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이어진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한가한 토요일 밤, 식사를 마친 뒤 TV 앞에 앉아 배를 긁을 만한 남자 둘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웃어댔다. 저게 언제 적 대사야? 그가 의문을 제기할 새도 없이 옆사람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있잖아, 사와무라. 오늘은 저걸로 해 볼까?”
“……? 뭘?”
“그러니까. 섹스할 때.”
너랑 나. 학생이랑 선생으로. 뒤이어지는 부연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의 모습에 다이치는 조용히 시선을 거뒀다. 미쳤어. 이 자식은 미친 거야. 쇼파에 늘어져 휴일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새로이 시작된 헛소리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천장을 봤다. 하얀 불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찌푸렸다. 안 한 지 오래됐나. 그래서 이러나. 어. 언제 했지? 쿠로오는 그의 얼굴 위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 왜~! 나는 그냥 사와무라로 충분한데 자기가 나한테 질린 건지~ 영 반응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의 손바닥이 누운 남자의 바지 위로 스윽 지나갔다. 혼잣말이 아닌 푸념. 들었다고 해도 한 귀로 흘려보내면 그만인데.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바쁘다고 안 놀아 준 지 오래됐나 보다. 다이치는 쇼파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부하는 몸짓에도 못된 손은 기어이 바지 속으로 들어섰다.
“가끔은 이런 것도 신선하지 않아?”
그 나쁜 손이 무언가를 더 더듬기 전에 다이치는 몸을 돌려 쿠로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난 그는 웃는 얼굴로 다이치를 보고 있었다. 언제든 때릴 줄 알았다는 듯한 행동과 미소가 더 다이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누구 씨가 한 번 하면 끝낼 줄을 모르고 달려드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그 낮짝은 너무 두꺼워서 분수를 모르나 본데, 쿠로오 씨?”
부처님 미소를 지은 동거인의 모습에도 쿠로오는 지지 않았다.
“왜 제 잘못으로 몰아가는 거예요? 제가 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거실 바닥에서 내동댕이쳐진 포즈. 잘도 저런 연기를 하는구만? 다이치는 주먹을 쥐었다. 이건 내가 쥔 게 아냐. 손이 혼자 열받아서 주먹을 쥐는 거라고. 손바닥 방어벽에 맞아 공격에 실패했던 그 주먹이 다시 장전 준비중이었다.
“지랄. 염병해라.”
아빠 다리를 하며 자세를 바꾼 그는 검지를 들고 삿대질을 해 가며 사와무라 군을 나무랐다.
“아니! 사와무라 군! 어디서 그런 단어를 배워 온 거야? 이 선생님은 그런 단어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여기까지 했으면 다이치 역시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나쁜 학생이니까 벌을 줘야겠네.”
쿠로오의 말에 다이치 학생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발을 들어 선생을 밟기 시작했다.
“착한 학생은 상을 준다고 할 거냐?”
“아악! 사와무라아아!”
발에 매달린 쿠로오의 힘에 발길질이 멈췄다. 내가 이걸 뭐가 좋다고 동거까지 시작했지. 커다란 애 하나 데리고 사는 것 같아. 막 연애할 때가 좋기나 좋았지. 애인이고 뭐고 그냥 웬수 같다니까 진짜…. 몇 년이 넘어가는 동거에도 쿠로오는 변하지 않았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글맞은 아저씨가 100명쯤 그 안에 들어간 것처럼. 덜하면 덜했지 더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다이치는 분을 삭이며 쇼파에 앉았다. 그의 발에는 여전히 쿠로오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뭐. 학생은 좋고, 서른 살 넘어간 아저씨는 싫다 이거냐?”
“아니! 학생이든 뭐든 사와무라니까 좋은 건데.”
부끄러운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것하며. 다이치는 물끄러미 바닥에 앉은 쿠로오를 내려다봤다. 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녀석. 상대하는 것만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배는 피곤하다고. 넌 언제고 그렇게 날 쥐고 흔들려고 하잖아. 능청스레 웃는 얼굴에 조금은 분이 사그라들었다.
“말이나 못 하면.”
머리를 쥐어박힌 쿠로오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다이치의 조용한 미소에 금세 입꼬리를 올렸다.
“뭐야. 이 말 듣고 싶어서 그런 거야? 몇 번이고 말해 줄게. 나 쿠로오 테츠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와무….”
“아, 조금만 봐 주면 그 새를 못 참고. 좀 닥쳐.”
“싫은데! 말할 건데! 사와무라 다이치가~”
“입 닥치라고 했지.”
다이치는 쿠로오의 눈앞에 발을 들었다. 곧바로 안면을 가격할 것 같은 발이었다. 한 번만 더 해 봐. 그럼 진짜 코가 부러져라 얼굴을 뭉갤 테니까. 웃는 얼굴이 무언의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쿠로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이치의 발을 붙잡고는 그 발끝에 입을 맞췄다.
“야…. 야!”
“안 봐 줄 거야. 사와무라 군.”
발가락 끝부터 천천히 입을 맞추며 올라오기 시작한 쿠로오는 이내 그의 발을 물었다. 거리낌 없는 그의 행동에 다이치는 기가 찼다. 작정을 했구만. 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걸 거부할 재간은 없었다. 쿠로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다이치는 늘 그에게 지고 살았으니까.
“이딴 선생이 어딨어?”
“음… 섹스를 가르쳐 주는 선생이라는 설정으로 어때?”
“하… 진짜 끝까지….”
다이치는 다시 천장을 봤다. 하얀 불빛이 싫어 팔로 얼굴을 가렸다. 까맣게 변해 시야가 차단되자, 발가락을 핥는 혀의 감촉이 더 생생해졌다.
“사와무라 군? 곤란해? 벌써부터 그런 얼굴하면 어떡하지? 아직 벌도 제대로 못 줬는데.”
“이딴 선생, 신고 먹일 거야.”
“끝까지 선생님한테 대들 거야?”
다이치는 쇼파에 늘어졌던 몸을 일으켜 발을 빼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 그렇기에 더 쿠로오한테 질 수만은 없었다.
“언제까지 내가 지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냐?”
빙그레 웃고 있는 그의 어깨를 밀었다. 자, 잠깐 사와무라. 힘에 밀려 바닥에 누운 쿠로오 위에 다이치가 섰다. 행동을 짐작할 새도 없이 배 위에 앉은 다이치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슬며시 엉덩이를 움직였다. 긴장한 채 누워 굳은 쿠로오의 몸 위에 그의 몸을 겹쳤다. 예상을 빗나간 행동에 오갈 데를 모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아, 당황한 날 보는 게 그렇게 재밌었어? 상황이 바뀌니까 놀란 거야? 내가 이러는 건 네 시나리오엔 없었나 봐? 다이치는 멱살을 잡아 쿠로오를 들어 올렸다. 그를 바라보는 멍청한 얼굴을 보며 속삭였다.
“선생보다 제자가 뛰어나면 앞으로 이딴 거 국물도 없어.”
급변한 다이치의 모습에 굳어 있던 쿠로오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하…. 사와무라….
“이거 시합이야? 질 수 없겠는데?”
“너한텐 절대로 안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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