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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프리배포전 마코하루, 소스마코 소설 인포
9월 28일 프리배포전 사 02 부스에 나오는 Free! 마코하루 소설, 소스마코 소설 인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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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유치원 1권이요. / 유치원 1권 소스마코 1권이요.
순서대로 유치원/소스마코/하루/구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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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양 요약
1. 마코하루 소설 - 유치원 AU
'이와토비 유치원 범고래반 마코토 선생님'
전연령가, B6, 무선, 약 104p, 10,000원, 예약특전 12p
2. 소스마코 소설
'Embraced'
19금, B6, 무선, 약 40p, 5,000원
3, 4번은 재판 수량조사로 선입금예약만 받습니다.
선입금예약양식에 맞춰 작성해 주시고, 행사 당일 부스에 디스하지 않으니 따로 말씀해 주세요.
3. 마코하루 소설
'네가 없는 하루'
전연령가, A5, 무선, 48p, 5,000원
4. 마코하루 소설
'구속'
19금, A5, 무선, 58p, 6,000원
*구속은 재편집 과정에서 폰트 및 본문 편집으로 페이지가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은 1쇄와 같습니다.
상세 인포
1. 마코하루 소설 '이와토비 유치원 범고래반 마코토 선생님'
글: 깡
표지: 송뫼
B6 무선제본 104p 10,000원
줄거리
(마코토, 아마카타, 고우가 유치원 선생님으로 나머지는 유치원생으로 등장합니다. 마코하루 위주로 소스린, 나기레이 등 커플링 요소가 조금 있습니다.)
마코토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는 하루카 위주의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샘플을 확인해 주세요.
1
“그럼 다들 내일 봐요!”
“안녕히 계세요!”
여린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교실문이 열렸다. 선생님은 문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배웅했지만, 빠르게 유치원 문을 빠져나간 아이들은 앞서 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녕, 마코토 선생님! 급하게 올라 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코토는 양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교실을 빠져나오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자리에 앉았다.
“잘 가, 린. 내일 보자, 레이. 앗, 나기사! 과자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조금 있다 저녁 먹어야지.”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의 손에 아이들은 손을 맞춰 짝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귀갓길에 올랐다. 집이 먼 아이들은 유치원 통학 버스로, 가까운 아이들은 마중 나온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하나하나 나가는 아이들을 눈으로 훑던 마코토는 오늘도 어김없이 한 아이가 교실에 남아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마도 그가 데리러 갈 때까지 아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늘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배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로 들어서자 정리하지 않은 의자들이 삐뚤빼뚤 놓여 있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개구쟁이들이 정돈을 잊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책상 위는 마지막 정리 시간을 준 덕분에 깨끗했다. 하지만 딱 한 자리 가방이 있는 자리가 있었다. 마코토가 예상했듯, 교실에 남아 있던 그 아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코토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는 작은 걸음으로 빠르게 그를 향해 달려왔다. 도도도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고는 그의 바지를 꼭 붙잡았다. 선생님은 웃으며 다리에 붙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고개가 아프도록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마코토는 자리에 앉아, 아이와 눈을 맞췄다. 파란 눈동자가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쨩, 집에 안 가니?”
하루카는 같은 키가 된 선생님을 보며 그의 팔을 꼭 붙잡았다. 앙다문 입술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카의 시선은 마코토를 향한 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열진 않을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도 하루카는 평소처럼 얌전히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언제나와 같은 아이의 어리광일 뿐이다.
선생님은 착 달라붙어 제 팔을 붙잡은 아이의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선생님의 손길을 받는 하루카는 작은 동물처럼 이따금 눈을 감아가며 그의 손길을 느꼈다. 기분 좋은 듯한 얼굴에 아이를 보는 선생님 역시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살며시 홍조가 어린 볼이 귀엽기만 해, 마코토는 다정히 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할머니가 데리러 오시는 거야?”
대답 대신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에… 그럼 혼자 가는 거야?”
다시 얼굴을 도리도리 흔드는 하루카의 모습에 마코토는 난처한 듯 웃으며 아이를 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마코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기다릴 거야?”
그제야 하루카의 얼굴이 위아래로 끄덕끄덕 움직였다. 항상 그랬다. 하루카는 귀가 시간이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바로 옆집에 사는 마코토 선생님과 같이 돌아간다는 이유였다. 하루카를 데리러 올 사람이 조부모님밖에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리다 해도 하루카 혼자서 돌아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하루카 역시 할머니가 같이 나갈 수 없으면 혼자 조심히 다녀오라고 배웅하곤 했다. 그러나 하루카는 언제나 마코토와 함께 돌아가고 싶어 했다.
“어쩌지… 선생님 교실도 정리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하루가 도와줄게!”
홍조 어린 얼굴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앞으로 꼭 쥔 주먹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마코토는 못내 진 척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하루쨩한테 맡겨 볼까!”
하루카는 책상을 매만졌다. 파란 배경에 범고래가 그려진 데스크 매트는 아이의 손이 닿을 때마다 눌리며 폭신폭신한 감촉을 자랑했다. 마코토 선생님 같아. 범고래의 선을 따라 손끝으로 모양을 그려보던 아이는 패드 위에 올려진 색종이를 보았다. 빨강, 노랑, 분홍, 파랑, 검정 등 가지각색의 색종이가 아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쨩. 선생님 교실 청소하고 올 동안 접어 줄래?”
마코토는 하루카의 앞에 종이학 한 마리를 가져다 놓으며 물었다. 종이학 접기라면 미술 시간에 고우 선생님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하는 것과 같은 일이 과연 마코토를 돕는 일일까. 하루카는 의문을 품었지만, 환하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자신이 하는 것과 선생님이 하는 것에는 힘이 필요한 일, 소위 어른만 할 수 있는 일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하루카는 알고 있었다. 제 힘으로는 선생님을 도울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하루카는 떼를 쓰지 않았다. 대신 마코토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책상 한구석에 놓여 있는 유리병에는 하루카와 마코토 선생님이 접어 넣은 종이학이 차 있었다. 그저 시간 때우기용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마코토가 이루고 싶은 소원이라면 하루카도 그게 무엇이든 이루어지길 바랐다. 선생님이라면 분명 좋은 소원을 빌 테니까. 하루카는 마코토가 자신을 믿고 맡겨 준 일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고사리 같은 손이 색종이를 붙잡았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는 종이의 끝과 끝을 맞대어 접었다. 손톱으로 꾹꾹 누르며 접어야 깔끔하고 예쁘게 접을 수 있다는 고우 선생님의 팁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완성된 종이학을 앞에 놓았다. 완성된 학은 고우 선생님이 시범으로 접었던 학과 견주어도 다를 것이 없어 웃음이 났다. 예쁘게 접으면 마코토 선생님이 칭찬해 줄 거야. 다시 또 쓰다듬어 주면서 나를 보고 웃어 줄 거야. 하루카는 마코토가 해주었던 것처럼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완성된 종이학을 보면 마코토가 기뻐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마코토 선생님은 다정하고 상냥해. 그래서 선생님이 좋아. 처음에 마코토가 좋다고 생각했을 때, 하루카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설렘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TV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남성에 대한 호감은 부모님의 부재, 특히나 아빠에게서 받아야 하는 애정을 남자 선생님에게 바라는 경우에 생긴다는 말이 있었다.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았다. 아빠의 부재는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유명한 아저씨들이 얘기했었으니까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루카는 6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어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그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관심 없는 것 같지만, 하루카는 나서지 않을 뿐 주변을 세심히 보고 있었기에 다른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하루카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 마음을 단순히 아빠가 없어서 나타나는 애정결핍이라 여기는 어른들이 싫었다. 그것도 있지만, 아냐. 아빠도 보고 싶지만, 마코토 선생님도 보고 싶어. 아빠가 옆에 있어도 마코토 선생님이 보고 싶을 거란 말야. 아빠를 좋아하는 거랑 마코토를 좋아하는 건 다르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하루카는 애꿎은 색종이를 꾹꾹 눌러 접으며 화풀이를 했다. 그렇게 완성한 종이학은 너무 세게 눌러서인지 날개 쪽이 부드럽게 펴지지 않았다.
‘만든 걸 보면 생각하는 게 전부 드러나.’
