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12화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커플링은... 써두었지만 그냥 두사람 이야기에요! 민망스기..!!
눈앞에 있는 사람이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그에게 손을 뻗었으나 붙잡을 새도 없이 그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쫓았지만 걸음을 아무리 빠르게 내딛어도 나와 그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에 입을 열었다. 왜? 왜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거야? 하지만 뒤돌아선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무시하는 건지 돌아선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레이!
몸을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허공에 뻗었던 손을 내려 움켜쥐었다. 방금 꾸었던 꿈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제때에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일까. 한두 번으로 끝났다면 모르겠지만, 몇 주간 계속되는 그 꿈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불러 보고, 따라잡으려 달려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매번 멀어지는 레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 깨어나곤 했다.
학교로 가는 길 내내 꿈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 없었더니 하루가 나를 쳐다봤다. 괜찮냐는 말을 건넨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간 눈을 떼지 않고 나를 본 것뿐이었지만,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전부 읽을 수 있어 하루와 눈을 맞추고는 그냥 웃어 버렸다. 하루는 대횟날 레이에게 거듭 괜찮냐고 물었다. 레이의 대답에 하루 나름대로 납득을 하고 결정을 했을 테니까. 미안해, 하루. 나는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 하루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괜찮아, 하루. 내 말에 하루는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지만, 곧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내키면 얘기해.’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아 다시금 대회를 떠올렸다. 이와토비 부원이 아니었던 린의 릴레이 참가로, 지역 대회 릴레이는1등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지역 대회 다음은 전국대회 출전이다. 대회 관계자 측에서도, 학교 측에서도 사메즈카 부원의 이와토비 릴레이 참가는 고등학생들의 놀이라고 봐주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사메즈카도 이와토비도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그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린이 자유형을 끝내고 경기장에서 뛰쳐나간 그 순간, 하루는 주저앉았다. 예선에 남으면 결승까지 간다면 린과 헤엄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게도 모두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장 나도 린과 결승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망보다는 당장 나가야 하는 릴레이 시합이 중요했다. 수영을 그만두겠다며 사라진 린도, 이제 린과 헤엄칠 수 없다며 주저앉아 버린 하루도 모두 걱정이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은 릴레이 시합이었다. 하지만 하루는 그렇지 않았다. 경영은 애초에 하루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린과 수영할 수 없다면 시합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때 레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건이 있습니다.’
레이가 린과 따로 만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회 전날까지 만난 사실은 그날 레이의 입으로 듣지 못했다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린이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하루의 탓이 아니다. 그만두자고 생각했었지만, 일본에 돌아와 하루와 재회하고 또 승부해서 그런 마음을 떨쳐냈다. 거기에 현대회에서 이와토비의 릴레이를 보고 예전 일을 떠올려서 또 릴레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메즈카에서 최고의 릴레이를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린의 본심이 아니었다. 승부가 어떻게 되든 린은 이전처럼 모두와 함께 릴레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레이가 했던 말이다. 몇 번이고 곱씹었기 때문에 이제는 외워버렸다. 어째서 린의 마음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냐는 하루의 질문에 레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저도 그와 같은 마음이니까요. 여러분들과, 최고의 동료들과 같이 릴레이를 헤엄치고 싶어요.’
정말로 괜찮냐고 하루가 다시 물었을 때도 레이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레이는 린을 이해한다고 했다. 린이 함께 릴레이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린이 하루와의 승부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도.
대회는 잘 마무리되었다. 적어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레이는 어땠을까. 린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 레이 역시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레이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진 않았을까. 하루가 린과 함께 헤엄칠 수 없다고 주저앉았던 그때, 나는 하루를 막았어야 했을까. 린이 어떻게 되든, 수영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린이 정말 수영을 그만두진 않았을까. 레이와 하루가 이야기할 때, 나기사와 나는 듣는 입장이었다. 갑작스러운 레이의 선언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레이는 하루에게 물었다.
‘같이 헤엄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하루는 대답했다. ‘린과 헤엄치고 싶다’고.
괜찮냐고 물은 하루의 물음에 레이가 답한 것을 끝으로 린은 이와토비의 릴레이에 참가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레이는 정말로 괜찮았을까?
