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
1월 8일 대운동회 Free! 소스마코 소설, 하이큐 쿠로다이 소설 인포
1월 8일 대운동회 S7부스 인포입니다.
책 사양 요약
Free! 소스마코 소설
1. 보듬보듬 / 전연령가 / A5 무선 98p 내외 / 10,000원 - 신간
2. 배회하는 숲 / 전연령가 / A5 무선 64p / 7,000원
3. Whereabouts of him / 전연령가 / A5 중철 32p / 4,000원
하이큐 쿠로다이 소설
4. today is the day / 전연령가 / A5 중철 32p / 4,000원
통판 진행합니다.
대운동회 이후 예정된 행사가 없습니다 참고해 주세여!
통판은 배송비를 함께 입금해 주셔야 합니다.[책값+ 배송비(3,000)]
권수가 추가될 시 권당 500원의 배송비가 추가됩니다. (2권 3500원, 3권 4000원)[구매할 책 번호와 권수/입금자명/입금액/성함/연락처/주소(우번 포함)]를 덧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통판은 설 이후 발송 예정입니다.
1. 신간 Free! 소스마코 소설 '보듬보듬'
책 사양
전연령가 / A5 / 무선 98p / 10,000원
글: 깡
표지: 카키아님
줄거리
어릴 적 우연히 목격한 성추행이 트라우마가 된 마코토는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강박증이 생긴다. 스킨십에 대한 거부감을 치료하다 우연히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마코토는 동물의 따스함을 배우고 수의사가 되어 동물병원 의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쫄딱 비를 맞고 반려견을 데려 온 소스케와 만나게 되는데...
-> 수의사 마코토와 직장인 소스케의 연애물입니다.
샘플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여름이었다. 엄마가 데리러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 물음에 마코토는 오기를 부렸다. 저 혼자서도 이렇게 잘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한낱 어린아이의 고집이었다. 마코토는 당당히 유치원을 나섰다. 정류장까지는 선생님이 함께였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도착하면 전화해 주렴. 선생님에게 손을 흔들며 아이는 난생처음 혼자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어른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키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아이는 겨우 기둥을 붙잡았다. 흔들리는 버스는 조금 어지럽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도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 엄마를 끌어안고 끝날 귀갓길. 그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호기심에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리던 아이는 여고생을 발견했다. 마코토는 유심히 그 사람을 보게 됐다. 주변이 죄다 어른들로 가득했기에 그나마 자신과 가장 나이 차가 없는 사람이라고 친밀감을 느낀 덕이었다.
앞에는 좌석을 두고 마코토처럼 기둥을 붙잡은 채 서 있는 학생이었다. 흰색 블라우스에 남색 주름치마의 교복. 길게 내려온 생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이가 있는 대각선 뒤쪽으로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갸름해 보이는 턱선에 마코토는 넋을 잃고 여고생을 보고 있었다.
위화감을 느낀 건 그 다음이었다. 유치원생의 눈높이에 맞게 사람들 틈새로 보인 치마는 반쯤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치마를 들치고 있는 손을 쫓아가자 학생의 뒤에 딱 붙어선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들친 치마 속으로 들어가는 손이 보였다.
저게 뭐지? 아이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누구도 여고생과 아저씨에게 시선을 둔 사람은 없었다. 저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제 할 일을 하기 바빴다.
뒤에 선 아저씨가 누나를 괴롭히는 게 맞는 건가? 설마…. 의문을 품음과 동시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르는 사람이 너희를 만지면 어떻게 해야 해? 싫다고 하지 말라고 소리쳐요. 주변 어른들한테 도와달라고 해요.
어른의 시선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위치였고, 주변의 무관심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다만 그 성추행을 목격한 건 6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였고, 그때의 마코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한 아이였다.
소리치면 저 누나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외침보다도 먼저 몸이 반응했다. 토할 것 같아. 그렇게 느낀 순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구토감이었다. 멀미나 속이 안 좋은 것과는 또 다른 느낌에 마코토는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에 도와달라고 해야 해. 하지만 나는 힘도 약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나쁜 아저씨가 발뺌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이 도와주는 건 확실한가? 나쁜 사람이 화가 나서 나를 괴롭히러 오면 어떡하지?
아이가 망설이는 사이 성추행범의 손길은 더 대범해졌다. 허벅지를 더듬던 손이 거부하는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꽉 붙잡았다. 여학생의 귓가에 속삭이는 입이 보였다. 마코토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말해야 해. 하지만 무서워. 어지러워. 여고생과 아저씨, 그리고 몹쓸 짓을 하는 손까지 번갈아 보던 마코토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아이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마코토가 상상했던 것처럼 무섭게 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저씨. 그저 평범하게 회사에 일하러 나갈 것 같은 얼굴이 저를 보고 웃음 지었다. 뒤이어 보란 듯 치마를 들어 보이는 남자의 손에 마코토는 고개를 떨궜다. 버스는 점점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안 돼. 할 수 없어. 지금 말하면 저 사람이 날 쫓아올 거야.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헨신, 헨신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전혀 모르는 동네였다. 집에 가려면 몇 정거장이나 남아 있었지만, 마코토는 더 버스에 있을 수 없었다. 버스 안에 있는 어른들이 전부 아저씨처럼 자기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보면 안 돼. 위험해. 아이는 손을 뻗어 하차 벨을 눌렀다. 끼이익.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버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사람이 없는 정류장. 주택가에서도 멀찍이 떨어진 곳이라 버스는 마코토만을 토해 낸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코토는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류장 근처에 주저앉았다. 매스꺼운 속이 진정할 줄을 몰랐다. 욱, 우에엑…. 게워내는 속에 아까 먹었던 간식이 튀어나왔다. 여고생을 괴롭히는 아저씨도, 그 주변에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전부 용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그런 광경을 보고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자신이었다.
마코토는 고개를 들어 정류장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봤다. 눈물과 콧물, 침 모두가 범벅된 채로 홀로 서 있었다.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옆에 아무 어른이나 붙잡고 저 누나를 도와달라고 했다면 무언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어지는 구토에 마코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캑캑거리며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에 멀찍이서 걸어오던 할머니가 마코토에게 다가왔다. 얘야, 괜찮니? 할머니는 걱정스레 물으며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찰싹.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할머니의 손이 내쳐졌다. 할머니는 세게 맞은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는 지금, 어른의 손길을 튕겨낸 제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이 떨려 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마코토는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할머니가 몇 번이고 불렀지만,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누나를 만지던 아저씨의 손. 그리고 방금 할머니가 저를 만졌던 손길이 똑같다고만 느껴졌다. 견딜 수가 없어. 무서워. 역겹다구. 사람이 사람을 만지는 게 이렇게 더러운 거였나? 울음을 터트린 마코토는 집으로 가는 길도 모른 채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이후 마코토는 사람이 만진다는 행동 자체를 혐오스럽다 여겨 피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친구들과 닿는 것조차 싫어졌고, 단체행동에서 거부감을 드러내니 자연스레 친구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남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빠조차 거부했던 아이는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강박증을 치료해 나갔다. 부모님은 절대 널 괴롭히지 않는단다. 이 사실을 마코토의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해 부모님은 부단히도 노력했다. 마코토 역시 머리가 커 감에 따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치료를 병행하던 중, 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사의 조언에 마코토는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버스 사건 전에도 동물은 좋아했었기에 부모님은 마코토가 좋다면 얼마든지 키워도 좋다고 했다.
며칠 후 같이 살게 된 고양이에게 마코토는 크나큰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보들보들한 털이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햇볕이 따스한 날 아이는 거실에 누워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동물은 그렇지 않구나. 사람과는 다른 존재구나. 그때처럼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아. 어린 마코토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
“의사 선생님, 고맙수다!”
