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세이쥬로린 '목도리'

중독된 깡 2014. 5. 13. 10:35








http://rinright.tistory.com 


린우 웹엔솔에 참여한 글입니다.

 

 

 

 

 

 

 



 

 

마츠오카 선배수고하셨습니다.”

 

 

니토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나를 맞았다간단히 답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겨울이 되고 추위가 들이닥친 기숙사는 난방을 해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감기 걸린다며 조잘거리는 소리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몇 번인가 손을 움직이다 니토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눈이 갔다실타래와 뜨개바늘그 밑에 모양새를 잡아가고 있는 털 뭉치남학생으로 가득한 사메즈카에서 흔히 발견할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니토리라면 납득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대강 무엇인지는 감이 왔지만설마 그건가 싶어 보고 있는 사이에 니토리가 내 얼굴과 제 손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부장이 목도리를 뜬다고 하길래 가르쳐주다가 저도 뜨기로 해서요선배빨간색이 좋으세요파란색이 좋으세요?”

 

아무거나 하면 되잖아.”

 

그치만 이거 선배한테 드리려고

 

됐으니까 너나 써.”

 

이거 꽤 따뜻하고 저 손재주가 그렇게 없는 편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두 눈을 깜빡이며 그럼 뭐가 문제냐고 말없이 묻고 있는 니토리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이대로 있다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전부 말해야 할 것 같아 손에 들었던 수건을 가볍게 집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실 뭉치를 쥔 채로 간신히 수건을 받은 니토리가 머리도 다 안 말리고 어디 가냐는 소리가 들렸지만그 말을 무시한 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입을 다물면 니토리가 더 캐묻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고마운 후배라는 것도 알고 있다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초저녁에 불과한 시간인데도 이미 한밤중인 듯 깜깜해진 하늘에 기숙사 근처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벌써 이렇게 어두워질 만큼 시간이 지났나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다 말리지 않은 머리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제대로 말리고 나올 걸후회도 잠시 니토리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머리를 말리는 것보다 몸을 뜨겁게 만드는 게 더 빠르겠다걸음을 내딛자 겨울바람이 차갑게 나를 맞았다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바람이 머릿속까지 차게 식혀주길 바라며 뛰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면 머리도 몸도 가벼워지기 마련인데방에서 보았던 것이 속에 담아두었던 일을 끄집어낸 건지 좋지 않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사실 목도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따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좋지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하지만 볼 때마다 그 일이 떠오른다몇 년이 지났는데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기억이.

 

 

* * *

 

 

하루하루!!”

 

 

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하루카를 구해냈다마코토가 하루의 이름을 부르는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가만히 서서 둘을 지켜보았다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는 소리를 지르기보다 그대로 굳어버리기 마련이다어른들을 부르러 가야 하는데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몸 상태도 좋지 않았는데 목도리를 건지겠다고 물에 뛰어들었던 하루카나 바닷가에서의 난파사건을 지켜보았으면서도 하루카를 구하기 위해 같이 물에 뛰어든 마코토를 이해할 수 없었다마코토는 그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을 텐데.바다가 무서웠을 텐데그조차 잊고 물에 뛰어들 만큼 하루가 소중한 사람인 건가마코토를 보며 굳어있는 동안에도 귓가에는 계속해서 하루의 이름을 부르는 마코토의 외침이 맴돌았다결국 사람을 부르기 위해 움직인 것은 내 쪽이었다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그 순간에도 마코토는 계속해서 하루카만을 보고 하루만을 부르고 있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계속 옆에 있어도 나는 마코토에게 하루카 이상 가는 존재는 될 수 없겠구나라고.

 

* * *

 

실제로 마코토는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하루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말하는지 읽어내는 마코토를 보고 있으면 뻔한 일이었다고등학생이 된 마코토는 지금도 하루카의 옆에 찰싹 붙어있었고하루카도 그런 마코토를 거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원한다고 해서 전부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모든 것이 노력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아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현실에 직면하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게 된다수영도마코토도 너는 전부 가지고 있었는데.하나쯤은 내게 줘도 괜찮았잖아하루카를 떠올리며 때늦은 원망의 목소리를 냈다이제 와서 미련이 있는 건 아니다다만 그런 마코토와 하루카를 보고 있자니 내게도 마코토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지역 대회가 끝난 이후이와토비 쪽에서는 고문 선생님에게 한소리를 들었을 뿐 별다른 일은 없는 듯했다나도 사메즈카 수영부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건만 정작 부장은 웃으면서 우리 팀에서 보여줄 날을 기다리겠다며 내년을 기약했다학교 측에서 내게 별 이야기 없이 넘어간 것은 아마 미코시바 부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해준 덕분일 것이다.

