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분과 함께하는 소스마코 연성 주고받기
망구님 리퀘입니다.
일이 안 된다. 잠깐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려 했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이어폰을 뽑아 책상 한구석에 던졌다. 집중해야 하는데. 몇 초간 눈을 감았다 떴다. 컴퓨터 시계가 10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출근하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까부터 문서에 적힌 내용은 뭐 하나 바뀐 게 없었다.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 어차피 대충 때워 넘기는 거고 위에서도 항상 하듯이 훑고 넘길 뿐인데. 빨리 처리하는 게 나도 편하고….
뻐근한 목을 돌리면서 옆을 봤다가 파티션 너머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기색의 신입은 고개를 돌렸다. 모니터로 향했던 눈이 힐끔 나를 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간다. 따지고 보면 다 저 녀석 때문인데. 뒤통수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타치바나 씨.”
“네…. 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쳐다보고 있던 걸 들켜서 놀랐나. 예전 같으면 그냥 저 얼빵한 놈이 또 혼자 당황해서 저러나 보다 했을 건데. 이제 안 잡아먹으니 그만 좀 떨라는 농담도 나오질 않는다. 라이터를 챙기며 그에게 말했다.
“잠깐 옥상 갔다 올 테니까, 일 있으면 불러요.”
“아, 네….”
걱정하는 듯한 눈초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옥상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있느니 올라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그에게 말해 봤자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란 걸 말할 수도 없었다.
*
‘아, 안녕하세요. 타치바나 마코토입니다. 처… 처음이라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인상은 어벙해 보이는 신입이었다. 회의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신입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인사했다. 처음이니 어느 정도 긴장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는데, 목소리는 물론이고 손에 쥔 주간 보고서가 구겨지도록 꼭 쥐고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조금 꼴사나워 보였다.
말을 조금 나눠 보고 직원들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착한 사람이라는 건 딱 보였다. 바보같이 잘 웃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잘했다. 신입이 다 그러하듯 주된 업무보다도 산더미 같은 잡일에 치여 자리에 앉아 있는 새가 없었는데 그러다가도 누가 부르면 ‘네… 네?!’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게 귀여워 보인 것도 처음 한두 달쯤.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어리버리한 모습에 혹시 저게 막내라는 위치를 이용한 컨셉인가 하는 비뚤어진 생각까지 들었으나, 타치바나는 그렇게 머리를 굴릴 만큼 못되 먹은 놈은 아니었기에 어련히 이해하고 넘어갔다. 윗분들도 그런 그를 귀엽게 여기는 모양이었고 괜히 나 혼자만 날이 서서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을 보고 있자면 가르쳐야 하는 사수 입장에선 막막했다. 아직 업무가 익숙지 않아서인지 1시간 만에 끝낼 일을 2~3시간 동안 붙잡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업무 중에 딴짓을 하나 살펴보면 그런 건 아니었다. 나도 신입 때 저렇게 버벅거렸던가.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는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과장의 조언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러나 처리하는 시간이 배가 걸린다는 건 그만큼 효율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메뉴얼대로만 하면 그만인데, 왜 그걸 못해? 그리고 누군 처음부터 다 가르쳐주는 줄 알아? 눈칫밥 먹고 알아서 배우는 건데, 타치바나 씨는 다 떠먹여 주기만 바라나? 당신한테 넘기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울컥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더럿 있었고, 그럴 때마다 타치바나는 죄송하단 사과만을 연발했다.
그러던 차에 상사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신입도 이제 한가족인데 잘 이끌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쟤 좀 챙겨줘.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잖아. 성실하고, 착하고. 요즘 저런 애 없다?’ 흡연실에서 만나는 옆 부서 대리의 말을 들어보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예예, 나쁜 애는 아니죠. 근데 원래 나쁘지 않아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애가 제일 문제거든요? 나쁜 놈이면 패던가 혼내기라도 하지. 속이 터져 봤자 그건 신입 교육담당인 내 몫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그를 좋게 평가했다. 남들이 다 좋다니 나라도 싫어해야겠단 억하심정으로 내 시선이 더 삐딱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타치바나는 유독 내 앞에만 서면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로 바들바들 떠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불쌍하단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다 큰 남자가 벌벌 떨고 있는 건 불쌍하다기보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다고. 술이고 담배고 뭐 하나 하는 것도 없으니 같이 얘기할 시간도 부족하고. 커피나 한잔 하자고 부르면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도와줘야 해?
