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전독시

[중독] 나만의 구원

중독된 깡 2018. 11. 7. 17:20


*전지적 독자 시점 291화 이후 설정 날조
*최신화 스포 주의







[아이템, '한낮의 밀회'를 사용합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은 <스타 스트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은 <스타 스트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은 <스타 스트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면상을 보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 손 놓고 꺼져, 빌어먹을 새끼야."」

「"중혁아, 우린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알지?"」

「"우리 성운의 이름은... 김독자 컴퍼니...."」


'현자의 눈'조차 가로막은 무언가가 알 수 없는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언제 있었던 이야기지?

1863번 회귀까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봐왔다. 그들 중 일부는 오래토록 살아남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내가 죽거나 그들이 죽거나. 그럼에도 배후성은 끊임없는 회귀를 계속하도록 했다. 죽음마저 거부하며 발버둥 쳤음에도 차라리 죽음을 갈구하게 될 때까지. 내 죽음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고, 그 시작과 함께 동료들은 회귀의 수만큼 죽어나갔다. 그렇게 도달한 1863회차였다.


「"사부한테 다음 회차라는 게 없다면 좋을 텐데."」

「"중혁 씨, 저는 죽을 때까지 오늘을 잊지 않을 겁니다."」

「"중혁 씨는 살아있어서 행복해?"」


눈앞의 남자가 읊어주는 말에 몸이 굳어버렸다. 어째서. 몇회차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들의 말을 네 녀석이 알고 있는 거지? 현자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녀석은 대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끝내줄게."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한마디에 온몸에 울리던 진동이 멈췄다. 그리고 나는 진동이 만들어낸 블랙홀 사이로 빨려들어갔다.


*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섭리고 진정한 이치다. 그 모든 것을 거스르는 배후성의 성흔으로 인해 내 삶은 여기까지 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면 구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처참히 죽어 나가는 광경을 보며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방법을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좀 더 강해진다면, 히든 피스를 더 많이 얻는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을 품었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던 것은 희망뿐이었으니. 내게도 그런 희망은 허락될 줄 알았다. 적어도 초반에는 그랬다.

100번의 회귀를 넘기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 세계에 구원 따위는 없다는걸.


*


무거워진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꼭두각시처럼 그의 말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생명을 잃어버릴 것처럼. 나는 먼 곳에서 남의 모습을 구경하듯 나를 보고 있었다.

"흙을 먹어라 유중혁."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이미 껍데기처럼 비어버린 몸은 그 명령을 수행했다. 

정말로 할 줄은 몰랐던 건지 그는 내 뒤통수를 치며 말렸다. 

"먹으란다고 진짜 먹으면 어떡해!"

그전에 저건 내가 맞는 건가. 이제 유중혁이라는 인간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

쉬라는 말에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시간 같은 건 없었을 텐데.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그간의 기억들이 맴돌았다. 이미 아득하게 멀어진 초반의 회귀에서 저런 녀석이 있었던 것 같기도...

*

"유중혁, 행복한 생각하면서 기다려. 알겠지?"

행복한 생각.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세계는 시작했을 때부터 멸망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끝에 있는 건 언제나 나 혼자였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작은 인형이 내게 볼을 비비는 그 기억을.... 

그건 분명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였다.

*

"유중혁. 우리엘을 막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녀석의 정체를 깨달았다. 

"......우리엘."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지.

73번째 마계가 멸망하기 직전, 모두가 외쳤다.

모든 걸 알려준 건 당신이라고. 같이 여기서 죽겠다고.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 그 녀석은 분명 3회차에서만 존재했던 녀석일 텐데.

구원의 마왕은 한국의 서울 돔에서 시나리오를 시작한 인물이었다. 모두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마왕으로 남았다. 스타 스트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부활해 돌아올 거라는 희망조차 다 버려졌을 때, 나는 생각했다. 김독자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올 것이라고. 그곳이 어디든 최선을 다해 회귀를 살아가는 나에게.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4회차에서도 5회차에서도 회차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 기억이 절망을 거름으로 삼은 내 상상인지조차 가물가물해졌고 끝내 잊혀졌다. 그럼에도 뇌리에 박힌 그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주세요.'

그것은 구원이기보다 저주에 가까웠다.

남겨진 자들은 모두 삶보다는 그와 함께 죽기를 원했다. 그는 모두를 구했지만 또 모두를 버렸다. 그런 구원은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 그 말 그대로, 구원의 의미를 녀석은 잘못 알고 있었다.

너의 구원이 네 희생으로 모두가 살아남는 거라면 나는 그런 구원 따위 필요 없다. 너는 모두의 구원일 필요가 없어.

나는 진천패도를 손에 쥐며 몸에 깃드는 정신을 느꼈다. 앞으로 갈 길은 이보다 더 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구원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움직여야만 했다.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나를,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은 너를 위해 존재한 나이기에. 오직 나만의 구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