눈앞의 종이학을 보며 고우 선생님의 말을 체감한 하루카는 방금 접은 학을 책상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그치만 달라. 아빠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으라면서 쓰다듬어 주는 거랑 선생님이 쓰다듬어 주는 건 달라. 하루카는 제 머리를 매만져 주던 마코토의 커다란 손을 떠올렸다. 마코토 선생님한테는 예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어. 고등어도 같이 먹고 싶구, 같이 수영하러 가고 싶어. 하루카는 가슴에 자그마한 손을 얹고 두근거림을 느꼈다. 쿵쿵 뛰는 고동을 들으며 하루카는 간질거리는 느낌에 베시시 웃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만들 거야. 하루카는 주먹을 꼭 쥐고는 다시 종이학 만들기에 전념했다. 창밖에는 어느새 땅거미가 어슴푸레 퍼져 가고 있었다.
2
요구르트와 쿠키를 보던 하루카는 고개를 들어 마코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오늘의 간식을 나눠 주고 있었다. 초코칩이 박혀 있는 쿠키. 단맛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치원에서 나눠 주는 간식은 맛있었기에 좋아하는 편이었다. 분명 신나는 간식 시간인데도 하루카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방금 나기사의 손에 이끌려 간식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늦게 받아야 마코토 선생님이랑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는데. 하루카의 생각대로라면 아이는 마지막 순서로 나가 선생님에게 말을 붙일 예정이었다. 항상 꼴찌로 간식을 받아 선생님이랑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기사가 ‘빨리 나가지 않으면 간식 못 먹을지도 몰라’라며 하루카의 손을 끌었다. 간식은 아이들의 수만큼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나기사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뒤에 있던 린이 안 가고 뭐하냔 얼굴로 하루카를 보았기에 따로 입을 열기도 귀찮아 가만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어제 집까지 데려다 주셨고, 오늘도 같이 갈 거니까 괜찮겠지.
하루카는 마코토를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에 놓인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마코토 선생님이 준 거니까, 아껴 먹어야지. 하루카는 간식을 나눠 주던 손길을 생각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있잖아, 레이쨩. 레이쨩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그런 거 없어요.”
“에, 나는 레이쨩 좋아하는데. 아주 많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애초에 나기사군이 좋아한다는 건 뭐랄까, 음식보다 좋다거나 그런 말이잖아요.”
“응. 나 레이쨩 많이 좋아하는걸. 이 초코칩쿠키보다 더 좋아하니까.”
나기사는 쿠키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웃었다.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 얘기를 하는데 왜 비교 대상이 쿠키인 거죠?”
“그치만 다른 건 잘 알아. 쿠키를 보면 가슴이 쿵쿵거리거나 하지 않으니까. 레이쨩은 요새 나만 보면 얼굴 빨개진다던가 하지 않아? 더워진다거나?”
“그건 날이 더워서 그런 거예요.”
“에에, 정말? 내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구? 난 레이쨩 많이 좋아하는데….”
“그… 그건….”
레이는 어버버 말을 더듬다가 눈앞에 있던 요구르트를 단번에 비워냈다. 속이 답답했던 모양인지 안경 너머의 눈이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휴…, 저 바퀴벌레들.”
린은 나기사와 레이를 보며 혀를 찼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동의를 구하며 하루카를 힐끗 보았지만, 하루카는 다른 친구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하루카의 눈빛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린은 혀를 차며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쯧, 아주 뚫어지겠네. 떼어질 줄 모르는 하루카의 눈빛에 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란 눈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뻔히 알기에 린은 받아 온 쿠키를 반으로 나누며 애꿎은 쿠키에 화풀이했다.
못마땅한 린의 얼굴을 살피던 나기사는 부끄러움에 엎드린 레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넌지시 하루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루쨩! 하루쨩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쿠키를 조각조각 내고 있던 린이 움찔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뜨악하고 입을 벌린 린이 나기사를 노려보았지만, 나기사는 헤실헤실 천진난만한 웃음을 띤 채 자줏빛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린도 궁금하잖아? 슬며시 윙크를 해 보이는 나기사의 행동에 린은 삐죽 내밀었던 입술을 넣었다. 그건 그렇지만….
나기사의 질문에 하루카는 책상 위에 놓인 쿠키를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있어.”
“에, 누구? 누군데?”
“하루쨩상,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누군데?”
테이블에 앉은 나머지 셋의 시선이 본인에게 집중되자 하루카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아이들에게 간식을 전부 나눠 준 마코토 선생님이 박수를 두어 번 치며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자, 모두 다 간식 받았죠? 먼저 먹은 친구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하나, 둘!”
마코토의 신호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 합창을 시작했다.
“두 손 짝! 소리 없이 짝! 맛있는 간식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손뼉을 치는 와중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던 아이들은 하루카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하루카 역시 눈을 감지 않은 채,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합창 중인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하루쨩 눈이 반짝반짝거려. 혹시…. 나기사가 눈치채고 마코토 선생님을 보았을 때 린은 이미 체념한 듯 짜증 난다는 얼굴로 쿠키를 깨물었다. 바사삭 하는 소리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 먼저 드세요. 친구들아, 맛있게 먹자! 맛있게 먹겠습니다~!”
레이는 변해 가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곧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간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 나기사는 방긋방긋 웃으며 하루카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친구를 향해 말했다.
“하루쨩, 나 응원할게!”
“…고마워….”
레이는 앞에 앉은 린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고, 린은 나기사를 노려보았다. 나기사는 혀를 내밀며 웃었지만, 린은 본 체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도움이 안 돼. 순식간에 간식을 먹어 치운 린은 이어지는 자유 시간에 맞춰 교실 밖으로 향했다. 토라진 듯한 모습에 레이만이 어쩔 줄 모른 채 하루카와 나기사를 번갈아 보았다.
마코토는 교무실에서 파일을 정리한 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은 즐거웠다. 고단하고 힘들어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그 피곤함이 싹 사라지곤 했다. 특히나 ‘선생님’ 하고 다가오며 웃음 짓는 얼굴을 볼 때면 오히려 자신이 아이들에게 치유받는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어린아이들은 아이들만이 가진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마코토 선생님. 오늘도 인기가 많네요.”
“아, 하하. 하루가 기다리나요?”
“오늘은 하루 말고도 더 있어요.”
“아…?”
“린이요.”
그랬기에 최근 하나의 고민거리로 떠오른 린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부턴가 마코토를 대하는 린의 언행이 갑작스레 차가워졌다. 처음에는 집에 갈 때 매번 하던 하이파이브를 해 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간식을 나눠 줄 때도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인사하며 받아 가던 아이가 입 한 번 열지 않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의 앞을 지나갔다.
“린쨩, 요즘 무슨 일 있니?”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아이는 “아무 일 없는데” 하고 선생님의 말을 받아넘겼다. 또 마코토의 행동 하나하나에 딴죽을 걸었다. 분명히 나누어 준 안내문을 받지 못해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고, 그런 건 받은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아이들의 학습 능력뿐 아니라 성취감을 위해 쉬운 문제만 골라내는 쪽지시험에서 일부러 0점을 받는다거나 하는 류였다.
그 조그마한 아이가 선생님을 괴롭히든 말든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맡은 반 학생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것은 마코토에게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경력 몇 년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잘 지내던 학생의 태도가 변한 경우는 드물었기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마코토는 자기 반 학생 누구에게나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 모두와 눈을 맞추어 인사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관심받기 위한 장난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가. 질투. 린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유치원의 선생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린은 원래 쾌활한 성격을 가진 아이지만, 애정표현에는 조금 서툰 면이 있어서 좋아하는 아이에게 직접 마음을 전하기보다는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괴롭히거나 싫어한다거나 하는 말로 좋아한다는 마음을 대신 전하는 아이였다. 하루카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하루카는 린을 그저 같은 반 친구로만 생각한다는 것. 거기에 그 하루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마코토임을 생각하면 린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처음으로 같은 또래친구를 만나 사귀고 싸우고 화해하고 여러 관계를 반복할아이들이 예행연습을 하는 단계였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지만, 그런 감정과 관련된 일들은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마코토는 파일을 책꽂이에 끼워 넣으며 작게 한숨을 쉬려다 하루카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뒤를 돌아보자 교무실 문 틈새로 하루카가 눈을 빛내고 있었고, 그보다 더 뒤에서 린 역시 하루카를 보고 있었다. 린은 보통 통학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 마련인데, 오늘은 고우 선생님과 같이 돌아가겠다며 떼를 써 남은 모양이었다.
