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마코린 '알고 있어'

중독된 깡 2014. 5. 13. 10:42









교문을 빠져나오는 고등학생들의 웃음소리는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있던 그는 개미떼처럼 몰려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음 목표는 이와토비고교의 남학생으로 정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학교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주시했다. 그는 원래 남자를 죽이는 취미는 없었다. 고등학생쯤 되는 남자라면 체격도 좋고 힘도 좋아서 여차하면 그가 밀릴 가능성도 있었다. 여자 쪽이 제압하기도 쉽고 저항한다 해도 금방 힘이 빠져 포기하기에 괴롭히기도, 죽이기에도 더없이 좋은 상대였다. 하지만 처리해야만 했다. 신경질적으로 이를 악물었던 린은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고 있었다.


그가 남자를 죽일 이유가 생긴 건 얼마 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타깃으로 삼은 여학생은 정류장에서부터 지켜보던 아이였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였고, 커다란 음악 소리가 몇m 떨어져 있는 린에게까지 소음이 되어 크게 들려왔다. 음악 소리에 그의 기척이 지워졌는지 여학생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와토비는 본디 시골이라 번화가를 벗어나면 사람도 많지 않았다. 린은 골목길로 들어간 여학생과 조금의 거리를 두고 걸었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놀고 있던 칼을 집으며 여학생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저기….”


뒤에서 웬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뭇거리며 들려온 목소리에 린은 황급히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뒤돌아보자 눈동자에 의문을 품은 남학생이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키는 180대 정도였고, 눈꼬리는 개새끼처럼 축 처져 있어 어딘가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린을 똑바로 마주했던 그 눈동자는 초록빛이었다. 얼굴만 봐도 그랬지만, 말을 거는 것도 평범한 학생에 불과한 자였다. 그 당시의 린은 모자만 눌러쓴 채였다. 순간 뭐냐는 말이 나갈 뻔 했지만, 괜히 입을 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가만히 그 학생을 째려보기만 했다. 눈빛에서 무슨 일이냐는 의사를 읽어낸 학생은 린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그는 반대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이어캡을 떨어트린 것도 모른 채 걸어왔었다. 살인에 눈이 먼 상태였는데 작은 이어캡 하나 정도 다시 사면 그만이었다.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찰나에! 린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앞서 걸어가던 여학생은 골목길 사이로 들어서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기랄. 린은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며 남학생이 내민 이어캡을 가로챘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기억해두려 학생을 쳐다봤다. 교복차림의 남자는 우물쭈물하면서 린과 그의 손에 들린 이어캡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누가 보더라도 눈치를 보는 듯한 학생의 태도에 린은 열이 치솟아 주먹을 쥐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남학생의 눈에도 뚜렷이 보일 정도였다. 목표물을 놓친 건 이 새끼 때문이다. 그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된 순간, '그럼 이놈을 죽이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린은 그를 쳐다보며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지진 않은 곳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곳이다. 골목이 좁긴 하지만 처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여학생의 뒤를 쫓으며 상상해왔던 시나리오에 인물만 바꾸어 눈앞의 남학생을 대입시켰다. 말이 없는 그를 보고 학생이 뭔가 수상하단 생각을 할 즘에, 린은 씩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너. 이름은?”

 

“타치바나 마코토인데 그쪽은…”

 

이름을 말하고 나서야 왜 그런 걸 묻느냐며 되묻는 마코토의 모습에 린은 웃으면서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마코쨩!”

 

번화가로 향하는 골목에서 또 다른 남학생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진짜아아! 어디 가는 거야! 갑자기 길에서 뭔가 주워서 사라지더니. 응? 누구야? 아는 사람?”


