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
1월 11일 케이크스퀘어 L52 Free 소스마코, 겁쟁이페달 신아라 소설 인포
1월 11일 케이크스퀘어 레드존 L52부스에 나오는 소설 인포입니다.
책 사양 요약
1. Free! 소스마코 소설 '친구보단 애인이 좋아♡' 19금 A5 무선 78p 8,000원
2. 겁쟁이페달 신아라 소설 '그래도 살아간다'(구간) 전연령가 A5 무선 58p 6,000원(재고만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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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ee! 소스마코 소설 '친구보단 애인이 좋아♡'
글: 깡
표지: SP승류님
줄거리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은 채 K대학에 진학한 마코토는 강의실에서 뜻밖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아는 사람이라곤 하루카뿐이던 도쿄에서 마주하게 된 야마자키가 더없이 반갑지만, 소스케는 그를 무시한다. 대회를 앞둔 하루카에게 야마자키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마코토는 고민하며 소스케와 친해지려 노력하지만 그의 반응은 차갑기만 한데.... 가까워지고 싶은 마코토와 그를 밀어내는 소스케의 속마음은?
=> 한 줄 요약
마코토랑 소스케가 투닥거리다 연애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샘플을 확인해 주세요.
학기가 시작된 봄날, 마코토는 복작이는 교정을 걷고 있었다. 도쿄에 올라온 직후, K대학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하루카와 함께 학교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100년이 넘은 건물들은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냈다. 방학이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도 학생들은 바쁘게 교정을 오갔다. 도쿄에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었는데…. 새삼스레 새로 시작될 생활을 생각하며 그는 기대에 부풀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개강 첫 주에는 강의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선배로서 조언이라느니 하는 유언비어였기에 그는 쉽게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강의에 나가지 않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라고 여겼다.
마코토는 문학부로 진학했다. 교육학을 복수전공으로 할 생각이었기에 1학년이더라도 놀 생각은 없었다. 대학교에 온 사람들 역시 그처럼 부푼 꿈을 안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필요한 학점을 채우고 장학금까지 노리기 위해선 시간이 아까울 거라는 말도 들었다. 생활비 외에 용돈도 받고 있었지만 이 이상으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도 못할 일 같아서 다음 주부터는 카페에서 알바도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처럼 하루카와 매일 같이 만날 수는 없었다. 도쿄에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고, 하루도 못 만난다면 조금 외로울지도…. 마코토는 볼을 긁적이며 걸음을 내디뎠다. 가지마다 터질 듯한 봉오리들이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새싹과 만발한 꽃을 보며 그는 가방끈을 쥐었다. 열심히 하자, 마코토.
* * *
쉴 틈 없이 정해져 있는 시간표에 교양수업이 시작될 무렵의 마코토는 조금 지쳐 있었다. 첫날이라 강의 진도를 빼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앞으로 어떤 것을 배우게 될지 또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 부담이었다. 그나마 커뮤니티를 통해 미리 알게 되었던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어 학교생활이 외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간 들어갔던 강의실들은 거의 전공수업이었기 때문인지 작은 강의실뿐이었는데 이번에 들어간 곳은 규모가 달랐다. 입구에서부터 2층 높이까지 계단이 있는 대형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코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듯한 학생들의 모습에 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가장자리쯤에 자리를 잡은 마코토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의실을 보며 다시 한 번 규모에 놀라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는 아까 그를 보고 웃었던 여학생 둘이 힐끗거리며 마코토를 보다가 꺄르륵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쁜 얘길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안경과 노트를 꺼내며 준비를 마쳤다.
종치는 소리도 없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고등학생 때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래서 마코토는 언제나처럼 들려오던 종소리와 쉬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교실로 들이닥쳤던 나기사나 레이가 보고 싶었다. 둘은 잘하고 있을까. 신입부원은 꽤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이와토비 걱정에 잠겨 있을 때 교실로 여러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기사나 레이는 잘 하고 있을 거야. 남들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나도 빨리 도쿄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걸.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급히 강의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눈으로 좇으며 마코토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웅성대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긴장한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잡고 있었다.
