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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마코토배포전 Free! 소스마코 소설 인포
Free! 소스마코 소설 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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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간 Free! 소스마코 소설 '배회하는 숲'
책 사양
전연령가 / A5 / 무선 64p / 7천 원 (+ 예약특전 4p)
글: 깡
표지 일러스트: 포리님
캘리그라피: 리리뮤님
표지 편집: 어리님
줄거리
다큐멘터리 사진기자인 마코토는 배회하는 숲에 촬영차 갔다가 혼자 고립되고 만다. 며칠을 헤매고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켄타우로스, 소스케가 그를 출구로 이끌어준다. 미지의 생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재차 숲에 들어간 마코토는 다시 한 번 켄타우로스를 만나게 되는데....
1
사방이 나무였다. 새벽에 내린 비를 고스란히 얼굴로 맞으며 일어난 그는 아직도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아 기지개를 켰다. 안내인 사사베 씨와 떨어진 지 4일째. 가방에 있던 식량은 한 끼를 반으로 나눠 허기를 채웠는데도 곧 바닥을 드러낼 터였다. 급격히 떨어진 체온에 언 손을 조금이라도 녹이려 입김을 불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하얀 김을 보며 마코토는 고개를 들었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 마음을 빼앗겼다.
태초부터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숲. 인간이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초란 단어까지 들먹이며 그 경관이 수려하다 칭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 침엽수림은 방향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빼곡했다. 곳곳에 끼어 있는 안개 때문에 앞을 보고 나아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나흘 중 꼬박 하루를 숲으로 들어오는 데 소비했다. 10m를 훌쩍 넘기고 하늘까지 뒤덮어 버릴 만큼 커다란 침엽수들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숲에는 길도 없었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그렇기에 어딜 가도 안심할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 정상에 오르지 않는 이상 이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앞서 가는 사람과 떨어지게 된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래도 셔터를 누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앞에 보이던 적색의 등산복은 사라졌고, 마코토는 그 숲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이런 환경에 혼자 남겨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명색이 다큐멘터리 잡지사에서 일하는 사진기자인데 혹독한 상황이 한두 번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숲에 들어설 때부터 안내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긴 나침반이고 뭐고 안 통하거든요. 위성도 제대로 못 찍잖아요. 너무 기대는 마세요.’ 과연 그 말대로 손목시계에 달린 나침반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팽팽 돌아가기만 할 뿐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배회하는 숲. 들어가면 영원히 숲을 헤맬 수밖에 없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다웠다.
정상 부근으로 돌아온 그는 나무에 기대 털썩 주저앉았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확실히 장관이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일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것을 담아내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적어도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사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손에 든 카메라를 매만지며 마코토는 웃었다. 마지막까지 이 일을 하다 죽을 줄은 몰랐는데. 죽을 때가 되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더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정치권 인사의 현장에 가 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섰다. 꺼림칙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거물급 인사들의 비공식 회담. 키스미는 어디서 그런 정보를 물어왔을까? 마코토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타치바나 마코토의 이름으로 사진은 실렸고, 그 후 부장이 그를 불렀다. 휴가 가는 셈 치고 다녀오라고.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이유는 짐작했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아마 그 일이 세간에 밝혀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겠지. 캐 보면 다 드러날 일이겠지만, 윗선에서는 은근한 압박으로 편집장과 부장을 통해 한낱 사진기자의 입을 틀어막을 심산이었다. 어쩌면 그게 키스미가 노렸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 혹시 키스미한테 잘못한 거 있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적당히 쉴 곳을 찾아 체력이 닿는 데까지 걷기로 했다. 습해진 공기는 갑갑했지만 신선한 공기가 몸 안에 들어오고 나갈 때, 온몸이 정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 묻은 인간과 다르게 자연은 순수했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드러내 무구한 자신을 내보인다. 그만큼 알 수 없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낮인데도 어둑어둑한 숲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마코토는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그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펼쳤다. 수백 번도 더 본 것 같은데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나침반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툭 시계를 쳐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도 이런 고생은 안 했는데. 출발 전에 안내인이 꼭 붙어 다니라고 했던 말을 왜 듣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일정대로라면 어제 집에 돌아갔어야 했는데. 아직 버틸 만하고 체력도 남아 있지만,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혹여나 누군가 지나가진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었다. 하지만 현지인들도 꺼린다는 배회하는 숲에 들어오는 얼간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숲에서 산짐승을 본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위험하진 않겠지? 원체 사람이 못 들어오는 곳이니 정말 없는지는 모르는 거지만. 마코토는 느슨해진 등산화 끈을 고쳐 맸다. 나갈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산 중턱에서 그는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어젯밤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마른 나뭇가지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때문이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중턱이 아니었다면 지금 보이는 이 풍경도 안 보였겠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끼나 가끔 드는 햇빛으로 방향을 짐작했는데, 봉우리도 야트막한 작은 산들도 똑같게만 보여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늘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남은 식량과 불로 몸을 덥힌 후에 이동할 생각으로 휴식을 취했다. 생사가 걸린 휴식 중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자신뿐인 숲. 모든 게 멈춘 것만 같아 마코토는 하염없이 렌즈 너머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조난만 아니면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해도 손색없겠는데. 마코토는 웃으며 카메라를 움직였다. 죽음이 무서운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죽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막연히 죽지 않을 거란 느낌. 확신에 가까운 감에 웃음이 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였다.