 

 

마츠오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자 몇 걸음 떨어져 있던 부장이 웃으며 다가왔다.부장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고 봉지의 틈으로 뜨개바늘과 실 뭉치가 튀어나온 걸 보니 정말 니토리 말대로 목도리를 뜨고 있는 모양이었다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그러고 보니 부장은 조금 바보 같긴 하지만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여자한테 인기가 없는 편도 아니겠지아마도.

 

 

그 실은 뭡니까?”

 

니토리한테 못 들었나마침 잘 됐다이거 고우군한테 선물할 건데 어떨 거 같냐길이가 좀 긴가?”

 

 

애써서 만들었다고 들어 보인 물건은 이미 무엇에 쓰는 건지 본래 용도도 잊어버릴 정도의 길이를 한 목도리였다돌려 말하면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 톡 쏘듯 부장에게 답했다.

 

 

고우는 그런 조잡한 거안 씁니다.”

 

너무하네그래도 열심히 만들고 있는 건데.”

 

 

씩 웃는 얼굴이 대회가 끝나고 보았던 그 웃음을 짓고 있어 묘하게 가슴이 일렁였다부장은 항상 그랬다.신경 쓰지 않는 듯하면서도 그 많은 부원을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붙임성 없이 행동하는 내게 니토리라는 좋은 후배가 붙은 건 그 녀석이 착한 탓에 더해 부장의 입김이 작용한 걸지도 몰랐다이와토비의 릴레이에 참가했던 일에 대해서도 쿨하게 넘어가 그 후로 다른 언급은 없었다.

 

릴레이를 하겠다 했던 내 억지와 고집이 통했던 것은 온전히 실력으로 평가받았을 때의 이야기다대회 전날 내 상태를 보고 릴레이에서 나를 제외시킨 것도 사메즈카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었다이미 대회에 나가기로 확정되어 있었던 일이니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미코시바는 그러지 않았다사메즈카 전체를 위해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확실히 득과 실을 따져 결정했다부장은 무엇이든 대충하는 것 같으면서도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 없었다그렇다고 꽉 막힌 것도 아니고느슨한 것 같으면서도 맡은 일은 제대로 해냈다.

 

부장이라는 직책 때문이 아니라 미코시바 세이쥬로이기 때문에 부장을 맡을 수 있었던 거겠지할 일은 전부 해내면서도 여유로운 사람볼수록 참 대단한 사람이다고우에게 계속해서 거절당하면서도 밀고 나가는 걸 보면 외골수 기질도 있는 모양이고고우군과 잘 되게 도와달라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이것도 나를 위한 부장의 배려일지도 몰랐다대화가 끊이지 않도록 술술 이야기를 꺼내는 부장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장.”

 

?”

 

 

하던 말을 멈춘 미코시바는 똑바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야기를 할 때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상대를 마주하는 모습도 부장의 좋은 점 중 하나다.

 

 

고맙습니다.”

 

 

노란색 눈동자 가득히 내 얼굴이 담겨 있었다. ‘뭐가?’하고 되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매섭게 올라가 있던 눈꼬리가 휘어졌고 곧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부장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아프다구요.어색해질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건지 미코시바는 잠시간 그렇게 웃었다웃음소리가 멈추고 나자 어깨에 있던 손이 머리로 옮겨갔다머리에 와 닿는 손이 따뜻했다헝클이듯 머리를 쓰다듬은 부장은 당부하듯 말했다.

 

 

나 없어도 잘해라.”

 

 

평소답지 않게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없어도 잘하라니릴레이에서 그 수영을 보여달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낸 건 부장이었는데그 말을 꺼내는 부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내가 릴레이를 하게 되는 시점은 부장이 사메즈카를 떠난 뒤일 거라는 걸 알고 말했을 텐데대학교에 가서도 부장이 수영을 계속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지만 그간 부장이 해주었던 것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곧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겹쳐졌다부장은 머리를 헝클이다 머리카락을 만져보고는 내게 물었다.

 

 

마츠오카너 머리도 안 말리고 나온 거냐머리카락이 얼어버렸잖아.”

 

별로 상관없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올림픽 선수가 될 거란 사람이 몸 관리를 그렇게 소홀히 하면 어떡하냐.”

