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마코하루 '휴일'

중독된 깡 2014. 5. 13. 10:44









드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바다는 특유의 푸른 물결을 일렁이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기에 하루카는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 던졌다. 평소와 같이 수영복은 이미 입은 상태였다. 곧 첨벙 소리와 함께 시원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는 파도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있어도 좋겠단 생각에 몸에 힘을 뺐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문득 생각이 미쳐 해변을 바라봤다.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불안과 함께 항상 '하루'하고 이름을 부르며 말리던 마코토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겉옷과 듬성듬성 자리 잡은 나무뿐, 살아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왜 없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득히 먼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하루. 몇시에 잠들었길래 아직 자고 있는 거야? 하루."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꿈에 왜 없었는지 의문을 품었던 상대였다. 초록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 것을 확인한 하루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작게 숨을 토해냈다. 현실로 돌아온 자가 내뱉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몇 시야?"


"해가 중천이라고. 너무 곤히 자길래 기다리고 있었어."


하루카는 몸을 옆으로 돌려 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볕이 뜨겁다 못해 열기로 일렁이고 있어 마코토의 말이 사실임을 알아챘다. 어젯밤의 그는 딱히 늦게 잠들지 않았다. 평소대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잘 시간이 되어 이불을 펴고 누웠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잠이 금방 오지는 않았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더 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방 안에 폈던 이부자리를 거실로 옮겨왔다. 누운 채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그랬다. 아직 꿈에서 덜 깬 몽롱한 정신으로 그는 마코토를 보았다. 마코토의 말대로라면 수면시간은 충분했을 터인데, 몸을 일으켜야겠다는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한 느낌에 그는 누운 채 팔을 하늘로 뻗었다. 기지개를 켜는 하루를 보던 마코토는 최근의 연습량이 역시 무리였나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우가 가져다준 연습메뉴는 대회 직전까지 몸을 만들고 경기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좋은 메뉴였다. 하지만 역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는 건 조금 피곤하겠지. 일찌감치 일어나 하루카의 집에 온 마코토 역시 몸에 달라붙은 듯한 피로가 몸에 감돌아 뻐근하단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회에 나가길 결정한 뒤로 하루라도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물을 그렇게 좋아하던 하루가 이 정도니, 이해해줄까. 마코토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하루카는 누운 채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코토의 추측대로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가 일어나지 않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꿈에서 보았던 그 풍경. 마코토가 곁에 없는 그 상황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루, 더 잘 거야? 배 안 고파?"


마코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하루카는 '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계속 수영하고 물 안에 있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꿈인데다 등장인물은 하루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계속 좋아했다면 됐을 텐데. 어째서 마코토가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걸까. 하루카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내려다보는 마코토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겠다는 건가. 아니면 나한테 화난 거라도 있나.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빡이며 쳐다보는 하루카 덕에 괜히 의문을 품은 건 마코토였다. 연습 없는 휴일이었는데 깨운 게 심기를 건드린 건가. 그치만 깨운 것 외에 하루를 기분 나쁘게 할만한 일은 짐작 가는 게 없는데. 눈치채지 못한 뭔가가 있나. 하지만 지금 하루 얼굴에선 뭔가 읽을 수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마코토는 잘못을 추궁당하는 아이처럼 두 눈만 껌뻑이며 하루를 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잘못한 거 없는데. 목뒤로 흘러내리는 땀에 등골이 서늘해진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생각해보면 하루카의 곁에 마코토가 없었던 일은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 마코토와 알게 되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집이 가까운 것도 있었고 학교가 같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같이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루카는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살갑게 대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코토는 항상 하루카 곁에 있었다. 친근하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왔다. 냉담한 반응에 질리지도 않고 쫄쫄 옆에 붙어 다녔던 마코토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부턴가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생각에 하루카는 작게 웃었다. 너는 항상 그랬어. 하루카의 웃음에 마코토는 뭔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하루카를 마주한 채 방긋 웃어 보였다.

 

하루카는 새삼 마코토가 제 인생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를 자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십몇 년 동안 마코토는 계속 옆에 있었다. 이 짧은 일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인가. 그때부터 질린다 싶을 만큼 변하지 않은 채 곁에 있어준 마코토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 생각했다. 보통은 이 정도라면 더 접근하지 않는 게 정상이지 않아? 듣지 못할 질문을 속으로 던진 하루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코토는 겉도는 녀석을 혼자 내버려둘 수 없는 타입이던가.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했다. 마코토의 성격이야 역시 곁에서 지켜본 하루카가 잘 알고 있었다. 누가봐도 착한데다 다정하고 허당인 면도 있다. 그런 마코토이기에 반에서 귀찮은 일을 곧잘 떠맡기도 했다. 그러니까 바보 같은 면은 좀 고치는 게 좋을 텐데. 수영할 때처럼 조금만 거친 모습을 보여주면 될 거라고. 속으로 마코토에게 훈계했지만, 역시 입을 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을 감은 하루카를 바라보던 마코토는 많이 피곤한가 싶어 그를 내버려 두었다. 바깥에서 찌르르 우는 매미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밖으로 나가고 싶진 않았다. 하루가 축 늘어진 것도 이해가 간단 생각에 마코토는 옆에 있던 선풍기를 틀었다. 선풍기가 작은 소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카쪽으로 선풍기를 향하게 한 뒤, 그를 바라봤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하루카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마코토도 잠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새근거리는 하루카의 숨소리가 너도 누우라고 말을 거는 듯했다. 모처럼 휴일이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기척에 하루카는 눈을 뜰까 싶었지만, 그조차 귀찮아 가만히 있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마코토가 무엇을 하는지 들을 뿐이었다. 방으로 움직인 발소리는 옆방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쓸 물건을 찾는 것 같았다. 서로 자주 오갔기 때문에 마코토의 집에, 하루카의 집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농에서 무언가 꺼내는 소리가 들리고는 문이 닫혔다. 마코토는 다시 거실로 돌아왔고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꺼내온 물건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하루카의 옆에 누웠다.


