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전독시

[중독] 고딩 중독 1

중독된 깡 2019. 1. 2. 17:52


고딩 중독 1



제목 미정ㅋㅋㅋㅋ 그냥 중독 고딩으로 보고 싶은 거 간간히 풀고,
모으면 이것도 책으로 나올 수도 :3!!!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소리에 건물 밖으로 나와있던 학생들은 하나둘씩 교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든 채 계단을 오르던 김독자는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중간중간 다른 반 앞을 서성이다 겨우 자기 반 문 앞까지 온 김독자는 그제야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었다. 

아직 선생님은 오지 않아 교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점심 직후의 나른한 교실에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들 즐거운 일이 많은 듯한 것들. 군데군데 섞인 욕설조차도 친근함의 표시로 들려왔다. 김독자는 잠시 쏠렸던 시선을 무시하며 제자리로 걸어갔다. 곁눈질로 힐끗 바라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직 안 들어왔나. 잠깐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김독자는 창가로 가 앉았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뒤지기 싫으면 휴대폰 그만 봐, 김독자.'

점심마다 그의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한수영은 오늘 꼭 끝내야만 하는 원고가 있다며 점심시간 내내 컴퓨터실에 가 있었다. 햇살이 비추는 학교 뒷편도 소설을 읽기엔 딱 적당한 곳이었지만 학생들 사이에 하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김독자는 잊고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컴퓨터실에 따라갈걸. 언제 이렇게 더워졌지.'

자리에 앉자마자 축 늘어지는 느낌에 김독자는 책상 위로 녹아내렸다. 교실 책상의 차가운 단면이 뺨에 닿았다. 조금이나마 살 것 같은 느낌에 김독자는 눈을 감았다. 눈이 감기기 무섭게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번쩍 뜨인 눈동자에는 걸어들어오는 반장의 모습이 담겼다. 뚜벅뚜벅 제자리로 걸어 들어가며 반장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담임 조금 늦는다."

'그러니 다른 반 수업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있어라'라는 반장의 얼굴에 아이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유중혁은 자리에 앉아 다음 시간 교과서를 꺼냈다. 김독자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지는 않았나. 방금 자연스러웠겠지. 그래도 조금 더 보고 싶다. 마음속에서 소리를 질러가며 김독자는 오늘도 '유중혁 잘생겼다!! 개멋있다!'를 외쳤다.

김독자가 유중혁을 지켜보기 시작한 건 입학식 날부터였다. 아마도 입학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일 테지만, 유중혁은 신입생 대표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차피 학교에서 써준 문장들일 테니.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그 얼굴에 그날부터 유중혁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입학 초기 화이트데이 때 1학년 교실까지 굳이 찾아온 2, 3학년 선배들을 비롯해 분명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날일 텐데도 유중혁은 책상이 차고도 넘치게 사탕을 받았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학교 바깥으로 나갈 때도 몇 번인가 모르는 사람이 유중혁에게 접근함은 물론이고 빼빼로데이 같은 이벤트날이면 가방 두세 개쯤은 더 있어야 커버가 될 정도였다. 그 모든 상황을 김독자는 유중혁의 옆에서 지켜봤다. 1학년 때도, 2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둘은 같은 반이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누구 못지 않게 유중혁의 얼굴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었다.

김독자가 그런 학교의 아이돌, 유중혁을 좋아하게 된 데는 별 이유가 없었다. 잘생겼으니까.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인기순에 비례해 당연하게도 1학년 3반 반장이 된 유중혁은 말수가 적었다. 말이 없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과묵한 성격에 얼굴까지 잘생겼다며 오히려 날파리들은 더 꼬이게 됐다.

사람은 본디 아름답고 예쁜 것에 흥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김독자 역시 그렇게 유중혁에게 관심이 생겼고, 우연히 수학여행에서 둘로 나뉜 방 중 유중혁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말 몇 마디를 나눠보고 전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만큼이나 괜찮은 놈이라는 걸 김독자는 깨달았다. 아마도 김독자는 유중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유중혁은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다. 넣어뒀던 필통을 꺼내고 한숨을 돌리다 창가로 눈을 돌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커튼 밑에서 김독자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볼부터 시작해 목까지 이어지는 턱선이 날카로워 보였다. 피부는 파리해서 유중혁은 잠시나마 김독자가 바람에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다.