스포츠 심리의 이해.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인기 있진 않을 것 같은 수업이었는데, 이전 학기에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의 평이 좋아 수강신청을 했다. 이 수업을 들어 두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좋을 것 같았고, 하루카나 린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마코토의 생각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를 끝으로 학생은 더 들어오지 않았다. 아, 체격 좋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그 남자를 좇아 마코토의 눈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가락만 하게 보이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떡 벌어진 어깨와 저지 아래 얇게 걸친 티셔츠 밑의 근육이 눈에 띄었다. 그와 엇비슷한,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르는 키에 덩치도 있었다. 운동하던 사람인가. 계단을 오르던 그가 마코토와 비슷한 높이가 되자 얼굴이 보였다. 익숙한 그 얼굴에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야마자키 군?!”
그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파란 눈이 마주치더니 곧 크게 뜨였다. 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마코토를 지나쳐 더 뒷자리로 갔다. 가방을 풀어 내려놓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마코토는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야마자키 군이…! 말 걸어 볼까? 하지만 교수님의 등장으로 마코토는 못내 자리에 앉아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첫날이었기에 과제 및 시험은 어떻게 진행한다는 대략적인 설명으로 수업은 끝났다. 얼굴을 보아 교수님은 꽤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연세에서 느껴지는 노련함으로 설명하는 중간중간마다 학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센스를 갖고 있었다. 고지식한 분은 아닌 것 같아. 노트를 가방에 넣은 마코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에 앉았던 야마자키는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웅성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반대로, 마코토는 그를 향해 발을 옮겼다.
“야마자키 군.”
아는 사람을 만나 높게 올라간 목소리에도 남자는 본체만체 하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코토는 옆에 서서 그를 보고 있었다. 잘못 본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남자는 자신이 알던 야마자키 소스케가 분명했다.
“야마자키 군. 진학이었구나. 린한테 얘기를 못 들어서 재활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가만있던 눈썹이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역시 린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나. 옅은 웃음을 지은 마코토의 얼굴에 야마자키는 보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이었지만 마코토는 마주친 그 눈에서 그가 자기를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찌릿하고 마주한 눈동자에는 경계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야마자키 군은 합동연습 때도 이랬었지. 둔한 마코토라도 저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기, 같은 수업도 듣고…. 앞으로 잘 지내면 좋겠….”
“잘 지내?”
타치바나치고는 굉장히 용기를 내어 말을 건 것이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어딘가 비꼬듯 일그러져 있었다.
“너랑? 내가?”
그는 시비를 걸듯 손가락으로 마코토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 손길에 물러선 마코토는 손을 드는 그의 행동에 맞는다 생각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곧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야마자키 혼자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야마자키 군…. 왼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가방을 보며 마코토는 그의 부상을 알아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직 다 안 나았나 보네. 수영은 그만둔 걸까? 야마자키라면 코치 같은 걸 해도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더 말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야마자키를 쫓아 급히 계단을 내려가던 마코토는 뒤돌아본 그와 눈이 마주쳤다. 파란 눈동자가 마코토를 보고는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차갑게 식었다. 그 행동에 마코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 *
강의실에서 나온 마코토는 오전보다 한산해진 교정을 걷고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로 손을 뻗은 채 마코토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공기 중에 너울대며 춤을 추던 꽃잎이 살포시 손에 내려앉았다. 떨어지는 꽃잎을 붙잡으면 행운이 온다던대.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코토는 카드 지갑 사이에 붙잡은 꽃잎을 넣었다. 연분홍의 꽃잎에는 봄기운이 가득해 절로 웃음이 났다.
저 멀리 앞에 눈으로만 좇던 야마자키는 교문 근처를 서성이는 인파 사이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만나고 싶지 않은 걸까. 린은 야마자키가 졸업 후 무엇을 할지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도 린이 호주로 가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이니, 지금 같은 대학교에 와 있는 걸 보면 야마자키는 아무도 모르게 대학 진학을 준비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코토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학에서 만난 그가 더없이 반가웠으나 야마자키는 그렇지 않을지도 몰랐다.
야마자키 군은 연습 때도 우리랑은 거의 말하지 않았으니까….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단 생각에 몇 번인가 말을 걸어 보았으나 단답형의 대답만 돌아왔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거겠지. 고등학생 때는 그렇게 넘겼었다. 하지만 오늘 그 모습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걸까?
대학교에 들어가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던 동급생이 있었다. 왜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모든 걸 처음부터 하고 싶다고 했다. 타치바나처럼 착하게 살아 볼까 싶어서. 덧붙인 말은 그저 농담이었겠지만 일부러 이와토비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진학한 것을 보면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았다. 야마자키 군도 그런 걸까?