*
옥상에 올라서니 빌딩 사이로 치는 칼바람이 불어왔다. 한겨울이라는 게 실감 나게 시린 바람이었지만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일깨우기에는 딱 좋은 바람이었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하나 빼 물었다. 불이 붙자 타들어 가는 연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
술이라도 마셔서 얘기하게 하면 나아질까 싶어 자리를 마련했다. 사적인 이야기가, 친근감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나 역시 그의 취미나 관심사 등 개인적인 일은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친해질 기회라 생각했다. 이 기회에 업무 얘기도 좀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면 타치바나는 전부 술술 내뱉었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쌍둥이 동생들이 있고 도쿄에는 대학생이 돼서라는 간단한 이야기들은 누가 묻든 친절하게 답해주는 그였다. 부장이나 과장을 통해 수영했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그 외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물어보질 않으면 오히려 내가 그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라 사무실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술자리에서까지 이어져 열이 올랐다.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한 채 '말 안 할 거면 마셔'로 이어졌고, '대리님도 같이 마셔요'란 그를 따라 나도 어지간히 들이부었다.
테이블 구석에 치워둔 소주만 몇 병째가 될 때쯤에 그는 이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몸까지 빨개진 데다 혀 꼬인 소리까지 내고 있는데도 회사 욕은 나오질 않았다. 원체 진짜 소갈머리 없는 녀석인지. 귀한 시간이랑 돈까지 내가면서 온 건데 아무 소득도 없이 갈 순 없잖아. 직구로 말하는 건 이 사람 성격이 아닐 것 같지만…. 엎드린 그를 툭툭 치던 나는 이때다 싶어 물었다.
“타치바나 씨. 왜 그렇게 날 무서워해요? 내 앞에 서면 아주 사시나무 떨듯이 달달달… 내가 뭐 잡아먹어요?”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취한 와중에도 앞에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언제나처럼 몸이 떨렸다. 덕분에 그가 몸을 기댄 테이블도 같이 후들거렸다.
“…대리님이 보면 잡아먹힐 거 같….”
취한 와중에도 내 눈썹이 꿈틀거렸는지, 타치바나는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 죄송해요. 제가 워낙 성격이 이래서… 그래도 대리님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애매하게 말을 끊는 그 태도에 또 열이 올랐다. 내가 이 좋은 금요일 밤을 당신한테 투자하고 있는데. 끊기는 뭘 또 끊어. 잔을 비워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탁하는 소리에 그가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오히려 뭐요?”
반쯤 감긴 눈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멋쩍은 듯 뒤통수를 만지던 타치바나는 테이블로 다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은 웃음을 지은 그가 답했다.
“좋아서 문제랄까….”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완전히 기절해 버려 어떻게 할 수도 없었기에 집에 데려와 재웠다. 침대에 던져놨는데도 던져둔 그대로 잘도 자는 모양새를 보니 한숨이 났다. 헤 벌어진 입을 보고 있으려니 입안에 손가락이라도 넣어 깨우고 싶어졌다. 기분 잡쳤단 생각에 술기운조차 다 사라져 다시 맥주를 깠다. 술 처먹고 할 소리가 없어서 남자한테 고백을 하냐. 어이, 사회초년생. 적응하느라 힘든 건 알겠는데 당신 때문에 나까지 힘들어지니까 잘 좀 해보라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치자, 표정이 잠깐 구겨졌다. 회사에선 볼 수 없던 얼굴이었다.
