 적이 언제인가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와토비를 떠날 무렵에는 일반인에 합류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몇 년이 더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물이 좋았고 수영은 자유형만을 고집했다. 수영 실력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전에 다 함께 바다에 갔을 때 나기사는 “하루짱은 여전하다.”고 했다. 너야말로 짱을 붙이는 그 말투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대로라며 웃었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문득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분명히 시선이 느껴졌다. 바닷가에서와 같은 것이다. 바다에서 나기사와 웃던 와중에도 계속되었던 것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이었다. 지금은 다들 저 집에서 놀고 있을 텐데. 이 집에는 나밖에 없을 텐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은 없었다.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았던가. 그저 불길한 예감이기만을 바라고 고개를 돌렸다. 복도 쪽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도 마치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냉기가 되어 나를 훑고 지나갔다.
“하루.”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힘이 풀린다 싶더니 금세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꼴사납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무의미했다. 애초에 도망갈 수 없는 상대였다. 불을 켤 수도 없었다. 서 있는 건 불가능했다.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그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느껴지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온몸에 끈적끈적한 점액이 달라붙는 느낌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의 시선은 항상 그랬다.
“하루.”
그런데도 그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나를 압도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냥하게 웃어 보이던 그 입을 보고 있자니 온몸이 찌릿한 느낌으로 전율했다. 창밖에서 들어온 푸른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초록빛 눈동자는 내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듯 계속해서 나를 주시했다.
“하루. 숨 쉬어야지.”
마코토의 말에 멈췄던 숨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 멈췄던 거지.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인가? 그의 시선을 느꼈을 때부터? 얼마나 숨을 쉬지 않았던 건지 들이쉬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천천히 심호흡을 하려는 데도 숨은 점점 가빠지기만 했다.
“하루. 천천히.”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가쁘던 숨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던 호흡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마코토는 내 숨소리를 듣고 있을 때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왜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렇게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원인은 알고 있었다. 눈앞에 서 있는 그 때문이라는 걸. 마코토는 눈을 감는 것조차 잊은 듯 계속해서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그와 눈을 마주하는 게 싫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내 당혹스러운 얼굴은 더더욱 보기 싫었다. 어째서 나는 네 앞에만 서면 이런 얼굴을 하게 되는 걸까. 보고 싶지 않아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고개 돌리면 안 되지. 하루, 나를 봐."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그의 웃음소리는 스산하게 느껴졌다. 미동도 없는 마코토는 조용히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마코토를 바라봤다. 왜? 고개를 돌리고 들리는 말을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어째서 그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걸까. 마음속으로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행동은 정반대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마코토는 무슨 생각인지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오한이 들 만큼 차가웠다. 쭈뼛거리는 감각에는 공포가 내재해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 일에 대한 기대마저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덫에 걸린 사냥감처럼 나는 그가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루. 이제 좀 괜찮아졌어?”
괜찮으냐고? 괜찮을 리가 없다. 혼자 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던 걸까. 마코토가 들어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고, 당황한 나머지 주저앉아 버린 이 꼴이 어디가 괜찮다는 걸까.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시선에 질식해버릴 것 같다. 열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온몸에서 열이 발해 불타는 듯한 뜨거움에 갈증까지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입을 연 채 몇 번인가 침만 삼키다가 간신히 소리를 냈다.
“… 마코토.”
그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볼 때마다 온몸이 마비되는 건 왜일까.
“하루.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한 줄 알겠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하 웃은 마코토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굳어버린 몸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힘을 줄 수 없었다. 손끝으로 몇 번이나 힘을 보내 봤지만,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조차 없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개처럼 나는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코앞까지 다가와 앉은 마코토가 손을 뻗었다. 만져진다. 그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몸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뜨자 그는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해줄까, 하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있는 그의 말에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로 해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하루. 엄청 떨고 있는데.”
움켜쥔 손을 간신히 들어봤다.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 주먹 모양을 흉내내고만 있던 손은 정말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떨고 있었나? 언제부터? 마코토가 말했기 때문에 떨고 있는 게 아니라? 두려움인가? 기대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나 몸이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팔을 감싸 안고 고개를 숙였다.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네게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네가 계속해서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전부 다 이해할 수 없어.
“하루, 안 되겠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줬었잖아.”
마코토는 갑작스레 나타난 이후로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보고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시야조차 흐릿해지는 아득한 느낌에 모든 게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빨리. 빨리 어떻게든 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좋으니까. 제발. 꿈이라면 깨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가 뜨자, 뿌옇게 변했던 시야가 다시 맑아졌다.
“하루. 우는 거야?”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 내 말을 들었던 건지, 마코토는 내게 손을 뻗었다. 볼에 와 닿은 손은 차가운 시선과는 다르게 따뜻했다. 그가 손끝으로 볼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을 닦아냈다. 눈물인가. 그럼 마코토 말대로 내가 울었다고? 대체 왜?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내 뺨을 어루만지는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열기를 품은 커다란 손은 몇 번이고 볼을 쓰다듬고 매만졌다. 그리고는 아쉬운듯 내 입술을 훑고는 떨어졌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마코토가 왜 이러는 건지. 그리고 마코토의 시선에 어째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건지도 전부.
“자, 하루. 이제 말해봐. 어떻게 해줄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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