렌즈 너머로 침엽수의 초록빛으로 가득한 그 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마코토는 눈썹을 찌푸리며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검은색이 보였다. 멈춘 것 같던 까만 형상이 움직였다. 짐승…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설마 곰인가? 거리는 좀 있긴 하지만 위험한 거 아냐? 잡아먹힐지도…. 죽는 건 상관없지만 고통스럽게 잡아먹히고 싶진 않은데. 하지만 도망쳐야겠단 생각보다도 호기심이 먼저였다. 마코토는 줌인하여 검은 형상을 렌즈에 담았다. 사람? 사람인가?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이 보여 그는 어림짐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급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진의 사람은 뭔가 이상했다. 산에 사는 사람일까.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은 엉켜 있었고, 이 산악지대에서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나무에 가려져 더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마코토는 보고도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씨에? 이 산악지대에서? 한겨울에 비할 추위는 아니어도 비가 온 후에 기온은 뚝 떨어진 상태였다.
산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혹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민족이라거나? 눈으로 유심히 바라봤지만,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 사람은 사라진 채였다. 에? 어디 갔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동태를 살폈지만, 렌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사라졌어? 그 잠깐 사이에? 렌즈를 조절하며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해서 헛것이라도 본 걸까. 하지만 사진은 분명히 찍혀 있는데.
아쉬움에 카메라를 놓지 못하고 마코토는 왼쪽 눈을 감은 채 계속 렌즈 너머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하던 네모난 프레임이 갑자기 갈색으로 가득 찼다. 초점까지 맞지 않는 카메라에 마코토는 줌 기능을 조절해도 갈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눈을 깜빡이며 렌즈를 조절하자, 바로 앞에 나타난 파란 눈이 보였다. 커다란 눈동자가 렌즈 코앞에서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우와앗!”
비명과 함께 마코토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 서 있었다. 사람? 동물?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마코토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꼬불꼬불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 탄탄한 근육이 자리한 상반신, 그보다도 눈에 띄는 건 허리 아래로 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코토는 신화를 떠올렸다. 켄타우로스. 상체는 사람이고 허리 아래부터는 말의 모습을 한 괴물. 엉덩방아에도 카메라는 손에 꼭 쥔 채였지만, 셔터를 누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존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존재의 등장에 두려움보다도 경이로움이 앞섰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마코토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코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처진 눈꼬리, 하지만 날이 서 있는 눈매. 렌즈 너머로 보았던 파란 눈이 그를 주시하고 있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눈앞의 생물을 바라보던 그는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 혼자 남겨진 거라면. 쫓겨나 도망치듯 숲에 들어온 것 역시 인생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위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바닥에서부터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인간이 올 곳이 아냐. 나가라.”
낮은 목소리. 약간의 분노까지 담겨 있는 듯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마코토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한마디를 끝내자마자 켄타우로스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돌아섰다. 얼빠진 정신에도 마코토는 이대로 그를 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게 된 켄타우로스인데. 나가는 길도 전혀 모르는걸. 마코토는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
나무 사이로 빠르게 나아간 울림에 반인반마는 고개를 돌렸다. 막상 파란 눈이 저를 마주하자, 불러놓고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마코토는 당황한 채였다.