천진하게 웃으며 다가온 소년은 몸을 숙여 모자 쓴 남자와 눈을 맞추려 했다. 린은 황급히 모자의 챙 부분을 잡아 눌러 시야를 가렸다. 일행이 있었나. 노란 머리의 학생이 입을 삐죽이는 것이 좁아진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을 혼자 상대하기는 무리인데.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던 살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이 틀어질 가능성이 너무 커. 안 그래도 최근 연쇄살인범이 문제라며 세간에서 떠드는 통에 시끄러우니까. 그는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마코토의 몸을 한 번 훑었다. 타치바나 마코토. 머릿속으로 몇 번 되뇐 린은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저"


마코토가 말을 걸었지만 남자는 인사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린은 돌아서자마자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음량을 최고로 올렸다. 너와 대화할 생각은 없다는 의사표시였기에 마코토는 당황스런 얼굴로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다. 마코토마저 그런 생각을 할 쯤에 나기사는 더 얽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직감했고 멀뚱히 서 있는 마코토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코쨩. 가자. 레이쨩이랑 다들 기다린다구!"


"어? 응"


남자의 반응이 이상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마코토는 나기사의 손에 이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작열하는 태양이 주택가의 골목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늘도 거의 없었기에 걷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열기가 전해졌다. 바닷바람도 닿지 않는 낮은 곳이라 린은 옷깃만 스쳐도 살인날 더위를 실감하며 주머니 속의 칼을 움켜쥐었다. 묵묵히 걷던 린은 마음대로 날뛰지 못한 오늘의 상황을 떠올리다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골목에 사람이 들어올 일은 없었다. 타깃은 뒤따라가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고. 근처에 있는 쓰레기장을 이용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자존심이 상함과 동시에 그놈만 없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 값을 치르게 해주지? 답은 간단했다. 린은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타치바나 마코토."


네 죄는 눈치 없이 끼어들어 내 심판을 방해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미수에 그친 범죄라도 범행시도 직전에 얼굴을 보였던 상대는 살려두면 곤란하다. 그러니 죽여버리면 된다. 간단한 문제다. 수상한 사람이 이 근처를 서성였다고 제보할지도 모르고 눈이 마주친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그는 마코토를 죽이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 그는 고등학생들이 득시글거리는 여름 하늘 아래 서 있는 것이었다. 번화가에서 골목길로 들어서는 여학생을 뒤쫓고 있을 때, 자신의 계획을 무산시켜버린 그 남자를 죽이기 위해서. 

 

린은 고개를 들어 교문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을 전부 체크했다. 알아볼지도 모른단 점을 고려해 그전과는 달리 가벼워진 복장이었지만 푹 눌러쓴 모자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린은 먹잇감이 나오길 기다리며 눈을 흘겼다. 이 더운 날 이런 수고를 시키는 것마저도 참 재수 없는 놈이다. 마코토를 기다리는 중에도 그의 이어폰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새어나왔고 교문에서는 죽이기 좋아 보이는 여학생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제길. 이렇게 죽일 인간이 많은데 그 새끼 때문에. 린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교문을 노려보고 있던 그는 빠져나오는 마코토를 보고 눈을 번뜩였다. 괜히 모자를 고쳐 쓰고는 그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전처럼 같이 하교하는 사람이 없이 혼자였다. 운이 좋네. 빨리 처리할 수 있겠어. 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쫓아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발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고등학생의 걸음이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다 본 자리에는 길고양이가 총총거리며 지나갈 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쳐다본 것 같았는데. 마코토는 의문을 품으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항상 하루와 함께 다니던 길이었는데, 오늘은 혼자라서 그런가 보다. 마코토는 슬쩍 숨을 내쉬며 웃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산한 골목가에는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바람만이 가득했다. 마코토는 계단 위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평상시처럼 일상이 가득한 마을을 돌아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러다 그 작은 평화를 깨트리는 깡- 하는 소리에 그는 다시 뒤돌아섰다. 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고 나자 청각에 집중한 감각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를 감지해냈다. 터벅터벅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성의 소리가 들렸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그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눈을 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마코토는 눈을 뜨자마자 방금 올랐던 계단 밑에 서 있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를 발견했다. 머리카락 색과 복장, 그리고 처음 만났던 날처럼 자신을 보는 남자의 눈에 마코토는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학교 근처에서 봤었던…. 하지만 반갑다거나 말을 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착하다지만 죽일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상대에게까지 웃으며 말을 건넬 만큼 마코토의 성격은 좋지 않았다. 이거 무슨 스릴러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땡볕 아래서 시원하게 느껴지던 바닷바람은 어느새 스산한 기운을 품고 그를 스쳐 갔다. 아래에 서 있던 남자가 한 걸음씩 발을 떼기 시작했다. 늘어지듯 떨어트린 손에 쥐어진 쇠파이프가 계단에 부딪혀 걸음을 뗄 때마다 깡- 깡- 하고 울렸다. 마코토는 뒷걸음질을 쳤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망가야 한다고 몸이 말하고 있었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끌어 애써 계단을 올랐다. 그냥 지나가겠지. 별일 없을 거야. 애써 안심시키려 속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었지만, 마코토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뒤에 걸어오는 남자의 발걸음 역시 함께 빨라졌다. 기분 나쁜 예감은 점점 현실이 되어 갔다.