수술실에서 막 나온 개를 보며 할머니는 마코토의 손을 꼭 붙잡았다.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손을 감싸 쥔 할머니의 애정 어린 손길을 피할 수도 없어 마코토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꼬마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큰 고비는 넘겼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약은 꼬박꼬박 사료에 섞어 주시고, 당분간 산책은 자제해 주세요. 할머니랑 비슷한 또래니까 안정이 제일 중요해요.”
의사의 손을 붙잡은 채 놓지 못하던 할머니는 다시금 선생님의 손을 쓰다듬으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기사는 접수대에 앉아 불안한 눈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마코토에게서 떨어진 할머니가 수납하러 오자 반갑게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할머니가 나기사를 바라보며 계산을 하는 동안, 마코토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동장에 들어간 꼬마에게 손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손끝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수술 후 기운이 없는 꼬마가 끄응 소리를 냈다. 의사의 손끝을 핥던 개는 힘에 겨워 돌아누웠다.
의사는 꼬마에게서 손을 뗐다. 오갈 데를 모르는 손이 접수대 위에 놓였다. 떨리는 손끝은 이내 불안함에 접수대를 탁탁 치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나기사의 신경은 전부 그에게로 가 있었다. 점점 더 빨라지는 소리에 서둘러 계산을 처리했다. 그 와중에도 서비스는 끝까지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아, 이거 꼬마가 좋아하는 간식이에요. 약 먹을 때 사료에 같이 섞어 주시면 다 잘 먹을 거예요.”
“아이구 고마워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고맙수다!”
끝까지 뒤를 돌아보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할머니가 겨우 병원 문을 열고 나섰다. 나기사는 허리 숙여 인사하다 말고 뒤돌아 마코토를 봤다. 손님이 문을 나서기 무섭게 그는 옆에 있던 물티슈를 뽑아들었다. 손목과 손등, 손가락 그리고 손바닥까지, 할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곳을 전부 물티슈로 닦고 있었다.
“마코쨩, 괜찮아?”
“으응….”
악의는 없을 테니까…. 태연한 말과 다르게 물티슈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결국 세면대로 가 물을 트는 모습에 나기사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마코토에게 사람은, 사람의 손길은 여전히 혐오스러웠다. 부모님이야 오랫동안 지켜보고 이해받았기에 어느 정도의 스킨십이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타인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손을 잡는 게 한계였다. 아무리 해도 그 이상은 용납할 수 없었다. 손님일 뿐인 사람들의 스킨십은 힘들었다. 단골인 사람들은 진료하다 몇 번 만진 적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참지 않고는 병원 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 조금 단련된 정도였다. 적어도 손님 앞에서는 그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만.
“너무 세게 닦지 마. 핸드크림 꼭 바르고.”
“응. 고마워, 나기사.”
강박증의 일종. 사람과 접촉한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심할 때는 결벽증과 함께 일어나 다른 사람이 만졌던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아진 편에 속했다.
사람과 관계되고 싶지 않았기에 더 좋아하는 것에 몰두했다.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들이 좋았다. 아니, 그냥 사람만 아니면 그 어떤 동물이라도 좋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코토는 동물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알면 알수록 현실의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학교생활은 더 힘들어졌다. 옆에서 몇 년간 지켜봤던 나기사나 하루, 린 같은 사람들은 마코토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고마워, 나기사.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마코토는 조용히 웃었다.
“오늘은 손님이 적네.”
평상시 같으면 한두 명 정도는 대기중일 텐데. 텅 빈 대기실에는 고양이 두 마리뿐이었다. 벽 쪽에 진열된 동물 옷들을 정리하던 나기사는 밖을 쳐다봤다.
“비가 와서 그런가 봐. 귀여운 옷들도 잔뜩 들여놨는데.”
범고래 동물병원은 처음에 마코토 혼자 시작했던 병원이었다. 손님이 적을 때는 어찌어찌 혼자 할 수 있었는데, 사람이 늘어나면서 도저히 진료와 접수를 혼자 할 수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보조해 줄 사람을 구했는데, 일하면서 자연스레 손과 손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코토는 손을 닦았고, 접수원은 이상하단 눈으로 그를 보기 시작했다. 사정을 설명해도 이해보다는 자신을 병적으로 보는 시선이 기분 나쁘다며 화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길 다섯 명째. 그럼 마코쨩! 나를 고용해! 당찬 나기사의 목소리에 마코토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나기사라면 손이 닿아도 괜찮고, 동물도 예뻐해 주고 무엇보다 그의 강박증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기사가 오게 됐고, 나기사가 오면서 동물병원 겸 반려용품 가게가 됐다.
계속 진료실과 수술실만 들락날락하기 바빴던 마코토는 그제야 창밖을 봤다. 커다란 유리 너머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송골송골 맺힌 그 물방울이 신기한지 까미는 창에 붙어 닿을 수 없는 물방울을 솜방망이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무채색으로 물든 배경과 다르게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우산은 각자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할머니도 우산 쓰고 가셨을 텐데.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마코토는 귀를 기울였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셌다.
야옹. 어느새 발치로 다가온 고양이가 마코토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시무룩해졌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코토는 두 손을 뻗어 노란 털뭉치를 안아 들었다.
“오구, 우리 치즈!!”
두 손으로 털을 매만지는 마코토의 손길에 치즈는 얌전히 품에 안겨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유독 개냥이 기질을 보이는 치즈는 조금만 쓰다듬어줘도 금세 제 세상인 듯 뻗어 버렸다. 그리고 사람에게 쓰다듬을 강요했다. 줄무늬를 따라 털을 쓰다듬던 마코토는 고양이에게 입을 맞췄다. 초록색 눈동자가 조용히 그를 봤다. 냐아앙. 기분 좋게 눈을 감는 치즈의 모습에 그가 웃었다. 치즈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의 손길이 좋아지는 날이 오긴 할까.
진료실 안에는 소독용 알코올뿐 아니라 마코토 개인이 쓰는 소독 제품들이 즐비했다. 물티슈부터 시작해 접수대 근처에 있는 세면대는 마코토가 동물병원을 시작할 때, 시설을 개조해 만든 것이었다. 수술할 때 동물의 피를 만지는 게 사람을 만지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마코토의 거부감은 그런 것이었다.
‘사람도 동물의 한 종류잖아?’
나기사가 말한 적이 있었다. 마코토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스킨십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이 너무나 끔찍했다. 도망쳤다는 자책감 때문일까. 대중교통 내 범죄 중 절반 이상이 성추행인 걸 생각하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닐 텐데. 피해자도 아니고 목격자인 내가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게 유별난 걸까. 범죄 건수와 성추행의 비율을 따져 보면 자연스레 사람,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고 그 결론은 늘 그만큼 사람이 더럽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마코토는 대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치즈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작은 동물의 온기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만 고민하고 할 일 생각해야지. 문 닫을 시간 다 되어 가고…. 조금 더 있다 집에 가자. 오늘은 비 오니까 따듯한 거 먹고 싶다. 나베 해 먹을까? 두부랑 버섯이랑 곤약도 넣구, 고기랑 새우도 잔뜩 해서…. 꿀꺽 침을 삼키던 마코토는 바깥에서 난 큰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멈춰선 남색 자동차에서 양복 차림의 남자가 뛰어나왔다. 담요와 함께 가슴께에 감싸 안은 무언가를 보고 마코토는 어떤 상황인지를 직감했다. 무릎을 굽혀 조심히 치즈를 바닥에 내려놨다. 냐옹. 치즈는 다시 안아달라며 마코토의 발치를 서성였지만, 이내 딸랑하고 열린 병원 문에 화들짝 놀라 울타리 안으로 돌아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비에 쫄딱 젖어 있었다. 두 손으로 감싸 안은 건 강아지였다. 이동장도 없이 덜렁 강아지를 안아 들고 온 남자. 바짓단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황한 남자의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절규에 가깝게 들린 목소리에 마코토는 침착하게 접수대로 갔다. 담요를 걷어 내자 하얀 털 뭉치가 바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엊그제쯤부터 상태가 안 좋긴 했는데 워낙 노견이라 그런가 보다 했어요. 아픈 데도 없었어요. 몇 년 전에 피부병을 조금 앓은 게 전부라 크게 신경 안 썼는데…. 그런데 오늘 집에 갔더니 죽을 것 같이 숨이 약해서….”
