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오비이락 라18 부스에 나오는 소설 Today is the day 인포입니다.
책 사양
쿠로다이 소설 'Today is the day'
A5 중철 전연령가 32p 4,000원
글: 깡
표지: 이연님
줄거리
쿠로오의 아들, 쿠로오 시로를 혼자 키우는 사와무라 다이치 이야기. (15.3.14 네코마온에 나왔던 Going with you 중 마지막 단편인 someday와 추가된 뒷 이야기입니다. 유치원생 시로와 고등학생 시로가 나옵니다. 별개의 이야기로 이전의 단편집을 구매하지 않아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샘플은 차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나른한 오후 터져 나오는 하품에 입을 가렸다.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이 나왔다. 사람들을 뱉어낸 마을버스는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라갔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출근할 때 터질 것 같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했다. 팔을 돌릴 때마다 어깨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기지개를 켜도 피곤함은 가시질 않았다. 몸을 쭉 필 때마다 한기는 틈을 찾아 온몸으로 들어왔다. 빨리 집에 가서 코타츠 안에 들어가고 싶다. 늘어지고 싶은 마음도 생각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유치원에는 아슬아슬하게 딱 맞춰 도착했다. 모습을 감춘 지 5년, 얼굴이 가물가물해질 지경인 그 녀석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똑 닮게 생긴 아이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이상하게 뻗친 검은 머리나 시큰둥해 보이는 얼굴까지 그 녀석 유전자를 빼다 박았다 할 만한 그 모습에 나는 손을 흔들었다.
“시로.”
유치원에서 나오던 시로는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왔다. 뒤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천천히 가라고 말렸지만, 시로는 멈추지 않고 달려와 내 앞에 섰다. ‘아빠’ 하고 나를 부르는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훌쩍 커 버린 아이를 안아 드는 것도 이제는 조금 버거워졌기에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었지?”
“응.”
인사를 하려 일어섰을 때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아버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흔히 사람들이 시간이 있느냐고 물을 때는 곤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으로 선생님과 면담했을 때는 시로가 유치원에서 뭐라도 잘못한 건 아닌가, 애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덜덜 떨면서 선생님을 기다렸지만 이것도 몇 년째 되다 보니 익숙해졌다. 큰 문제는 아닐 테고, 늘 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일 거다. 시로가 오늘 반 친구와 싸웠다거나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인다든가 하는 흔한 이야기.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치원 사무실도 회사와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곳곳에 만들고 있는 수업자료들이 눈에 띄어 답답함을 덜었다. 시로를 다른 선생님에게 맡기고 온 선생님은 커피 한잔과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시로가 다른 친구들보다 어른스러워요. 그런데 너무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네요.”
시로가 직접 이름을 쓴 스케치북을 넘기며 선생님이 말했다. 회색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마 나겠지. 다이치 아빠라고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도 보였다. 그 옆에는 방긋 웃고 있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테츠로 아빠. 둘 사이에는 시로로 추정되는 아이가 두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림의 옆에는 글도 쓰여 있었는데, 아마 오늘 나를 부른 이유는 이것 같았다.
‘나도 얼른 커서 아빠를 도와주고 싶다. 테츠로는 혼내 줄 거야.’
시로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예상이 갔다. 아빠 둘 사이에서 크다가 친아빠가 사라진 상황을 몇 살 먹지도 않은 어린애에게 받아들이라는 건 가혹한 일 아닌가. 반 선생님이 따로 이야기를 꺼낸 건 집안의 사정을 다 알고 있어서였다. 사와무라 다이치, 쿠로오 시로. 이미 대강의 사정은 유치원 내에서도 파다히 퍼져 있을 게 뻔했다. 물론 선생님이야 비꼬려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짧은 면담이 끝나, 시로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섰다. 나보다도 먼저 고개를 숙인 녀석은 내일 보자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내일 보자, 시로. 상냥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는 의도가 전달됐는지 선생님은 살펴 가시라며 웃었다.
***
‘혼자 힘드시겠지만….’
진심인 걱정에서 우러난 말이었겠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시로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고 지금 이 아이의 아빠는 나뿐이니까.
‘아버님이 평소에 행동하시는 것 하나하나가 아이한테 영향을 미쳐요. 물론 사와무라 아버님이 쿠로오 아버님을 안 좋게 말씀하시진 않겠지만…. 테츠로 씨를 싫어하게 될까 봐 조금 걱정이네요.’
산등성이에 노을이 간신히 걸려 있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탓에 회사에서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고 있었지만, 다른 사원들에게 조금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나 아니면 봐줄 사람도 없는걸. 정작 친아빠란 놈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로에게는 다정히 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는 건가. 에휴…. 시로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쿠로오였기에 애 앞에서는 테츠로 흉을 본 적은 없는데. 말이 아니어도 행동에서 티가 난다는 건가.
==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
“올 때가 됐는데….”
수건에 손을 닦으며 다이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화면에는 시로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부활 끝.
-10분 안에 가여.
-배고파 죽을 거 가타.
10분 전에 보냈으니 슬슬 도착할 때가 됐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다이치는 의자에 앉았다. 식탁 옆 벽에 걸린 액자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유치원 때의 시로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로와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사히와 스가의 얼굴도 한번씩 등장했고, 시로의 친구들도 있었다. 다이치는 두 손가락으로 사진에 나온 시로의 키를 가늠해 봤다. 사진상 아기 때는 손가락 한마디도 채 되지 않던 아이가 지금은 두 손가락을 쫙 펴야만 할 정도로 커 있었다. 그중 가장 오래도록 액자를 차지하고 있는 건 테츠로와 다이치가 아기인 시로를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혼자 술을 마실 때면 늘 감상에 젖게 하는 사진. 테츠로의 마지막 흔적과도 같았기에 치울 수 없어 그대로 둔 것이었다.
이 새끼는 뒤졌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언젠간 나타나리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던 다이치였다. 십몇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은 거라면 이제는 슬슬 포기할 때도 됐나. 그런데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여전히 통장에 찍히는 돈 때문이었다. 일찍이 죽은 걸지도 모르는데. 은행에 가도 알려드릴 수 없다고만 하니 따로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테츠로.”
소리내어 사라진 이름을 입 밖에 냈다. 괜시리 머쓱해진 다이치는 테츠로의 얼굴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에도 사진 속 남자는 마냥 웃고 있었다.
삐빅대는 도어락 소리에 다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시로 왔나 보네. 현관으로 얼굴을 내밀기도 전에 다녀왔다며 크게 소리를 지른 아이는 제 방으로 가방을 던졌다. 이제는 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키도 훌쩍 큰 데다 덩치까지 다이치와 맞먹을 정도로 커버린 18살의 시로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집에 오면 인사 후에 손부터 씻기.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둔 덕일까. 다이치는 어서 오라는 말과 함께 밥을 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