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전독시

[금독] 나는 김독자에 대해 알고 싶다 1

중독된 깡 2018. 12. 9. 19:36


[금독] 나는 김독자에 대해 알고 싶다 1



*날조의 뇌피셜 기반

*최신회차(300화 전후)의 스포가 있습니다.



'배후성,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 별들의 반짝임은 단지 몇만 광년 전에 폭발한 빛의 잔해일 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것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이 광경을 보는 것이 이번으로 1863번째. 1864회차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1864회차가 구성되고 새로운 화신체가 구성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스타스트림의 시공간을 벗어난 곳에서 나는 아득히 먼 우주를 보고 있었다.

조금 전 보았던 김독자라는 인물은 분명 기억 속에 있던 인물이었다. 언제 만났는지 어디서 만났던 건지 너무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라 잊어버린 듯했지만, 그 세계는 분명히 존재했었다. 이제는 내가 유중혁이 맞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너무 많은 회귀를 반복해왔다. 

어이없게 초반의 시나리오에서 회귀해버린 것이 몇 번, 대재앙 시나리오에서 회귀한 것이 수십번, 거대 설화급 시나리오에서 회귀한 것이 수백번이었다. 어느 시나리오를 받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했다. 

회귀우울증이라는 건 회귀자로서 오직 나만이 겪을 수 있는 병이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처음으로 배신당했을 때, 회귀를 거듭하며 나는 사람을 믿기를 포기했다. 무언가 잘못된다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신뢰를 쌓고 정을 주고 관계를 두텁게 해도 그 끝에 기다리는 건 모두의 죽음과 살아남은 나의 회귀였다. 

그런데도 그 녀석만큼은 그걸 이해했다. 모두를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나를, 또 죽고 싶다는 절망과 살고 싶다는 욕망이 공존하는 나를. 김독자는 내게 잊고 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김독자에게서 나는 또다른 세계의 ■■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러니 앞으로 살아갈 길의 이정표를 제대로 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김독자에 대해 알고 싶다.'


[당신의 배후성이 당신의 요청에 대해 검토합니다.]

[당신의 배후성이 개연성을 지불했습니다.]

[스타 스트림의 세계관은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배후성에 요청에 따라 숨겨진 시나리오가 발동됩니다.] 


<히든 시나리오(???) - 만남>

분류 : 서브(1인)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김독자에 대해 조사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세요.

제한 시간 : 7일

보상 : ???

실패 시 : 회귀 시 김독자에 대한 기억 상실

 

눈앞에 뜬 시나리오를 보며 나는 주먹을 쥐었다. 실패 시의 페널티는 꽤 아플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실패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지고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수백, 수천 번씩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는 건 괴로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도 그만하기로 한 이후에 나는 이 세계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그만뒀다. 

강해지면 된다. 혼자서 그 누구보다도 강해진다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시나리오에서 필요로 하는 동료만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옆에 둘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그 녀석이 보여준 3회차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1863회를 거치며 내가 쌓아온 설화와 이야기는 나를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김독자가 말한 그가 있어야 할 세계의 내가 부러웠다. 김독자가 나와 함께 갔다면 나는 다음 세계야말로 구하겠다고 할 수 있었을까. 원래부터 혼자 가려 했던 길에 누군가가 함께한들 내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 어떤 회차보다도 불행했던 1863회차의 나를 죽이면서 나는 김독자를 원래의 세계선으로 보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1863회차의 죽어간 유중혁이 보지 못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김독자를 만나고 그에 대해 더 알게 된다면 나는 정말로 이 세계의 ■■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눈앞에 나타난 눈부신 빛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에 도달해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면. 김독자는 내게 유일하게 남은 희망인지도 모른다.


***


주먹을 놓으며 눈을 떴을 때 나는 주택가의 한 골목에 서 있었다.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길을 보다 하늘로 눈을 돌렸다. 푸른 쪽빛과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이 하늘을 반절씩 머금고 있었다. 평화로운 그 세계를 보며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했다. 멸망이 찾아오기 전의 세계. 적어도 한반도에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이전일 것이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곳이 누군가에겐 현실이라 생각하니 익숙할 골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오래전, 1회차에서 2회차로 성흔이 발동할 때부터 나는 의문을 느꼈다. 어째서 나만 회귀할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나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스스로의 사명과 책임을 느끼며 나는 회귀에 회귀를 거듭했다. 그리고 1863회차를 거치며 지금은 그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고 함께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깨달았다.

