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구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축제

중독된 깡 2014. 8. 23. 22:07





“이야~ 일찍 다녀오길 잘했네. 사람 봐.”

“너 사람 많은 거 좋아하지 않았냐?”

“그것도 젊을 때 얘기지. 거기다 지금은 누구씨랑 같이 있다 보니까 별로. 이런 것도 못하잖아.”


자연스레 남자를 향한 손이 엉덩이를 주물거렸다. 맥주캔을 들고 있던 다이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아도 씩 웃기만 했다. 항상 이런 식이었으니까. 약 10년 전 둘이 처음으로 같이 갔던 축제에서도 쿠로오는 이런 식이었다. 다이치네 동네 축제까지 와서는 왜 유카타를 입고 오지 않았냐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쉽게 벗길 수 있으니까 기대했는데.’ 그 말에 다이치는 웃으며 주먹을 날렸었다. 축제를 구경하는 내내 사와무라 하고 이름을 부른 다음 기습 뽀뽀를 한 건 물론이었다. 원체 능글맞은 성격이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애정을 갈구하듯 달라붙는 녀석일 줄은…. 그때는 단순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한 시간이 쌓여 있었다. 이제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굳이 제 엉덩이를 주무르는 쿠로오의 손을 떼어내며 말릴 이유도 없었다. 거기다 말리면 분명 ‘내 건데 왜 못 만져?’라며 더 의욕적으로 나올 게 분명했다. 맥주를 마시던 다이치는 베란다 난간에 기대 옆자리에 선 쿠로오를 봤다. 쿠로오는 난간에 팔을 걸친 채 다이치를 보고 씩 웃었다. 아직 엉덩이에 닿았던 손은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어째 아저씨가 다 됐냐.”

“아저씨니까. 우리 이제 서른이라고.”


다이치는 집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자연스레 쿠로오의 손이 떨어졌다. 유리창 너머의 집안은 평범했다. 깔끔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더럽지도 않았다. 아까 외출한답시고 갈아입었던 티셔츠와 바지가 쇼파에 걸쳐져 있었고, 식탁 위에는 축제에서 사온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베란다에 놓인 테이블 위에도 오징어구이와 야키소바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집도 좋잖아. 여기 분명 시작하면 정면으로 딱 보일 테니까.”

“아,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급히 돌아보고 온다고 나갔었다. 아, 타코야끼. 먹고 싶은데. 다이치, 저거. 저것도. 장 보는 곳에 따라간 아이처럼 쿠로오가 이것저것 전부 다 먹고 싶다며 말하는 통에 모처럼이니 먹고 싶다는 건 전부 사 왔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한 짐을 들고 왔다. 다 먹을 테니까 걱정 마. 내려놓은 음식을 보며 다이치가 걱정하는 것 같자, 안심하란 듯 쿠로오는 타코야키와 맥주를 집어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같이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동거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남자 둘이 괜찮겠냐가 대다수였다. 스가나 아사히는 다이치라면 분명 잘할 테니까라고 격려해 주었지만, 솔직히 다이치도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쿠로오는 생각보다 이상적인 동거인이었다. 세분하여 나눈 집안일은 물론이고 다이치가 바쁜 날에는 다이치 몫까지 청소를 해두기도 했다. 그래서 예상과는 다르게 평범한 일상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오래갈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이치는 힐끗 쿠로오를 보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입안 가득 알싸하게 퍼져가는 톡 쏘는 맛이 목구멍을 자극하며 넘어갔다. 아, 달다. 유독 술맛이 좋은 건 역시 옆에 있는 사람 때문일까. 다이치는 웃으며 캔을 조금 흔들었다. 이미 비운 맥주캔만 몇 개째. 하지만 아직 마실 건 많이 남아 있었다.


“너 처음 축제 갔던 날 기억 하냐?”

“아, 다이치가 내 뺨 때린 날?”

“사람들 앞에서 멋대로 행동한 녀석이 나쁜 거야.”

“그치만 싫어하진 않았잖아.”


분명히 싫다고 했었는데. 약속 장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기 보라며 딴청을 피우고 볼에 입 맞춘 탓에 다이치는 팔뚝으로 볼을 슥슥 닦아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쿠로오는 그날 수도 없이 다이치에게 입술을 들이밀었다. 만날 때마다 기습적인 스킨십이 있긴 했지만, 굳이 말하는 것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었다. 그날은 축제였기 때문일까. 쿠로오는 집요하게 입술을 부딪쳐 왔고 결국엔 그만하라고 얼굴을 밀어내다 뺨을 때린 꼴이 됐었다. 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다이치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 되자, 쿠로오는 정색하며 그에게 물었었다. ‘그렇게 싫어?’ 


“싫어?”


그리고 또 이 상황.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이 녀석. 은근히 소심하다니까. 다이치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눈을 가렸다.


“또. 또 그런다.”

“다이치는 부끄럼쟁이니까.”

“누가 부끄럼쟁이야.”

“아직까지 이름도 잘 안 불러주고.”