대학생이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뀐 건 사실이었다. 늘 익숙한 풍경만이 반복되었던 지난 십몇 년의 세월과는 다르게 새로운 것 투성이였다. 보이는 풍경도 지나가는 사람도 모두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다 해서 사람까지 쉽게 바뀔 수 있는 걸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바뀌길 원한다면 그 소원을 이뤄지길 바랐지만, 마코토는 지금까지의 변화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기에 그처럼 변화를 바라지는 않았다. 야마자키 군, 실력도 있었으니까 무리해서라도 수영할 줄 알았는데. 힘차게 나아가던 그의 수영을 떠올리자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마코토도 수영하면 좋을 텐데.’
진로를 정한 후 아무 말이 없던 하루카가 그에게 했던 한마디였다. 하루카는 군말 없이 그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마코토는 마코토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너라면 할 수 있을 테니까. 줄곧 응원만 하던 하루가 지나가는 것처럼 뱉은 말이었지만, 마코토는 그 안에 같이 수영하고 싶단 하루의 본심이 담겨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야마자키 군에게 아쉬운 것도 이런 거겠지.
현 대회에서 이와토비와 사메즈카가 릴레이 시합을 하긴 했지만, 그때 소스케의 어깨는 정상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긴 했어도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혹시나 그때 그 사람들이 다 모여서 다시 릴레이를 할 수 있다면…. 길가에 떨어진 벚꽃잎 위로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연분홍 빛을 뽐내던 꽃잎은 사람들에게 밟혀 짓이겨지고 본래의 빛깔을 잃어갔다. 꿈같은 이야기려나. 바닥에 쌓인 꽃잎 무더기를 가볍게 발로 찬 마코토는 다시는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리며 쓸쓸히 웃었다.
* * *
쪼르르 소리를 내며 물이 담겼다. 마코토는 마주 본 사람 앞에 컵을 내려놓았다. 나무 테이블 위로 나는 가벼운 마찰음에 하루카 역시 소리를 냈다. 고마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하루가 옆에 있으면 항상 이와토비에 있는 느낌이야. 저녁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연습이 끝나자마자 온 하루카의 모습에 마코토는 유난히 헤실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시선에 하루카가 의문을 품자 마코토는 제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오늘 야마자키 군을 봤어.”
“야마자키?”
아, 하루는 야마자키 군을 꺼리던가. 말하고 나서야 괜히 말했나 싶어 입을 막았지만 하루카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두 사람이 아는 야마자키라면 사메즈카의 그뿐이었다.
“응. 야마자키 소스케 군 말야. 같은 학교더라구. 혹시나 싶었는데 한눈에 알아봤어. 정말 깜짝 놀라서….”
“주문하신 히레까스 정식, 고등어 정식 나왔습니다.”
능숙하게 쟁반을 내려놓는 주인아저씨의 손길에 마코토의 말이 끊겼다. 자취방 근처의 식당은 그가 자주 오는 곳이었다. 솜씨가 좋은 하루카와 달리 마코토는 요리에 서툴렀기에 곧잘 이곳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곤 했다. 주인아저씨의 손이 닿은 음식이 도시락보다 맛이 좋은 것이야 당연한 얘기였다.
밥을 많이 드렸으니 부족하면 말씀해 주십쇼. 아저씨는 학생인 두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며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어진 인사에도 아저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자리로 돌아갔다. 무뚝뚝하지만 우직한 모습이 마코토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넘치도록 담긴 식사를 보자 군침이 돌았다.
“그래서?”
젓가락을 집은 하루카는 마코토를 보며 물었다. 야마자키에 대해 묻는 듯했다. 히레까스 한 조각을 입에 넣으려던 마코토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답했다.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하루카는 고등어에 손을 댔다. 잘 익은 생선은 젓가락이 닿자 바스락 소리를 내며 조각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살을 베어 물 때까지도 마코토는 말없이 그저 웃고 있었다. 야마자키에게 말을 걸어 좋은 반응이 나올 리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사람 좋은 마코토가 이와토비에서 알던 사람이란 이유로 말을 걸었다가 괜한 상처를 받진 않을까. 야마자키가 어떻든 하루카는 그게 걱정이었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너는. 하루카는 조용히 오물거리다 말을 돌렸다.
“마코토. 수업은 어땠어?”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마코토가 웃었다.
“아, 응.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교수님들은 괜찮은 것 같아. 수업은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열심히 해 봐야지. 학점도 잘 받고 싶고.”
“아아.”
