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오고 생활비와 용돈을 벌자는 의미에서 방학 동안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꽤 힘들었다. 식당에서 주문 및 서빙, 계산, 청소 등등 잡다한 일이었는데 주말에 쉬는 시간이 없다 보니 연휴가 아니고서야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막상 연휴에는 대목이라고 쉴 수조차 없었다. 주류도 판매하는 곳이다 보니 밤늦은 시간이 되면 손님의 술주정을 들어야 하는 일도 많았고, 애꿎은 알바생에게 화풀이를 하는 손님도 많았다. 대학생이 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새삼스레 깨달은 건 세상에서 돈 버는 일만큼 어려운 게 없고, 돈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이번에는 평일에 할 수 있고 좀 더 자기 시간이 많은 알바를 택하기로 했다. 게임방 알바가 있으면 좋겠다고 고민할 무렵에 과 선배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사정상 곧 그만두는 과외가 있는데 네가 가르쳐 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시급을 따지면 과외가 훨씬 더 좋았고 사람에게 치이는 것도 넌더리가 난 터라 별 생각 없이 선배로부터 소개를 받아 과외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남자애는 까만 머리카락만큼이나 속이 새카말 것 같은 학생이었다.
‘사와무라 다이치라고 해. 잘 부탁한다.’
‘쿠로오 테츠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주고받는 중에 이 녀석 나랑 같은 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말해 쿠로오는 나쁜 학생은 아니었다.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설명해 주면 알아서 문제를 풀곤 했다. 간혹 숙제를 빼먹긴 하지만, 해오는 것을 보면 특별히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학이고 일본어고 평균 이상의 성적은 나오는 아이라 굳이 과외가 필요하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만 더 열의를 가지고 하면 더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본인은 학업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이나 만화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부활동으로 배구를 하는 것 같았지만, 과외하는 날엔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었다. 백엔 주고 빵이랑 음료수랑 잔돈까지 남겨오라고 할 것 같이 생겨서는 어른들한테 깍듯한 것도 의외였다. 껄렁껄렁하게 생긴 인상과는 달라서 요즘 보기 드물게 제대로 된 놈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공부에 대한 의욕조차 사라졌는지 숙제를 빼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과외시간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공부는 뒷전이고 딴짓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쿠로오에겐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의지나 성적에 대한 압박감 같은 게 없는 모양이었다. 부활동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서인가. 추천입학 얘기가 벌써부터 오간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가르치는 김에 잘 가르치고 싶은데. 쿠로오라면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야기를 꺼냈다.
“너 최근에 자꾸 숙제 빼먹는데. 공부하기 싫은 거냐?”
“원래 그렇게 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
건성건성 대답하는 모습에 나는 사뭇 얼굴빛을 바꿔 말했다.
“이대로 가면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어느 정도 실력 있으니까 너 혼자 해도 충분한데. 더 잘하고 싶어서 배우는 거 아니냐고. 내가 도움이 안 되는 거면 괜히 부모님 돈만 축내는 거잖아.”
똑바로 눈을 마주한 쿠로오는 멍한 얼굴로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와무라 선생님. 솔직하네.”
“뭘 웃어, 인마.”
“과외 그만두면 따로 일할 데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말하고. 사람이 참 착해. 그래서 좋아하는 거지만.”
터트렸던 웃음을 거두며 방긋 웃는 얼굴에 녀석의 얼굴을 책상에 처박아 주고 싶어졌다. 나쁜 의도로 웃는 얼굴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녀석이 웃는 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짜증 난다. 내가 웃을 때마다 아사히가 무서워했던 것도 이런 거려나. 잠깐 딴생각에 잠겨 있자, 쿠로오는 내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있잖아, 선생님. 숙제 잘해 오면 보상이라던가 선물이라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뜬금없이 나오는 이야기에 뭐냐고 반문했더니 어깨를 으쓱한 쿠로오는 책상 가까이 몸을 당겨 앉았다. 한층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쿠로오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보면 영 고등학생으로는 안 보인단 말이지. 이미 대학생은 됐을 것 같은….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쿠로오는 턱을 괴고는 건성건성 말했다.
“시험이야 어느 정도는 나올 거란 거 선생님도 알잖아. 보상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맘이 안 생기는데.”
“그런 건 너네 부모님한테 말해야지. 평균 몇 점이면 게임기라던가, 몇 등 안에 들면….”
“다른 애들은 선생님이 해 준다고 하던데.”
“한 달 동안 숙제 안 빼먹고 해 오면 선물 주기. 그런 거라도 하자고? 설마 그 보상이 없어서 이제까지 제대로 안 해 왔다고 하는 거냐? 내가 무슨 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엔 애라면서 이럴 때만 애 아니래.”
다리를 쭉 뻗은 채로 땅바닥을 손에 집고 떼를 쓰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른들은 다 똑같나 봐. 이어지는 그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했다. 자기 편할 대로 말 바꾸는 어른은 나 역시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쿠로오한테 조금이라도 빚을 남기고 싶지 않은 터라 나는 오기로라도 그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비싼 건 안 돼. 나도 가난한 학생이라고.”
“에이, 내가 가난한 자취생 등 뽑아 먹을 것 같아?”
쿠로오는 아까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어깨동무해 밀착한 녀석은 이제까지 봤던 것 중 가장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주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거니까. 그럼 하는 거다? 사와무라 선생님?”
그 얼굴이 묘하게 기분 나빴으나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팔을 떼어 냈다. 그날 수업이 끝날 때까지 히죽거리고 있는 그 얼굴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리고 녀석이 원하는 게 무언지 알 수 있는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였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 뒤는 19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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