“그건 안 익숙해서 그래.”

“그러니까 더 불러야지. 익숙해지려면.”


테츠로라고 부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중얼거리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다이치는 힐끗 그를 쳐다봤다. 축제가 한창인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아, 시작한다.”


펑하고 터져 오르는 소리가 시작을 알렸고, 그 소리에 다이치는 다시 뒤돌아서서 쿠로오와 같은 방향을 향했다. 건물 너머에서 솟아오른 불꽃이 하늘 높이높이 올라가다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리고 주변에 색색의 빛을 뿌리며 잔상을 남겼다. 하나가 사라지기도 전에 연달아 올라가는 불꽃을 보며 다이치는 얼마 남지 않은 맥주캔을 다 비워냈다. 그래도 별 감흥이 없단 말야. 그때 봤던 것보다. 그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새 캔을 따며 덤덤한 얼굴로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보았다.


그때도 불꽃놀이 봤었다. 사람 없는 데로 가자고 쿠로오가 끌고 간 탓에 근처에 있던 산까지 갔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만났을 때부터 끈덕지게 달라붙어 왔으니까. 쿠로오에게 밀쳐져 키스당한 것까지 다이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무를 등지고 앞에 있는 쿠로오가 들뜬 숨을 뱉어 낼 때, 쿠로오 어깨너머로 보였던 불꽃이 제일 아름다웠던 것을 다이치는 선명히 그려낼 수 있었다.


다이치가 새로 딴 맥주를 반쯤 비워냈을 때, 쿠로오는 오른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엄청났기 때문에 쿠로오는 고개를 숙여 다이치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담배 피우고 싶다. 그러니까 다이치 군, 키스해도 돼?”


담배. 몇 년 전에 끊은 거 아니었냐. 운동하는 사람이니까 좋지 않다고. 잔소리할 생각이었는데 얼굴을 보자 쿠로오가 의도한 바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키스는 언제 물어보고 했다고. 항상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서. 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다이치는 그를 향했던 시선을 거둬 다시 불꽃을 향했다. 터져 오르는 불꽃을 보면서도 허리에 닿은 쿠로오의 손이 신경 쓰였다.


“입이 심심하니까 더 하고 싶어서.”


내가 담배대용이냐. 이번에는 입을 열려고 했는데, 곧 쿠로오의 입술이 닿았다. 금방 떨어질 줄 알았는데, 혀를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다이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맥주 냄새 나. 진짜 아저씨 같잖아. 오징어랑 야키소바도. 거기다 이 녀석 냄새도. 다이치는 비어 있는 팔을 쿠로오의 목에 둘렀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쿠로오의 키스에 슬슬 열이 오르던 숨이 가빠졌다. 허리에 있던 손은 다시금 그의 몸을 더듬으며 좀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있잖아.”


입술을 뗀 쿠로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불꽃놀이 다 끝나면 바로 들어가자.”

“왜. 아직 술 많이 남았어.”

“불꽃 구경하는 다이치가 너무 섹시해서 당장 하고 싶어졌어.”


역시 이 녀석도 기억하고 있는 건가. 그날 전부 다. 아까부터 전부 기억하고 있던 거잖아. 다이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술이 들어간 데다 열이 오른 탓에 뺨이 화끈거렸다. 아무튼 못 당한다니까.


“…하여간.”

“와, 방금 질색하고 쳐다본 거야? 너무해, 다이쨩.”


쿠로오는 다 비운 맥주캔을 내려두며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어디 가서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징그러워. 서른 다 된 아저씨가.”

"다른 애들은 귀엽댔는데."


누가 귀엽다고 했는데? 다이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상대를 추측해봤다.


“매니저가? 응원단이? …아무튼, 하지 마.”

“다이쨩 질투하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쿠로오는 웃으며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 이제 불꽃놀이 끝난 거 같은데.”

“아니. 더 할 건데. 아마 잠깐 쉬고 한번 더….”

“안 끝나도 내가 하고 싶으니까.”


손을 비워 두었던 쿠로오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번쩍 다이치를 안아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징그러워. 다이치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몽롱해져 오는 정신에 쿠로오의 가슴에 기대는 것이 전부였다. 베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쿠로오는 고분고분해진 다이치의 행동에 조용히 웃었다. 평소보다 많이 마셨지. 술도 그렇게 세지 않으면서. 기분이 좋아서 그랬나.


“어라, 다이치 저항 안 해?”


떠보는 듯한 쿠로오의 물음에 다이치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그의 가슴을 툭 쳤다.


“시끄러워. 조용히 가 줄 테니 감사한 줄 알라고.”

“하하. 예. 끝내주는 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침대로 향하는 동안 다이치는 쿠로오의 품에서 일정하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고 있는 쿠로오의 고동에 다이치는 긴장을 풀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답답해진 탓에 크게 숨을 들이쉬자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 기분 좋다. 안심돼. 눈을 감은 채 연인에게 기대 있는 와중에도 쿠로오의 어깨너머에서는 커다란 불꽃이 온 세상을 울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