장학금을 받겠다고 스스로 말한 적은 없었지만 마코토가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간 지켜봐 온 바로 그가 얼마나 노력가인지도 잘 알기에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도 연습 힘내. 아 혹시나 아침에 깨우러 가야 하면….”
“괜찮아. 너도 곧 과제니 시험이니 바쁠 거 아냐.”
“응.”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얼마나 바빠질지 모르기에 마코토는 조용히 수긍했다. 그나마 하루카와 있는 시간만큼은 도쿄에 있어도 도쿄에 있지 않은 기분으로 있을 수 있었는데.
“뭔가, 그리운 일이 되겠는데.”
살며시 웃는 마코토의 얼굴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전혀 본 적 없던 풍경, 낯선 환경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던 하루카와 달리 마코토의 곁에는 늘 쌍둥이와 부모님이 있었으니까. 이와토비에 있는 가족들도 마코토를 그리워하고 있을 터였다.
“마코토.”
“응?”
“힘내.”
무엇을 힘내라는 것인지 풀어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투른 표현에도 마코토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응. 힘낼게, 하루. 환히 웃는 얼굴에 하루카는 다시 고등어를 베어 물었다.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맛에 하루카 역시 그를 보고 웃었다.
* * *
“안녕, 야마자키 군.”
탄산음료를 마시던 야마자키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흘겼다. 고등학생 때처럼 바보 같은 얼굴이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첫 수업 때 반갑지 않은 인사를 나눈 이후로 쭉 이 상태였다. 하루 이틀 내버려 두면 무시당하는 만큼 기가 죽어 다신 말을 걸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소스케의 착각이었다. 마코토는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짐을 풀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아마 자체휴강을 한 학생이 많아 안 그래도 넓은 강의실이 한산했다. 빈자리 역시 널리도록 많았다. 그런데도 마코토는 굳이 야마자키의 옆에 앉았다. 소스케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물끄러미 그를 보다 옆으로 한 자리 옮겨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코토는 엷게 웃을 뿐, 따라가지는 않았다.
개강하고 2주. 마코토는 매번 교양 시간이 되면 야마자키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야마자키는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마코토는 개의치 않았다. 싫다거나 그만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니까.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린이랑 잘 지내는 걸 보면 야마자키도 나쁜 사람은 아닐 테고. 계속 말을 걸다 보면 야마자키 군도 마음을 열어 주지 않을까. 그것이 마코토의 바람이었다.
린에게 야마자키에 대해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본인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린과 하루카는 곧 큰 대회를 앞두고 있어 이런 이유로 폐를 끼칠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는 두 사람 나름대로의 꿈이 있었으니까.
마코토가 야마자키에게 말을 건다 해도 수업시작 전 몇 분의 짧은 시간이 다였다. 그는 야마자키에게 연락처를 받아 낼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묻는다 해도 지금의 반응으로 보아 알려 줄 턱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야마자키는 항상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가곤 했다. 오늘은 마코토도 일찌감치 가방을 챙겨 두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야마자키를 쫓아 그가 일어서면 따라 나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마코토를 불렀다.
“타치바나 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마코토의 시선은 야마자키의 등에서 떨어졌다. 며칠 전 옆자리에 앉아 잘 지내보자 말했던 동기 여자아이였다. 같은 과 중에서도 같은 교양을 듣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마코토는 마주한 여자와 멀어지는 야마자키의 등을 번갈아보며 마음을 졸였다.
“있잖아. 타치바나 군. … 야마자키 군이랑 아는 사이?”
“아… 그냥 조금….”
마코토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보다 야마자키 군을 빨리 쫓지 않으면… 서둘러 이동하려는 마코토가 한 계단을 내려섰을 때, 여학생이 그를 붙잡았다. 팔을 붙잡은 여자는 빨개진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혹시 야마자키 군 연락처라던가 알 수 있을까?”
아, 야마자키 군에게 관심 있는 거구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드러난 감정표현에 마코토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할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나도 그렇게 친한 게 아니라서…. 연락처도 모르고….”
마코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놓쳤겠지. 쫓아가기엔 늦었을 것 같고. 강의실을 나간 야마자키는 이미 건물을 빠져나갔을지도 몰랐다.
“아. 난 당연히 알 줄 알고… 바쁜데 잡아서 미안해.”
“아, 아냐.”
