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구

쿠로다이 전력 60분 쿠로오는 언제나 핫초코를 주문해

중독된 깡 2016. 12. 17. 23:02







어서 오세요. 바쁜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카페 점원은 밝은 얼굴로 인사 건네기를 잊지 않았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비슷한 메뉴를 주문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이는데도 계산대 앞의 직원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사이 쿠로오는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신메뉴라며 나온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 사진이 보였다. 그래 봤자 늘 같은 거잖아.


“핫초코.”


“핫초코 하나, 아메리카노 따듯한 거 하나요.”


“7,000원입니다.”


카드를 건네며 눈을 맞췄다. 익숙한 얼굴임에도 직원은 예의상 내게 물으려 했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 먼저 선수를 쳤다.


“영수증은 버려 주세요.”


“네.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



머그잔 가득히 담긴 핫초코를 마시며 쿠로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핫초코. 30대 아저씨가. 나이나 개인 취향은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매번 맛있다고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한번은 쿠로오를 따라 핫초코를 시켰다가 너무 달아 그 잔 그대로 쿠로오에게 넘겨 주고 다시 커피를 시킨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안 어울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아저씨 상처받는다고. 사와무라 군?”


웃는 쿠로오의 눈길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티 났나.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마시는 걸 지켜보는 편이지만 그 단 걸 맛있다고 먹는 네 미각이 아직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고.


“좀 의외다 싶어서.”


“설마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인생의 쓴맛이라느니 설교하고 싶은 거야?”


가늘게 눈을 뜨며 얼굴을 들이미는 쿠로오의 모습에 나는 두 번째 손가락을 펴 그의 미간을 꾹 눌렀다.


“말은 바로 해야지. 인생의 쓴맛은 술이고. 커피는 사회생활의 쓴맛…이 아니라 그냥 버티려고 먹는 거야. 이거 안 먹으면 죽겠으니까. 밥 먹고 들어가면 잠이 쏟아진다고.”


“나도 똑같아. 당 떨어지면 죽어버리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쿠로오는 테이블 위로 철퍽 엎어져 버렸다. 죽은 시늉을 하는 건지 눈을 감은 채 입까지 헤 벌리고 있어서 그 바보 같은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눈을 뜬 쿠로오는 내 손가락을 먹을 듯 입을 움직였다. 그러다 일어서서는 다시 머그잔을 들었다. 호로록. 핫초코를 마시는 소리에 다시 물었다.


“달콤한 게 먹고 싶은 거면 굳이 핫초코가 아니라도 되잖아? 카페모카라든가. 바닐라나 카라멜 라떼도 있고.”


쿠로오는 스틱을 들어 날 가리켰다. 총이라도 쏘듯 정면에서부터 조준한 포즈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다시 웃었다.


“사와무라 군 하루에 커피 두 잔 이상 마시지?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가끔은 오후에도 한 잔 더 마시잖아? 그거 카페인 중독일지도 모른다고? 카페인은 모두의 적이라고? 커피가 베이스면 나한텐 뭐든 같은 거야.”


테이블 위에 스틱을 내려둔 쿠로오는 다시 핫초코를 들었다. 달달한 향이 테이블을 넘어 내 쪽까지 풍겼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었다. 향긋한 원두 향을 들이마시며 쓰디쓴 커피를 입에 댔다.


“그럼 사와무라 군도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걸 마시면 되잖아?”


괜스레 물어본 내 의문에 쿠로오 역시 내 아메리카노 선택의 이유에 대해 의문이 생긴 듯했다.


“라떼에는 우유가 들어가잖아. 우유 마시면 속이 거북해진다고. 에스프레소는 각성용이라 막 마시고 싶지도 않고, 모처럼 여유로운 점심시간인데 한 입으로 끝내 버리기엔 아깝잖아.”