다급한 목소리에도 마코토는 천천히 강아지의 몸에 손을 댔다. 정상이라면 강하게 뛰고 있어야 할 맥박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병원 일도 몇 년째.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였다. 특별한 병이 없다면, 그저 갈 시간이 다가온 것뿐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다. 조용히 입을 다물자, 눈앞의 남자는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기사가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마코토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간 먼저 보내게 될 거라고 키울 때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주인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하지 못한 채 병원에 동물을 데려왔다.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어 주길 바라니까.
“시로야….”
손님은 엉엉 눈물을 흘리며 무너졌다. 정말 많이 아꼈나 보다. 하얀 털의 강아지는 새근새근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코토는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털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 그래도 병 없이 잘 컸던 거지? 주인한테 사랑도 많이 받았고….
시로는 마코토와 제 주인을 바라보면서 끄응 소리를 냈다. 까만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던 손님은 마지막 울음소리에 눈가를 훔쳐냈다. 미약해지던 숨이 꺼질 듯 위태로울 때, 시로는 주인의 손을 몇 번 핥았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힘없는 혀로 낼름낼름 주인의 손가락을 할짝였다.
살짝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강아지의 까만 눈이 하얀 털에 숨겨졌다. 미약한 숨이 사라지고 오르락내리락하던 몸이 완전히 멈췄다. 마코토는 눈앞의 남자를 봤다. 아직 울음을 멈추지 못한 손님의 흐느낌이 들렸다. 나기사는 조용히 접수대 옆에 티슈를 가져다 놨다.
잠시 후, 겨우 울음을 멈춘 손님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이 흐릿해졌던 눈에 손님이 보여 마코토는 두 눈을 깜빡였다. 눈가가 빨갛게 변한 남자의 모습에 수의사는 저도 모르게 안쓰러운 웃음을 지었다.
“더 빨리 왔어도 마찬가지였을까요?”
행여나 마지막 가는 순간조차 제 잘못은 아니었을까. 두려워하는 주인에게 마코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수의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편하게 잘 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주인 품에서 갈 수 있었다니. 복 받은 아이네요.”
마코토는 티슈를 한 장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으로 나기사는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봤지만, 마코토는 손님이 티슈를 받아들 때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했다. 티슈 한 장 너머로 살짝 남자의 손이 닿았지만, 직접 닿지 않았기에 마코토는 안도했다. 이런 순간에도 눈앞에 죽어간 생명보다 고작 스쳐갈 사람과의 스킨십이 혐오스럽다는 게 더 부끄러웠다.
“저… 강아지 장례 안내해 드릴까요…?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은 스톤이라든가 만들기도 하는데….”
슬픔으로 버거운 손님에게 나기사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건넨 명함을 받아든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미 차갑게 변해 버린 강아지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편하게 보내 주어야만 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가져왔던 담요로 조심히 애견을 안아 들었다. 사후경직으로 굳기 시작한 몸이 살아 있던 조금 전과는 또 다른 감촉이었다. 안아 들다가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마코토는 말없이 지켜봤다.
그는 처음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보낼 때를 생각했다. 유치원 무렵부터 어린 시절을 전부 함께한 고양이는 마코토에게 각별한 존재였다. 반려동물이라 해서 그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애정을 주고받는 그 관계를 마코토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고양이가 죽을 때, 죽고 나서 시체를 묻을 때는 물론이고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그 흔적 속에서 몇 번이고 울었다. 손님의 심정이 이해가 갔기에 마코토는 그를 보고만 있었다.
“힘드시면 아이들 보러 오세요.”
그 말이 과연 위로가 될까. 마코토는 손님의 표정을 살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은 채, 손님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냐앙. 아래에서 들려온 소리에 마코토는 접수대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물방울 잡기에 여념이 없던 까미가 바로 밑에서 손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란 까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손님은 강아지를 안고 꾸벅 인사를 했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축 처진 어깨를 마코토는 착잡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조심히 가세요. 나기사가 인사했고, 손님은 슬쩍 눈인사만을 건넸다.
다시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간 남자는 올 때와는 다르게 터덜터덜 걸어갔다. 조수석에 담요로 꽁꽁 싸맨 반려견을 태운 남자는 천천히 운전석으로 갔다. 남색 SUV가 사라질 때까지 마코토는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언제 봐도 슬프단 말야.”
눈물을 훔쳐내는 나기사의 행동에 마코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코토는 접수대에서 나와 몸을 웅크려 앉았다. 치즈와 까미는 주인 근처로 잽싸게 달려왔다. 냐앙. 야옹.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에 마코토는 두 고양이를 꼭 끌어안았다. 오래오래 함께 있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2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이 나섬과 동시에 물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 탓도 있었지만, 이 물소리는 가까운 세면대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늘도 손님이 나서기 무섭게 물을 튼 마코토의 모습에 나기사는 물끄러미 그를 봤다. 반려동물을 들어 건넬 때 잠깐 손이 스친 모양인데. 세정제와 몇 번의 손짓에 그치는 손 씻기에 나기사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했다. 나나 레이쨩은 괜찮은 걸 보면 마코쨩한테 우리는 노랑이랑 보라 솜뭉치 같은 건가….
유심히 저를 보는 시선에 마코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꽤 강한 비였다.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왔던 게 인상 깊었던 탓인지, 비 오는 날이면 그 손님이 떠올랐다. 옷차림을 봐선 직장인이겠지.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강아지가 죽어가고 있었고, 급하게 달려왔지만….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에 마코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첫 번째든 몇 번째든,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건 누구에게도 달가운 일은 아니니까.
“있잖아, 나기사.”
반려 용품을 정리하던 나기사는 그의 목소리에 답했다.
“응?”
“한 달쯤 전에 비 오는 날 왔던 남자 기억해? 무지개다리 건너간 강아지 데리고 왔던….”
“아아, 기억하지. 가고 나서 마코쨩이 죽을상을 하고 있어서 먼저 보냈잖아.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다니는 사람도 오랜만에 봤었고.”
마코토를 보낸 뒤, 손님에게 반려동물 장례 명함을 건넨 게 과연 잘한 일이었나 곱씹었던 나기사였다. 뒤이어 바닥에 흥건한 빗물을 닦아내는 것도 그의 몫이었기에 또렷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기사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접수대 너머에서 튀어나온 얼굴이 그를 향했다.
“왜, 신경 쓰여?”
마코토는 마지못해 웃었다. 걱정끼치고 싶진 않은데. 그냥 생각난 것뿐이라….
“또, 또.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 억지로 웃는 거 하나도 안 예쁘다구?!”
다그치는 나기사의 말에 마코토는 입을 다물었다. 적당히 웃어넘기려고 해도 나기사한텐 통하지 않았다.
“보통 떠나보낸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다시 다른 아이를 키우잖아. 마코토도 치즈랑 까미 거의 바로 키우지 않았어?”
“응. 그렇지? 동물을 싫어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이 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은 고양이를 묻고 돌아온 후에도 집안 여기저기에 남은 흔적이 있었다. 고양이 화장실이며 사료, 모래, 장난감도. 하나하나 치웠지만, 며칠을 못 가 탁자다리에 남은 발톱과 이빨자국을 발견했다.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고양이가 죽는 순간 이럴 거면 처음부터 키우지 말걸 하는 후회는 잠시였다. 그 길로 마코토는 유기묘 두 마리를 데려왔다. 혼자는 고양이가 조금 외로울지도 모르니까 둘이 좋다는 이유로.