인사를 마친 여학생은 기다리던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빠져나갔다. 야마자키 군, 인기 있구나. 하긴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니까. 다음 강의에 들어오는 사람들로 빈자리는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마코토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창밖을 살폈다. 아침부터 오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손에 쥔 우산이 괜한 짐이 될 일은 없어 보였다.
* * *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학교 안은 한산했다. 평소 같으면 곧장 하루카와 저녁을 먹으러 갔을 테지만 이번 주부터 하루는 저녁에도 훈련이 있다고 했다. 대회가 가까워지는 탓이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네. 학교 근처에 산다던 동기라도 부를까 연락처를 뒤적이던 마코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휴식공간에 놓여 있는 쇼파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지만, 수업이 다 끝나면 텅 비곤 했다. 자판기에서 캔음료를 뽑아 든 그는 바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다는 건 이상한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가더라도 반겨주는 가족이 없다는 것 역시 희한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이제 모두 혼자 해야만 한다는 게 마코토에게는 더없이 낯선 일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일 중 하나였다.
그 역시 저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다. 굳이 야마자키와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는데. ‘마코쨩은 너무 상냥하니까.’ 나기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던 마코토는 한숨을 뱉었다. 상냥하지 않은데. 정말 상냥하다면 야마자키 군이 귀찮아하는데도 이렇게 말을 걸지는 않을 거야. 그냥 내 욕심이겠지.
내가 외로워서 야마자키 군도 외로울지도 모른다고 혼자 착각하는 건 아닐까. 야마자키 군은 이전에 도쿄에서 살았다고 했으니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교양 수업에서 만나는 야마자키는 항상 혼자였으니까 그냥 넘겨짚고 있는 걸지도 몰라.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마코토는 손에 쥔 캔을 만지작거렸다.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 되어도 뭔가 달라지는 건 아니구나.
“어이.”
그때,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공간에 울렸다. 들려온 목소리에 마코토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모습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마자키 군!”
반갑게 일어서는 모양새에 소스케의 미간이 구겨졌다. 조,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닌가 보네. 마코토는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피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야마자키는 마코토를 향해 걸어왔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어두운 건물 안에 울렸다. 소스케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꼭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란 생각에 마코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야마자키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날처럼 눈앞으로 다가오는 주먹에 마코토는 맞는다 생각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몸 어디에도 그의 손이 닿지 않았다. 어? 마코토가 이상하다 여기며 눈을 떴을 때는 코앞에 야마자키의 얼굴이 있었다.
소스케는 손으로 벽을 짚은 채 그를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 치켜 뜬 푸른 눈동자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마코토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야마자키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눈빛만으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는 척, 하지 마. 네 얼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마코토는 두 눈을 깜빡이며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할 말을 끝냈는지 소스케는 팔을 떼고 그에게서 돌아섰다.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계속 노력하다 보면 야마자키 군도 마음을 열고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만…. 마코토는 멀어지려는 야마자키를 붙잡았다.
“야, 야마자키 군이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친구니까 잘 지내면….”
야마자키는 어깨에 얹힌 마코토의 손을 쳐 냈다.
“친구? 누가 친구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마코토는 맞은 손을 감싸며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건물 안에서 이를 가는 야마자키는 꼭 짐승 같았다. 그 기세에 기가 눌린 마코토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린이랑도 계속 연락하고 있잖아. 기왕 아는 사이니까 잘 지내면…”
그러자 야마자키는 다시 마코토를 향해 다가왔다. 이번에야 말로 맞는다. 마코토는 눈을 감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떴고, 소스케는 그대로 다가와 마코토의 어깨를 밀쳤다.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그의 등이 벽에 부딪쳤다. 아, 아파. 새어 나오려던 목소리는 몰아세우는 외침에 의해 묻혔다.
“몸도 멀쩡한 새끼가 수영도 포기했으면서. 그게 얼마나 큰 사치인 줄 알아?”
그 말에 마코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나세 옆에 설 수 없다는 이유로 그만뒀잖아!”
어째서 야마자키 군이 그런 걸 알고 있어? 야마자키의 손에 붙들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마코토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정곡을 찌른 야마자키는 날이 선 얼굴로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넌 뭘 하든 그렇지. 네 생각보다 남의 눈치나 봐서 행동하잖아. 병신 같은 새끼.”
야마자키가 손을 놓자 마코토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마 못 가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마자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속을 후비는 것 같았다. 한심한 놈. 소스케는 작게 욕을 뱉으며 그에게서 돌아섰다. 나… 나는…. 마코토는 방금 잡혔던 곳에 손을 얹었다. 어둑어둑해진 건물 밖으로 나가는 야마자키의 등이 보였다.