“어… 그, 그게….”
누구세요? 어디서 왔어요? 여기 살아요? 정말 켄타우로스예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뭉쳐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입을 벌린 채 멍한 그의 모습에 켄타우로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을 바라보며 남자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셔터라도 한 번 더 누르면 좋을 텐데.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인반마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멀리 내다보이는 산등성이 사이의 틈이었다. 저쪽으로 가라는 걸까. 마코토는 그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켄타우로스는 마코토를 보며 그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코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적막이 감도는 산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그는 영물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카메라에는 얼결에 찍은 검은 형상과, 파란 눈동자가 네모난 화면 한가득 선명히 담겨 있었다.
2
“하루, 이거 뭐라고 생각해?”
해양전문기자의 눈앞에 놓인 사진은 평범했다. 쌍꺼풀 진 눈, 진한 눈썹에 검고 긴 속눈썹, 커다란 홍채에 반듯하게 사진작가를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까지. …성격 있어 보이는 눈이네. 그렇게 답하려던 하루카는 마코토의 눈빛에 다시 사진을 봤다. 조금 탄 것 같지만, 피부색이 유별난 것도 아닌데. 눈동자에 비친 풍경도 숲 속으로 추정되어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그저 평범한 사람의 눈. 그 외엔 생각할 것도 없지 않나. 동료가 어떤 이유로 이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 없는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사람이잖아?”
두 사람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민 나기사에 마코토와 하루카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마코쨩, 휴가 간 셈 치라고는 했지만 정말 숲에서 힐링하다 온 거 아냐?”
“나기사군, 말이 심하잖아요. 선배, 괜찮으세요? 산에서 조난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부장님도 몸조리 더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으응. 괜찮아. 숲에서 잘 나왔고, 보다시피 멀쩡해.”
“위험했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쉬는 게 낫지 않아?”
힐끗 부장실로 눈길을 두었던 하루카의 모습에 마코토는 어쩔 수 없이 웃었다. 사람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심도 두지 않는 동료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상황이 우스웠다.
“괜찮아. 하루.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지만 말야.”
2~3주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던 걸까. 잠잠해지기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정작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던 키스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오지로 취재하러 갔다는 말을 들었으니, 마코토가 맡았던 비공식 회담 건은 아직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뜻하지 않게 동료들을 걱정시킨 마코토는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해 사람이 오지 않는 회의실에 박혀 있었다. 챙겨 주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그를 달갑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저 단순한 비공개 회담이었다면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반응할 이유는 없는 거 아냐? 원흉이 되었던 사진을 떠올리며 마코토는 책상에 엎드렸다. 키스미가 부탁해서 간 거라지만, 그냥 모인다는 정보만 알았을 뿐이고 그 외에 자세한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었지. 파파라치 한둘 정도야 인사들이 신경 쓸 리 없는데. 그만큼 중대한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그런 걸 시킬 거였다면 키스미도 나한테 더 조언해 줬어야 했던 거 아냐? 조심하라고? 그에게 위험한 일은 아니냐고 되물었을 때, 키스미가 했던 대답을 마코토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위험한 일 아니니까.’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이 잘못된 건 변함없었다. 그 덕분에 마코토가 켄타우로스의 눈동자가 담긴 사진도 얻을 수 있었지만.
뭐였을까? 정말 켄타우로스가 맞긴 했나?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기엔 불쌍해서 신이 꿈에 나타나 살길을 일러준 것은 아니었을까. 영물이 가리켰던 방향을 따라 산을 내려온 마코토는 그대로 걷고 또 걸었다. 안갯속에 숨은 숲에서 이곳이 맞나 하는 의문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지만, 발끝은 그가 알려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나절이 넘어, 어둠 속에 빛나는 불빛을 발견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살았다고.