2학년이 된 후, 또 같은 반이 되었지만 유중혁은 김독자와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럴 틈도 없이 바빴고, 늘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1학년 때도 그랬지만 김독자는 반에서 조금 겉도는 존재였다. 미움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김독자는 혼자 다녔다. 말을 걸 때마다 휴대폰을 보고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은 김독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느꼈다. 다른 반 친구와 잘 다니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말을 걸면 곧잘 대답했다. 무시하는 것도 없었고 잘난 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학여행에서 유중혁과 대화했던 김독자는 처음으로 온 수학여행에 들떠 있었고, 천진난만하게 웃기까지 해 이런 얼굴도 할 수 있었나 싶을 만큼 유중혁을 놀라게 했다. 유중혁이 하는 말마다 눈을 빛내며 반응해온 탓에 강아지 같단 생각까지 했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가 한층 작아져 있었다.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독자는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머릿속에는 유중혁을 가득 그리고 있었다. 그나마 같은 반이라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눈도 마주친다는 게 김독자에게는 작은 행복이었다. 이 정도 행복은 있어줘야지.

일렁이는 커튼을 보다 문득 김독자는 생각했다. 머리가 길면 엎드려서 얼굴을 가린 채로 유중혁 얼굴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방금 생각한 거 좀 스토커 같은데. 범죄자가 될 수는 없지. 그래도 얼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건 키리오스 선생님한테 받은 거니까 나쁜 건 아니잖아? 김독자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휴대폰의 앨범에는 수학여행 때 같이 찍었던 사진이 있었다. 유중혁과 김독자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 담임이 카메라를 들이밀었기에 찍힐 수밖에 없었던 사진이었는데 김독자는 그 뒤로 보물처럼 그 사진을 들고 다녔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수영은 김독자가 지갑을 꺼낼 때마다 한마디를 덧붙였지만, 김독자는 사진을 뺄 생각이 없었다. 혹시나 누가 볼까 휴대폰에 잠금을 건 것도 당연해졌다. 

'그렇게 삽질하지 말고 그냥 고백해, 등신아! 어휴...'

지금쯤 옆 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한수영의 한마디가 김독자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 고백은 누구 좋으라고 하는 고백인데. 김독자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머리로 옮겨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딱히 유중혁이랑 손잡거나 뽀뽀라든가 뭐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냥 뭐랄까 이건 근본적으로 더 잘생긴 사람에 대한 예의 같은 그런....'

스스로에게 하는 구차한 변명에 김독자는 다시 책상 위로 엎드렸다.

'그래. 좋아한다. 좋아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학교 아이돌 같은 유중혁한테 나 너 좋아해 사귀자! 하면 짜잔 오늘부터 1일! 이런 일이라도 생길 거 같냐고. 나도 현실과 소설은 구분하는 상식인이라고.'

"김독자."

김독자가 엎드린 채 머리를 움켜쥐고 있을 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유중혁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유중혁이 잘생겼다는 이유로만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피지컬적인 면에서도 유중혁은 나무랄 데 없는 미남이니까.

"어디 아픈가? 양호실 갈까?"

"아, 아니?! 나 안 아픈데? 괜찮은데?!"

오버한 김독자의 목소리에 교실 내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소곤소곤 떠드는 소리에 김독자는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한쪽 손으로는 얼굴을 가린 채, 유중혁을 향해 손을 내둘렀다.

"나 진짜 안 아파. 괜찮아."

"엎드렸다 일어났다,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길래." 

그 잘나신 유중혁님께서 김독자님이 하는 행동을 전부 보고 있었다니. 독자는 쥐구멍에 숨고 싶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왜 유중혁이 나를 보고 있었을까?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개로 나뉜다. 김독자가 혼자 쇼하는 게 꽤 재밌어 보여서. 혹은 김독자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울 확률이 더 높겠지만 혹시나 후자면....

"이제는 얼굴까지 빨개지니 정말 열이 있나 걱정되는데."

유중혁의 손이 김독자의 이마에 닿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김독자의 열인지, 여름의 더위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유중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자는 한마디도 못 한 채 얼어붙어 가만히 유중혁을 지켜볼 뿐이었다.

"잘 모르겠는데. 몸이 안 좋으면 양호실에 가라. 담임한테는 말해둘 테니."

"아니.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독자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는 사람을 굳이 끌고갈 수도 없어, 유중혁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독자는 가슴 게를 움켜쥐었다. 중혁이가 빨개졌다고 했으니 제 얼굴은 안 봐도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얇은 교복 셔츠 아래서도 확실하게 전해졌다. 두근두근두근.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소리에 김독자는 다시금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유중혁 개좋아!'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