야마자키 군. 야마자키 군! 멀어지는 등에 대고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구겨진 옷깃만큼이나 산산조각 난 마음이 바스라진 벚꽃 잎과 함께 봄비에 젖어 갔다. 남자는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2. 겁쟁이페달 신아라 소설 '그래도, 살아간다'(구간)
글: 깡
표지: 제이님
줄거리
고3 마지막 인터하이가 끝난 시점. 가을이 다가오는 와중에 아라키타는 이즈미다의 입원과, 학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후쿠쨩의 갑작스런 유학 등으로 일상에 이상 전조를 느낀다. 편의점에 다녀오다 목격한 사건 이후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아라키타가 집에 도착하자 TV에서는 미국의 중대발표가 나온다. 사람을 어떤 한 가지에 미치게 하는 그 바이러스는 발생 원인도 감염 경로도 모든 것이 인간이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 밝힌 발표에 전세계는 혼란에 빠져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 한 줄 요약
세계적으로 퍼진 바이러스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아라키타의 이야기
알람을 껐을 때는 항상 일어나던 그 시간이었다. 창밖을 보니 늦더위가 한창인지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더럽게 더운 날. 언제나처럼 가벼운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비앙키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 곧 가을임을 알리듯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래도 전력으로 달렸던 그날만큼 덥지는 않았다.
인터하이가 끝났다. 오노다쨩이 마나미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하코네는 졌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고교 마지막 인터하이가, 오직 1등을 위해 달려왔던 모든 게 끝났다. 조금 더 빨리 달렸더라면, 조금 더 연습했더라면 그런 후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후쿠쨩에게 원하던 말을 들었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하코네를 최상의 위치로 이끌었다. 조금 분하긴 하지만, 내 역할은 거기까지였으니까. 하코네는 약하지 않았다. 다만 오노다쨩이, 소호쿠가 조금 더 강했을 뿐이었다.
부실에 도착하자 트레이닝 중인 이즈미다가 보였다. 녀석은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얼굴도 몸도 땀범벅이 된 걸 보면 내가 일어난 것보다도 한참 전에 와서 연습을 시작한 듯했다. 인터하이 이후로 부쩍 늘어난 연습량에 걱정되긴 했지만, 간단한 손짓으로 말을 대신했다. 연습에 집중하고 싶은 거라면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아마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거겠지. 후회가 남고 더 잘하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하는 거라 짐작했다. '이즈미다, 무리하지 마.' 연습이 과하다 싶을 때는 신카이가 나서 이즈미다를 말리기도 했기 때문에 부실에서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무리하더라도 제 몸 하나 못 챙길 녀석은 아니니까. 나는 그런 녀석을 지나쳤다.
교실 안의 선풍기는 돌아가는 날보다 돌아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성큼 가을이 다가온다는 느낌이었다. 졸업하면 뭐하지. 일단 진학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문득 드는 생각에 교실을 둘러보았다. 빈 책상이 드문드문 보였다. 인터하이 후에 운동부에 속한 녀석들이 수업을 빠지는 건 예삿일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넘겼다. 얼핏 보아도 빈 책상이 조금 많았는데 우리 반에 이렇게 운동부가 많았나 싶었다. 하긴 토도, 신카이에 나만 해도 3명이니까.
토도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하는지 휴대폰을 붙잡은 채 재수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고, 신카이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별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턱을 괸 채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 생활도 곧 끝인가. 영원한 게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나는 여전히 바이크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대로 있어 봤자 변하지 않는 건 재미도 없고. 추천 입학을 하면 대학교에 진학하는 건 무난하다고 했다. 그것도 성적이 밑바닥이라 받아 주는 곳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었지만, 로드를 탈 수만 있고 원하는 과가 있다면 어딜 가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후쿠쨩도 여기저기서 추천이 들어오는 모양이고, 신카이도 갈 곳 정도는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토도는 진학하지 않는다 했으니 잘 모르겠지만, 하코네 녀석들은 뭐가 되든 될 놈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건 꽤나 큰 착각이었다.