대기실 카펫 위에 누운 고양이는 대자로 뻗어 잠들어 있었다. 배를 완전히 드러낸 모습에 마코토는 손을 올렸다. 살살 털을 끌어모으듯 쓰다듬자 고롱고로롱 소리를 냈다. 까미는 오늘도 대기실 쇼파 위로 올라가 창밖의 물방울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잡고 있었다.
“유리창 또 닦아야겠네.”
한숨을 쉬는 나기사의 목소리에도 까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그래도 귀엽잖아.”
“귀여워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발톱을 안 세워서 다행이지.”
“얘네도 그 정도는 다 안다구. 그치, 까미야?”
물음에 답하듯 야옹 소리를 내면서도 멈추지 않는 솜방망이에 두 사람이 웃었다.
나기사를 먼저 보내고 어둑어둑해진 시간이었다. 진료실 내 불을 끄고 뒷정리를 마친 마코토는 기지개를 켰다. 치즈와 까미는 울타리 안 한 데 모여 고롱고롱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양이 두 마리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띤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집에 갈까. 가운을 벗고 가방을 챙기려던 마코토는 딸랑 소리에 다시 가운을 들고 창고에서 나왔다.
“어서 오세요.”
자동반사처럼 인사말을 건넨 그는 손님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양복 차림의 손님. 이전에 시로란 강아지를 떠나보낸 남자였다. 오늘도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역시나 손에 담요로 싼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마코토는 서둘러 가운을 입었다. 설마…. 마코토는 자리에 선 채 남자와 눈을 맞췄고 손님은 진료대 위에 조심히 담요를 내려놓았다.
“가, 강아지가…!”
놀란 수의사는 담요를 들췄다. 진료대 위에 놓인 생물은 눈도 채 뜨지 못한 강아지였다. 작은 몸에서 전해져 오는 고동에 마코토는 재빨리 움직였다. 부들부들 떨며 온기를 찾아 발을 내미는 모습에 마코토는 남자를 쳐다봤다.
“어미는요?”
“쓰레기 근처에 상자째로 있었는데, 다른 애들은 숨을 안 쉬어서….”
마코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버린 거겠지. 책임도 못 질 거면서 데려다가 새끼도 배게 만들고…. 강아지의 몸을 어루만지며 마코토는 다시금 사람에 치를 떨었다. 약하지만 숨은 쉬고 있어. 어미가 없으니까 옆에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게….
마코토는 진료대를 붙잡은 남자의 손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칫했다. 만질 뻔했어. 마코토는 꿀꺽 침을 삼키며 손을 거뒀다. 사색이 된 마코토의 표정에 남자의 표정도 굳기 시작했다. 얘도 위험한가. 살기 힘든가. 눈앞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작은 생명을 보며 남자는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수의사는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주세요. 옆에 누가 있다고 안심할 수 있게요.”
손님은 당황한 듯했지만, 곧 수의사의 말대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둥거리며 무언가를 찾던 강아지는 진정한 듯 조금씩 소리를 줄였다. 강아지의 울음에 마코토의 손길이 바빠졌다. 보틀 안에 물을 부은 후 수건으로 감싸 우선 남자에게 건넸다.
“춥지 않게 이것부터 대 주세요.”
치즈와 까미 자리에서 푹신한 담요를 가져온 마코토는 창고에 넣어 두었던 젖병을 준비했다. 나기사가 이것저것 용품을 갖다 놔서 다행인가. 소리 없이 감사를 전하며 마코토는 물을 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손님은 하염없이 강아지를 보고 있었다. 새로 키우려는 걸까. 아니,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모르겠네. 이 아이 데려가려는 거 아닐까? 힐끗 손님을 보던 마코토는 분유까지 전부 탄 후 다시 그의 앞으로 갔다.
두 손을 내밀자 남자는 쓰다듬던 손을 거뒀다. 아까 멈칫한 것 때문이려나. 마코토는 미안한 마음에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서둘러 강아지를 붙잡았다. 배를 잡고 일으키자 강아지는 낑낑 소리를 냈다. 입가에 젖병을 가져다 대자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은 아이는 머리를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쪽쪽대며 무사히 분유를 먹는 모습에 마코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다행이야, 죽지 않아서.
“이 날씨에 밖에 오래 있었으면 추웠을 거예요. 낯선 데서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구요.”
꼴깍꼴깍 분유를 받아먹는 모습에 손님은 멍하니 강아지를 보고 있었다. 죽을까 봐 급하게 달려온 보람이 있었나. 안도의 숨과 함께 남자가 미소 지었다. 저번엔 우는 모습밖에 못 봤는데. 웃으니까 인상이 확 다르네. 마코토는 같이 웃었다.
“그래도 사람을 잘 만났네요. 살아남아 준 것도 기특하고….”
활짝 웃는 마코토의 모습에 남자는 벙 찐 얼굴로 그를 봤다. 원래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나. 만지기를 꺼리는 것 같은 모습에 까다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로 때는 상황도 상황이었고…. 하긴 저번에도 친절하긴 했었지.
“키우실 건가요?”
갑작스런 질문에 남자는 수의사와 눈을 맞췄다. 마주한 초록빛 눈동자가 단호히 묻고 있었다. 남자는 한 달이 지나도록 시로의 흔적 하나 지우지 못했다. 화장실 한쪽에 놓인 배변 패드도, 갖고 놀던 장난감들도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전에 받았던 명함을 통해 시로의 장례를 치렀다. 분골을 태워 스톤으로 만들고 집에 잘 모셔 놨다. 그래도 반려견의 흔적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었다. 이사한다고 달라질까. 이렇다 할 방법도 없이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기만 했다.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는데, 다른 강아지를 키워도 될까. 강아지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마트에서 나오던 길에 우연히 옆에 있던 쓰레기더미를 발견했다.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을 장소였다. ‘키워주세요’라고 삐뚤빼뚤하게 적힌 글씨는 빗물에 젖어 반쯤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꼬물거리는 검은 털 뭉치가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이미 차가워졌는데 홀로 마지막 힘을 다해 끙끙거리던 아이. 남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아지를 들고 뛰었다. 급하게 차로 들어와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그 이후 어떻게 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살리고 싶어서. 죽지 않았으면 해서…. 남자는 진료대를 꼭 붙잡았다.
“…살아만 준다면 그럴 겁니다.”
오랜 침묵 끝에 나온 대답에 마코토는 안심했다. 간단히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구해 줬으면 됐으니 자기는 일없다며 가 버린 사람도 종종 있었는데. 책임감 있는 사람이네. 맡겨도 될 것 같아. 이런 사람이라면 도와줘도 괜찮겠지?
그는 밝게 웃으며 물었다.
“며칠 되지 않은 아이인데… 키워 본 적 있으세요?”
“전혀요. 이렇게 어린 강아지는 처음 봅니다….”
“아직 어미랑 같이 있을 때인데….”
마코토는 가운 주머니를 뒤적였다. 명함 끝부분만을 간신히 쥔 채 남자에게 내밀었다. 손님은 그전처럼 말없이 명함을 받아들었다. 타치바나 마코토. 가운에 새겨진 이름과 같은 글자에 수의사의 얼굴과 명함을 번갈아 봤다.
“혹시 모르니까.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전화든 메시지든 주세요. 간단한 건 휴대폰으로 답변해 드려도 괜찮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건네는 남자의 모습에 마코토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금세 분유를 다 먹고 조용해진 강아지는 담요 속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남자는 명함을 꺼내 수의사에게 건넸다. 마코토는 손이 닿지 않게 조심히 명함을 받았다.
“야마자키 소스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2. 구간 Free! 소스마코 소설 '배회하는 숲'
책 사양
전연령가 / A5 / 무선 64p / 7,000원
글: 깡
표지 일러스트: 포리님
캘리그라피: 리리뮤님
표지 편집: 어리님
줄거리
다큐멘터리 사진기자인 마코토는 배회하는 숲에 촬영차 갔다가 혼자 고립되고 만다. 며칠을 헤매고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켄타우로스, 소스케가 그를 출구로 이끌어준다. 미지의 생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재차 숲에 들어간 마코토는 다시 한 번 켄타우로스를 만나게 되는데....