 

어느새 더 속도가 붙은 걸음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골목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달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 역시 멈추지 않고 달렸기에 마코토는 계속해서 달렸다. 린은 헉헉대며 도망치는 마코토를 보고 웃었다. 거리가 조금 있긴 하지만 놓칠 걱정은 없고, 인적이 드문 동네라 그는 오히려 안심이었다. 여기는 내 구역이야.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간에 죽일 수 있으니까. 뛰어봤자 벼룩이란 말이야. 린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다시피 한 마코토를 보고 불쌍한 어린 양을 보듯 조소했다.

 

헉헉거리던 숨소리가 멈춰 섰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마코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린이 다가오고 있는 방향을 제외하고는 도망칠 길이 없었다. 구석에 놓여있는 판자더미들을 타고 넘어가기에는 담벼락이 너무 높았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장소에 멈춰 서 다가오는 린을 보았다. 비릿하게 웃음 지은 그의 모습에 마코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린은 겁먹은 듯한 그의 모습에 더 신이 났다. 낮의 주택가는 어차피 한산하다. 일하러 나간 사람이 다수고 집에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집에 있다 하도 어지간히 큰 소리가 나지 않는 한은 땡볕에 밖을 내다볼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나한텐 더 좋지만. 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구면이네. 타치바나 마코토."

 

""


마코토는 입을 열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섰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 뒷걸음치던 발이 한쪽에 놓여있던 마대자루를 건드렸다.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소리가 나도 구석진 골목까지 무슨 일이 있나 보러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포에 질린 건지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를 보며 린은 피식 웃었다.


"그러게.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어서 말야. 사람 괜히 곤란하게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이 소리를 멈추자 심호흡하는 마코토의 숨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너 때문에 일 틀어진 건 알고 있지?"

 

린은 주머니 속의 칼을 만지작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상대는 어지간히 겁을 먹은 모양인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 건가. 겁에 질린 인간은 사고가 마비되기 마련이지. 린은 항상 보아왔던 죽기 직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떠올리다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넌 그냥 여기서 얌전히 죽으면 된다고."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린은 들고 있던 파이프로 마코토를 후려쳤다. 윽 하는 낮은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그는 방금 맞은 팔을 감쌌다. 짧은 순간에 팔을 들어 올려 막은 덕에 파이프를 정통으로 맞은 팔은 저릿저릿 울리며 통증을 호소했지만, 외상은 바닥에 넘어지며 긁힌 상처가 전부였다. 눈앞의 살인범을 두고 팔이 부러질 것 같다는 엄살을 부릴 수도 없었다. 마코토가 미간을 찌푸리며 린을 올려다보자, 그가 답했다.

 

"뭐야? 해보겠다는 거야?"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발버둥. 린의 눈에 마코토의 행동은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체격차이가 있다 한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여본 내가 이런 애송이한테 질까 봐? 린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눈앞에 선 마코토가 당돌하게도 린에게 맞서겠다는 듯 노려보자, 우습게 보였단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곧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그는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바닥으로 던졌다. 바닥에 부딪힌 파이프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땅에 닿았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너. 진짜 죽여버릴 거야.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낸 린은 팔을 뻗어 그 칼끝이 마코토의 심장을 향하게 쥐었다. 