인터하이가 끝나고 2주를 넘어가던 그날, 이즈미다는 병원에 입원했다. 사유는 근육파열이었다. 뭐 그런 걸로 입원을 하고 그래. 하루 늦게 소식을 들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어제 병원에 다녀온 토도는 한 번 다녀오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항상 웃기만 하던 얼굴이 꽤 심각한 낯을 하고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카이와 함께 병실에 들어서서야 나는 토도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미세 파열 정도로 짐작했던 이즈미다는 몸 곳곳에 반깁스를 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분 파열을 넘어 완전 파열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통증을 못 느끼진 않았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고 의사에게 욕을 먹었다’며 이즈미다는 웃었다. 내년에는 하코네에게 꼭 왕자의 이름을 가져올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서 연습하고 싶다고 했다. 녀석은 누워서도 머릿속에 인터하이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왕자의 이름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선 그 정도 기백은 있어야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뒤통수를 한 대 치며 얼른 나으라고 욕을 퍼부었다.
이즈미다는 2주 후 퇴원했다. 퇴원이 빠른 편이었기에 후쿠쨩은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이즈미다의 부 활동을 금지했다.하지만 이즈미다는 그만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재입원했다는 황당한 소식에 다시 돼지와 함께 녀석을 찾아갔다. 그때 이즈미다의 혈색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얼굴은 불안한 빛을 띠고 있었고 항상 열의에 넘치던 눈동자는 그 빛을 잃은 듯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의 그 눈빛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즈미다의 손은 아령을 쥐고 있었다. 잠시라도 트레이닝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신카이는 너도 참 대단하다며 이즈미다의 손에서 아령을 뺏으려 했지만 이즈미다는 그런 신카이의 손을 매몰차게 쳐 냈다. 이즈미다가 신카이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처음이라 본인 역시 당황했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던 이즈미다가 곧 입을 열었다.
“선배… 저 무서워요.”
무슨 개소리냐고 물으려 했으나 신카이는 나를 막아 그가 계속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저도 아는데. 그만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계속 몸이 움직여요. 퇴원했을 때도 그랬어요. 정신 차리면 자전거에 타고 있더라구요. 분명히 아픈데. 이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멈추질 못하겠어요.”
이 새끼가 미쳤나.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 반응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더 움직였다간 너 영영 로드고 뭐고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어. 알아? 병실이 떠나가도록 소리치자 신카이가 나를 말렸다. 돼지 새끼는 나를 먼저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아무래도 방해가 되니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병실 밖의 의자에 앉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하얀 간호복이 역겨웠다. 병원은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태어나는 한편 죽어나는 장소. 이 시대에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인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 누워 있으니 이즈미다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집에서 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어느새 옆에 다가온 이즈미다의 부모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요, 문병까지 와 줬는데. 토이치로가 많이 불안해해서 학교 친구들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까 잠깐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아요. 팔 안쪽에서 혈관이 터질 정도로 운동하면서도 멈추질 않아요. 병원 측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면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채 이야기하는 아줌마의 얼굴에 이대로 가다간 이즈미다보다도 아줌마가 먼저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병원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얼핏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와 동시에 이즈미다는 퇴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즈미다의 입원을 전후로 부를 탈퇴하는 사람이 늘었다. 근육이 완전히 파열될 만큼 운동을 한 이즈미다가 특수한 경우였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으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후쿠쨩은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 ‘애도 아니고 그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 않나. 다음 인터하이 때 왕자를 탈환할 근성 있는 녀석이라면 아직 많다’고 답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 애들과 사이가 좋은 신카이가 이유를 물었는데 탈퇴 사유는 다 제각각이었다. ‘자전거가 재미없어졌다’, ‘다른 부 활동을 하고 싶다’, ‘부 활동할 시간이 없어졌다’,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 등등. 내 예상과는 달랐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후쿠쨩 말대로다. 남을 놈은 남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결국엔 우승할 거다. 이번에 못했다면 내년에는 더더욱 왕자를 되찾아야만 하니까.
밥상에 앉아 수저를 들었을 때도 언제나와 같은 저녁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최근 묻지 마 살인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요즘 들어 저런 뉴스가 하도 많이 나와서인지 뉴스를 보는 가족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엄마가 ‘세상에’ 하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나든 말든 우리 가족과는 인연이 없는 얘기였다. 한순간의 가십거리로 끝날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비앙키를 조금이라도 더 타는 게 낫지.
“너희들도 조심해. 집에 일찍일찍 다니고.”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젓가락을 든 손을 몇 번 흔들던 녀석은 꿀꺽 밥을 삼킨 뒤 말을 꺼냈다.