1
사방이 나무였다. 새벽에 내린 비를 고스란히 얼굴로 맞으며 일어난 그는 아직도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아 기지개를 켰다. 안내인 사사베 씨와 떨어진 지 4일째. 가방에 있던 식량은 한 끼를 반으로 나눠 허기를 채웠는데도 곧 바닥을 드러낼 터였다. 급격히 떨어진 체온에 언 손을 조금이라도 녹이려 입김을 불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하얀 김을 보며 마코토는 고개를 들었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 마음을 빼앗겼다.
태초부터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숲. 인간이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초란 단어까지 들먹이며 그 경관이 수려하다 칭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 침엽수림은 방향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빼곡했다. 곳곳에 끼어 있는 안개 때문에 앞을 보고 나아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나흘 중 꼬박 하루를 숲으로 들어오는 데 소비했다. 10m를 훌쩍 넘기고 하늘까지 뒤덮어 버릴 만큼 커다란 침엽수들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숲에는 길도 없었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그렇기에 어딜 가도 안심할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 정상에 오르지 않는 이상 이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앞서 가는 사람과 떨어지게 된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래도 셔터를 누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였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앞에 보이던 적색의 등산복은 사라졌고, 마코토는 그 숲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이런 환경에 혼자 남겨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명색이 다큐멘터리 잡지사에서 일하는 사진기자인데 혹독한 상황이 한두 번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숲에 들어설 때부터 안내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긴 나침반이고 뭐고 안 통하거든요. 위성도 제대로 못 찍잖아요. 너무 기대는 마세요.’ 과연 그 말대로 손목시계에 달린 나침반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팽팽 돌아가기만 할 뿐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배회하는 숲. 들어가면 영원히 숲을 헤맬 수밖에 없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다웠다.
정상 부근으로 돌아온 그는 나무에 기대 털썩 주저앉았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확실히 장관이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일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것을 담아내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적어도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사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손에 든 카메라를 매만지며 마코토는 웃었다. 마지막까지 이 일을 하다 죽을 줄은 몰랐는데. 죽을 때가 되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더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정치권 인사의 현장에 가 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섰다. 꺼림칙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거물급 인사들의 비공식 회담. 키스미는 어디서 그런 정보를 물어왔을까? 마코토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타치바나 마코토의 이름으로 사진은 실렸고, 그 후 부장이 그를 불렀다. 휴가 가는 셈 치고 다녀오라고.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이유는 짐작했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아마 그 일이 세간에 밝혀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겠지. 캐 보면 다 드러날 일이겠지만, 윗선에서는 은근한 압박으로 편집장과 부장을 통해 한낱 사진기자의 입을 틀어막을 심산이었다. 어쩌면 그게 키스미가 노렸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 혹시 키스미한테 잘못한 거 있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적당히 쉴 곳을 찾아 체력이 닿는 데까지 걷기로 했다. 습해진 공기는 갑갑했지만 신선한 공기가 몸 안에 들어오고 나갈 때, 온몸이 정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 묻은 인간과 다르게 자연은 순수했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드러내 무구한 자신을 내보인다. 그만큼 알 수 없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낮인데도 어둑어둑한 숲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마코토는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그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펼쳤다. 수백 번도 더 본 것 같은데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나침반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툭 시계를 쳐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도 이런 고생은 안 했는데. 출발 전에 안내인이 꼭 붙어 다니라고 했던 말을 왜 듣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일정대로라면 어제 집에 돌아갔어야 했는데. 아직 버틸 만하고 체력도 남아 있지만,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혹여나 누군가 지나가진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었다. 하지만 현지인들도 꺼린다는 배회하는 숲에 들어오는 얼간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숲에서 산짐승을 본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위험하진 않겠지? 원체 사람이 못 들어오는 곳이니 정말 없는지는 모르는 거지만. 마코토는 느슨해진 등산화 끈을 고쳐 맸다. 나갈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산 중턱에서 그는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어젯밤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마른 나뭇가지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때문이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중턱이 아니었다면 지금 보이는 이 풍경도 안 보였겠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끼나 가끔 드는 햇빛으로 방향을 짐작했는데, 봉우리도 야트막한 작은 산들도 똑같게만 보여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늘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남은 식량과 불로 몸을 덥힌 후에 이동할 생각으로 휴식을 취했다. 생사가 걸린 휴식 중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자신뿐인 숲. 모든 게 멈춘 것만 같아 마코토는 하염없이 렌즈 너머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조난만 아니면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고 해도 손색없겠는데. 마코토는 웃으며 카메라를 움직였다. 죽음이 무서운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죽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막연히 죽지 않을 거란 느낌. 확신에 가까운 감에 웃음이 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였다.
렌즈 너머로 침엽수의 초록빛으로 가득한 그 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마코토는 눈썹을 찌푸리며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검은색이 보였다. 멈춘 것 같던 까만 형상이 움직였다. 짐승…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설마 곰인가? 거리는 좀 있긴 하지만 위험한 거 아냐? 잡아먹힐지도…. 죽는 건 상관없지만 고통스럽게 잡아먹히고 싶진 않은데. 하지만 도망쳐야겠단 생각보다도 호기심이 먼저였다. 마코토는 줌인하여 검은 형상을 렌즈에 담았다. 사람? 사람인가?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이 보여 그는 어림짐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급히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진의 사람은 뭔가 이상했다. 산에 사는 사람일까.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은 엉켜 있었고, 이 산악지대에서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나무에 가려져 더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마코토는 보고도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씨에? 이 산악지대에서? 한겨울에 비할 추위는 아니어도 비가 온 후에 기온은 뚝 떨어진 상태였다.
산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혹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민족이라거나? 눈으로 유심히 바라봤지만,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 사람은 사라진 채였다. 에? 어디 갔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동태를 살폈지만, 렌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사라졌어? 그 잠깐 사이에? 렌즈를 조절하며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해서 헛것이라도 본 걸까. 하지만 사진은 분명히 찍혀 있는데.
아쉬움에 카메라를 놓지 못하고 마코토는 왼쪽 눈을 감은 채 계속 렌즈 너머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하던 네모난 프레임이 갑자기 갈색으로 가득 찼다. 초점까지 맞지 않는 카메라에 마코토는 줌 기능을 조절해도 갈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눈을 깜빡이며 렌즈를 조절하자, 바로 앞에 나타난 파란 눈이 보였다. 커다란 눈동자가 렌즈 코앞에서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우와앗!”
비명과 함께 마코토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 서 있었다. 사람? 동물?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마코토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꼬불꼬불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 탄탄한 근육이 자리한 상반신, 그보다도 눈에 띄는 건 허리 아래로 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코토는 신화를 떠올렸다. 켄타우로스. 상체는 사람이고 허리 아래부터는 말의 모습을 한 괴물. 엉덩방아에도 카메라는 손에 꼭 쥔 채였지만, 셔터를 누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존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존재의 등장에 두려움보다도 경이로움이 앞섰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마코토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마코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처진 눈꼬리, 하지만 날이 서 있는 눈매. 렌즈 너머로 보았던 파란 눈이 그를 주시하고 있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눈앞의 생물을 바라보던 그는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 혼자 남겨진 거라면. 쫓겨나 도망치듯 숲에 들어온 것 역시 인생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위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바닥에서부터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인간이 올 곳이 아냐. 나가라.”
낮은 목소리. 약간의 분노까지 담겨 있는 듯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마코토는 움찔 몸을 떨었다. 한마디를 끝내자마자 켄타우로스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돌아섰다. 얼빠진 정신에도 마코토는 이대로 그를 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게 된 켄타우로스인데. 나가는 길도 전혀 모르는걸. 마코토는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
나무 사이로 빠르게 나아간 울림에 반인반마는 고개를 돌렸다. 막상 파란 눈이 저를 마주하자, 불러놓고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마코토는 당황한 채였다.