 

 

인상을 쓰고 훈계하던 것도 잠시 부장은 다른 손에 들려있던 목도리를 내 머리에 칭칭 감았다일단 목도리라 부르긴 했지만목도리도 아니고 수건으로 쓰기도 뭐한 묘한 물건이었다.

 

 

이게 뭡니까?”

 

목도리잖아.”

 

저 주려고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받는 사람은 마츠오카였으니까상관없잖아.”

 

손봐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요길이도 길고.”

 

 

수건처럼 머리에도 얹혀지고 목에도 둘러진 목도리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었다손으로 길게 늘어진 부분을 들어보았다잡지 않으면 땅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뜬 거야한참이나 남은 부분을 잡고 있으려니 부장은 잠시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그리고는 곧 손가락을 튕겼다부장은 내 옆에 나란히 서서는 자기 목에 남은 목도리를 둘렀다그리고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남자답게 웃는 웃음소리에 둘러진 목도리를 올려 얼굴을 가렸다당신은 뭘 하든 그렇게 솔직해그래서 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나는 처음에는 그런 부장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었다지금은 바보 같은 점만 빼면 조금은 닮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게 됐지만다 큰 남고생 둘이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목에 감긴 목도리를 손으로 만져봤다얼기설기 엉킨 실들이 엮여 어설프게 완성품 흉내를 내고 있었다서투른 솜씨로라도 만들겠다고 애썼을 텐데이만큼 뜨기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잘하지도 못하지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점까지나는 그런 부장이.

 

 

창피해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두를 건 아니잖아?”

 

무슨 뜻입니까?”

 

이 목도리 볼 때마다 내 생각 많이 하라고.”

 

 

부장이 내 머릿속을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목도리를 볼 때마다 마코토와 하루카가 함께 생각나는 것도 알았을 리 없다마음을 읽어내는 게 더 신기한 거고하지만 말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 읽어냈던 걸까방금 그 말에 조금 설레버렸다는 건 알고 있을까농담이겠지만꼭 고백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깊은숨을 내쉬고 있자니불쑥 부장의 얼굴이 앞으로 다가왔다가까워부딪친다고 생각해 눈을 감았다부장은 이마를 맞댔다뭐지혹시라도 마음을 들킨 건가아니부장이 그렇게 눈치가 빠를 리는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눈을 떴다.

 

 

뭡니까.”

 

얼굴이 빨개서 감기 걸렸나 했지열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자각하지 못했었는데볼에 손을 대보니 더 뜨거운 것 같았다방금 그것 때문인가부장은 평상시와 같은 얼굴로 내게 의문을 표시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이 사람은 항상 여유롭고 태평해 보이는 거지단순히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고 속이 깊은 건 알고 있지만나는 솔직한 당신을 상대하는 것만도 이렇게나 벅찬데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부장이 둘러준 목도리를 붙잡아 코끝까지 올렸다그대로 숨을 들이쉬자 목도리에서 부장의 냄새가 났다방금 가까이 다가왔을 때 맡았던 체향과 같은 것이라 더 얼굴이 달아올랐다.

 

기숙사에 돌아가야겠다고 방향을 트는 순간목도리가 팽팽하게 당겨져 걸음을 멈췄다목도리부장은 내 걸음에 딸려오다가 돌아가려고?’라 물으며 어깨에 손을 걸쳤다.

 

 

눈도 내리기 시작한 것 같고추우니까 들어갈까마츠오카진짜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방에 들어가면 제대로 말려라.”

 

 

한기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던 부장은 잔소리하듯 내게 말을 덧붙였다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을 봤다손을 내밀자곧 하얀 눈송이가 손바닥에 앉았다가 물방울로 변해버렸다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같은 목도리를 한 채 걸어가는 게 편하진 않았지만부장도 나도 목도리를 풀어내진 않았다부장은 답지 않게 조용했고나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는데 급급했다부끄러움에 열이 올라서일까어깨를 붙잡은 부장의 온기가 외투를 넘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목도리를 볼 때마다 꼭 마코토와 하루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이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보는 사람마다 이게 무슨 목도리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이 목도리를 가지고 있으면지금 내리는 눈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듯이 마코토나 하루카와 함께 했던 다른 수많은 기억들도 부장이라면미코시바 세이쥬로의 이름으로 다시 덧씌워주지 않을까나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어깨에 올려진 부장의 손끝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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