하루가 레이에게 확인차 다시 물었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결정에 수긍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만약 내가 몇 달간 수영을 위해서 애썼다고 생각해 보면 그걸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레이가 부활을 쉬었던 그날, 레이의 방에서 보았던 서적들은 그가 얼마나 노력했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따라잡기 위해서 그만큼 더 공부하고 노력하는 레이. 그 성격에 일을 대충 하는 경우는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육상을 그만두고 수영부에 들어온 것도 어떻게 보면 나기사의 고집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육상 기록도 나쁘지 않았고. 자기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던 레이를 수영부에 끌어들인 건 잘한 일일까.
차라리 레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싶기도 했다. 린과 함께 릴레이에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린은 정말로 수영을 그만뒀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가 린을 찾지 못했다면 레이랑 함께 릴레이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릴레이 멤버가 린으로 정해지는 그 순간에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린을 붙잡아야 할지, 레이를 붙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함께 릴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릴레이를 해야 하는 순간에 그 질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어. 둘 다 소중한걸. 레이도 린도 내게는 전부 소중해. 린이 수영을 그만두는 것도 싫어. 린과도, 하지만 레이와도 모두 같이 헤엄치고 싶은 걸.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레이에게 물었더라면. 내가 항상 괜찮다고 말하듯 레이도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코토. …마코토.”
“응? 하루?”
“…수업 끝났어.”
“아… 응.”
“점심시간이라고.”
하루는 도시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옥상에 가자는 말이었다. 하루의 말에 생각으로 가득 찬 노트를 덮으며 손목시계를 봤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라니. 서둘러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너.”
도시락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하루가 내게 물었다. 푸른 눈동자가 나를 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이후로 영 불편해 보였어. 말할 때까지 잠자코 있었지만 역시 무슨 일 있는 거지?’ 하루의 얼굴에서 그 생각을 읽어 내고는 멋쩍게 웃었다. 역시 하루는 속일 수 없네. 하지만 이런 건 역시 말할 수 없으니까. 하루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은걸. 나기사가 기다리겠다며 빨리 밥 먹으러 가자고 하루의 손을 잡아끌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서도 레이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11월부터는 체육관에 등록해뒀어요. 미리 해뒀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 시즌에는 바다에서 수영할 수 없으니 사람이 좀 있는 편이라…. 잠깐 비는 시간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체력관리는 해주세요.특히 근육!”
점심시간에 고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기사가 아쉬워하며 쉬는 시간마다 놀러 오겠다고 말했다.여름은 이미 끝나 버렸다. 햇볕도 이전만큼 뜨겁지 않고, 창밖의 풍경만 보아도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지나가버린 일을 되짚고 있는 건 나뿐일까. 하루도, 나기사도, 레이도. 대회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냥 넘어간 걸까. 다시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라면 분명 분할 거야. 아무리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나가기로 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나간다면 화가 나지 않을까. 그렇지만 레이가 직접 꺼낸 이야기인데, 후회하고 있을까? 레이는 뭐든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데. 분명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일 텐데.
생각해 보면 몇 번인가. 레이에게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매번 평소와 같이 잘 웃고 이야기하는 레이를 보면 고민하는 것은 혼자인가 싶었다.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는 것 역시 불편할지도 모르고,레이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 게 결국엔 내가 레이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변명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지 고민됐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그날 좀 더 레이를 도왔어야 했다는 자책에서 오는 걸까. 나기사도 하루도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서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레이. 적어도 나는 네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등어 세일이 있다는 하루를 먼저 집에 보내고 부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레이는 챙겨야 할 물건들이 몇 개 남았다며 나중에 정리하고 가겠다고 말했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꿈이 스쳐 갔다. 가져갈 짐을 정리한 레이가 내게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수영부에서 나가 버리진 않을까. 그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물론 혼자만의 착각이고 괜한 걱정일 거라 생각하지만.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무언가 얹힌 것처럼 언짢은 마음은 여전했다. 아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제때 하지 못하고 계속 미뤘기 때문이겠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까. 고민하던 사이에 어느새 부실에 도착해버렸다. 노을을 등진 레이가 손에 짐을 든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레이.”
이름을 부르자 레이는 조금 놀라며 돌아섰다.
“마코토 선배. 두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 아니. 레이를 만나러 왔어.”
“저를요?”
노을을 등진 채 선 레이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숙였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다들 함께 있을 때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하루나 나기사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말야. 레이. 하루나 나기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게 말해야만 해. 부장으로서, 선배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네게 말하고 싶어.
‘그건… 저도 그와 같은 마음이니까요. 여러분과, 최고의 동료들과 같이 릴레이를 헤엄치고 싶어요.’