“어… 그, 그게….”
누구세요? 어디서 왔어요? 여기 살아요? 정말 켄타우로스예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뭉쳐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입을 벌린 채 멍한 그의 모습에 켄타우로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을 바라보며 남자는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셔터라도 한 번 더 누르면 좋을 텐데.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인반마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멀리 내다보이는 산등성이 사이의 틈이었다. 저쪽으로 가라는 걸까. 마코토는 그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켄타우로스는 마코토를 보며 그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코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적막이 감도는 산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그는 영물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카메라에는 얼결에 찍은 검은 형상과, 파란 눈동자가 네모난 화면 한가득 선명히 담겨 있었다.
2
“하루, 이거 뭐라고 생각해?”
해양전문기자의 눈앞에 놓인 사진은 평범했다. 쌍꺼풀 진 눈, 진한 눈썹에 검고 긴 속눈썹, 커다란 홍채에 반듯하게 사진작가를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까지. …성격 있어 보이는 눈이네. 그렇게 답하려던 하루카는 마코토의 눈빛에 다시 사진을 봤다. 조금 탄 것 같지만, 피부색이 유별난 것도 아닌데. 눈동자에 비친 풍경도 숲 속으로 추정되어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그저 평범한 사람의 눈. 그 외엔 생각할 것도 없지 않나. 동료가 어떤 이유로 이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 없는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사람이잖아?”
두 사람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민 나기사에 마코토와 하루카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마코쨩, 휴가 간 셈 치라고는 했지만 정말 숲에서 힐링하다 온 거 아냐?”
“나기사군, 말이 심하잖아요. 선배, 괜찮으세요? 산에서 조난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부장님도 몸조리 더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으응. 괜찮아. 숲에서 잘 나왔고, 보다시피 멀쩡해.”
“위험했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쉬는 게 낫지 않아?”
힐끗 부장실로 눈길을 두었던 하루카의 모습에 마코토는 어쩔 수 없이 웃었다. 사람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심도 두지 않는 동료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상황이 우스웠다.
“괜찮아. 하루.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지만 말야.”
2~3주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던 걸까. 잠잠해지기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정작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던 키스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오지로 취재하러 갔다는 말을 들었으니, 마코토가 맡았던 비공식 회담 건은 아직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뜻하지 않게 동료들을 걱정시킨 마코토는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해 사람이 오지 않는 회의실에 박혀 있었다. 챙겨 주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그를 달갑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저 단순한 비공개 회담이었다면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반응할 이유는 없는 거 아냐? 원흉이 되었던 사진을 떠올리며 마코토는 책상에 엎드렸다. 키스미가 부탁해서 간 거라지만, 그냥 모인다는 정보만 알았을 뿐이고 그 외에 자세한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었지. 파파라치 한둘 정도야 인사들이 신경 쓸 리 없는데. 그만큼 중대한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그런 걸 시킬 거였다면 키스미도 나한테 더 조언해 줬어야 했던 거 아냐? 조심하라고? 그에게 위험한 일은 아니냐고 되물었을 때, 키스미가 했던 대답을 마코토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위험한 일 아니니까.’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이 잘못된 건 변함없었다. 그 덕분에 마코토가 켄타우로스의 눈동자가 담긴 사진도 얻을 수 있었지만.
뭐였을까? 정말 켄타우로스가 맞긴 했나?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기엔 불쌍해서 신이 꿈에 나타나 살길을 일러준 것은 아니었을까. 영물이 가리켰던 방향을 따라 산을 내려온 마코토는 그대로 걷고 또 걸었다. 안갯속에 숨은 숲에서 이곳이 맞나 하는 의문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지만, 발끝은 그가 알려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나절이 넘어, 어둠 속에 빛나는 불빛을 발견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살았다고.
현지인 몇몇은 그가 어떻게 숲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듣고 산신님 덕분이라며 웃었다. 그 집 한구석에 있는 재단에는 조금 전까지 기도한 듯 양초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필시 현지인들은 그가 죽은 줄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회사에 더 있을 수는 없다. 배회하는 숲에 취재를 보낸 저의야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남들의 시선과 수군거리는 이야기에 시달리는 것이 조난보다도 더 괴로웠다. 기자생활 하면서 그 정도야 감수했던 거지만. 그게 싫어서 이쪽으로 온 거였는데. 정치 쪽에 줄이 있는 키스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원흉이라며 마코토는 자책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키스미 때문이라며 탓할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키스미에게는 고마울 정도였다. 키스미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도 없었겠지. 마코토는 검은 형상과 파란 눈동자 사진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절대 환영은 아니다. 꿈도 아니었다. 카메라 렌즈에 이렇게 선명하게 잡혀 있는걸. 그렇다면 다시 배회하는 숲에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 번 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마코토는 사진을 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가 다음 취재기획서를 들고 부장을 찾아갔을 때 부장은 혀를 찼다. 윗사람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보낸 숲에서 조난으로 죽을 뻔했던 기자. 그런데도 마코토는 주눅 든 기색 하나 없이 다시 한 번 더 배회하는 숲으로 자신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 회사에는 병결로 처리해 둘테니 몸조리도 하고 조금 쉬는 게 좋지 않겠냐. 부장의 말에도 마코토는 단호했다. 보내 주세요. 계속되는 그의 고집에 부장은 결국 결재란에 서명했다. 죽고 싶으면 뭘 못 해? 갔다 와.
***
산악지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코토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다시 그곳에 가려는 걸까. 이번에야말로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그 눈동자가, 그 켄타우로스가 거기에 있다면 그는 가야만 한다고 작심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직접 제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매료된 건지도 몰랐다. 처음 봤을 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니까.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심까지 갖게 했던 괴물은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찬연했다.
사사베 씨의 집에 다시 찾아갔을 때, 당신 같은 기자는 처음 본다며 껄껄 웃었다. 죽을 위기였던 건 분명한데도, 샌님 같이 생겨서는 이런 배짱을 가진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마코토의 어깨를 쳤다.
뒤에 맨 배낭이 무겁도록 비상식량을 잔뜩 챙긴 마코토는 숲의 어귀에 서 있었다. 현지인은 뒤돌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같이 가는 게 마코토도 심적으로 편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간다면 켄타우로스가 나와 줄지는 미지수였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내보여도 되는 존재일까? 마코토는 그 누구에게도 사진 속의 인물이 미지의 존재였다는 사실은 입 뻥긋도 하지 않았다.
사사베 씨 내외가 혼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몇 번이고 말렸지만, 이미 살아나온 전적이 있고 이번에도 잘 다녀올 수 있다, 이미 산신님의 가호를 받은 몸이니 괜찮을 거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설득이 통했다기보다는 말려봤자 통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멈춘 것 같았지만, 사사베 씨는 조건을 걸었다. 숲 어귀까지는 데려다줄 테니 딱 일주일. 일주일 후에 다시 입구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숲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마코토는 별생각 없이 그리하겠다 약속했다.
현지 도우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사사베 씨일 이유는 없다고 가볍게 여긴겼다. 거기에 그가 숲 어귀까지는 혼자 찾아올 수 있을 만큼 눈이 밝은 것도 있었다. 기자생활 십몇 년을 허투루 한 건 아니었다. 나침반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이정표인 사사베 씨의 집까지 찾아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숲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그가 배회하는 숲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정말로 다시 숲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켄타우로스가 방황하는 그를 본다면 숲을 위해서라도 이물질에 불과한 인간을 이곳에서 죽게 내버려 둘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면 그들의 반응은 뻔했다. 몇몇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꿈 깨라고 했겠지. 가까운 동료를 제외하고는 부장과 같은 반응을 보일 터였다. 그래도 사진이 확실히 남아 있잖아. 렌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마코토는 그를 만나기 위해 숲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저… 저기, 있잖아!”
