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구

하이큐 전력 60분 우시오이 실수

중독된 깡 2014. 9. 6. 22:19











우시와카쨩!”


호명과 함께 얼굴 가까이로 불쑥 내밀어 진 얼굴에도 우시지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손은 여전히 무엇 하나 묻지 않은 투명한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덤덤한 얼굴로 손님을 향해 조용한 눈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며 오이카와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취할 때까지 마실 거니까!”


웃는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우시지마가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걸로 계산해 줘’라고 내민 카드를 그에게 다시 돌려준 우시지마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산은 나중에 카운터에서 하시면 됩니다.”

“단골인데 그것도 안 돼? 우시와카쨩이 주는 술 전부 다 마실 거라는 말이라구.”


검지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끼운 채 흔든 오이카와는 이미 그리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무언가 일이 터진 게 분명했기에 우시지마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 우시와카쨩 다 들어줘! 이런 얘기 들어줄 사람 우시와카쨩밖에 없는걸!”


오이카와는 바에 카드를 내려놓고 엎드리며 우는 시늉을 해 보였다. 척하면 척이지. 우시지마는 짐작하면서 손님에게 건넬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미친놈이 말야.”


익히 듣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우시지마는 또냐고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지마의 호응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주절주절 이야기를 떠들었다. 말한다고 해봐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원체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지만,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우시지마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도된 뉴스와 같은 내용의 반복일 뿐이었다.


몇 달 전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살인마가 있었다. 처음에는 지방 뉴스에 보도되는 정도이지만, 한 달 사이 다섯 명의 피해자가 나오면서 관할구역의 경찰들은 모두 그 사건에 몰려들었다. 사건을 담당하고 현장에 나갔던 오이카와도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살인 방법은 다양했다. 길 가던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했고, 납치 후 목을 졸라 죽인 경우도 있었다. 자살로 꾸며진 타살도 있었으며, 칼로 난도질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역시 성별도, 나이도 각양각색이었기에 세간에서는 무차별 살인으로 보도되어 있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살인마 하나 못 잡는 경찰의 무능함을 강조하며 TV토론도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언론에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교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음부에서 하혈이 있었다. 죽이기 전, 강간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피해자가 남자였기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정신병자일 게 분명하다, 동성애자를 축으로 수사하자는 등 어처구니없는 말이 나오는 통에 오이카와는 회의 내내 답답한 꼰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40대 여성이었고 흉기로 가슴을 찔려 죽었다. 주택가 근처에서 잠복하던 범인에게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주택가였기에 근처에는 CCTV가 잔뜩 있었는데도 범행시간의 CCTV에는 수상한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찍힌 사람은 피해자뿐이었다. CCTV가 바꿔치기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범인은 사각을 알고 잘 활용하는 듯했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변태 싸이코의 살인이라 단정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대범하게 다음 살인을 예고한다는 점이었다. 침대 시트에 피해자의 피로 다음 살인이 일어날 장소를 예고하기도 했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남기기도 했다. 경찰 내에서 그러한 문제를 풀어줄 만큼 살인범의 장난에 맞장구쳐 줄 사람은 없었지만, 수사일지에는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살인사건의 타겟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놓여 있는 예고에 오이카와는 그간 나왔던 피해자들의 데이터를 다시 보고 온 길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실마리가 없었다.




팀 회의에서도 별다른 수는 나오지 않았다.


“실수할 놈이 아냐, 쫓아오란 거지.”


이와이즈미의 말이었다.


“시험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하긴 한데….”

“도저히 모르겠어요.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잖아요? 53세 남자, 58세 남자, 45세 여자, 22살 여자, 17살 남자….”

“직업이나 주변관계 같은 건?”

“굳이 치자면 대학이요? 3년 전 피해자 A가 대학에 입학할 때, B가 입학특례를 받은 것 같다는 심증은 있어요.”


긴다이치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 정도야 흔한 일이지 않아? 나머지 피해자들은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

“이와이즈미 선배가 말한 것처럼 그 이상으로 어떻게 엮이는지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질 않아요. 큰 인물들이 있기도 해요. 교수, 정치인 자녀 등등. 그 외에 공통점이라고는 주변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단 거 정도예요. 비밀단체라도 있나.”

긴다이치는 보고서 마지막 장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받아든 서류를 보다가 책상위에 보고서를 던졌다.

“마지막 메시지가 마음에 걸려.”

“You’re next…. 경찰에 대한 도전인가? 범위가 너무 넓잖아?”

“알 수야 없지만, 우리 중에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른단 거지.”