7일. 일주일의 시간을 준 데에는 의미가 있을까. 문득 들려오는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나는 뒤돌아섰다. 주황빛으로 물든 놀이터에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이 혼자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아이가 발을 구를 때마다 그네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아이는 김독자라는걸.

아이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더라.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앉아있는 그네로 다가갔다. 인기척에 녀석은 나를 봤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건넬까. 시공간을 넘어 너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면 아이가 믿기나 할까. 미친놈이란 말을 듣진 않을까. 

건네야 할 말 한마디조차 찾지 못한 채, 그네에 앉아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어린 김독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난데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진짜 잘생겼다...."

말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품은 것은 잘생기거나 예쁜 것이 다 좋다는 모든 사람의 일반적인 호감에서 우러난 관심이었다.

"아, 죄송해요. 그...."

볼을 긁적이던 아이는 멋쩍은 듯 눈을 돌리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앞에 와 두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형 진짜 잘생겼어요. 멋있어요."

갈색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에 저학년쯤일까. 허리춤에도 오지 못할 녀석의 작은 키에 나는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배후성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렇게 작고 어린 녀석에게 무엇을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 시간에 혼자 잇는 걸 보면 다른 친구들은 집에 간 건가. 왜 혼자 있지? 현자의눈을 쓸까 생각했지만, 굳이 발동을 할 것도 없었다.

이곳은 여름이었다. 초여름이든 늦여름이든 날씨는 일반적으로 덥기 마련인 곳. 그런데 아이는 흔히 입는 반팔과 반바지가 아니라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언뜻 올라간 소매와 바짓단 끝에 나는 아이의 몸에 난 멍이 보였다. 김독자의 유년시절이 어땠는지 들어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 좋았던 시절만은 아닐 거라고.

"나도 형처럼 잘생기면 좋겠다."

정말 부러운 듯, 그러나 시기보다는 그저 호의만이 담긴 말과 웃는 얼굴에 나는 손을 뻗었다. 아직 부드러운 그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는 아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너는 귀엽다."

김독자는 김독자의 세계에서 그 나름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겪는 회귀와는 또 다른 어려움일지라도. 누구든 한 사람의 인생은 수없이 많은 사연과 개연성이 얽혀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

아이는 내 말에도 별로 기쁜 기색 없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귀엽다는 말 들어도 하나도 안 기쁘거든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옆으로 돌아선 아이는 다시 베시시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뭐 그래도 잘생긴 형한테 들으니까 좀 좋은 거 같기도 하고...."

김독자가 내 얼굴을 이렇게 좋아했던가. 문득 생각난 의문에 계속해서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는 다시 그네에 앉아 내게 물었다.

"이런 데서 뭐해요?"

"......."

"어른들은 바쁘잖아요, 보통."

"......."

너를 조사하러 왔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수상한 사람이라 생각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너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뿐이다. 그것이 내 세계를 끝내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니.

아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쳤다. '짝' 하는 소리가 텅 빈 놀이터에 울렸다. 그네에 앉은 채 슬금슬금 내게 가까이 다가온 아이는 작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 형도 혹시 뭐... 집에 가기 싫고 그런 거예요?"

가기 싫다기보다는 뭐라 해야 할까. 돌아갈 수 있다면 거절하지 않겠다는 편이 맞겠지.

"...그래."

"나돈데. 그럼 같이 놀래요?"

"...뭐하고?"

"으음, 그냥 얘기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들어주지."

"뭐야. 형 되게 할 거 없나 봐요."

아이는 혼자 큭큭 거리며 웃다가 내게 물었다.

"근데 형은 이름이 뭐예요? 나는 김독자예요."

알고 있다. 네가 누구인지는. 나는 너를 만나러 온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아이의 작은 손을 붙잡았다. 여리고 부드러운 살결이 굳은살이 배기고 거칠어져 버린 내 손에 닿았다.

"나는 유중혁이다."

손을 붙잡자 아이는 위아래로 손을 흔들었다.

"이름도 멋있네. 잘 부탁해요, 중혁이 형."

환히 웃는 그 얼굴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금세 마음을 열 수 있는 건지. 어린 시절의 김독자는 제법 순진했던 모양이다.







to be continued...
4편까지 연재 후 비공개 전환 및 전체 내용은 미식협에 책으로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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