상대에게 닿을지 어떨지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이 통하는 지성체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찍지 않을게. 그냥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
적막으로 가득한 숲에 돌아오는 것은 그의 메아리뿐이었다. 그래도 마코토는 다시 외쳤다.
“네가…. 네가 보고 싶어서 다시 왔어!”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상대의 모습에 마코토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켄타우로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원하는 반인반마가 아닌 다른 것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정말 위험한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그 상황이 두렵지는 않았다. 지금 마코토가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보다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근처를 서성이며 몇 분을 보냈을까. 마코토는 가만히 서서 나뭇잎을 봤다. 나가. 나가고 싶어도 이미 방향을 모르겠는걸. 그것 때문에라도 나와 줄 거라 생각했는데.
나뭇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사과는 물기를 머금은 채였다.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씻어 온 것처럼. 그렇다면 배려해 준 게 분명한데. 긴장과 힘이 풀려 마코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너무 쉽게 봤나. 자연이란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몇 달을 넘는 시간을 자연에서 지며 그 신비로운 장관을 담아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기에 마코토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마코토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켄타우로스는 천천히 마코토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인간은 좋은 말로 할 때 듣질 않더라.”
마코토는 반가움에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낮게 울리는 음성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는 멱살이 잡힌 채 공중에 들려 있었다. 크르릉 짐승의 목소리를 내는 동물을 마코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새기겠다는 듯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내려온 끈은 왼쪽 가슴을 누른 채 등 뒤로 매여 있었다. 짐승의 이빨인지 뼈인지 모를 장식품이 달려 있고, 왼쪽 팔 위에는 직접 만든 듯한 끈이 있었다. 주술적 의미일까? 산신님의 명을 수행하는 사람일까?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한번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가라니까!!”
3. 구간 Free! 소스마코 소설 'Whereabouts of him'
책 사양
전연령가 / A5 / 중철 32p / 4,000 원
글: 깡
표지: 어리님
줄거리
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란 소스케. 20살을 갓 넘기고 이제 잘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발생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주마등이 스쳐가는 와중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게 만든 신이란 놈 면상이나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원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신(마코토)이 나타난다. 세상에 대해 설명하던 마코토는 소스케에게 선택권을 주는데...
*내지 본문에 테두리가 있습니다. 개정하거나 새로 찍을 생각이 없어 그대로 판매합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구매 부탁드립니다.
좆같은 세상이네. 살 만하다 싶으니까 죽여 버리고. 죽고 다 끝났다 생각했더니 뭔가 또 이어지는 거냐고. 주먹을 쥐어 서너 번 바닥에 내리쳤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에 닿은 손이 저릿하게 울렸다. 죽어도 아픈 건 아프다는 거야? 이상하네. 뭐지. 이게 사후세계라는 건가? 아무것도 없는 거. 정신 병동에 갇힌 건 아닌가 착각할 만큼 하얀 공간이었다. 설마 이게 그건가. 아무것도 없는 무(無) 같은 거? 뭐야? 죽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어? 윤회라든가 사후세계라든가 하는 개념이 진짜 있는 거였냐고. 앞으로 계속 여기에 살아 있기만 하는 거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그럼 나 말고 다른 죽은 사람들도 다 이런 데 있는 건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놀라 가만히 서 있었다. 나타난 건 사람이었다. 갈색 머리에 처진 눈꼬리가 순하게 생긴 남자였다. 하얀색의 천을 휘두른 듯한 옷을 입은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천사라는 게 있다면 이런 걸까 생각했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혹시 천사일지라도 무슨 의도로 접근하는 건지는 모르잖아. 물러나는 내 모습에 그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착해 보인다고 다가 아니거든. 뒤통수치는 사람이 널린 세상인데.
“잘 알 것 같은 모습인데…. 싫어? 그럼 이런 건?”
남자가 손을 튕기자, 옷차림이 변했다.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 어디서 많이 본 옷인데. 인상을 쓰고 유심히 보다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 옷장을 뒤지다 집어 든 옷이었다. 죽는 순간, 그리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
“…너, 뭐야?”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나는 노골적인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흐음, 말해도 안 믿어 줄 것 같은데.”
“뭐냐고 물었잖아.”
곤란한 듯 웃으며 다가온 남자는 다시 한 번 손을 튕겼다.
“화내지 마. 다 말할 테니까. 그러려고 부른 거고.”
남자는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 차림으로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손짓했다. 여기가 정말 사후세계라고 한다면 나타날 건 정해져 있지 않나. 천사니 악마니 혹은 신이니 하는. 죽은 뒤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았는데.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도 않던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남자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아, 설마. 죽기 직전에 신이라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던 그 말이 실현된 건가. 물을 것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응. 소스케가 그렇게 부르던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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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었어? 그런 곳에 태어나서?”
한참을 우는 중에 그가 내게 물었다. 순수한 의문인지, 악의를 담은 건지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그를 노려봤다.
“아, 오해하지 마. 네가 다른 사람에 비해 힘들지 않았다거나 노력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운이 안 좋았달까.”
“…내가 운이 안 좋아서 죽었다고?”
가까스로 울먹임을 참으며 물었다. 그는 안쓰러운 듯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몇 번을 만들어도 같아. 지성체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이 세상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단 생각 같은 건 못하거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욕구가 충족된 후에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 인간은 그 정도 선에서 멈춰. 개인 선에서는 그 정도면 목숨이 끝나 버리니까.”
벅찬 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히끅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떠오르는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한낱 개인에 불과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자기 욕구밖에 챙길 줄 몰랐다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는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기억하는 유명한 인간이 있다면 아마 그중에서도 뛰어난 인간들이겠지. 나는 별다른 조건을 부여하지 않았어. 절대적으로 비교해서 힘들었다면 그들이 다른 인간들보다 더 힘들었겠지. 오히려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건 인간이야. 너 같은 인간은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그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든. 소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란 그럴 수밖에 없나 봐.”
화면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폭탄이 날아가고, 몇 명의 군인이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흘렀다. 사람들은 죽고 살았지만, 산 자 역시 죽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시체를 먹으며 살아남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죽은 인간이 쓸모없었던 건 아냐. 그들 역시 한때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로 세상을 살았으니까. 누구에게든 의미는 있었어.”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소스케가 궁금해했잖아. ‘신이라는 새끼 있으면 그 면상 한번 보고 싶네’라고.”
그야 그랬지.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말야, 그건….
“소스케.”
나는 그의 말에 생각을 멈췄다. 방금 내가 말했던가. 아니 생각했을 뿐인데 이 녀석은 내 머릿속을 읽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야. 분명히 알고 있다. 떠올렸을 때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읽고 있다는 말에 반응한 거지, 너.
“있잖아.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창조주인 건 맞지만, 내 마음대로 모든 걸 다 움직일 수는 없거든. 인간이 생각하기에 세상에 이로운 인간도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인간도 결국은 다 죽게 되잖아. 태어나고 죽는 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이치라구. 그 순리에 나는 간섭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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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생각 좀 해 보자.”
버튼을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분법적 사고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삶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아, 물론 죽으면 지금 얘기한 건 다 네 기억에서 다 사라질 거야. 너라는 존재를 되돌리기 위해선 지금의 세계에서 사고를 없애야 하니까.”
나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웅크렸다. 이전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다시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죽고 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사라져 버리는 줄만 알았는데. 막상 주마등을 보면서 느꼈던 건 왜 여기서 죽어야 하냐는 한탄과 아쉬움뿐이었다.
“죽기 전엔 좀 아쉬웠지? 죽고 나서는 아 드디어 끝났구나 싶기도 했고. 유한한 존재는 그렇더라고. 끝이 보이지 않으면 목숨 따위 내던져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들 살고 싶어 해. 모든 생명체의 공통점이야. 이상할 거 없어. 가끔 정말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명체도 있지만. 드물어, 확실히. 생명을 귀히 여기니까.”