방문을 닫고 나와 쇼파에 늘어졌다. 뭐가 예쁘다고 저런 걸 데려와서 재워주고 있냐, 나는. 잠깐, 잠깐만. 타치바나가 평소에 했던 걸 생각해 보자고. 내 앞에서 주눅 들어서 얼굴이 빨개지는 거나 유독 말을 더듬는 거나 바들바들 떠는 거나 가끔 쳐다보고 있는 거나…. …잡아먹힌다고?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좋아서 문제랄까….’ 뭐야? 타치바나 게이였어? 하지만 그 사실보다도 더 당황스러운 건 그의 반응을 떠올리면서 불룩하게 솟아오른 내 하반신이었다. …장난하냐.
타치바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죄송했다며 집에 돌아갔다.
술자리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어리버리했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업무에 익숙해진 게 보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도 당황하지 않고, 부장이나 과장의 호출에도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대신 타치바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더니 보이는 게 많았다. 우선 그는 생각보다 더 자주 나를 보곤 한다. 탕비실에서 자리로 돌아오는 도중에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경우도 있고 자리에서 몰래 나를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물끄러미 보는 경우는 없었기에 쉽사리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또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서 얼굴 색이 좋아 보인다든가 커피 한잔 하시겠냐든가 말을 걸고 다니는데 나에겐 유독 자주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면 나는 네 번 정도? 예전 같으면 내가 무서워서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게 아니라 좋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별거 아닌 것도 의식하게 됐다.
여느 때처럼 커피 한잔 드시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금방 커피를 내왔다. 같이 휴게실에 가 마시면서 침 넣은 건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그 뒤를 이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란 소리가 나왔다. 그래, 그럴 리가 없겠지. 좋아하니까. 자의식 과잉인가. 그냥 좋은 선배라는 얘길지도 모르는데. 그날 그건 뭐였냐고 묻고 싶어도 회사에서 ‘죄송합니다, 대리님. 그날 제가 뭔가 실수하지는 않았나요?’라고 선수를 치고 나와 할 말이 없었다. 물어봤자 거짓말이든 아니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테니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몰렸는데 손이 워낙 바빠 그에게 넘긴 적도 있었다. 그동안 잡일만 하다가 서류를 잡은 타치바나는 야근을 몇 번 한 탓인지 혼자서도 일을 빠르게 처리했다. 점심 전에 일 처리를 끝낸 그가 기특해 밥을 사겠다고 끌고 나가자 과장이 한마디 했다.
“야마자키 군, 요즘 신입 너무 괴롭히는 거 아냐?”
“과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친목입니다, 친목. 안 그래요? 타치바나 씨?”
친한 척 어깨에 손을 얹자 타치바나는 웃으며 답했다. 더듬거리는 대답은 여전했고, 붉어진 얼굴도 예상대로였다. 너무 뻔히 보여서 뭐라 할 수가 없네. 사무실을 나오기까지 타치바나의 목에 닿은 팔이 화끈거렸다.
*
멍하던 정신이 깨어날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만 갔다. 타치바나 마코토. 그러니까 그를 의식하게 된 것까지는 확실히 알겠다. 그래서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아, 미안 나 그런 취미 없으니까.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건데.
솔직히 말하면, 술. 그래, 그게 문제였다. 같이 마셨던 그날, 방에서 자는 타치바나를 생각하면서 뺐다. 안 한 지 얼마나 됐더라. AV나 영화나 온갖 야한 걸 다 떠올리는 데도 쉽사리 끝낼 수가 없어서 원흉이 된 타치바나를 생각했다. 멍청하게 늘어진 얼굴. 벌어졌던 그 입에 쑤셔 넣는다고 생각하니 금방 해결됐다는 게 더 문제였다. 끈적거리는 손을 씻으면서 거울 속의 나를 뚫어져라 봤다. 아, 망했다.
그 생각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나. 타치바나가 날 좋아하고 나 역시 좋아하게 된 거라면 사귀면 그만인데.
하지만 내가? 저걸? 왜? 이제까지 이십몇 년을 여자만 좋아하면서 살았는데 덩치도 커다란 사내자식을 왜 좋아하는 건지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자꾸 부장하고 과장이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진짜 귀여운 줄 알게 된 건가. 미쳤나 봐. 착해 빠져서 딱 이용만 당할 거 같이 생긴 놈이잖아.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는데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옥상문을 열고 들어오는 타치바나가 보였다. 양반은 못 되는 놈이네. 호출인가. 한 대 더 태우려고 했는데. 서둘러 달려온 타치바나는 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야마자키 대리님. 부장님이 찾으세요.”
