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구

쿠로켄 합작 - 휴일

중독된 깡 2014. 9. 20. 18:04









합작 공개되어 올립니다.

쿠로켄합작 -> http://tnrud9710.wix.com/kuroken-collabo






휴일을 맞은 주택가의 거리는 한산했다.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다른 게 아니라 작열하는 태양 때문이었다. 주말동안 외출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따라 대다수 사람들은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에서 휴일을 보내거나 수영장이나 계곡, 바다 등으로 피서를 떠난 듯했다. 덕분에 텅 비어 버린 주택가에는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쿠로오는 여느 때와 같이 방문을 두어 번 두드린 후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침대 위에서 게임에 몰두해 있던 켄마는 힐끗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다시 휴대폰에 집중했다. 이불을 한데 모아 끌어안은 켄마는 엎드려서 휴대폰을 잡고 있었다. 게임 하기 편한 최적의 자세. 언제나 그랬듯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에 쿠로오는 웃으며 방에 들어왔다.


최근 신작 게임이 나왔다고 했던가. 그젠가 말했었지. 쿠로오는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옆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캐릭터와 사방에서 터지는 이펙트, 거기에 뿅뿅거리는 효과음까지. 쿠로오는 정신이 사나워 곧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뭐가 재밌는지 잘 모르겠단 말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켄마의 옆에 드러누웠다. 켄마의 종아리 위에 머리를 얹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쪽 다리가 쿠로오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쿠로, 더워.”


떨어지라는 불평을 담은 말에 쿠로오는 일단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게임을 하고 있는 켄마 옆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켄마는 식사도 하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기에 밥부터 먹여야 하나 생각했다. 정오를 훨씬 넘긴 오후였지만, 엊저녁은 분명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었을 터였다. 일어나서도 밥보다는 휴대폰에 매달려 있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쿠로오는 한마디 잔소리를 꺼냈다.


“쉬는 날에도 게임만 하고 있을 거야?”

“다음 주에 신규 업데이트 있단 말야. 그때까지 다 깨야 해. 오늘 안 하면 연습 때문에 제대로 할 시간도 없고….”


말을 줄이던 켄마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고, 쿠로오는 켄마의 베개를 베고 누웠다. 열기에 손으로 부채질해 보았지만, 곧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더 시원하단 생각에 움직임을 멈췄다.


선풍기가 있었으나 창문 사이로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햇볕이 뜨거울 뿐이지, 바람은 이미 가을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이제 여름도 거의 끝나가고, 햇볕이 조금 약해질 즘이면 나무에 단풍이 들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켄마의 행동패턴은 계절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상관없었다. 휴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에서 뒹굴거리며 게임에 열중한다. 간혹 쿠로오가 연습하자며 끌고 나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나마도 여름과 겨울에는 덥다, 춥다의 이유를 들어가며 휴일까지 연습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좀처럼 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켄마가 말했던 것이기에 쿠로오는 소꿉친구가 했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그래도 켄마 군. 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왕 같이 있는 거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산책하러 간다거나 할 수 있잖아. 모처럼의 휴일에도 항상 집에만 틀어박혀서 게임 하고 있는 건 성격에 안 맞는단 말이지. 혼자 배구를 하러 간다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쿠로오는 숨을 쉬며 켄마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걸친 나시가 보였다. 중학교 때부터 입고 있는 옷이라 조금은 작아 보이기도 했다. 축 늘어진 나시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속살에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켄마의 바지였다. 중학교 시절의 유니폼이었다. 집에서야 편한 옷이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신경 써 주면 좋을 텐데. 쿠로오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를 보며 그 밑을 생각했다. 아니 신경 안 써 주는 게 좋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볼을 긁적거리던 쿠로오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켄마의 연습량은 네코마의 누구나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그 몸에는 좀처럼 근육이 붙지 않았다. 원체 아직 성장 중이고 체격이 작은 편이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알고 있어도 간혹 마주하게 되는 몸은 팔뚝에도 허벅지에도 여린 살결뿐이라 쿠로오는 그를 안을 때마다 부드러운 감촉에 몇 번이고 얼굴을 비비곤 했었다. 머릿속에 새삼 떠오르는 촉감에 쿠로오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쿠로.”


쿠로오가 그를 보았을 때, 켄마는 이미 그의 몸을 훑는 쿠로오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멈춘 건지 게임 역시 정지 버튼이 눌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쿠로오는 아무렇지 않은 척, 빙그레 웃으며 켄마 옆에 엎드렸다.


“이야- 날 진짜 덥다.”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쿠로오의 행동에 켄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몇 년이고 옆에서 지켜봐 온 상대다. 켄마가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휴대폰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랭커들을 따라잡으려면 여기까진 클리어해 둬야 하는데…. 


옆에서 덥다며 투덜거리는 쿠로오와 휴대폰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켄마는 쿠로오의 머리에 턱 하니 손을 얹었다. 쿠로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켄마는 대수롭지 않게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쿠로. 이거 클리어하면 해도 되니까.”


그 말에 웃고 있던 쿠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해? 뭘?”


몰라서 묻는 말일 리 없었다. 단지 켄마의 입에서 확실히 확인받고 싶은 쿠로오의 장난이었기에 켄마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싫으면 말고.”

“아니, 기다리겠습니다. 켄마 군.”

“…바보.”


즉답하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시 시작된 게임에 방안에는 털털대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와 켄마의 게임 소리가 울렸다. 애 돌보는 사람이 누군데, 나를 애 취급하는 거야.   쿠로오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웃으며 제 옆의 귀여운 애인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게임을 방해하면 분명 혼날 것 같아, 쿠로오는 옆으로 늘어진 켄마의 머리칼을 넘겨 주며 물었다.


“켄마, 언제 끝나는데?”

“…쿠로가 자꾸 말 걸면 안 끝나.”

“…네. 가만히 있겠습니다.”

“…일일이 대답하는 거 짜증 나.”

“가만히 있는다니까?”


하지만 짜증 난다는 말과는 달리 켄마의 얼굴에는 쿠로오와 같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