눈을 뜬 하루카는 베개를 가져와 그가 옆에 누운 것을 확인했다. 마코토를 보고 뭐하냐는 시선을 보내자, 그는 웃음을 지으며 하루카와 마주 보았다.


"하루가 피곤해 보여서 계속 보고 있자니 나도 졸려졌어. 같이 잘까 싶어서."


낮잠은 집에 가서 자면 되잖아. 마코토에게 답할 생각이었는데 밤새 바싹 마른 목 때문에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 다문 하루카를 보고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루카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역시라며 입꼬리를 올렸다. 부엌으로 향한 마코토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유리잔 가득히 물을 따랐다. 그는 금방 냉장고 문을 닫고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돌아와 하루카의 옆에 물잔을 내려두었다.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그의 행동에 하루카도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자, 물. 일어나서 마셔. 하루."


엄마처럼 챙기는 그의 목소리에 하루카는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햇빛이 부서지는 밖을 내다보고는 역시 집에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울리는 매미 소리, 풀벌레들이 내는 울음,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물을 넘기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멀리서 바닷가의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바다에 가고 싶다. 그 생각이 불러낸 환청인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도 만족스러운 걸까. 하루카는 단숨에 비워낸 물잔을 옆에 내려두었다. 마코토는 웃으며 하루카를 향해 말했다. 

 

"집에 가서 자도 되지만, 하루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으니까."

 

하루카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한 모습에 마코토는 큭큭 작은 소리를 내어 웃다가 그를 따라 누웠다. 웃고 있는 마코토의 얼굴에 하루카는 바보 같다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 익숙해서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어.


"마음대로 해."


작았을 때는 줄곧 같은 이불에 누워 잠들기도 했었는데. 덥다며 떨어지라고 하던 하루카도 마코토가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어느새 포기하고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마코토는 하루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곤 했었다. 자신의 것 이외에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이 놓인다는 걸 마코토는 그때 깨달았었다. 한 이불에 누웠을 때를 떠올리던 마코토는 무심코 하루에게 물었다. 


"하루, 같이 누울까?"


"마음대로 해."


약간 머뭇거리다 돌아온 조금 전과 같은 대답이 신경 쓰였지만, 그 망설임은 하루카 나름대로 마코토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마코토는 기쁜 마음에 웃으며 하루가 누운 이불 위로 들어섰다. 고등학생 둘이 눕기에 충분한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꼭 붙어있는 것이 옛추억을 생각나게 해 마코토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렸다. 하루카는 귀찮다는 듯 뒤돌아누웠지만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날은 더웠지만 선풍기 바람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라 그가 마코토를 뿌리치는 일도 없었다. 마코토는 살며시 뒤돌아선 하루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루."


그의 등에 얼굴을 묻은 마코토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나 둘이 잤던 적이 있었다. 한 공간 안에, 같은 이불에 누워 새근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순수하게 하루를 좋아했었으니까. 마코토는 코끝에서부터 전해지는 하루카의 체취에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루카로 온몸이 차오르는 느낌에 미소 지으며 숨을 내쉬었다. 내쉬는 순간에는 하루카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아쉬워져 무심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코토는 고개를 조심히 내젓고는 어깨를 잡았던 손을 하루의 허리에 올렸다. 덥다며 떨어지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잠들어버린 건지 하루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누운 하루카 역시 마코토의 숨이 등에 닿고 그의 뜨거운 손이 허리에 닿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마코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비어있는 손을 움켜쥔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심이었다. 꿈에서처럼 마코토가 사라진 게 아니라, 등뒤에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마코토는 사라지지 않아. 항상 옆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옆에 있을 거야. 주문을 외듯 되뇌던 하루카는 눈꺼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흐르자 하루카의 숨소리는 자연스레 누운 마코토의 숨소리와 겹쳐졌다. 햇볕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방안의 공기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어느새 짝을 찾았는지 밖에서 울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그친 지 오래였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만이 두 사람의 새근거리는 숨소리 사이로 새어들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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