“저기, 고우 선생님.”
“네. 선생님.”
“린쨩, 역시 질투일까요?”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소곤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고우 선생님은 웃었다. 뻔한 이야기를 묻는 마코토의 우유부단함에도 웃음이 났고 사촌인 린이 질투에 눈이 멀어 최근 마코토에게 하는 행동들도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웃던 고우 선생님은 무언가 생각난 듯, 책상 한편에 쌓여 있던 스케치북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나나세 하루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린쨩이야 원래 그렇잖아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 거예요. 그건 그렇고 하루카는 정말 선생님을 좋아하나 봐요.”
스케치북을 넘기자 크레파스로 그려둔 아이의 그림이 나타났다. 삐뚤빼뚤한 선이 여러 줄 이어져 제법 그림다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유치원생이 그렸다고는 보기 힘든 풍경화나 상상화 같은 것들도 있었으나, 고우 선생님이 보여 주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었다. 오늘 날짜가 적혀 있는 페이지에 그려진 그림을 펼치며 고우는 마코토에게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남자에게 안겨 있는 그림이었다. 검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아이. 한눈에 보아도 그림 속의 주인공은 마코토와 하루카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관찰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발달적인 측면에서도, 창의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해요.”
“진짜 잘 그렸네요. 저보다 낫겠는데요.”
품에 안겨 있는 하루카는 홍조를 띤 채 마코토를 보며 웃고 있었다. 하루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해 주는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워 마코토는 그림 속 하루카를 손으로 더듬었다.
한편 밖에 있던 하루카는 고우와 마코토가 딱 붙어 무언가를 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웃고 있는 마코토를 보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마코토 선생님은 역시 자기 또래의 사람들이 더 좋을까.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까….
교무실 문을 꼭 쥐던 하루카는 손을 놓고 두 손을 쫙 폈다. 작은 손가락 열 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여섯 살이고, 선생님은 적어도 어른일 테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했지만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숫자에 하루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냐, 그래도 고우 선생님한테 지지 않아. 아이는 다시 주먹을 꼭 쥐고 선생님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루카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으며 휘어지는 눈꼬리에 하루카는 교무실 문을 열고 마코토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선생님이 하루카를 보고 있었지만 하루카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마코토의 바짓단을 붙잡았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며 선생님에게 무언의 말을 건넸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읽어 낸 마코토는 자리에 앉아 방금 그림 속의 하루카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이제 곧 갈 거야. 많이 기다렸니?”
하루카는 좌우로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고우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린도 일편단심이지만, 하루카도 그에 못지않은걸. 어쩌다 똑 닮은 아이를 좋아하게 됐는지…. 작은 아이들이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린이 속을 태우며 앓고 있는 건 역시 적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인가…. 고우는 린의 숙적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티셔츠 아래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가슴 근육과 소매 아래의 팔근육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 고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지. 어서 가지 않으면.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선생님. 린도 기다리는 모양이고…. 문단속 잘 부탁드려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고우의 인사에 마코토도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수고하셨어요. 고우 선생님.”
선생님이 인사, 그럼 나도. 나도 할래. 하루카도 마코토를 따라 고우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꾸벅 인사를 하는 하루의 모습에 고우는 ‘하루도 잘 가’란 인사하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문밖에 홀로 서 있을 린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루카가 마코토에게 꼭 붙어 있는 건 보았을까. 상처받아 혹시 울고 있진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걱정과 다르게 린은 복도 벽을 등지고 서서 덤덤한 얼굴로 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만이 없는 건 아닌지 입을 삐죽 내민 상태였다.
린은 고우가 밖으로 나오자 말없이 그녀 앞에서 걷기 시작했지만, 평소처럼 쾌활한 모습은 아니라 내심 마코토가 왜 린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그녀도 알 것 같았다. 걱정되겠지. 반 아이인걸. 자기 반 아이들을 생각하던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린에게 말했다.
“린, 너무 못살게 굴지 마.”
“누가…!!”
린은 뒤돌아 고우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조용히 자신을 주시하는 눈에 시선을 회피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적 없어.”
간신히 고집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고우는 뒤에서 앞서 걸어가는 아이를 보았다. 린은 적어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는지는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하루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눈앞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화풀이로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야만 했다. 하루카에게 했다간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사이가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르고, 당사자한테 할 수 없다면 하루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마코토가 그 대상이 되기 쉬웠다.
시무룩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지만, 린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부진 얼굴이었다. 이 이상 마코토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괜찮겠지. 아이들의 감정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도 허다하니까. 그녀의 손이 골똘히 생각하며 걷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을 맞잡은 채 걷는 두 사람 사이로 서늘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땅거미가 지는 시간, 주황빛으로 물들었던 노을이 사라지고 어느새 푸른빛의 어둠이 이와토비 가득히 내려앉고 있었다. 아이는 그 작은 손으로 선생님의 두 번째 손가락을 붙잡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이 빠져나갈세라 하루카는 마코토의 손을 꽉 쥔 채였다. 떨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마코토는 하루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넌지시 물음을 건넸다.
“하루쨩, 오늘 어땠어?”
“…오늘?”
마코토의 물음에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이 어려웠나. 마코토는 웃으며 하루카에게 설명해 주었다.
“응. 하루쨩 기분이 어땠는지 묻는 거야. 재밌었다던가 즐거웠다던가.”
“오늘….”
아이는 계단의 보도블록 선을 따라 똑바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생각에 잠겼다. 하루카는 다른 손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가며 오늘 했던 일들을 세어 보았다. 오늘은 아침에 선생님이랑 같이 나왔고, 또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는 동화도 듣고, 선생님이 나눠 준 간식이랑 선생님이…. 린이 조금 심술부리긴 했지만, 오늘도 선생님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좋았어.”
“어떤 게 좋았어?”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는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에 하루카의 얼굴이 슬며시 달아올랐다. 이야기할 때마다 꼭 상대와 눈을 맞추고 말하는 마코토의 버릇은 간혹 하루카를 부끄럽게 했지만, 그런 점은 하루카가 그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마코토랑 같이 있어서 좋았어.”
“선생님도 하루쨩이랑 같이 있어서 좋았어.”
“…정말?”
눈을 크게 뜨는 아이의 물음에 마코토가 웃으며 답했다.
“정말!”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 하루카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말할 것 같은데. 마코토는 보채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걸음을 멈춘 그 사이에,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하루카는 두 주먹을 꼭 쥐고 머뭇거렸다. 언제나 말하고 있지만, 말할 때마다 긴장되고 부끄러운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용기를 낸 하루쨩의 입에서 간신히 말이 나왔다.
“마… 마코토 많이 좋아해!”
마코토는 어떻게 반응할까. 하루카는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어 마코토를 봤다. 마코토는 여전한 웃는 얼굴로 하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도 하루쨩 많이 좋아해.”
2. 소스마코 소설 'Embraced'
글: 깡
표지: 제이
19금 B6 무선제본 40p 5,000원
줄거리
마코토와 소스케는 오랜 기간 동거에 걸쳐 연인으로 발전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마코토는 짝사랑했던 하루카의 결혼 소식을 듣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다. 집에 오는 길 소스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우는 연인의 모습에 소스케는 취해서 하는 소리라 생각하면서도 언짢은 마음을 갖게 된다. 무방비한 마코토의 모습에 여러 감정들이 얽혀 가는데...
1
“…정신 좀 차려라.”
“으…으응…. 미안, 야마자키….”
무더운 여름밤, 목덜미에 걸친 팔이 뜨거웠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인사불성인 사람을 부축하고 있는 소스케는 죽을 맛이었다. 이제 수영은 취미 정도로만 가끔 하는 정도였지만, 여전히 등에 걸쳐진 남자의 몸엔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어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더 무거웠다. 소스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는 마코토의 얼굴이 붉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목과 팔까지 빨갛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분명 티셔츠 아래도 온통 빨갈 게 분명했다. 집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을 마실 때도 마코토의 몸은 늘 새빨갛게 물들곤 했으니까.