“외국에서도 살인 사건도 많이 일어난데. 진짜 무슨 일 나는 거 아냐?”
“아, 그러고 보니 요새 학교 안 오는 애들 많아지지 않았어?”
“맞아. 부활 그만두는 애들도 많구.”
“우리도 그런데. 오빠네는?”
빈자리가 몇 개 있긴 했지만, 무슨 사정이 있든 나와는 상관없는 녀석들이었다.
“몰라. 관심 없어.”
“집안 사정이라고 하던데. 부럽다. 나도 학교 가기 싫어.”
“친척이라도 돌아가셨나 보지. 그보다 너 저번 시험 성적 떨어졌잖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 또 잔소리! 엄마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 밥만.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데.”
“이 지지배가? 뭔 말만 하면 잔소리래.”
저녁때 엄마와 동생이 식탁을 마주한 채 한판 하긴 했지만 늘 있는 일이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일어나 학교에 가고 비앙키에 타고 부 활동이 끝나면 집에 돌아오는 더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부터 일은 시작되어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는 날벼락이 떨어져 있었다.
“야스토모!”
헐레벌떡 교실문을 열어젖힌 돼지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 진파치를 불렀다. 토도 역시 갑자기 이름을 불려 눈을 크게 뜨고 신카이를 보고 있었다. 그는 토도와 내 시선이 저를 향한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주이치… 주이치가….”
신카이는 손에 쥔 편지를 내밀었다. 나는 신카이에게서 편지를 뺏어들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얀 편지지에 검은 펜으로 적힌 글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아라키타, 신카이, 토도에게.
말도 없이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 정말로 너희에게 면목이 없어.
하지만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에 이렇게라도 인사를 남긴다. 나는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
급하게 가게 되어 아직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p.s 너희도 너희가 원하는 길을 가길 바란다.
편지에 적힌 것은 이게 전부였다. 용건만 간단히. 참 후쿠쨩다운 편지였다.
“프랑스에 갔다고?”
“후쿠가 부도 내팽개치고 갈 리가 없잖아.”
“몰라. 편지 받은 게 전부야. 연락도 없었고 급하게 간 거라 나도 뭐가 뭔지….”
“이건 뭐야? 원하는 길을 가라는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후쿠쨩이라면 대학교야 어디든 잘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기에 굳이 프랑스로 떠나다니. 후쿠쨩이 프랑스에 갈 일이라면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뜨루 드 프랑스. 여름에 열리는 경기가 다시 시작하려면 1년이나 남은 셈이다. 그런데 지금 프랑스에 가야 했다고?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고 했으니 부모님이나 집안과 관련된 사정일지도 모른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복도에서 비명이 들렸다. 교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복도에 여자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칼에 찔렸는지 하얀 교복 셔츠가 빨간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흥건하게 새어 나오는 피로 보아 쓰러진 학생은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그 옆에 있던 여학생이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해 내는 친구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범인으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식칼을 든 채 서 있었다.남자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손에 쥔 칼과 피 그리고 쓰러진 여자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이 칼을 떨어트렸다.
“아… 아냐, 내가 그런 게 아냐. 나는 그냥 좋아서….”
좋아서? 사귀다 차이기라도 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을 죽였다고. 장난이 아니란 말야.
“이… 이게 뭐야.”
당황한 토도가 탄식과 같은 소리를 냈을 때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녀석의 배에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돼지 새끼! 뭐하냐! 빨리 구급차 불러!”
내 말에 신카이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배에 꽂힌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남자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은 저항하며 내게도 주먹을 날렸으나 이딴 주먹에 당할 만큼 힘이 약하지도 짬이 없지도 않았기에 상대하기는 쉬웠다.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주먹에 저항하는 것 외엔 자리에서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흔들리는 그 눈동자가 어딘가 모르게 이즈미다의 눈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교무실에서 선생이 달려왔고, 창밖에서는 언제 도착했는지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의 손에 잡힌 녀석은 계속해서 ‘아냐, 내가 한 게 아냐’라는 당치도 않은 변명을 하고 있었다.
씨발,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아래는 L52부스에 나오는 책들입니다. 각각 예약사항은 적어둔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이연님(@iyeonnim) 쿠로다이 First Day -> 예약페이지
*레드존이므로 쿠로다이 일반판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카키아님(@_kakia) 마코하루, 소스마코 만화 -> 예약페이지
그 외 레제르님의 마코하루 소설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많이 찾아와 주세요 ㅇㅅ)/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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