현지인 몇몇은 그가 어떻게 숲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듣고 산신님 덕분이라며 웃었다. 그 집 한구석에 있는 재단에는 조금 전까지 기도한 듯 양초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필시 현지인들은 그가 죽은 줄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회사에 더 있을 수는 없다. 배회하는 숲에 취재를 보낸 저의야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남들의 시선과 수군거리는 이야기에 시달리는 것이 조난보다도 더 괴로웠다. 기자생활 하면서 그 정도야 감수했던 거지만. 그게 싫어서 이쪽으로 온 거였는데. 정치 쪽에 줄이 있는 키스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원흉이라며 마코토는 자책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키스미 때문이라며 탓할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키스미에게는 고마울 정도였다. 키스미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도 없었겠지. 마코토는 검은 형상과 파란 눈동자 사진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절대 환영은 아니다. 꿈도 아니었다. 카메라 렌즈에 이렇게 선명하게 잡혀 있는걸. 그렇다면 다시 배회하는 숲에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 번 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마코토는 사진을 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가 다음 취재기획서를 들고 부장을 찾아갔을 때 부장은 혀를 찼다. 윗사람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보낸 숲에서 조난으로 죽을 뻔했던 기자. 그런데도 마코토는 주눅 든 기색 하나 없이 다시 한 번 더 배회하는 숲으로 자신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 회사에는 병결로 처리해 둘테니 몸조리도 하고 조금 쉬는 게 좋지 않겠냐. 부장의 말에도 마코토는 단호했다. 보내 주세요. 계속되는 그의 고집에 부장은 결국 결재란에 서명했다. 죽고 싶으면 뭘 못 해? 갔다 와.
***
산악지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코토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다시 그곳에 가려는 걸까. 이번에야말로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그 눈동자가, 그 켄타우로스가 거기에 있다면 그는 가야만 한다고 작심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직접 제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매료된 건지도 몰랐다. 처음 봤을 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니까.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심까지 갖게 했던 괴물은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찬연했다.
사사베 씨의 집에 다시 찾아갔을 때, 당신 같은 기자는 처음 본다며 껄껄 웃었다. 죽을 위기였던 건 분명한데도, 샌님 같이 생겨서는 이런 배짱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마코토의 어깨를 쳤다.
뒤에 맨 배낭이 무겁도록 비상식량을 잔뜩 챙긴 마코토는 숲의 어귀에 서 있었다. 현지인은 뒤돌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같이 가는 게 마코토도 심적으로 편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간다면 켄타우로스가 나와 줄지는 미지수였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내보여도 되는 존재일까? 마코토는 그 누구에게도 사진 속의 인물이 미지의 존재였다는 사실은 입 뻥긋도 하지 않았다.
사사베 씨 내외가 혼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몇 번이고 말렸지만, 이미 살아나온 전적이 있고 이번에도 잘 다녀올 수 있다, 이미 산신님의 가호를 받은 몸이니 괜찮을 거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설득이 통했다기보다는 말려봤자 통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멈춘 것 같았지만, 사사베 씨는 조건을 걸었다. 숲 어귀까지는 데려다줄 테니 딱 일주일. 일주일 후에 다시 입구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숲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마코토는 별생각 없이 그리하겠다 약속했다.
현지 도우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사사베 씨일 이유는 없다고 가볍게 여긴겼다. 거기에 그가 숲 어귀까지는 혼자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눈이 밝은 것도 있었다. 기자생활 십몇 년을 허투루 한 건 아니었다. 나침반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이정표인 사사베 씨의 집까지 찾아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숲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그가 배회하는 숲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정말로 다시 숲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켄타우로스가 방황하는 그를 본다면 숲을 위해서라도 이물질에 불과한 인간을 이곳에서 죽게 내버려 둘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면 그들의 반응은 뻔했다. 몇몇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꿈 깨라고 했겠지. 가까운 동료를 제외하고는 부장과 같은 반응을 보일 터였다. 그래도 사진이 확실히 남아 있잖아. 렌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마코토는 그를 만나기 위해 숲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저… 저기, 있잖아!”
상대에게 닿을지 어떨지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이 통하는 지성체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찍지 않을게. 그냥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
적막으로 가득한 숲에 돌아오는 것은 그의 메아리뿐이었다. 그래도 마코토는 다시 외쳤다.