술도 못 마시는 게….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순간 토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소스케의 걱정보다는 멀쩡했다. 술을 마셔도 필름 끊겨 본 적은 몇 번 없다고 제 입으로 얘기했으니 아마 그럴 터였다. 자기는 똑바로 걷는다 생각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오는 동안 잠시 마코토를 혼자 걷게도 해 보았지만, 휘청거리는 몸이 어디로 쓰러질지 몰라 어깨에 들쳐 멘 것이었다. 대신 마코토는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부비며 웅얼거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마치 섹스할 때를 떠오르게 해 한숨을 쉬는 남자를 곤란하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마시자고 해도 맥주 한두 잔만을 마시고 전혀 흐트러지지 않던 마코토가 이토록 술을 마신 이유를 생각하면 그럴 마음도 싹 가시는 게 사실이었다.
‘나 결혼해.’
하루카의 말을 끝으로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원래부터 말이 적은 건 알았지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결혼 이야기를 터트린 건 조금 놀라웠다. 함께 앉아 있던 모모타로나 니토리는 물론이고 같은 수영선수로 나나세와 가장 교류가 많았던 린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뭐? 누구랑? 언제? 자리에 있던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정식으로 청첩장을 보낼 테니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이후, 하루카나 린이 스캔들에 휘말리는 일은 종종 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스캔들만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것도 사실이었다. 개중에는 실제로 친하게 지내던 운동선수나 유명인도 있었던 걸 몇 번이고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이제 슬슬 그럴 나이지. 선수 수명은 짧으니까 마음이 맞는다면 미리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 소스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며 모두가 하루카의 결혼을 축하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에서 처음 나왔을 때, 소스케는 가장 먼저 마코토에게 시선을 두었다. 술을 마시고 한창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웃고 있던 마코토의 얼굴에는 한순간 웃음기가 가셨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흔들리던 그 눈동자를 소스케가 놓칠 리 없었다. 그리고 마코토의 시선 역시 야마자키를 향했다. 그 눈빛이 그의 눈치를 본 것인지, 이제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는 건지 의미심장했기에 소스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마코토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그는 방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얼굴만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에 소스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코토는 환히 웃는 그 얼굴로 하루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하루, 축하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스케는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선 당장 마코토의 손을 붙잡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싶었다. 웃고 있지만, 웃고 있지 않은 그 얼굴을 한 대 때려 주고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십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타치바나 마코토에게 나나세 하루카의 존재는 너무나도 크다는 걸 제 눈으로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도어락 키를 열고 번호를 눌렀다. 삐빅거리는 전자음에 집에 왔다고 생각했는지 감겨 있던 눈이 잠깐 뜨였다. 다 왔으니까. 바로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코토는 다시 소스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볐다. 으응…. 야마자키…. 내뱉는 숨마다 열기가 가득했다. 시험해 본다거나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 목을 간질이는 그 호흡에 소스케는 당장이라도 그를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 뒤로는 하루카가 물이나 고등어랑 결혼할 줄 알았다는 나기사의 농담이 이어졌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깨지지 않았고 마코토도 소스케도 다들 하하호호 웃기 바빴다.
술자리가 파하고 모두와 헤어지고 나서야 마코토는 소스케의 어깨에 기댔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제 앞에서 무방비한 마코토가 조금은 사랑스럽기도 했다. 타인이 아닌 오직 제 앞에서만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만족스럽게 집에 돌아와 술에 취한 마코토를 곱게 재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막차 시간이 다 된 버스 안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리에 앉아 어깨를 내주고 소스케는 그의 머리를 제게 기대게 했다. 잠들었다고 생각한 마코토가 온기를 찾아 소스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댄 몸이 떨려 왔다. 버스의 흔들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나 차체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마코토의 마음속 소리가 들렸다면 아마 오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의 품에 고개를 숙인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이유야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마코토는 평상시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며 누군가를 배려할 수 없었다.
“야마자키… 하루가… 하루가 결혼한대….”
울음에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그리고 곧 티셔츠가 눈물로 젖어가는 느낌에 소스케는 말없이 마코토의 등을 쓸어내렸다.
2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코토가 현관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단단한 팔이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조심해. 뒤늦게 나온 걱정에 마코토는 작은 웃음을 흘리며 사과했다. 미안, 야마자키. 사과할 정신은 있는 건가. 이 녀석이라면 무의식중에도 그러겠지만. 야마자키는 마코토의 얼굴을 살피며 문을 닫았다. 전자음 소리가 나며 문이 잠겼지만, 소스케는 마코토의 허리를 붙잡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코토는 집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려 했지만, 허리에 감긴 팔이 풀릴 줄을 몰랐다. 한 번, 두 번.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나아갈 수 없는 힘에 마코토는 두 눈을 비비며 뒤에 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마자키…? 나 졸려….”
그 순간, 소스케는 그의 어깨를 붙잡아 벽에 밀어붙였다. 갑작스레 밀쳐진 마코토의 머리가 벽에 부딪혔다. 큰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술에 취한 와중에 아픔이 더해져 마코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 아파…. 작게 새어 나온 신음에도 소스케는 마코토의 어깨를 꽉 쥔 채 서 있었다.
그는 화가 났다.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구라지만, 십몇 년이 지나도록 나나세 하루카를 잊지 못하는 연인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남자에게 첫사랑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단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소스케의 첫사랑 역시 마코토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잊을 때도 됐잖아. 아무리 상처받았다고 해도 네 옆엔 내가 있는데. 하루카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마코토도, 지금 술에 취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도. 그저 술주정이라 생각하고 넘기면 되는 일인데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마코토가 고개를 들어 감겨 오는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보았을 때 소스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소스케의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그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소스케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 물어뜯을 듯이 달려드는 행동에 마코토는 잠시 눈을 크게 뜨다 그를 받아들였다. 어깨를 붙잡았던 손은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고, 축 늘어져 있던 마코토의 손도 소스케를 향해 움직였다. 거부할 새도 없이 파고드는 혀에 마코토는 자연스레 입을 벌렸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다리에 닿는 딱딱한 느낌에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조금이라도 더 거부해 보았을 텐데 울고 지친 탓인지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간신히 소스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입안을 침범한 혀는 정신없이 마코토의 안을 헤집고 다녔다. 이 사이도, 입천장도 샅샅이 훑어 내는 소스케의 행동에 그는 간지러워 쿡쿡거리는 웃음을 뱉었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에 소스케의 허벅지에 닿은 마코토의 것 역시 단단해져 가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몰아붙인 소스케의 힘에 마코토는 힘없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야… 야마자키.”
잠깐 입술이 떼진 순간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소스케는 마코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쪼는 듯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감겨 있던 마코토의 눈이 가늘게 뜨인 것을 확인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지 위로 드러난 마코토의 페니스를 손에 쥐었다. 히익. 신음과 함께 마코토의 눈이 커졌다. 민감해진 몸은 소스케가 닿을 때마다 달뜬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그만…. 하지만 야마자키의 가슴을 치는 손에는 힘이 없었다.
취한 사람 상대로 이러면 안 되는데. 마코토와 달리 술이 아무리 들어가도 취한 적 없는 소스케였지만, 몸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번갈아 가며 야근을 하느라 잠자리조차 함께하지 못한 일주일. 간신히 일을 끝내고 만났다 싶은 모임에서는 나나세의 결혼 소식이 있었다. 욕구불만에 이어 아직까지 마코토의 안에 선명히 남아 있는 나나세의 기억까지. 그만둬야겠다 마음먹으면서도 여태껏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마코토를 생각하면 괘씸한 마음이 일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이 작게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으나,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나나세에게는 늘 하루카라고 부르는데, 몇 년을 같이 산 자신에게도 소스케라는 이름을 부르는 건 가끔뿐이다. 그래서 야마자키라 속삭이는 마코토의 목소리조차도 화가 났다.
