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부터 드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시작과 함께 주변에 있던 자들은 형님을 방해하면 큰일 난다느니, 어서 가자느니 하는 말을 하다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금속 끝이 바닥을 긁으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쇠파이프가 바닥과 맞닿으며 반짝하고 튀어 오르는 불꽃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파이프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남자의 움직임은 흡사 인형처럼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듯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 걸음걸이에는 지켜보는 사람이 발조차 뗄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얼굴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두웠기에 오히려 초록빛 눈동자가 더 선명하게 빛났다. 그는 먼 거리에서도 정면으로 보이는 먹잇감을 보며 웃었다. 눈은 분명 웃고 있는데도 남자와 얼굴을 마주한 자는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싸늘한 느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직감으로 느낀 생명의 위협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이 묶인 상태도 아니었다. 잡혀 오기 전까지 그의 부하 되는 자들에게 온몸을 구타당하긴 했지만,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몸이 쑤시긴 했지만 사지 멀쩡히 움직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땅에 질질 끌려오는 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남자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남자가 누군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자. 누구보다도 상냥하게 미소 짓던 마코토를 알고 있었기에 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거지. 하지만 눈을 감았어도 린을 향한 마코토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시선이 눈을 떼지 않고 마주한 채, 6초 이상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그것은 섹스, 혹은 살인의 충동을 느끼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렇다면 마코토는 지금….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린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갔다.
깊은 한숨 소리가 컨테이너 박스 사이로 울렸다. 지나갈 만한 사람이라곤 조직원이 전부인 데다 그들마저 종적을 감춘 바닷가의 창고에는 마코토와 린 둘뿐이었다. 나무판자 더미에 걸터앉은 그는 무릎에 팔꿈치를 얹어 턱을 괸 채, 린을 보고 있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침묵만이 그 사이에 머물렀다. 입을 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린은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한 방에 죽을 수도 있다. 마코토의 일 처리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했는지는 옆에서 지켜보았던 린이 가장 잘 알았다. 파이프를 끌고 온 바닥을 보니 시멘트 바닥 위로 빨간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무기의 끝에서부터 마코토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에서부터 흘러내린 붉은 피가 파이프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한 건 처리하고 온 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코토의 정장과 구두는 온통 새까맸다. 어두워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지만, 그래서인지 피 묻은 그 손이 더 눈에 띄었다.
“아아, 이거 신경 쓰지 마. 내 피 아니니까. 그냥 조금 화가 나서. 죽이고 왔어.”
린의 시선에서 의문을 읽은 마코토가 웃으며 답했다. 근처에서 비명은 들리지 않았으니, 한 방에 처리했겠지. 급소를 노려 죽인 상대의 몸을 몇 번이나 들쑤셨을지를 생각하자 소름이 끼쳤다. 시체는 시멘트와 한데 섞여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화풀이 상대로 가버린 인간일 게 분명해 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마코토를 봤다. 녹안은 흔들림 없이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마코토의 시선에 린은 눈을 돌렸다. 그는 무엇이든 꿰뚫어 봤었다. 린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알고 있었다. 본심을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기만 하는 린이 어렸을 적부터 무엇에 열등감을 느끼고 시달렸는지 전부 지켜보았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는 일이 없었다. 친구로서 그리고 애인으로서 관심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항상 하루카의 이름을 달고 살던 그가 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이 도를 넘어섰다는 걸 알아챘을 때는 조금 늦은 때였다. 사메즈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떤 사람에게 고백받았는지, 몇 번이나 사귀었는지 심지어 린의 키스 횟수까지 꿰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같은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코토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걸려오는 전화에 누구냐고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작은 일이었고, 린은 순순히 상대방의 정체를 말했다. 유학시절에 알던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연락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급히 귀국한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우연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그 우연이 몇 번이고 반복될 즘에야 린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졸업 후에도 지속해서 연락해오던 미코시바와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니토리에게서도 연락이 끊겼다. 린 쪽에서 먼저 연락해봤지만, 전화번호가 바뀌어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조직에서 일하고 있으니 사람 하나 찾는 것이야 별일 아닐 텐데, 번번이 아랫사람을 시킬 때마다‘찾을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린.”
마코토의 호명에 린은 흐릿해졌던 초점을 맞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코토를 싫어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간 그가 린이 모르게 해왔던 일들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그의 곁에 머물 수는 없었다.
“왜 도망쳤어?”
린이 깨달은 순간부터 모든 것은 뒤틀렸다. 동거하는 동안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던 마코토는 다정한 연인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대로 변해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당한다.밖에 나가 있을 때는 어디냐고 상냥히 안부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 조차 발신기를 붙여두고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방법에 불과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다고 할 때는 그 상대도, 만나는 이유도 적절히 꾸며내야 했다. 그의 시선이 린을 향한 채 떠나지 않는 것은 린을 구속하기 위해서라는 집착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쓰고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코토의 집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린에게는 크나큰 부담이었다.
“도망친 거 아냐.”
“흠…. 그래?”
마코토에게서 벗어나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슨 짓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마코토는 린과 마주한 이후 처음으로 린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쇠파이프가 찰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코토의 얼굴은 평소와 같이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린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던 마코토는 애인의 시선에 방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다행히 걸리진 않은 건가. 린은 숨을 내쉬며 긴장으로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마코토는 혼잣말로 ‘그래, 그랬구나.’ 소리를 내며 린의 근처를 원모양을 그리며 몇 걸음을 움직였다.
“그럼 이건 뭔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마코토의 손이 린의 눈앞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어 보였다. 이 종이는 분명히…. 몇 갈래로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던 종이였다. 작게 조각났던 종이는 투명한 테이프로 하나씩 이어붙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댔을 때 내놓았던 아이디어와 실행 날짜, 방법 등이 적혀 있었다. 마코토의 행동패턴과 동선이 간단히 적혀져 있었다. 하루카, 나기사, 레이와 함께 짰던 계획의 구상단계를 적었던 종이였다.
“말해 봐. 린.”
자신을 위해 모였던 친구들마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린은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떡하지. 생각하자. 머리를 써야 해. 종이만 손에 넣었을 뿐이야. 구상단계에 불과했고 본 계획과 직접 관련된 일들은 저기에 적혀져 있지 않아. 잘만 둘러대면 될 일이다. 린은 애써 태연한 척,업계에서 일하며 익혔던 가면을 쓰고 마코토를 올려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던 마코토의 눈꼬리가 눈에 띄게 휘며 웃었다. 셋은 무사한 건가. 어쩌면 이미 당해버렸을지도. 그러다 불현 듯 스치는 불안감에 린은 마코토의 손을 붙잡았다.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아직 주인의 온기를 머금은 채였다.
“마코토. 이 피….”
마코토는 린의 물음에 웃었다. 하하하 하는 웃음이 컨테이너 박스에 튕겨져 메아리처럼 크게 울렸다.
“응? 왜 그렇게 쳐다봐? 린. 내 거 아니라고 아까 말했잖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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