“네가…. 네가 보고 싶어서 다시 왔어!”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상대의 모습에 마코토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켄타우로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원하는 반인반마가 아닌 다른 것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정말 위험한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그 상황이 두렵지는 않았다. 지금 마코토가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보다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근처를 서성이며 몇 분을 보냈을까. 마코토는 가만히 서서 나뭇잎을 봤다. 나가. 나가고 싶어도 이미 방향을 모르겠는걸. 그것 때문에라도 나와 줄 거라 생각했는데.
나뭇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사과는 물기를 머금은 채였다.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씻어 온 것처럼. 그렇다면 배려해 준 게 분명한데. 긴장과 힘이 풀려 마코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너무 쉽게 봤나. 자연이란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몇 달을 넘는 시간을 자연에서 지며 그 신비로운 장관을 담아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마코토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마코토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켄타우로스는 천천히 마코토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인간은 좋은 말로 할 때 듣질 않더라.”
마코토는 반가움에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낮게 울리는 음성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는 멱살이 잡힌 채 공중에 들려 있었다. 크르릉 짐승의 목소리를 내는 동물을 마코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새기겠다는 듯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내려온 끈은 왼쪽 가슴을 누른 채 등 뒤로 매여 있었다. 짐승의 이빨인지 뼈인지 모를 장식품이 달려 있고, 왼쪽 팔 위에는 직접 만든 듯한 끈이 있었다. 주술적 의미일까? 산신님의 명을 수행하는 사람일까?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한번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가라니까!!”
2. 구간 Free! 소스마코 소설 'Whereabouts of him'
책 사양
전연령가 / A5 / 중철 32p / 4천 원
글: 깡
표지: 어리님
줄거리
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란 소스케. 20살을 갓 넘기고 이제 잘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발생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주마등이 스쳐가는 와중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게 만든 신이란 놈 면상이나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원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신(마코토)이 나타난다. 세상에 대해 설명하던 마코토는 소스케에게 선택권을 주는데...
*내지 본문에 테두리가 있습니다. 개정하거나 새로 찍을 생각이 없어 그대로 판매합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구매 부탁드립니다.
좆같은 세상이네. 살 만하다 싶으니까 죽여 버리고. 죽고 다 끝났다 생각했더니 뭔가 또 이어지는 거냐고. 주먹을 쥐어 서너 번 바닥에 내리쳤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에 닿은 손이 저릿하게 울렸다. 죽어도 아픈 건 아프다는 거야? 이상하네. 뭐지. 이게 사후세계라는 건가? 아무것도 없는 거. 정신 병동에 갇힌 건 아닌가 착각할 만큼 하얀 공간이었다. 설마 이게 그건가. 아무것도 없는 무(無) 같은 거? 뭐야? 죽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어? 윤회라든가 사후세계라든가 하는 개념이 진짜 있는 거였냐고. 앞으로 계속 여기에 살아 있기만 하는 거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그럼 나 말고 다른 죽은 사람들도 다 이런 데 있는 건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놀라 가만히 서 있었다. 나타난 건 사람이었다. 갈색 머리에 처진 눈꼬리가 순하게 생긴 남자였다. 하얀색의 천을 휘두른 듯한 옷을 입은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천사라는 게 있다면 이런 걸까 생각했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혹시 천사일지라도 무슨 의도로 접근하는 건지는 모르잖아. 물러나는 내 모습에 그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착해 보인다고 다가 아니거든. 뒤통수치는 사람이 널린 세상인데.
“잘 알 것 같은 모습인데…. 싫어? 그럼 이런 건?”
남자가 손을 튕기자, 옷차림이 변했다.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인상을 쓰고 유심히 보다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 옷장을 뒤지다 집어 든 옷이었다. 죽는 순간, 그리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
“…너, 뭐야?”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나는 노골적인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흐음, 말해도 안 믿어 줄 것 같은데.”
“뭐냐고 물었잖아.”
곤란한 듯 웃으며 다가온 남자는 다시 한 번 손을 튕겼다.
“화내지 마. 다 말할 테니까. 그러려고 부른 거고.”
남자는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 차림으로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손짓했다. 여기가 정말 사후세계라고 한다면 나타날 건 정해져 있지 않나. 천사니 악마니 혹은 신이니 하는. 죽은 뒤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았는데.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도 않던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남자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아, 설마. 죽기 직전에 신이라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던 그 말이 실현된 건가. 물을 것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응. 소스케가 그렇게 부르던 존재니까.”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많이 힘들었어? 그런 곳에 태어나서?”
