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설정한 게 조금 있어요.
“아, 잘 가. 켄마.”
싱긋 웃으며 인사를 마치고 곧 지하철 문이 닫혔다. 안에 탄 사람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 전화기 모양을 만든 뒤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그 메시지를 읽은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에는 보통 피곤하다며 잘 오지 않는데, 굳이 시간을 내어 보러 온 것은 켄마 나름의 어리광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인영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쿠로오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전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즘이 되어서야 쿠로오는 간신히 짓고 있던 웃음을 거뒀다. 그리고 구역질을 시작했다. 연인을 향해 다정히 흔들었던 손은 입을 막고 있었다. 비틀비틀 간신히 몸을 거누며 하수구까지 걸어갔다. 시간이 늦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술에 취한 인간이라 여기는지 쿠로오에게서 한두 걸음씩 멀어져 갔다.
차오르는 구토감. 알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지만 삼키려 애써봐도 몸이 반응해 버린다. 위액이 올라올 것 같은 느낌에 꿀꺽 침을 삼켜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입을 다물고 두 손으로 막아 보았지만, 꾹꾹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 그것은 어김없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수구 위에 떨어진 꽃 위로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연분홍빛의 벚꽃을 보며 쿠로오는 팔로 입술을 훔쳤다. 그 이후로도 서너 개의 꽃을 토해낸 그는 혓바닥에 붙어 있던 마지막 꽃잎 하나까지 입 밖으로 뱉어냈다. 간신히 어지러움이 가라앉고 나서야 쿠로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담배가 피고 싶어져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까 켄마와 저녁 먹고 계산한 영수증 하나. 쿠로오는 손에 잡힌 영수증을 꾸겨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하… 진짜….”
자조 섞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쿠로오의 머릿속에는 ‘피고 싶어지면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상대해주겠다’는 그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또 치미는 구토감에 쿠로오는 제 몸을 한 대 패주고 싶어졌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면 그뿐이라는 건가.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쿠로오는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집에 가자. 가서 생각해. 치미는 감정과 토기를 누르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열고 들어선 쿠로오는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풀썩 쓰러짐과 동시에 매트리스가 흔들렸고, 머리도 다시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슬슬 숨기는 것도 한계니까. 머지않아 켄마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까지는 그럭저럭 넘긴 것 같지만 이제 그 앞에서 웃는 것조차도 버겁다고 쿠로오는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시작은 별것 아니었다. 그냥 상대하기 조금 불편한 녀석. 그 정도. 딱히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 자신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쯤엔 이미 켄마와 사귀고 있었고, 쿠로오는 켄마를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있었던 만큼 보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 이상으로 합을 맞출 사람은 없다고.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생이 되고 다시금 재회하게 된 그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잘 지냈냐고 말을 건 게 화근이었나. 눈을 감고 떠올려 보았으나 무어라 말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저 가까이에서 지내고 취직 후에도 근방에 살고 가끔 만나는 술친구, 그 정도였었는데. 그를 떠올리자 웃음이 났다. 켄마 앞에서는 그토록 웃기 힘들었는데도 그를 생각하니 쉽사리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게 웃는 사이, 또 꽃잎 하나가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셔츠 위로 떨어진 꽃잎을 붙잡으며 쿠로오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와무라.”
입 밖으로 낼수록 선명해졌다. 자연스레 그려지는 그 얼굴에, 그 표정까지. 쿠로오는 다시 말했다. 사와무라, 사와무라. 사와무라 다이치. 입을 열 때마다 꽃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어지러움과 구토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비어 있던 병에 행복을 한가득 담아 넣은 듯 만족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웃을수록 가슴 한편이 아렸고 곧 날카로운 것에 찔린 마냥 괴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죄책감. 쿠로오는 아마 그것이리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는 없었다. 또다시 몰려오는 토기에 쿠로오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그 잠깐 사이 입을 막았으나 꽃이 떨어졌다. 벚꽃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고통과 함께 나오는 꽃은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얼룩진 데다 썩은 것처럼 꽃잎 군데군데가 찢겨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타액에 절어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한눈에 보아도 아까 사와무라의 이름을 부르며 뱉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러니까… 환자의 마음을 반영한다는 거지. 쿠로오는 변기를 붙잡은 채 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꽃은 나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차라리 다 토해내면 시원해질 텐데.
처음에는 이 구토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절대 경험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병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켄마 이외에 아니, 켄마 이상 가는 누군가가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자신이 정한 길 위에 서서 꿋꿋이 앞만 보고 나아가는 그를 보면서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을까. 쿠로오 역시 길 위에 서 있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 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전부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달랐다. 중용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굽히지 않는 것이 있었다. 구부러질 바에야 꺽이고 말겠다는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런 것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들을 잘 챙긴다든가, 생활력이 강하다든가, 의외로 술은 잘 못 마신다든가 하는 점들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전부 귀엽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는 이미 이 상황이었다.
꽃을 토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익히 들었던 환자들의 사연으로 잘 알고 있었다. 리에프나 타케토라가 앓았던 적도 있었다. 짝사랑의 시작. 그렇다면 지금 제 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는 누구보다도 쿠로오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도 그것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켄마를 배신하는 거잖아. 거기까지 생각하고 쿠로오는 변기에 머리를 박았다. 찰박이는 소리를 내며 물 위로 꽃이 떨어졌다. 인정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 터져 나오는 꽃에 쿠로오는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몇 년을 넘게 쌓아온 관계이니만큼 켄마라면 이해해줄지도 몰랐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것을 이성만으로 어떻게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켄마라면-. 가능성을 생각하면서도 쿠로오는 납득할 수 없었다. 몇 년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놓고 이렇게 쉽사리 돌아서는 제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슬슬 켄마에게 전화하지 않으면 걱정할 텐데. 쿠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내렸다. 콸콸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꽃이 떠내려갔고, 세면대 앞에 선 그는 물로 입안을 헹궜다. 거울을 보자 요 며칠간 고민에 폭삭 늙어버린 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켄마가 힘드냐고 물어볼 만했네. 쿠로오는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얼굴을 매만지다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휴대폰을 집어 든 그는 뚜뚜 하는 발신음을 들으며 고민하고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른 후 고민한다는 것부터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당장에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켄마가 전화를 받으면 무어라 말하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고. 켄마, 울지도 모르는데. 역시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게 좋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발신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쿠로오는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휴대폰 액정에는 선명히 '사와무라 다이치'란 글씨가 떠 있었다. 제 실수에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켄마에게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무의식이 눌렀을까.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쿠로오는 헛웃음을 토해냈다.
“뭐야. 취했냐?”
다시금 묻는 목소리에 쿠로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하고 입을 벌린 그 순간 꽃이 튀어나왔다. 하늘하늘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꽃잎에 쿠로오는 이제 더 미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와무라. 있잖아.”
이야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집안은 벚꽃향으로 가득해졌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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