소스케가 다리를 밀어 넣지 않았다면 벽에 밀쳐진 마코토는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았을 터였다. 하지만 소스케의 다리가 몸을 받치고 중심이 겹쳐져 그의 것이 닿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바지 위로 붙잡힌 것뿐이었지만, 위아래로 손을 움직일 때마다 마코토는 움찔움찔 반응하며 소스케의 어깨에 매달렸다. 다른 건 몰라도 몸만은 솔직하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소스케는 이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제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마코토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스케가 어떤 이유로 이러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던 것은 물론이고, 세상이 핑핑 도는 느낌에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야마자키…. 분명 술 마실 때는 기분 좋았던 것 같았는데. 아까 버스에서 실수한 걸까. 뒤늦게 눈물 흘린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앞에서까지 가면을 쓰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루카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야마자키를 쳐다본 것은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어렴풋이 소스케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안 그래도 하루카의 이름이 나올 때면 그렇지 않은 척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코토는 이번이 기회라고까지 생각했다. 야마자키에게 당당한 자신을 보여 주자고.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보았을 때, 야마자키의 날카로운 눈이 저를 향해 있었다. 역시, 보고 있었어. 잠깐 당황했지만 생각했던 대로 방긋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미소가 통하지 않았다. 마코토를 향한 그 눈빛이 차가운 분노로 식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그는 급히 시선을 돌리며 하루카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하루카에게만큼은 평소의 상냥한 마코토인 채로 결혼을 축하해 주었지만, 야마자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했다. 이런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소꿉친구를 처음으로 사랑했던 같은 아픔을 간직한, 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야마자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갈지도 몰랐지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마코토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야마자키가 괜찮다는 제 웃음을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사실은 참고 있었던 것뿐인가. …미안, 미안해. 야마자키. 하지만 사과하는 것도 그에게 미안한 일인 것 같아 마코토는 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대신해 야마자키의 어깨를 꼭 쥐었다.
마코토의 몸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소스케는 팔로 허리를 받치며 그를 바닥에 눕혔다. 아까 밀치면서 머리를 부딪쳤기에 이번엔 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어질어질한 와중에도 몸이 기댈 곳을 찾자, 마코토는 바닥에 퍼지듯 누워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실바닥의 냉기가 마코토의 허리를 타고 올라와 그는 파르르 몸을 떨며 다시 소스케의 팔을 붙잡았다. 재촉하는 듯한 손길에 소스케는 그에게 입을 맞췄다. 지금 제정신이긴 한 건가. 나 화나 있다고…. 소스케는 취한 사람보다도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마코토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마자키, 추워… 바닥도 딱딱하고… 허리 아파….”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대로 해봐야 좋은 건 없을 거라는 건 소스케도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은 차릴 수 없을지언정 몸은 솔직하게 편한 걸 찾는단 거지. 소스케는 잔뜩 솟아오른 제 것을 내려다보며 재차 한숨을 쉬었다. 취한 사람 덮치겠다고 이러고 있는 자신도 이상하지만, 그가 화난 것조차도 모른 채 목에 매달리는 마코토가 조금은 얄미웠다.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던가. 소스케는 마코토의 다리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기합 소리와 함께 힘을 넣자, 무겁게 늘어졌던 마코토의 몸이 가뿐히 팔에 들렸다.
현관에서 침실로 향하는 와중에도 마코토는 소스케의 목에 가쁜 숨을 내뱉으며 반쯤 뜬 눈으로 소스케를 보고 있었다.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한 건 아니었다. 머리가 어지럽긴 하지만, 대화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말하기에는 발음이 조금 꼬이고 있었고, 혼자서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마코토는 다른 것보다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그를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버스에서는 무심코 울어 버렸지만, 야마자키에게 오해가 생길 일을 내버려 두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분명 마코토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야마자키 역시 그 일을 묻어 두고 넘어가려 할 테고, 그러다간 또 언젠가 감정이 폭발할 때 오늘 일도 같이 터져 버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하고 곁에서 지켜봐 왔다. 하루카는 마코토의 인생에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존재였기에 그의 결혼 소식은 당연히 충격이었다. …울 것까진 없었는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터져 나온 눈물에 마코토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말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하루카의 일로 야마자키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는데도, 또 상처 입혀 버린 걸지도 몰라. 마코토는 소스케의 목에 코를 비비며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했다. 그러다 그의 품에서 풍겨오는 체취에 마코토는 더 가까이 몸을 부볐다. 야마자키, 좋은 냄새….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케는 마코토의 머리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3. 마코하루 소설 '네가 없는 하루'
글: 깡
표지: 슈링
전연령가 A5 무선 48p 5,000원
줄거리
현대회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하루카는 마코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 한마디 없이 행방을 감춘 마코토에 대해 알아보지만 아무도 그가 어디에 갔는지 알지 못한다.
하루카는 처음으로 혼자 남아 마코토를 기다린다.
->
한줄 요약
사라진 마코토를 기다리는 하루카.
낮에 깨어났을 때는 해가 떠 있었다. 기억하자면 아마도 그랬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잠시 눈을 떴었지만, 밖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보였다. 나가봤자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을 접고 다시 돌아누웠다. 웅웅거리는 휴대폰 소리가 거슬려 손만 뻗어 전원을 꺼버렸다. 귀찮아. 땅바닥으로 휴대폰을 툭 던지고 나서야 생각났다. 나기사, 레이와 만나기로 했던 날이 오늘이었나. 대회가 끝나고 4일이 지났으니 오늘이 맞을 터였다.
하지만 몸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쉬는 동안에도 계속 몸을 풀어두라던 고우의 말을 떠올리자 한숨이 절로 났다. 솔직히, 지금은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달갑지 않았다. 안 가면 알아서 그러려니 하겠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이 들어 지금까지 침대에만 있었다. 잠을 너무 오래 잔 탓인지 온몸이 나른했다. 계속해서 잠에 취하고만 싶어 꼼짝하기도 싫었다. 그래도 오늘 한 끼도 먹지 않았으니까 움직이긴 해야겠지. 몸을 일으키자 허리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코토가 있었다면 ‘하루, 괜찮아?’하고 호들갑을 떨며 물을 만큼 큰 소리였다. 손을 뻗어 허리를 더듬어봤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큰 이상은 없었다.
흐트러진 이불을 침대 한구석에 뭉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몽사몽 했지만 이 집에 정리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뭉개둔 이불을 집어 들었다. 끝과 끝을 잡아 반으로 접기를 몇 번 반복하자 얇은 이불이 품에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장 안에 이불을 넣고 문을 닫자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탁하고 문이 닫히자, 그 소리가 멈추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오전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은 해가 저물어가면서 다 사라졌는지 온 세상이 조용했다. 나는 여전히 흐린 시야에 두 눈을 비비며 창가로 다가섰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나를 맞았고, 산 뒤로 사라져가는 붉은 노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집 근처에 있는 풀과 나무들은 녹음을 뽐내며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낮 동안 뜨겁게 달아오르던 열기가 바람에 식은 건지 덥지도 않았다.
현 대회가 끝난 후, 이와토비 수영부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이렇게 여유로이 늘어지도록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대회 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었다. 대회 직전까지는 연습에 주력하느라 바빴고, 막상 대횟날에는 모두 정신이 없었다. 아무도 예선에 통과하지 못한 것, 내가 린에게 진 것, 그 이후에 고우가 등록해두어서 참가하게 된 예정에 없던 릴레이까지. 며칠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고 그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랬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허전할 정도였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근처에서는 바다에 비친 햇빛이 반짝거렸다. 지금 당장 들어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아, 물에 들어가고 싶다. 자는 동안 흐른 땀이 찝찝해 욕조에 들어갈까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마저도 내키지 않았다. 달리 할 것은 없나. 할 일을 찾아 거실로 내려갔다.
청소는 평소처럼 매일 했다. 어젯밤에도 정돈해 두었기에 물건들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통풍을 위해 훤히 열어두었던 창을 통해 들어온 먼지가 눈에 띄었다. 빈집에는 바람만이 오가고 있었다. 그 마저도 이따금 불어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어, 집안에는 덩그러니 나 혼자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매끄럽게 손에 닿는 느낌에 청소를 잘 해두었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앉아 둘러보는 집안도 평소와 같았다. 초등학생 무렵에 받았던 트로피와 상장들은 집안 곳곳에 있었다. 테이블은 정중앙에, 장식장은 한구석에, 텔레비전도, 액자도 집안에 있는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모두 제자리를 지킨 채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했다. ‘하루.’ 눈을 감으면 절로 떠오르는 그 목소리가 이곳엔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욕조에 들어간 적이 몇 번이었지? 속으로 횟수를 세어보다가 확연히 줄어든 숫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런가. 하루 한 번은 기본이었고, 서너 번은 들어갔었는데. 최근엔 거의 들어가지 않았구나. 조용한 집안에는 휑한 바람 소리만 들렸다. 그래서인지 휘파람을 불 듯 울리는 그 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불어오던 바람마저 그치자 고요함이 집안으로 더 파고들어 왔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과 온종일 이어지는 집의 침묵.