“급한 건 아니죠?”
“자,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오라는 말 따로 없었으면 별거 아니겠지. 뭔가 걸릴 걸 한 게 없으니까. 설마 조언이랍시고 또 타치바나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이 사람 때문에 죽어라 고민 중이거든요.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올라왔는데 결국 정리되는 건 없었다. 그냥 순순히 좋아하는 걸 인정하면 되는 건가. 그러면 좀 편해지나.
대체 어디가 귀엽지? 답할 수 없는 의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타치바나를 살폈다. 아래로 축 처진 눈썹에 눈꼬리도 늘어져 있다. 입꼬리는 항상 조금 올라가 있어서 유해 보이고 그만큼 착하기도 해서 보고 있으면 좀 화가 나기도 한다. 네 몫은 네가 챙기는 거라고, 착하기만 한 타치바나 씨.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선에 타치바나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움츠러든 어깨에 모으고 있는 손까지. 뒤에 꼬리라도 달려 있으면 딱 명령 기다리는 멍멍이인데. 아,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귀엽긴 하네.
“타치바나 씨, 애인 있어요?”
“네? 아, 아뇨….”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는지 그는 화들짝 놀랐다. 안 그러나 싶었는데 또 떨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로 이런 반응이면, 키스라도 하면 죽는 거 아냐?
“흐음, 좋아하는 사람은 있나 보네?”
“에? 어… 어떻게?”
부정도 안 하네. 그럴 땐 아니라고 해야지, 멍청아. 하얗던 피부가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얘기할수록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도 볼 만했다.
“그야 보면 알죠. 타치바나 씨는 표정에 다 보이거든요?”
내 말에 손으로 얼굴을 더듬던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가려봤자 당신 귀까지 빨개져서 어차피 다 보이거든. 거짓말 절대 못 한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니까 오히려 놀리는 내가 미안할 지경이고….
“대리님은요…?”
“나?”
타치바나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은 의외였다. 그래도 궁금하긴 한가 보지? 일단 좋아하니까? 마침 물어볼 기회인 것 같아, 나는 들고 있던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탁탁 손을 터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로 두어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어떨 거 같아요?”
여기서 더 다가가면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는 타치바나 때문에 더 괴롭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 당신 탓이야. 뭘 하든 다 받아주니까 더 해 보고 싶어지잖아? 타치바나는 엉거주춤하게 뒤로 물러섰다. 어떤 답이 신입사원의 모범답안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나라면 그랬겠지만, 그에게 그런 여유는 없어 보였다.
“있는 게 좋아요? 없는 게 좋아요?”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타치바나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터질 것 같이 달아오른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멀어진 만큼 그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열릴 줄 모르는 그의 입을 보다가 다시 그날을 떠올렸다. 더 다가가면 안 되는데. 아, 근데 진짜 귀엽잖아?
바람이 멎고 나는 그 틈을 타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질끈 눈을 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상상했던 것처럼 부드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감촉에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렇게 쫄아요?”
안 잡아먹는다니까.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자꾸 당신 보고 있으면 이제 나도 안 잡아먹을지, 잡아먹을지 모르겠거든.
“얼굴 좀 식히고 들어와요.”
개미 소리만큼 작게 들리는 대답을 뒤로 한 채, 나는 옥상을 나섰다.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오면서 화끈거림에 고개를 숙였다. 뭐야, 당신 그만 좀 하라고. 왜 자꾸 내 눈 앞에서…. 아, 저걸 어떻게 해야 돼? 진짜 확 잡아먹어 버려? 나는 계단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내 얼굴도 빨개졌나? 차게 식은 손을 대자 이렇게 열이 올랐나 싶을 만큼 볼이 뜨거웠다. 미치겠네. 일이 안 되서 열 받은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변명하기도 지쳤다. 이미 충분히 타치바나한테 휘둘리고 있잖아. 피할 수 없는 사실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얼굴로 사무실에 돌아갈 수는 없고.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치바나 마코토는 귀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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