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구

하이큐 쿠로다이 쿠로오X다이치 게임

중독된 깡 2014. 6. 14. 02:05










“자자, 마시라고. 짠!”

“나가 죽어라, 상사!!”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보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가게 안은 온통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기에 두 남자가 아무리 큰소리를 낸다 한들, 아무도 그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금요일 밤. 각자 좋은 사람들과 좋은 한때를 보내기 위해 나와 있을 시간이었다. 그 장소가 치킨집이 된 건 쿠로오와 다이치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메뉴를 선택했단 말이었다. 


잔이 맞부딪히고 시원한 생맥주가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쿠로오는 마시는 와중에도 힐끗 맞은 편의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 듯 첫 잔을 단번에 마셔 버렸기에, 쿠로오도 질 새라 잔을 비워냈다. 기본 안주로 나온 팝콘에 손을 가져간 다이치는 건성으로 입안 가득 팝콘을 욱여넣고는 이를 악물었다. 씨발.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쿠로오는 병을 들어 다이치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래서 그 과장은 여전하고?”


다이치는 한발 늦게 잔을 붙잡고 술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안 잘리고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나가 그러하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직장이다. 가끔 언론에서 보면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느니, 사장님이 좋아서 야근하는 직원이라느니 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다이치는 며칠 전 신문에서 봤던 기사를 떠올리며 받은 잔을 또 한 모금 들이켰다. 애초에 모든 회사가 그런 시설이 갖춰져 있으면 그게 언론에 나올 만한 일이 아니겠지. 그러다 다이치는 앞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얼굴에 잔을 내려두었다.


“왜? 더 마셔. 맥주 취하지도 않는데.”

“…아니, 천천히 마실게.”


다이치는 애써 웃으며 쿠로오에게 응대했다. 마주 앉은 사람이 스가나 아사히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상대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쿠로오 테츠로.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네코마의 주장.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하기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사람 좋은 인상도 아니었고, 연습뿐이었지만 시합도 잊지 못할 만큼 강렬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상대였다. 배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3학년을 마무리하면서 다이치는 배구에서 손을 뗐다. 어찌저찌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배구를 그만두는 것이 특별히 아쉽지는 않았다. 주장으로서 안고 있던 부담감 때문일까. 오히려 짐을 내려놨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평범하게 대학에 가고, 졸업해서 취직. 범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이행중이던 그에게 최근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 년에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문드문 연락을 하던 쿠로오가 자주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제 와 친하게 지고 싶은 거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취직한 게 3년 전이었으니, 그때부터 쿠로오는 곧잘 연락하여 뜬금없이 약속을 잡곤 했다. 사와무라 자신이 카라스노의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는 것처럼 으레 성인이 하는 인맥관리의 일종인가, 혹은 보험이라도 들어달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연락을 받았을 때, 쿠로오는 전국 순위권에 드는 배구팀의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은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어서 다이치는 여전하다며 그를 반겼었다.


쿠로오는 다이치의 생각보다 상냥했다. 왜 뒤에서 ‘네코마의 보모’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취업한 이래로 상사와 고객의 사이에서 시달리던 다이치는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같이 취직해서 고생하고 있는 스가나 아사히에게 이런 푸념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나 혼자만 힘든 건 아닐 테니까. 다른 사람들도 전부 하고 있으니까. 그 생각으로 버티던 다이치가 폭발할 것 같을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쿠로오였다. 어쩌다 잡은 술약속에서 그날따라 꽤 과음해버린 탓에 불쑥 튀어나왔던 이야기를 쿠로오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상담해 준 덕에, 지금은 한 달에 대여섯 번도 넘게 만나고 있었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는 어느새 다이치가 웃음으로 그어둔 경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친해져서 좋을 것도 없는데. 다이치는 앞에 놓인 치킨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노릇노릇 구워진 치킨을 물어뜯으며 다이치는 쿠로오를 바라봤다. 그는 은퇴를 앞둔 한 선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남의 이야기는 다이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쿠로오는 말할 때는 상대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한다. 먼저 눈을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는 법 없이 상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래서 다이치는 항상 그보다 먼저 시선을 떼곤 했다. 계속 보고 있으려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그런 시선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의식했던 건 아니었다.


다이치가 기억하기엔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실수로 과장에게 깨진 후, 술을 된통 마신 날이었다. 쿠로오에게 업히기까지 해서 그의 집에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어떻게 할 수도 없어 눕혀진 침대에 뻗어 있었는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쿠로오가 발끝으로 그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야, 자냐? 답하고 싶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기에 다이치는 가만히 뻗어 있었다. 몇 번인가 더 건드리며 자나, 안 자나를 확인해 보던 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뱉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당장 잠들 것 같던 다이치는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쿠로오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고, 다음 날 아침까지 다이치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침대에 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지러운 머리로 쿠로오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생각하느라 애썼었다. 


‘다 차려둔 걸 못 먹겠네.’


그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히 변한 건 아니었다. 쿠로오는 언제나처럼 연락해왔고, 다이치 역시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다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적어도 다이치는 쿠로오를 의식할 수밖엔 없었다. 그간 수십 번을 만나면서 쿠로오가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 행동들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짚이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직은 학습능력이 부족했던 건지, 오늘도 과장의 본 적 없는 깽판에 휘말려 열 받아 있던 와중에 쿠로오의 메시지를 받고 술 약속을 잡은 터라 장소와 시간을 잡은 후엔 잠시 후회했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다이치는 그렇게 위안 삼아 안심했다. 단지 다이치를 안고 싶었던 거라면그날 어떻게든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쿠로오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 다이치와 지금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이 되든 쿠로오에게 질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건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두기엔 좀 아까워. 아직 그만둘 시기는 아닌데 말야.”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다이치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쿠로오를 보고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본인이 하지 않겠다면 별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네가 이 이상 내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쿠로오는 몇 초간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껌뻑이다가 맥주잔을 비워냈다. 술을 따르려 맥주통을 집어 들었다가 텅 빈 맥주통을 확인한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순간 달아나버린 취기와 씁쓸함밖에 남지 않은 맥주맛에 다이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쿠로오는 그런 그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흠, 얘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자리 옮길까?”





나중에 수정하던가 하고 ㅠㅠ 넘 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