차라리 밖으로 나갈 걸 그랬나. 나기사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을 잠깐 후회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분이 나아질 리 없다. 혼자 있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내키진 않지만, 물에 들어가야겠어. 다른 것보다는 그게 우선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단지 잠깐 미루는 것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입고 있던 옷가지를 단숨에 벗어버리고 욕실로 향했다.
욕조 안에서도 변한 것은 없었다. 멍하니 바라본 앞에는 욕실 타일이 보였다. 왼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자 세면대 위에 있는 비누, 칫솔 같은 잡다한 욕실 물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양치 컵 옆에 놓인 장난감 돌고래의 고개가 나를 향해 있었다. 욕실 문밖에는 여전히 세탁실이 있을 것이고 방금 던져 넣은 옷가지들은 빨래통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을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닿는 찬 느낌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숨을 깊게 내쉬자 곧 수영할 때처럼 몸이 풀렸다. 몸에 닿는 물은 기억하고 있던 대로 시릴 만큼 시원하고 익숙했다. 오늘 저녁은 고등어를 구울까, 내일은 뭘 할까 하는 사소한 고민이 물에 씻겨져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자잘한 생각거리가 사라지자 애써 외면하고 있던 큰 문제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혼자서도 잘만 살고 있었으면서 며칠 사이에 이 집이 왜 이렇게 크고 또 왜 이리 조용하게 느껴지는지 이유는 알고 있었다. 옆에 있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욕조에 들어간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집까지 찾아와서 손을 내밀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마코토.”
확실한 이유를 입 밖으로 내뱉고 나자 처음 그가 없어졌을 때의 감정이 솟아올랐다. 왜? 그가 떠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에 머리까지 물속에 담가버렸다.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처럼 붙어있던 그 녀석이 없어진 이후 나는 화가 났고 또 무기력했다.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고민해봤자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더 화가 치밀었다. 모든 것은 다 그 녀석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타치바나 마코토는 사라졌다. 그것만이 아무런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 * *
경영을 위한 연습은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수영부에 들어간 것은 마음대로 헤엄칠 수 있다는 욕심에서였고, 학교와 관련된 귀찮은 일 같은 건 나기사와 마코토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시합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회 당일,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모두와 함께 대회장소로 가는 내내 긴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 전에 나기사가 말했듯 린과 함께 수영할 수 있다는 것이 나도 모르던 경쟁심을 불러일으킨 걸까. 이기고 말겠다는 린의 끈질긴 집념에 끌려가게 된 걸지도 몰랐다. 시합에 나가기 직전, 린의 도발도 한몫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린과 수영할 수 있다는 것이 기대됐었다.
대기 줄을 따라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린은 자신만만했고, 나 역시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대기신호가 울리고 선수들이 모두 제자리에 섰다. 오늘로 자유로워진다. 나는 물에서라면 자유로울 수 있어. 자신에게 하던 말을 되새겼다. 삑-하고 울리는 출발신호와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함성이 들렸다. 시작은 비슷했던 것 같다. 팔을 내젓고, 숨을 쉴 때마다 옆 레인에서 수영하는 린이 얼핏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린과의 승부다.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영을 하는 와중에 린에게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물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한발 앞서 나가 돌아오던 린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더 빠르게 헤엄쳐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더. 더 빨리.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 린의 뒤를 쫓았다. 출발점으로 돌아와 터치했다. 체감 속도는 비슷했고 골을 누른 시간에 큰 차이는 없었다. 누가 더 빨랐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차에 전광판이 빛나며 불이 들어왔다. 1 마츠오카 린. 2 나나세 하루카.
중학교 이후 이런 식으로 경기를 하고 순위를 매긴 것은 처음이었다. 졌다. 예선에서 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졌다는 것보다는 린과 함께 헤엄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같은 느낌이, 같은 경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짐작하기도 했다. 린은 올림픽 선수가 되기 위해 유학까지 다녀왔다. 나는 올봄까지 경영에 대한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와토비에서 몸도 만들지 않았던, 연습조차 턱없이 부족한 내가 이기는 건 힘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봄에는 시합에서 졌어도 내가 더 물을 잘 느끼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만족했었는데. 뭘까.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은 그때와 다른 것이었다. 전광판을 보며 굳어있던 사이 린이 내 이름을 불렀다.
“하루. 이제 너랑 헤엄칠 일은 없어. 두 번 다시는.”
린의 말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점도 짐작했던 부분이었다. 린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돌이켜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린은 올림픽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나를 이용한 건지도 몰랐다. 물론 린에게는 말하지 못할 그만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네게 결국 그런 존재였던 거지. 초등학교 때의 릴레이,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시합,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만난 지금도. 나는 내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만 했던 목표, 그것밖에는 되지 않는 거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넘어야 했던 장애물밖에 되지 않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넘쳐흐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린은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린이 보여준 경치는 이전에 보았던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시합에서 린이 이겼다고 납득하지 못했을 때도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뭘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린과의 승부가 끝났기 때문일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불안이 나를 덮쳐왔다. 개인전 예선 결과는 그게 끝이었다.
시합이 끝난 후 나는 풀이 죽어 있었다. 나기사에게 붙잡혀 모두의 시합을 지켜보기 전까지 나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끌려 나간 경기장에서는 마코토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연습할 때는 줄곧 봐왔던 수영이었는데도 혼란스러운 머리 때문인지 마코토의 수영이 다르게 보였다. 나기사의 평영도,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레이의 접영까지. 모두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헤엄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무엇 때문에? 모두 뭘 위해서 헤엄치는 거지?
레이의 경기가 끝나고 나는 남들보다 먼저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어지러웠다. 나기사의 주도로 수영부가 만들어졌다. 나는 수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수락했다. 마코토도 흔쾌히 거들었다. 레이는 내 수영을 보고 수영부에 입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나는? 대체 뭘 위해서 헤엄치고 있는 거지? 물.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선 물이 필요했다. 수영할 수 있는 곳. 수영장. 학교. 간단한 사고밖에 하지 못하는 머리는 목적지를 정해 버렸고 나는 학교로 향했다.
몇 시간을 물속에 있었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까만 밤하늘 위에서 새하얀 달이 빛나고 있었다. 물은 여전했다. 나는 자유로웠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물에 저항한 적은 없었다. 시합이 아닌 물속에서 나는 여전히 자유로웠다. 하지만 왜 이번 시합에서는 보지 못한 걸까.
수영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던 게 아니었나? 남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던 게 아니었나? 린과의 승부에서 내가 승패에 집착했던 이유는 린이 그토록 원하던 시합이었기 때문인가. 기록 같은 건, 타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내게 의미가 없었을 텐데. 내게 중요한 건 물 그 자체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나. 결국엔 나도 말만 그러했을 뿐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결과만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며 물에 있었지만 결국 답은 찾지 못한 채 복잡한 심경으로 귀가했다.
4. 마코하루 소설 '구속'
19금 A5 무선 60p 6,000원
글: 깡
표지: 슈링
줄거리
어두컴컴한 곳에서 눈을 뜬 하루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한다. 잠시 후 그를 구하러 온 사람은 마코토였지만, 마코토는 하루카를 풀어주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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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얀데레 마코토가 하루카를 납치해서 이렇게저렇게 하는 책입니다.
