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네가 서 있다. 조금만 걸음을 빨리하면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너는 내 앞을 걸어가고 있다. 항상 너는 내 얼굴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난 사람처럼 이를 갈며 덤벼든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도망치거나 무시하는 일은 결코 없다. 너는 항상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앞에 있는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녀석이기 때문에.
언제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로 장난치기 바쁜 너이지만, 결코 가볍거나 웃고 있는 얼굴만이 네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오늘도 너는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메시지는 보냈지만,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나왔는데도 그보다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더운 여름날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으면서도 너는 가벼운 발걸음에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계절인데도, 그가 걷고 싶어 하는 눈치라, 나는 별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오이카와의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나라는 벽에 부딪히고, 또 뒤로는 버릇없는 후배라는 놈이 치고 올라오는 것에 중학교 때부터 큰 압박감을 가졌을 테니. 중학생 때부터 고교에 이르기까지 네가 어떤 마음으로 배구를 계속했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범인은 천재를 시기할 수밖에 없지만, 천재는 범인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놓였던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알고 있는 데도,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 역시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키지 못했을 자리에 서 있었기에 오이카와의 노력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이빨을 들이미는 오이카와의 행동이 정당화될 순 없었다. 시합에서 상대로 만나는 나와 이렇게 개인으로 만나는 나는 같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이니까.
팀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내는 것이 그의 능력이니, 시라토리자와에 왔으면 더 좋은 팀을 이뤘을 것이 분명한데도 녀석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스스로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그가 아오바죠사이에 가지 않았다면, 현 내에서 시라토리자와와 겨룰 만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오바죠사이에 갔고, 그 나름 대로 팀을 만들어냈다. 중학교 3년 내내, 내게 지며 눈물을 글썽이던 녀석은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고 따라붙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여전히 내 옆에 있다.
걸음을 멈추고 콧잔등에 어린 땀방울을 훔쳤다. 그만 카페라도 들어가는 게 어떠냐.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바짝 마른 입술 때문인지, 더운 날씨에 현기증이 일었다. 마냥 앞을 향해 걷고 있는 줄 알았던 오이카와 역시 몇 걸음을 가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우시와카쨩. 힘들어? 안 되겠네. 그렇게 체력이 약해서 어떡해?”
말없이 서 있자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흔들리던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람이 그래서 쓰겠어? 열사병이라도 걸린 거야?”
눈앞에서 흔들리는 손가락에 어지러움이 더해져 나는 눈을 감았다. 네가 손을 움직이는 대로 코앞에서 옅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답하지 않았다. 무시당한다 생각했는지 오이카와의 언성이 점점 높아져 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눈을 떴을 때 그는 평소와 다르게 걱정 어린 눈빛이 나를 향해 있었다. 뒤이어 보이는 꾹 깨문 입술에, 나는 흔들리던 손을 붙잡아 가까이 잡아당겼다. 영문을 모르고 코앞까지 끌려온 네 얼굴에 입을 맞췄다. 열기 속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오이카와의 입술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축 처져 있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우… 우시와카쨩, 누가 보면 어쩌려고!”
입술을 떼자마자 손등으로 벅벅 입술을 문질렀다. 그러다 가만히 너를 향한 내 시선에 혹시나 내가 상처받진 않을까 염려했는지 조용히 손을 내렸다.
“오이카와.”
“……?”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인 채, 눈짓만으로 의문을 표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는 노력에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네 손을 붙잡았다. 네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로 6년. 그리고 내 옆에 네가 서기까지 3년. 이렇게나 싫어하는 상대에게 결코 이길 수 없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녀석. 마음속으로는 괴로워도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네가 나를 보며 결코 좋은 감정만 떠올릴 수는 없단 걸 아는데도, 나는 여전히 너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이카와의 손을 꽉 붙잡자, 손을 타고 열기가 전해졌다. 그 열기에 취해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갈색 눈동자가 천천히 커졌다가, 이내 호를 그리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생일 축하한다. 오이카와.”
오이카와 생일 축하해~! 해친다!!!
'글 > 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어긋남 (0) | 2014.08.30 |
---|---|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축제 (0) | 2014.08.23 |
하이큐 전력 60분 FHQ(파이널 하이큐 퀘스트) - 쿠로오이 (0) | 2014.08.16 |
하이큐 우시오이 우시지마X오이카와 74데이 R19 (0) | 2014.07.05 |
하이큐 쿠로다이 쿠로오X다이치 게임 (0) | 2014.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