오이카와의 말에 사무실엔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이카와는 대체 범인이 어디까지 예측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범인이 친절하게 힌트를 주고 있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수첩에 마지막으로 적었던 범인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절주절 우시지마에게 말해봤자, 사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그때, 탁하고 앞에 놓이는 칵테일 한 잔에 오이카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우시지마가 다른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다. 평소에 마시던 양주나 다른 칵테일도 아니었다. 눈앞에 놓인 술은 깔루아 밀크. ‘초코우유 아니냐’는 말을 듣는 칵테일이었기에 오이카와는 손가락을 튕겨 유리잔을 쳤다. 찰그락거리는 얼음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흔들렸다.


“우시와카쨩. 나 이런 걸 먹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구.”

단 거 드시고 기분 푸시란 의미입니다.”


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오이카와는 잔을 집어 한 번에 전부 들이켰다. 꿀꺽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잔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빈 잔을 큰 소리가 나게 내려두며 우시지마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 줘 봐. 오늘 주는 대로 다 마셔볼 테니까.”


다음으로 오이카와가 받은 잔은 그의 입장에서 더 황당한 것들이었다. 키스 오브 파이어, 스크류 드라이버 등 흔히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내버릴 때 자주 애용한다는 칵테일이 뒤를 이었다. 술이 약하진 않았지만 그런 칵테일도 5잔이 넘어가면서부터 오이카와는 조금씩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이런 칵테일 정도야 10잔을 마셔도 안 취하는데.

오이카와는 비운 잔을 내밀며 우시지마에게 물었다.


“오늘은 주는 게 다 왜 이래? 우시와카쨩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평소 드시던 술보다 훨씬 약할 텐데요. 오이카와 씨가 많이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그야 야근에 철야에 지쳤으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지러운데, 오늘.”

“그만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팔아주겠다는데, 거부하는 거야?”

“오이카와 씨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우시지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잔째를 채운 오이카와는 잔을 내려놓으며 바에 고꾸라졌다. 정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감겨오는 눈에 오이카와는 눈을 비볐다. 이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었나? 아닐 텐데. 나는 좀 더….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지만, 흔들리는 머리탓에 초침이 어디에 와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마지막 손님인가. 아마 카운터를 보던 종업원도 퇴근하고, 오이카와의 계산은 우시지마가 도와줄 것이 분명했다.


“우시와카쨩, 지금 몇 시?”

“곧 영업종료입니다.”

“4시라고? 벌써? 나 얼마 안 마셨는데.”

“오늘 정말 정신이 없으신가 봐요. 그 살인마 때문에.”


안쓰럽게 보는 우시지마의 눈빛에 오이카와는 바를 쾅 내려쳤다.


“맞아, 그 새끼 정말 죽일놈이라니까. 살인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진짜 미친놈인 것뿐일까.”

“굳이 이유랄 게 있어야 하나요.”

“응?”


우시지마의 말에 오이카와는 바닥을 향했던 고개를 들었다.


“만약 미친놈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살인 그 자체가 중요한 거겠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듯,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것 역시 당연한 일 아닐까요.”


덤덤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우시지마의 얼굴에 오이카와는 피식 웃었다.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것만은 아니고 제대로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서 우시와카쨩을 좋아하는 거지만. 오이카와는 웃으며 잔에 남아 있던 빨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빨대 끝을 그를 향해 들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우시와카쨩 무서운 말을 하네?”

“살인범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죽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건 내 기준과는 다른 가치관이라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오이카와 씨라면 누구보다도 범인을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일단은 경찰이니까. 사회에 해가 되는 녀석들은 이해해 줄 수 없다고.”

“그런가요.”


그 말을 하는 우시지마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다 생각하면서도 흔들리는 머리에 오이카와는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오이카와 씨, 괜찮으십니까?”


구토기는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우시지마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미친듯이 머리가 어지러웠고 잠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잠은 집에 가서 자야겠단 생각에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를 잡고 일어서던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남아 있는 사람은 우시지마 한 명이었기에 그는 재빨리 오이카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미안, 우시와카쨩. 역시 조금 무리한 것 같네….”


오이카와는 그의 손을 잡으며 눈을 떴다가 위에서 저를 보는 우시지마의 얼굴을 마주했다. 조명 탓이었을까. 차갑게 식어 있는 그의 눈에 오이카와는 순간 몸이 굳었다. 우시지마는 붙잡은 손을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의 손 위에 얹어진 오이카와의 손을 가볍게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실수해서일까. 오늘처럼 많이 마신 건 드문 일이니까…. 멍한 머리로 애써 생각해보던 오이카와는 고개를 내저으며 우시지마의 손을 꽉 붙잡았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오이카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실수했네요.”

“우시와카쨩?”

“오이카와 씨라면 절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괜찮아. 지금부터 이해해도 늦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오이카와는 털썩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음 차례라고 내가 말했잖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