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들어가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인지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건 물이 내는 소리라는 걸. 몸 안에서 나는 것과 물이 내는 소리가 합쳐지면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맡겨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고요한 가운데서도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것처럼 파동 하나하나가 전해지는 느낌. 그 안에 가라앉아 묻혀버릴 듯한 두려움. 그리고 그 사이 물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 몸을 감싸면 더 없이 기분이 좋다. 내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물이 무언가 말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컵이나 병에 담긴 물조차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멈춘 것처럼 보일 뿐, 물은 계속해서 어디론가 흐르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사람이 그것을 가둬두는 것뿐이다. 욕조에 몸을 담갔을 때조차도 계속해서 흐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물을 보고 있으면 그 흐름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물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뒷문이 열리는 소리다. 이 시간, 이 집에 찾아올 사람이야 뻔히 알고 있었지만, 욕조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짐작한 대로 '실례합니다.'하는 목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묵직하게 울리는 그 소리가 바닥을 타고, 땅을 타고 욕조에, 물에 닿아 내게 전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물을 받아들이면 물은 내게 질문한다. 그리고 물 역시 내게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말한다. 그의 발걸음은 묵직하게 땅에 닿았다가 가볍게 떨어진다. 물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너를, 또 더없이 상냥한 너를 그대로 파동으로 전해준다. 자연스레 다음으로 이어지는 걸음걸이는 복도를 지나, 욕실 앞에 머문다. 그와 동시에 그가 왔다고 내게 속삭인다.
매일 아침, 나를 부르기 위해 집에 찾아오는 것은 익숙해진 일상이다. 항상 그래 왔었다. 그러다 문득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곁에 있던 그를 생각했다. 엄마라도 그렇게는 안 해주겠다 싶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벗어둔 옷가지들을 확인하느라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것도 잠시, 금방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욕조 앞까지 걸어와서는 내게 말을 건다. 물이 내게 말을 걸듯이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하루."
욕조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가볍게 물을 털어내자 눈앞에 손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나를 꺼내주려는 그 손이 물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현실로 나를 끌어내는 것 같아 싫을 때도 있지만, 마코토의 손은 커다랗고 또 따뜻해서 나는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나는 제대로 학교에 갈 수는 있는 걸까. 손을 잡으며 일어서자 마코토가 웃었다.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
*
물에서 나오자마자 덥고 습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욕실에서부터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마코토는 아침부터 뭐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음을 지은 채였다. 토스터에는 식빵이 들어가 있었고, 팬 위에서는 고등어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항상 이렇다. 그는 아침에 할 일이 없는 건지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욕조에 들어가 있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전부 옆에서 지켜보는 게 그의 아침 일과 중 하나였다.
"하루는 변하질 않네."
"뭐가?"
"고등어랑 식빵 말야."
"먹을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사다두는 것도 그것뿐이잖아?'란 눈초리로 날 보던 마코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그래 하고 이어지는 말소리가 마치 너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것 같다는 얼굴이라 보기 싫어져 고개를 돌렸다. 고등어가 탈 것 같아 뒤집자 치이익 소리가 났다. 이른 아침부터 들리는 소리가 참 많다. 토스터도, 고등어도, 밖에서 들리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매미가 우는 소리까지. 물속에 있으면 훨씬 더 조용할 텐데.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다. 지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물 안에서보다 직접 듣는 편이 좋지만.
"그리고 변하지 않는 거라면 나보다는 네 쪽이야."
힐끗 마코토를 봤다가 다시 고등어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다 구워져 간다. 얼른 먹고 학교에 가면 조회 시작 전에 학교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겠지. 조금 서두를까.
"응? 어디가?"
"매일 같이 데리러 오는 거."
"그야 하루가 보고 싶으니까."
당연한 듯 웃으며 말하는 마코토를 외면하며 고등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녀석은 계속 말을 이
어갔다.
"또 데리러 오지 않으면 하루가 학교에 안 나올지도 모르고. 신경 쓰일 테니까. 직접 데리러 오는 게 좋잖아?"
마코토는 항상 그랬다.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서 잘 알고, 내 마음속까지 훤히 꿰뚫어보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안색이 바뀌어도 빠르게 알아채고, 재채기할 때조차도 가장 먼저 알아채고 휴지를 건냈다. 말하는 것조차 거짓말하는 적이 없을 만큼 바보 같을 정도로 올곧다. 나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도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 있었다. 물이 물어본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나랑은 다르게 너무나 솔직한 녀석.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녀석. 그래서 나는 그런 네가….
"…루. 하루. 하루!"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등어 한 쪽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 뒤였다. 손에 집고 있던 팬을 뺐어 들은 마코토는 고등어를 접시에 덜고 잔소리하듯 말을 늘어놨다.
"이 부분은 전부 타버렸으니까 안 먹는 게 좋겠어. 그리고 하루,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이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옆에서 불러도 하나도 안 들리는 것처럼.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는 내 안색을 살폈다. 멍하니 그 초록빛 눈동자를 바라보자 괜찮냐며 내 눈 앞에 손까지 흔들어보였다. 전부 다 너 때문인데. 물보다도 네 생각이 더 많아져서 그런 거잖아. 난 돌직구로 말하는 널 따라가기에도 바쁘단 말야. 지친 느낌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코토의 어깨에 기댔다.
"그냥 조금만 이러고 있어."
그러자 녀석은 '역시 무슨 일 있는 거지? 하루? 몸이 안 좋아? 괜찮은 거야?'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다른 건 귀신같이 맞추면서 이런 데 있어서는 정말 바보인 건지, 둔한 건지. 쫑알거리던 마코토의 잔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붙잡아주었던 그 큰 손이 나를 토닥였다. 내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 천천히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시끄러운 소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물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물질이나 마찬가지인 전혀 상관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역시, 네가 내 옆에서 내는 소리는 그럭저럭 들어줄만 한 것 같아. 일정한 간격으로 마코토가 토닥이는 소리에 절로 눈이 감겨왔다. '몸이 안 좋으면 오늘은 쉴래?'하는 다정한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Fin
첫 프리연성이라 지금과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다소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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