어두워.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카는 묘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머리에 손을 얹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양팔은 겹쳐져 뒤로 묶여 있었고 손가락을 움직여 줄을 더듬을 수는 있었지만, 풀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롭진 못했다. 다리를 움직였으나 하반신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진 않았지만 단단히 매어진 줄의 조임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숨을 뱉으려는데 입에는 천이 물려 있어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숨만 간신히 쉴 수 있을 뿐, 시야는 가려져 있고 손도, 발도 묶인 채였다. 하루카는 그 상태로 일어서려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찰박이는 물소리가 울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하루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상황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몸이 누여져 있는 곳은 익숙했다. 볼 수는 없었지만, 몸에 닿는 느낌이 그러했다.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겉옷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항상 옷 안에 입고 있던 수영복까지도 그대로인 듯했다. 그는 차갑게 식은 몸을 만져 보다, 몸을 틀어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손끝에 만져진 것이 매끄러운 표면이라 하루는 자신이 욕조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감각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바로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시야가 가려지자 후각과 청각이 평소보다 더 예민해졌지만,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본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을 듣던 하루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욕조에 몸을 편히 기댔다. 다른 사람은 없겠지. 적어도 지금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케케묵은 먼지 냄새와 물 냄새만 날 뿐, 특이한 것은 없었다. 수영복만 입힌 채 욕조에 둔 건 뭘까. 게다가 물에 반쯤은 잠긴 채였다. 물 없이는 살 수 없단 걸 아는 사람의 소행인가. 취미 나쁘네. 하지만 하루카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먼지로 봐서는 잘 쓰는 곳이 아닐 테니 창고 같은 델지도. 바닷가 근처의 창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직폭력배들이 흔히 쓰던 장소를 떠올리고 하루카는 몸을 움츠렸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게 해둔 데다 꽁꽁 묶어두기까지 했다. 손발도 자유롭지 못한 데 섣불리 움직여 탈출을 시도하다가 범인이 돌아오기라도 하면 오히려 위험할지도 몰라. 무엇 때문에 잡혀 온 거지? 폭력집단과 얽힐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그의 주변에 그런 단체와 얽힌 사람 또한 없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어디서 끊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떠올리려 할수록 아파 오는 머리에 하루카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철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 희미하게 끼익 거리며 닫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기에 하루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깨어있단 걸 들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직감적으로 생각한 그는 힘없이 늘어져 있던 이전처럼 자세를 고쳤다. 문소리 이후에는 작은 전자음이 들렸고 뒤이어 터벅거리는 발걸음이 울렸다. 먼 곳에서부터 쿵쿵거리던 소리가 가까워지며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 소리는 계단인 것 같은데. 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넓은 공간도 있는 것 같아. 청각에 의지해 정보를 모으던 하루는 숨을 골랐다.
점점 더 가까워지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 곧 삑 하는 기계음이 났다. 문이 열린 것 같은데. 공기에 드러나 있던 하루카의 상반신에 잠깐 바람이 들이닥친 것으로 추측하건대, 문이 열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후엔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해진 주변에 하루카는 한껏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더 나지 않았지만, 문만 열어본 채 다시 갔을 리는 없다. 지켜보고 있을 거야. 하루카는 가빠지려는 호흡에 주의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해. 상대가 어떤 녀석인지는 모른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하루카는 생각을 고쳤다. 정신만 차리면 괜찮아.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야. 그저 살인마였다면 가둬둘 필요도 없이 죽였을 테니까. 괜히 살려뒀다간 범죄가 발각될 위험이 더 커질 텐데, 인질을 살려뒀다는 건 내게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이겠지. 하루에게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빚에 쫓기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다. 도쿄에서 용돈을 받아가며 자취하는 대학생에게 얻어갈 게 뭐가 있지.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만 받을 수 있는 게 있나. 하루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주변은 조용했다.
몇십 초간의 침묵 끝에 다시 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울리는 걸음 소리에 하루는 다시 숨을 죽였다. 발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만 있어도. 하지만 소리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발소리가 멎었다. 바로 근처에 있다. 게다가 분명 쳐다보고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온몸에 내리꽂히는 듯한 시선에 하루카는 움츠러드는 몸에 힘을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몸은 점점 더 긴장을 더해 갔지만, 하루카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루.”
눈치 채지 못하게 고른 숨을 내는 것에 집중하던 찰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하루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를 이런 호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또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람은 그가 아는 한 단 한 사람뿐이었다. 하루카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천 때문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역시 깨어 있었네, 하루. 목소리 듣고 싶어서 혼났어.”
하루카는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깨를 어루만지던 커다란 손이 곧 입에 물려있던 천을 풀어주었다.
“마코토? 마코토지? 여기 어디야? 나 왜 이런 곳에….”
당황한 그의 모습에 마코토는 서둘러 안대를 풀어주었다. 드디어 시야가 트인 하루카는 전등 빛에 비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사방이 암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큰 방 가운데에 욕조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루카의 예상대로 그는 욕조 안에 손발이 묶인 채, 그리고 평소처럼 수영복을 입은 채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얼마나 오래 이러고 있었던 거지? 부르튼 발끝을 보며 하루는 마코토의 표정을 살폈다. 마코토는 욕조에 걸터앉아 하루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납치된 하루카를 바라보는 그 얼굴에는 당장 구해주겠다는 조급한 기색도,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냐는 의문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얼굴에서 이질감을 느낀 하루카는 마코토에게 말을 걸었다.
“마코토. 이것도 풀어줘.”
하루카를 데리러 온 거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풀어주었을 텐데. 앉은 채로 여유롭게 하루카를 바라보는 마코토는 어딘가 이상했다. 그와 눈높이를 맞추려 허리를 숙인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마코토의 모습에 하루카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하루. 머리는 괜찮아?”
하루카는 수면에 비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머리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흰 붕대에 부분부분 빨간 얼룩이 선명했다. 마코토가 물어보는 걸 보면 무언가에 맞았었나. 계속되는 어지러움의 원인을 깨닫자 한층 더 머리가 지끈거렸다.
“… 아파.”
“많이 아파?”
마코토는 걱정스러운지 하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정하게 와 닿는 손길에도 어지러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물음에 하루는 고개를 내젓다가 이어지는 두통에 움직임을 멈췄다.
“조금 …. 그것보다 이거 풀어 줘. 마코토.”
그러자 마코토의 손이 머리에서부터 하루의 볼로 내려왔다. 하루카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던 마코토는 상냥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
“머리를 조금 세게 맞은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하루. 괜찮아 보여.”
“… 뭐?”
그 말을 들은 하루카는 그제야 모두와 만났던 그날을 기억해냈다.
* * *
“린쨩! 여기!”
그날은 이와토비 수영부와 린이 다시 모인 날이었다. 그전에도 넷이서는 만나곤 했었지만, 선수로서 바쁜 생활을 보내던 린이 모처럼 귀국해 합류한 것으로 다섯이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일정으로 바쁜 린이 뒤늦게 들어선 술집에서는 그가 오기 전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어 있었다. 잔이 빌 때마다 가득히 술을 채우는 나기사는 모두와 만난 게 기쁜지 잔뜩 들뜬 얼굴이었다.
“자, 린쨩 사랑하는 만큼 가득! 오랜만에 린쨩도 왔으니까 다들 잔 들라구!”
모두 잔을 들었는지 지켜보던 나기사는 마지막으로 하루카가 잔을 드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크게 외쳤다.
“린쨩의 우승을 위하여!”
가게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큰 소리였지만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나기사의 소리는 묻힐 정도였고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모두 나기사에게 맞춰 위하여 하고 잔을 부딪쳤다.
“선배는 또 나가시는 겁니까?
“어. 현지에서 훈련하는 쪽으로 일정이 잡혀서.”
“린쨩.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냐?”
“얼굴 보기 힘든 거라면 이 둘 아니야? 하루카는 아직 학생이겠지만, 마코토 너는 뭐하고 지내?”
“하하, 그냥 일이 조금 바빠서.”
말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마코토는 미안한지 볼을 긁적이며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했다. 린을 제외하고는 종종 모이긴 했지만, 마코토는 휴학 없이 학교를 졸업한 탓인지 린 다음으로 바빠 최근에는 넷이서 모이는 자리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같이 연락해오던 마코토였기에 하루카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꼬박꼬박 보내오던 메시지도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끊어진 지 오래되었기에 하루카마저도 마코토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하루카는 대학교 진학 후에 마코토와 묘하게 사이가 멀어진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함께 도쿄로 올라왔다. 도쿄에 막 왔을 때 학교는 다르지만 이전처럼 자주 만나자며 웃던 마코토가 눈에 선했다. 하지만 입학하고 난 다음, 마코토는 지금의 린만큼이나 바빴었다. 과행사, 과제 등 여러 일이 많았지만 하루카도 막 시작된 대학생활에 쫓겨 바빴기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었다. 이제 더는 애가 아니니까. 마코토도 계속 내 옆에서 나만 따라다니면서 내 이름만 부르고 있을 순 없을 테니까. 그렇게 일상에 치이는 날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 역시 멀어졌다. 매일 같이 연락하던 마코토의 메시지가 줄어들었다. 간혹 하루카가 먼저 연락하기도 했지만「미안, 오늘 과모임이 있어서」라는 답변이 오는 경우가 늘어만 갔다.
