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란 소스케. 20살을 갓 넘기고 이제 잘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발생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주마등이 스쳐가는 와중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게 만든 신이란 놈 면상이나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원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신(마코토)이 나타난다. 세상에 대해 설명하던 마코토는 소스케에게 선택권을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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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세상이네. 살 만하다 싶으니까 죽여 버리고. 죽고 다 끝났다 생각했더니 뭔가 또 이어지는 거냐고. 주먹을 쥐어 서너 번 바닥에 내리쳤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에 닿은 손이 저릿하게 울렸다. 죽어도 아픈 건 아프다는 거야? 이상하네. 뭐지. 이게 사후세계라는 건가? 아무것도 없는 거. 정신 병동에 갇힌 건 아닌가 착각할 만큼 하얀 공간이었다. 설마 이게 그건가. 아무것도 없는 무(無) 같은 거? 뭐야? 죽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어? 윤회라든가 사후세계라든가 하는 개념이 진짜 있는 거였냐고. 앞으로 계속 여기에 살아 있기만 하는 거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그럼 나 말고 다른 죽은 사람들도 다 이런 데 있는 건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놀라 가만히 서 있었다. 나타난 건 사람이었다. 갈색 머리에 처진 눈꼬리가 순하게 생긴 남자였다. 하얀색의 천을 휘두른 듯한 옷을 입은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천사라는 게 있다면 이런 걸까 생각했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혹시 천사일지라도 무슨 의도로 접근하는 건지는 모르잖아. 물러나는 내 모습에 그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착해 보인다고 다가 아니거든. 뒤통수치는 사람이 널린 세상인데.
“잘 알 것 같은 모습인데…. 싫어? 그럼 이런 건?”
남자가 손을 튕기자, 옷차림이 변했다.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인상을 쓰고 유심히 보다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 옷장을 뒤지다 집어 든 옷이었다. 죽는 순간, 그리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
“…너, 뭐야?”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나는 노골적인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흐음, 말해도 안 믿어 줄 것 같은데.”
“뭐냐고 물었잖아.”
곤란한 듯 웃으며 다가온 남자는 다시 한 번 손을 튕겼다.
“화내지 마. 다 말할 테니까. 그러려고 부른 거고.”
남자는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 차림으로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손짓했다. 여기가 정말 사후세계라고 한다면 나타날 건 정해져 있지 않나. 천사니 악마니 혹은 신이니 하는. 죽은 뒤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았는데.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도 않던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남자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아, 설마. 죽기 직전에 신이라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던 그 말이 실현된 건가. 물을 것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응. 소스케가 그렇게 부르던 존재니까.”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많이 힘들었어? 그런 곳에 태어나서?”
한참을 우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순수한 의문인지, 악의를 담은 건지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그를 노려봤다.
“아, 오해하지 마. 네가 다른 사람에 비해 힘들지 않았다거나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운이 안 좋았달까.”
“…내가 운이 안 좋아서 죽었다고?”
가까스로 울먹임을 참으며 물었다. 그는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몇 번을 만들어도 같아. 지성체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이 세상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단 생각 같은 건 못하거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욕구가 충족된 후에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 인간은 그 정도 선에서 멈춰. 개인 선에서는 그 정도면 목숨이 끝나 버리니까.”
벅찬 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히끅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떠오르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한낱 개인에 불과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자기 욕구밖에 챙길 줄 몰랐다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는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기억하는 유명한 인간이 있다면 아마 그중에서도 뛰어난 인간들이겠지. 나는 별다른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어. 절대적으로 비교해서 힘들었다면 그들이 다른 인간들보다 더 힘들었겠지. 오히려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건 인간이야. 너 같은 인간은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그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든. 소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란 그럴 수밖에 없나 봐.”
화면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폭탄이 날아가고, 몇 명의 군인이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흘렀다. 사람들은 죽고 살았지만, 산 자 역시 죽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시체를 먹으며 살아남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죽은 인간이 쓸모없었던 건 아냐. 그들 역시 한때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로 세상을 살았으니까. 누구에게든 의미는 있었어.”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소스케가 궁금해했잖아. ‘신이라는 새끼 있으면 그 면상 한번 보고 싶네’라고.”
그야 그랬지.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말야, 그건….
“소스케.”
나는 그의 말에 생각을 멈췄다. 방금 내가 말했던가. 아니 생각했을 뿐인데 이 녀석은 내 머릿속을 읽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야. 분명히 알고 있다. 떠올렸을 때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읽고 있다는 말에 반응한 거지, 너.
“있잖아.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창조주인 건 맞지만, 내 마음대로 모든 걸 다 움직일 수는 없거든. 인간이 생각하기에 세상에 이로운 인간도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인간도 결국은 다 죽게 되잖아. 태어나고 죽는 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이치라구. 그 순리에 나는 간섭하지 않아.”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잠깐. 생각 좀 해 보자.”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분법적 사고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삶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아, 물론 죽으면 지금 얘기한 건 다 네 기억에서 다 사라질 거야. 너라는 존재를 되돌리기 위해선 지금의 세계에서 사고를 없애야 하니까.”
나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웅크렸다. 이전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다시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죽고 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사라져 버리는 줄만 알았는데. 막상 주마등을 보면서 느꼈던 건 왜 여기서 죽어야 하냐는 한탄과 아쉬움뿐이었다.
“죽기 전엔 좀 아쉬웠지? 죽고 나서는 아 드디어 끝났구나 싶기도 했고. 유한한 존재는 그렇더라고. 끝이 보이지 않으면 목숨 따위 내던져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들 살고 싶어 해. 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이야. 이상할 거 없어. 가끔 정말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명체도 있지만. 드물어, 확실히. 생명을 귀히 여기니까.”
죽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생전에 넌더리가 날 정도로 많이 했다. 현실은 괴로웠고, 세상이 내게 준 건 없었으니까. ‘고아’라는 꼬리표에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서 애쓴 것만 해도 벅찼다. 안타깝다는 시선이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배려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지만, 짜증 나기도 했다. 너희에게 동정받을 만큼 불쌍하지 않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신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은 건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뤄 줄게. …소스케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니까 그 보상이라고 해 두면 되잖아?”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이야기, 한 적 있어?”
“음… 몇 명. 다시 돌아가겠단 인간도 있었고,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겠다는 인간도 있었지. 조건을 붙였던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데?”
신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를 보지는 않았기에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리 발아래에 있는 지구가 보였다. 파란 바다와 구름, 육지가 색색의 빛을 뽐내는 듯했다. 저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나하나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열에 다시 합류해도 되는 걸까. 단지 내가 노력하면 바뀔지도 모른다는, 신기루 같은 근거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