받아치자 쿠로오는 눈을 크게 떴다. 라떼는 죽어도 안 마시는 이유가 있었구나. 왠지 먹여 보고 싶다. 작게 웅얼거리는 말에 나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를 봤다. 쿠로오는 농담이라며 손짓했고 금세 화제를 돌렸다.


“근데 금연한 후부터 커피 계속 마시고 있잖아? 니코틴 다음은 카페인 중독이 되는 거 아냐?”


“너야말로 담배 끊은 후에 계속 군것질 하는 거 아냐?”


금연 내기 세 달째. 사내 흡연실이 사라져버린 현실에 오기로 내기를 하는 중이었다. 먼저 담배에 손대는 사람이 자주 가는 이자카야에서 모든 메뉴를 쏘기로 한 내기였다. 단골인 가게로 음식은 여러 가지 맛을 봤었지만, 비싼 요리는 여러 가지를 시키기에 조금 부담이 있었다. 


물론 쿠로오의 핫초코 사랑은 그 전부터 계속된 일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부장이 커피 사준다는 소리에 다들 아메리카노를 선택할 때 혼자서만 핫초코를 선택했던 별종이었으니까. 부장이 메뉴 주문을 하기 편하게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침묵을 멋대로 깨트려 버린 녀석이었다.


“무슨 말씀. 핫초코가 있다면 제 입은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가슴에 손을 척 얹으며 하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잘도 말하네. 처음에는 다리도 떨고 손도 떨고 난리였으면서.”


“그건 사와무라도 마찬가지였잖아?”


금단현상이 온 뒤에 쿠로오도 나도 멍청한 짓을 많이 했다. 상사에게 책상이 흔들리는데 다리 좀 떨지 말라며 회의실에서 지적을 받은 게 몇 번, 서로 몰래 피우려다가 걸렸던 적도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먼저 피우게 만들려고 용을 썼던 적도 있었다. 떠오르는 기억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자 쿠로오 역시 이를 보이며 웃었다.


“핫초코는 달잖아. 그래서 좋아.”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가 말했다. 카페 실내며 실외며 전부 겨울을 맞이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된 인테리어였다. 실내에는 조명에 더해 트리에 둘른 꼬마전구도 밝은 빛을 내고 있었고 인형과 끈, 선물상자 등등 여러 장식들이 한껏 뽐내고 있었다.


한겨울에는 핫초코를 마셔야 한다는 광고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나는 머쓱해져 다시 잔을 들었다. 아메리카노가 넘어갈 때마다 옆에서 풍기는 핫초코 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단 건 좋아하지 않는다. 시럽을 넣은 건 그거대로 인위적인 맛이 가득한 느낌이라 싫어. 당분이 필요하다면 따로 초콜릿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달거든.”


커피도 거의 비슷비슷하다고 답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시큼하거나 쓰거나 원두 종류나 상태에 따라 맛이 바뀌는 건 사실이니까.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핫초코 역시 다르기야 할 텐데. 쿠로오는 뒤이어 덧붙였다.


“누구 씨처럼.”


쿠로오는 혀를 낼름 내밀어 입술에 묻은 거품을 닦아냈다. 한순간 나오려던 욕을 참아내고 답했다.


“멍청이. 달긴 누가 달아?”


그 대답에 쿠로오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헤에에 나는 누구라고 말도 안 했는데 사와무라 군은 누군지 잘 아나 보네?”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또 넘어갔어. 완전히 걸려들었잖아.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반 정도 남았던 아메리카노는 이제 온기마저 잃고 차가워져 있었다. 잔을 들고 마시는 와중에도 눈은 맞은편에 앉은 상대에게로 가 있었다.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이 보였다. 장난꾸러기라는 이름표를 써 붙인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날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도망가는 것처럼 되면 더 즐거워하며 놀릴 쿠로오가 눈에 선해서 잠자코 있었다.


“얼른 먹기나 해.”

“기다려 주는 거야?”

“닥치고 마시자.”


싱글싱글 웃는 모습에 더 기분이 나빠졌다. 녀석의 머그잔에서는 아직도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