그래서 하루카는 나기사와 레이를 보고 있으면 자주 이와토비고에 다니던 일을 떠올리곤 했다. 모두가 함께 있던 이와토비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마코토도 하루카의 옆에 있었으니까. 하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씁쓸한 기분 때문인지 목으로 넘어가는 맥주가 더없이 달았다.
나기사와 레이는 동거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 차였다. 처음엔 조금 삐거덕거리는 듯했지만, 그럭저럭 서로 양보하면서 몇 년이나 같이 지내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잘 맞는 모양이었다.
“레이쨩. 나 가스 안 잠근 것 같아.”
“잠갔어요.”
“화장실 불도 안 끈 것 같고.”
“껐어요.”
“컴퓨터도 안 끈 것 같은데.”
“제가 껐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자면 부부 같은 데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하루카는 조용히 미소 짓곤 했다. 그리고 나기사와 레이는 여전한데, 마코토와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린은 고우가 요새 연애를 하는 것 같아 일찍 들어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기사는 “그 사메즈카 부장?”하고 짐작했지만, 린의 눈초리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나기사와 레이는 한참 과제로 바쁠 시기라 린이 일어나는 김에 간다며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모두가 돌아갈 때 하루카도 함께 집으로 향하려 했는데, 마코토가 그를 붙잡았다.
“하루. 오랜만에 만났는데 많이 바빠?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간단히 술도 걸친 데다 마코토를 오랜만에 본 것도 기쁜 마음에 하루카는 순순히 그의 손에 이끌려 갔다. 마코토는 아는 가게로 가자며 조용한 바로 그를 인도했다. 들어설 때부터 바텐더와 눈인사를 주고받는 걸 보니 자주 오는 곳인 듯했다. 손님들은 주로 혼자거나 둘 정도였고,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마코토가 좋아할 만한 가게라고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창을 마주한 자리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자, 마코토가 하루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물었다.
“하루. 술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
“어. 마코토는 ….”
“하하. 일을 하다 보니 주량이 좀 늘었어. 그럼 가볍게 이거 마실까? 도수도 높지 않고 아침에도 깔끔해.”
“잘 모르니까. 알아서 시켜.”
말하지 않아도 하루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읽어내는 능력은 여전했다. 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술과 잔이 나왔다. 얼음이 담긴 통과 투명한 유리잔, 마셔본 적 없는 술까지. 하루카는 처음 보는 마코토의 모습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네 모습은 조금 낯설어. 자신이 모르는 마코토는 보고 싶지 않다는 거절의 표시이기도 했다. 창밖에는 도시를 밝히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야경을 내다보던 하루카는 유리창에 비친 마코토를 봤다. 마코토는 익숙한 듯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앞에 있던 술잔을 하루카에게 밀어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마코토는 간단히 답했었다.
“그냥. 회사에 다녀. 다 그렇지, 뭐.”
그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눈치라 하루카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직업조차도 말하지 못할 사이가 돼버렸나. 가까이 있는데 너무 먼 사람 같아. 하루카는 서운함이 한층 더 쌓이는 것을 느끼며 그와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게 언제쯤인지 가늠해보았다. 언제였지? 대학교에 오고 나서부터 매일 같이 볼 순 없었다. 하루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던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헤어지곤 했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세심하게 상대를 챙기는 상냥함에 끌린 사람들이 하루카를 좋아한다며 다가오곤 했다. 하루카는 사귀게 되도 변한 것 없이 그전과 같이 행동했다. 늘 같은 모습만 보이는 하루카에게 질린 걸지도 몰랐다. 단순한 여자들의 변덕일까. 아니면 변하지 않은 하루카가 잘못한 것일까. 하루카는 사귀었던 여자들을 추억하다 마코토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코토와의 관계에서도 하루카는 항상 그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초등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그래서였나. 마코토 역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녀들처럼 멀어져 갔다. 주변에 있었던 나기사와 레이, 린은 그대로인데 마코토. 너만 변해버렸어. 그것이 그저 소꿉친구가 자신보다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소홀해진 것 때문인지, 그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는 마음인지 하루카는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하루. 무슨 생각해?”
흐려졌던 초점을 다시 맞추며 하루카는 회상을 멈췄다.
“… 네 생각했어.”
“하루가 내 생각? 어떤?”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르는 마코토의 모습에 하루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코토는 술 한잔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갓 성인이 되었을 때 한두 잔에도 취기가 돌았던 마코토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변했구나 싶어서.”
나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마코토와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 같아. 하루카는 지긋이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하루의 마음을 읽은 건지, 마코토는 잠시 눈을 크게 뜨다 이내 다시 웃었다.
“그렇지 않아, 하루.”
그리고 잔을 짚고 있던 하루카의 손을 붙잡으며 웃었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계속 하루 옆에 있는 걸.”
마코토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쓰다듬었다. 어릴 적처럼, 고등학생 때처럼 맞잡은 그 손에서는 마코토의 온기와 동시에 잔에 쥐고 있던 얼음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때와 같아. 하루카는 마코토의 손가락이 제 손을 매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항상 그랬다. 하루카가 입을 열지 않아도 마코토는 알아서 하루의 말을 알아듣곤 했다. 입을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마코토는 그의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하루가 입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마코토와의 침묵은 타인과 함께할 때의 침묵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이야깃거리를 찾는다는 것부터가 그에겐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코토는 하루카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그랬었는데 너도 역시 변한 건가? 마코토? 너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루는 손등을 매만지던 마코토의 손끝을 붙잡았다. 마코토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하루. 이번에 졸업이지? 졸업하면 뭐할 거야?”
“… 여행 갈 거야.”
“여행? 어디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코토가 의문을 표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했더라면 취직은 하지도 않고 여행이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법했지만 상대가 마코토였기에 하루는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은 해외로 생각하고 있어. …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혼자서? 얼마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하루는 마코토에게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얼음이 든 잔을 흔들며 여행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을 뿐이라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었다.
“모르겠어. 그냥 조금 쉬고 싶어서.”
“하루. 요즘 힘들었어?”
하루카는 반이 넘도록 차 있는 잔을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힘들었나?
사회생활에 지친 건 사실이었다. 방학 동안 했던 인턴생활에서도 사회의 비합리적인 구조는 갑갑했다. 학교까지는 어떻게든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일은 무슨 일을 하든 피곤할 거라는 걸 하루카는 몸소 체험한 뒤였다. 졸업하기 전까지 무엇을 할지 정하려 했었지만 물 이외에는 딱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면 수영강사 같은 일일까. 그는 린처럼 기록을 내는 대단한 선수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유롭게 헤엄칠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일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는 건 역시 꿈같은 이야기라 그나마 현실적으로 생각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의 질문에도 침묵을 유지하는 하루카를 보며 마코토는 하루의 잔이 비어있는 만큼 술을 따라주었다. 술 위에 동동 떠오른 얼음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마코토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루.”
이런 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그 목소리는 어렸을 때를 생각나게 해 하루는 저도 모르게 찌푸렸던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꿔 마코토를 응시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고생했어, 하루. 이제 쉬어도 되니까.”
마코토는 움츠러든 하루카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루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무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주지. 미안해, 하루. 내가 좀 더 챙겼어야 했는데. 이제껏 그래왔듯이 마코토는 하루카만을 바라보며 그를 걱정했다. 취기가 돌기 시작한 것인지 하루카는 자연스레 마코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도쿄에 오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기댄 적이 없었는데. 역시 마코토한테는 무슨 일이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루카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마코토의 손을 꼭 붙잡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마코토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도쿄에 올라왔는지도, 그가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도. 마코토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하루카를 보듬었다. 그간 무심해졌다고 서운해했던 하루카는 미안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마코토와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와 시간을 보냈기에 하루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화끈거리는 제 얼굴을 짚어보다 마코토의 얼굴 역시 빨갛게 물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웃었다. 마코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내가 마시러 오자고 한 거고, 하루는 아직 학생이니까. 나중에 사 줘.”
잘 부탁드립니다!
그밖에 문의사항은 방명록 혹은 트위터 @sleep_kkang로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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