레이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 레이. 나는 네 말을 의심하지 않아. 분명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네게 사과해야만 해. 빈 주먹을 꼭 쥐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레이.”
더 일찍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날 더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린이 수영을 그만둬버리면 하루가 예전처럼 수영을 하지 않게 될까 무서웠어. 그때 내가 네게 한 번만 더 물어봤었더라면. 그래도 너는 같은 결정을 했을까? 다수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는 게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닌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을 거야. 결정하지 못할 거야. 내게는 하루도, 린도, 레이도 모두 소중한데. 그래서 미안해, 레이. 도와주지 못해서.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했어.
“마코토 선배?”
“미안해. 미안해.”
나를 부르는 레이의 목소리는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레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레이가 놀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었어. 네게 용서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그저 레이가 알아줬으면 했어.
‘헤엄치고 싶으면 헤엄치면 돼요.’
그러니까 레이가 린에게 했던 그 말처럼, 내가 네게 말하는 거야. 너 역시 헤엄치고 싶으면 헤엄치면 돼.레이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도 레이를 탓할 사람은 없었어. 그랬는데. 내가 더 너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네 기분이 어떨지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수영부에 들어오고 나서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옆에서 지켜본 내가 잘 알고 있었는데도.
“선배 설마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던 겁니까? …역시 마코토 선배는 상냥하네요.”
“레이.”
고개를 들어 겨우 레이와 마주했다. 레이는 안경을 올리며 웃고 있었다. 대횟날 보았던 것과 같이 확신에 차 있는, 기분 좋은 얼굴이라 울 것 같았던 내 얼굴도 자연스레 풀어졌다. 레이는 손에 든 짐을 내려두고는 내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갑작스레 내민 손에 눈을 감자, 레이의 손가락이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고여있었던 모양이다.
“마코토 선배가 울 것도, 사과할 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선배가 뭐가 미안한지도 잘 모르겠는 걸요. 전 괜찮아요. 최근에 선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요.”
하루도 그렇고 레이도 걱정하고 있었던 건가. 모두 말은 하지 않지만 신경 쓰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나는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레이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나는 레이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레이와 함께 수영하고 싶은데. 모두와 함께 보았던 그 경치를 레이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그랬는데 레이가 이 자리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다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려 이를 악물었을 때, 레이가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마코토 선배.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저는 괜찮으니까요. 앞으로 린씨와 함께 했던 만큼 저랑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요. 내년에는 반드시 지역 대회를 넘어 전국대회까지 갈 테니까요.”
보랏빛 눈동자는 그 안 가득히 나를 담은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레이가 했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전부 진심이었어. 그래서 내가 더 미안했던 거야, 레이. 네가 풀이 죽었을지도 몰라서 우리 때문에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역시 레이는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하구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은 건 나였는데 오히려 레이에게 위로받아버렸어. 혼자 괜한 속앓이를 했나 싶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잘 전해진 것 같으니 다행인가. 노을을 등진 채 대회 이후에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며 말하는 레이의 모습에 그제야 웃음이 났다. 이전에 그랬듯이 책도 보고 경기가 기록된 영상도 찾아보면서 너는 네 스타일대로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이번에야말로 정말 모두와 함께 수영하는 그 여름을.
손등에 겹쳐졌던 레이의 손을 맞잡았다.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중인데도 레이의 손은 따뜻했다. 네가 모두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따뜻해. 이상한 면도 있지만 역시 레이에겐 당해내지 못하겠어. 나는 레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뒤늦게 답했다.
"응, 레이. 내년에는 꼭 모두 함께 하자."
Fin
이 글은 '원고 끝면 꼭 써야지. 레이를 위한 글을 내가 쓰고 말 거야!'라고 생각한 데서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 12화에 대해서 본인도 납득이 갈 것 같아서. 현재 다른 마감 하나가 다가오고 있어서 또 치이는 감으로 부랴부랴 써버렸습니다. 12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충격이었죠. 실제로 탈덕하신 분들도 많고... 그렇지만 계속 좋아하는 애들을 보고 Ever blue를 듣고 있으려니 그래 너희가 좋으면 되었다 싶은 마음도 들고ㅠㅠ 그래서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멋대로 이런 걸 써도 되나 싶기도 했구요.
마코토가 자신을 자책하고 자기를 미워할 수밖에 없어져 계속 고민하다가 레이에게 사과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봐주심 좋을 것 같네요. 12화의 전개나 결말에 대해 만족하는 건 아닙니다만,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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