 

"처음에 생각한 죄목은 간단했는데, 이제 안 되겠어. 마지막 발버둥이라면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린은 다시 마코토에게 달려들었다. 쇠파이프는 운이 좋아 막았다고 쳐도 칼은 막을 수 없겠지. 살을 뚫는 그 감각을 상상하며 마코토에게 다가섰을 때, 순해 보이는 개 같았던 그는 그전에 지켜봐 왔던 얼굴이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린을 보며 웃었다. 린은 그에게 팔을 뻗어 내질렀지만, 마코토의 손은 린의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마코토는 그대로 부딪칠 듯한 린의 힘을 반동으로 이용하여 그를 공중으로 붕 띄워버렸다.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돈 린의 몸도, 그의 손에 있던 칼도 찰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린."

 

한 번도 이름을 밝힌 적은 없을 텐데.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웃는 얼굴로 이름을 부르는 마코토의 모습에 린은 바닥에 앉은 채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방금 건 진짜 아팠어. 뼈가 아직도 울리는 것 같아."

 

욱신거리는 팔을 터는 마코토는 웃으며 린을 바라봤다. 둘 사이의 거리는 2m도 채 되지 않았다. 다가가서 죽이면 어떻게든. 린은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정신은 남아 있었다. 평범해 보이기만 했던 고등학생이 꽤 잔재주를 몸에 익힌 것 같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직감이었다. 죽이기는 글렀다. 입막음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할까. 갑작스레 돌변한 마코토의 태도도, 그가 이미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큰 문제였다.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가 묻은 바지를 털었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그를 마주하고 물었다.

 

"너 뭐하는 놈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물었잖아."

 

"내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느라 아무것도 못 본 거지. 린?"

 

"뭐하는 놈이냐고!!"

 

"그런 단순한 점도 아주 좋아하지만."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그는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로를 느끼며 모자에 손을 얹었다. 제길. 평범한 고등학생인 줄 알았더니 대체 얼마나 미친놈인 거야.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마코토는 한숨을 내쉬는 린을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움직인다 싶어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그는 린에게 손대지 않고 떨어진 칼을 집어들었다. 손바닥은 또 무슨 소리지. 이 새끼가 날 조종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겨우 고등학생이? 계획이 틀어지다 못해 감방에 잡혀갈 위기에까지 놓였는데 얼빵하던 놈이 갑자기 얼굴을 바꾸고는 대체 뭐하는 놈이지?

 

"이런 위험한 건 쓰지 않는 게 좋아. 혹시나 린한테 상처가 생기면 어떡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나? 하지만 내가 이 녀석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린은 애써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마코토와 마주쳤던 것이 기억날 리 없었다. 내가 모르는데, 어째서 너는 기분 나쁘게 날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거냐고. 

 

"린은 모르겠지만, 나는 다 알고 있거든."

 

마코토는 들고 있던 칼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졌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고는 무게를 가늠하든 가볍게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린은 막힌 벽에 기대고 서서 그의 뒤를 넘겨다보며 빠르게 치고 나간다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뭐하는 놈인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앞에 있는 타치바나 마코토는 일반인이라 칭할 수 있는 위인은 못 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생각하고 있지? 내가 어떻게 널 알고 있을까 하는."

 

주절주절 헛소리 하고 있는 때가 기회인데. 입술을 깨물며 그는 마코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조금은 어울려주다가 방심하는 틈을 노리는 거다. 평범하던 고등학생이 돌변했는데 네가 날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당연한 사실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고 있어. 당장에라도 따지고 들 부분은 많았지만 린은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밖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선 채 린의 주변을 서성이던 마코토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난 린에 대해서라면 전부 알고 있으니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궁금하지? 전부 이야기해줄게. 하지만 일단 지금은"

 

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가 휘두른 파이프에 머리를 맞았다. 소리를 낼 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린을 보고 마코토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조금 자두는 게 좋겠어, 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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