한참을 우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순수한 의문인지, 악의를 담은 건지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그를 노려봤다.
“아, 오해하지 마. 네가 다른 사람에 비해 힘들지 않았다거나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운이 안 좋았달까.”
“…내가 운이 안 좋아서 죽었다고?”
가까스로 울먹임을 참으며 물었다. 그는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몇 번을 만들어도 같아. 지성체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이 세상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단 생각 같은 건 못하거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욕구가 충족된 후에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 인간은 그 정도 선에서 멈춰. 개인 선에서는 그 정도면 목숨이 끝나 버리니까.”
벅찬 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히끅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떠오르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한낱 개인에 불과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자기 욕구밖에 챙길 줄 몰랐다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는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기억하는 유명한 인간이 있다면 아마 그중에서도 뛰어난 인간들이겠지. 나는 별다른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어. 절대적으로 비교해서 힘들었다면 그들이 다른 인간들보다 더 힘들었겠지. 오히려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건 인간이야. 너 같은 인간은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그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든. 소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란 그럴 수밖에 없나 봐.”
화면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폭탄이 날아가고, 몇 명의 군인이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흘렀다. 사람들은 죽고 살았지만, 산 자 역시 죽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시체를 먹으며 살아남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죽은 인간이 쓸모없었던 건 아냐. 그들 역시 한때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로 세상을 살았으니까. 누구에게든 의미는 있었어.”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소스케가 궁금해했잖아. ‘신이라는 새끼 있으면 그 면상 한번 보고 싶네’라고.”
그야 그랬지.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말야, 그건….
“소스케.”
나는 그의 말에 생각을 멈췄다. 방금 내가 말했던가. 아니 생각했을 뿐인데 이 녀석은 내 머릿속을 읽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야. 분명히 알고 있다. 떠올렸을 때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읽고 있다는 말에 반응한 거지, 너.
“있잖아.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창조주인 건 맞지만, 내 마음대로 모든 걸 다 움직일 수는 없거든. 인간이 생각하기에 세상에 이로운 인간도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인간도 결국은 다 죽게 되잖아. 태어나고 죽는 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이치라구. 그 순리에 나는 간섭하지 않아.”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잠깐. 생각 좀 해 보자.”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분법적 사고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삶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아, 물론 죽으면 지금 얘기한 건 다 네 기억에서 다 사라질 거야. 너라는 존재를 되돌리기 위해선 지금의 세계에서 사고를 없애야 하니까.”
나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웅크렸다. 이전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다시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죽고 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사라져 버리는 줄만 알았는데. 막상 주마등을 보면서 느꼈던 건 왜 여기서 죽어야 하냐는 한탄과 아쉬움뿐이었다.
“죽기 전엔 좀 아쉬웠지? 죽고 나서는 아 드디어 끝났구나 싶기도 했고. 유한한 존재는 그렇더라고. 끝이 보이지 않으면 목숨 따위 내던져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들 살고 싶어 해. 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이야. 이상할 거 없어. 가끔 정말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명체도 있지만. 드물어, 확실히. 생명을 귀히 여기니까.”
죽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생전에 넌더리가 날 정도로 많이 했다. 현실은 괴로웠고, 세상이 내게 준 건 없었으니까. ‘고아’라는 꼬리표에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서 애쓴 것만 해도 벅찼다. 안타깝다는 시선이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배려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지만, 짜증 나기도 했다. 너희에게 동정받을 만큼 불쌍하지 않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신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은 건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뤄 줄게. …소스케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니까 그 보상이라고 해 두면 되잖아?”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이야기, 한 적 있어?”
“음… 몇 명. 다시 돌아가겠단 인간도 있었고,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겠다는 인간도 있었지. 조건을 붙였던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데?”
신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를 보지는 않았기에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리 발아래에 있는 지구가 보였다. 파란 바다와 구름, 육지가 색색의 빛을 뽐내는 듯했다. 저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나하나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열에 다시 합류해도 되는 걸까. 단지 내가 노력하면 바뀔지도 모른다는, 신기루 같은 근거만으로.
그 밖에 문의사항은 트위터 @sleep_kkang 이나 덧글/방명록 등으로 연락 주세요.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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