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님 책 First Day(14.12.27 코믹 발간)에 축전으로 드린 글입니다.
After
다이치가 눈을 뜨자 바닥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볼에 닿은 바닥이 뜨거웠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온몸에 휘감긴 이불을 보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맨바닥에서 머리를 떼자 띵하니 머리가 울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뚜둑거리는 소리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어제 분명 침대에서 잤던 것 같은데.
머리를 감싸며 옆을 보자 그를 바닥으로 밀쳐낸 원흉이 보였다. 쿠로오는 다이치의 몫까지 빼앗아 가, 베개 두 개로 머리를 감싼 채 자고 있었다. 아, 저래서 저 녀석 머리가 저 모양인 건가. 기이한 모양새로 서 있다 했는데 잠버릇을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엎드린 채로 자는 모습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흐트러진 이불을 보면 자는 새에 얼마나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이 자기는 비좁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전부 차지할 줄은…. 기껏 팔까지 빌려줬더니 매몰차게 저를 밀쳐내다니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는 있는 힘껏 손을 들어 올렸다. 등짝에 한 방 먹이려 들었던 손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췄다. 도쿄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생각하면 이 정도야 참을 수는 있었다. 12월 31일. 굳이 축하해 주러 찾아왔는데 매몰차게 대할 건 또 없지 않은가. 하늘로 솟았던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생일이 뭐 대수라고. 별것 아닌 일에 신경 쓰게 한 것 같아 멋쩍어졌다.
챙겨달라고 한 적도 없고, 쿠로오가 멋대로 찾아온 것뿐이지만, 그런 상냥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멋대로 움직이는 듯해도, 그는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다이치를 배려하고 있었다. 티 내지 않아도 행동에서 느껴지기에 다이치도 그런 쿠로오를 모르지는 않았다.
평소에 방이 따뜻한 편은 아니었는데, 오늘 방안에는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역시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다이치는 천천히 베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를 덮은 베개를 걷어 내자 바보처럼 벌어진 입이 드러났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누워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다며 웃던 여자가 생각났다. 신혼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TV 프로였다. 글쎄. 신혼은 아니지만, 내동댕이쳐져서 그렇게 행복한 기분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이치는 슬쩍 그의 볼을 꼬집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잠시일 뿐, 쿠로오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별 반응 없는 모습이 괴롭힐 마음을 잃게 만들었다. 재미없게.
살며시 벌어진 입술을 보며 다이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입이 말만 좀 더 예쁘게 했어도. 아쉬움과 원망을 담아 다이치는 그의 입술을 손끝으로 두어 번 쳤다. 거칠 법도 한데 부드러운 감촉에 두드리던 손가락이 입술을 매만졌다. 닿은 것은 잠시뿐이었지만, 엊저녁의 입맞춤은 당분간 생생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무턱대고 들이미니까….
다이치는 상기된 기억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곤히 자는 쿠로오의 얼굴에 대고 다이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넌 왜 그렇게 여유롭냐. 난 아직도 모르겠는데.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투정부리듯 작은 소리를 내 보았지만, 잠든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대 패서 깨울까 하는 마음이 일었으나 어제 고생한 게 있어 그냥 내버려 두었다.
슬슬 밥 먹을 시간 아닌가. 옆에서 뭘 하든 잘만 자는 쿠로오를 보고 있으려니 밥 생각도 없었다. 나가봤자 추울 거고, 좀 더 잘까. 쿠로오의 손에서 빼앗은 베개를 베고 다이치는 그 옆에 누웠다. 좁았지만 몸을 웅크리면 누울 수는 있었다. 곤히 자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곧 따뜻함에 다이치의 눈도 감기기 시작했다.
그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막 잠에 빠졌을 때, 쿠로오의 손이 움직였다. 잠든 다이치의 허리를 감싼 쿠로오는 얇은 웃음을 지은 채 잠든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 어디가 여유롭다는 거야. 네 앞에선 항상 버둥거리고 있는데. 작게 내뱉은 목소리는 소복소복 눈 오는 소리에 묻혀 품 안의 다이치에게는 닿지 않았다. 따스한 햇볕 사이사이로 조금씩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By. 깡
- 본편의 뒷이야기로 써 보았습니다!
이연님! 쿠로다이 책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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