죽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생전에 넌더리가 날 정도로 많이 했다. 현실은 괴로웠고, 세상이 내게 준 건 없었으니까. ‘고아’라는 꼬리표에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서 애쓴 것만 해도 벅찼다. 안타깝다는 시선이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배려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지만, 짜증 나기도 했다. 너희에게 동정받을 만큼 불쌍하지 않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신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은 건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뤄 줄게. …소스케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니까 그 보상이라고 해 두면 되잖아?”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이야기, 한 적 있어?”
“음… 몇 명. 다시 돌아가겠단 인간도 있었고,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겠다는 인간도 있었지. 조건을 붙였던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데?”
신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를 보지는 않았기에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리 발아래에 있는 지구가 보였다. 파란 바다와 구름, 육지가 색색의 빛을 뽐내는 듯했다. 저 아래에서 사람들은 하나하나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대열에 다시 합류해도 되는 걸까. 단지 내가 노력하면 바뀔지도 모른다는, 신기루 같은 근거만으로.
4. 구간 하이큐 쿠로다이 소설 'Today is the day'
책 사양
A5 중철 전연령가 32p 4,000원
글: 깡
표지: 이연님
줄거리
쿠로오의 아들, 쿠로오 시로를 혼자 키우는 사와무라 다이치 이야기.
(15.3.14 네코마온에 나왔던 Going with you 중 마지막 단편인 someday와 추가된 뒷 이야기입니다.
유치원생 시로와 고등학생 시로가 나옵니다. 별개의 이야기로 이전의 단편집을 구매하지 않아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샘플은 차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나른한 오후 터져 나오는 하품에 입을 가렸다.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이 나왔다. 사람들을 뱉어낸 마을버스는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라갔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출근할 때 터질 것 같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했다. 팔을 돌릴 때마다 어깨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기지개를 켜도 피곤함은 가시질 않았다. 몸을 쭉 필 때마다 한기는 틈을 찾아 온몸으로 들어왔다. 빨리 집에 가서 코타츠 안에 들어가고 싶다. 늘어지고 싶은 마음도 생각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유치원에는 아슬아슬하게 딱 맞춰 도착했다. 모습을 감춘 지 5년, 얼굴이 가물가물해질 지경인 그 녀석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똑 닮게 생긴 아이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이상하게 뻗친 검은 머리나 시큰둥해 보이는 얼굴까지 그 녀석 유전자를 빼다 박았다 할 만한 그 모습에 나는 손을 흔들었다.
“시로.”
유치원에서 나오던 시로는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왔다. 뒤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천천히 가라고 말렸지만, 시로는 멈추지 않고 달려와 내 앞에 섰다. ‘아빠’ 하고 나를 부르는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훌쩍 커 버린 아이를 안아 드는 것도 이제는 조금 버거워졌기에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었지?”
“응.”
인사를 하려 일어섰을 때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아버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흔히 사람들이 시간이 있느냐고 물을 때는 곤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으로 선생님과 면담했을 때는 시로가 유치원에서 뭐라도 잘못한 건 아닌가, 애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덜덜 떨면서 선생님을 기다렸지만 이것도 몇 년째 되다 보니 익숙해졌다. 큰 문제는 아닐 테고, 늘 있는 이야기 중의 하나일 거다. 시로가 오늘 반 친구와 싸웠다거나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인다든가 하는 흔한 이야기.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치원 사무실도 회사와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곳곳에 만들고 있는 수업자료들이 눈에 띄어 답답함을 덜었다. 시로를 다른 선생님에게 맡기고 온 선생님은 커피 한잔과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시로가 다른 친구들보다 어른스러워요. 그런데 너무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네요.”
시로가 직접 이름을 쓴 스케치북을 넘기며 선생님이 말했다. 회색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마 나겠지. 다이치 아빠라고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도 보였다. 그 옆에는 방긋 웃고 있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테츠로 아빠. 둘 사이에는 시로로 추정되는 아이가 두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림의 옆에는 글도 쓰여 있었는데, 아마 오늘 나를 부른 이유는 이것 같았다.
‘나도 얼른 커서 아빠를 도와주고 싶다. 테츠로는 혼내 줄 거야.’
시로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예상이 갔다. 아빠 둘 사이에서 크다가 친아빠가 사라진 상황을 몇 살 먹지도 않은 어린애에게 받아들이라는 건 가혹한 일 아닌가. 반 선생님이 따로 이야기를 꺼낸 건 집안의 사정을 다 알고 있어서였다. 사와무라 다이치, 쿠로오 시로. 이미 대강의 사정은 유치원 내에서도 파다히 퍼져 있을 게 뻔했다. 물론 선생님이야 비꼬려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짧은 면담이 끝나, 시로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섰다. 나보다도 먼저 고개를 숙인 녀석은 내일 보자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내일 보자, 시로. 상냥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는 의도가 전달됐는지 선생님은 살펴 가시라며 웃었다.
***
‘혼자 힘드시겠지만….’
진심인 걱정에서 우러난 말이었겠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시로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고 지금 이 아이의 아빠는 나뿐이니까.
‘아버님이 평소에 행동하시는 것 하나하나가 아이한테 영향을 미쳐요. 물론 사와무라 아버님이 쿠로오 아버님을 안 좋게 말씀하시진 않겠지만…. 테츠로 씨를 싫어하게 될까 봐 조금 걱정이네요.’
산등성이에 노을이 간신히 걸려 있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탓에 회사에서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고 있었지만, 다른 사원들에게 조금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나 아니면 봐줄 사람도 없는걸. 정작 친아빠란 놈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로에게는 다정히 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는 건가. 에휴…. 시로가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쿠로오였기에 애 앞에서는 테츠로 흉을 본 적은 없는데. 말이 아니어도 행동에서 티가 난다는 건가.
== 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
“올 때가 됐는데….”
수건에 손을 닦으며 다이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화면에는 시로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부활 끝.
-10분 안에 가여.
-배고파 죽을 거 가타.
10분 전에 보냈으니 슬슬 도착할 때가 됐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다이치는 의자에 앉았다. 식탁 옆 벽에 걸린 액자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유치원 때의 시로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로와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사히와 스가의 얼굴도 한번씩 등장했고, 시로의 친구들도 있었다. 다이치는 두 손가락으로 사진에 나온 시로의 키를 가늠해 봤다. 사진상 아기 때는 손가락 한마디도 채 되지 않던 아이가 지금은 두 손가락을 쫙 펴야만 할 정도로 커 있었다. 그중 가장 오래도록 액자를 차지하고 있는 건 테츠로와 다이치가 아기인 시로를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혼자 술을 마실 때면 늘 감상에 젖게 하는 사진. 테츠로의 마지막 흔적과도 같았기에 치울 수 없어 그대로 둔 것이었다.
이 새끼는 뒤졌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언젠간 나타나리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던 다이치였다. 십몇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은 거라면 이제는 슬슬 포기할 때도 됐나. 그런데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여전히 통장에 찍히는 돈 때문이었다. 일찍이 죽은 걸지도 모르는데. 은행에 가도 알려드릴 수 없다고만 하니 따로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테츠로.”
소리내어 사라진 이름을 입 밖에 냈다. 괜시리 머쓱해진 다이치는 테츠로의 얼굴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에도 사진 속 남자는 마냥 웃고 있었다.
삐빅대는 도어락 소리에 다이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시로 왔나 보네. 현관으로 얼굴을 내밀기도 전에 다녀왔다며 크게 소리를 지른 아이는 제 방으로 가방을 던졌다. 이제는 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키도 훌쩍 큰 데다 덩치까지 다이치와 맞먹을 정도로 커버린 18살의 시로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집에 오면 인사 후에 손부터 씻기.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둔 덕일까. 다이치는 어서 오라는 말과 함께 밥을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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