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소스마코 바이러스D

중독된 깡 2018. 10. 24. 11:15

바이러스 D


디스토피아 소재 주의




 

만약에 내가 바이러스 숙주라면 어떨 것 같아?”

흙먼지가 이는 바람 속에서 어이없는 질문이 들렸다. 속절없이 져가는 해를 보며 마코토가 물었다. 헛소리다. 코웃음을 치며 본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 웃음을 띠고 있어 얼른 웃음기를 거뒀다. 들고 있던 라이플을 장전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기분 나쁜 얘기, 하지 마.”

어깨를 잡은 손에 나는 다시 뒤돌 수밖에 없었다. 마코토는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러니까 만약에 그러면, 내가 숙주라면 날 죽여줄 수 있어?”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길 하고 그래? 그렇게 되물으려다 왠지 모르게 필사적인 그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얼굴을 뒤덮게 두른 천을 뚫고 먼지는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나는 마코토의 손을 붙잡았다. 불안한 걸까. 언젠가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한바탕 바람이 지나간 후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럴 리 없으니까 괜찮아.”

 

* * *

 

XX43년 지표면에 살아남은 생명체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바퀴벌레 정도일까. XX289, 워싱턴, 런던, 베이징 등 주요 국가의 수도 위에 느닷없이 나타난 커다란 전함은 지표면을 그림자로 덮어버릴 만큼 거대했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났던 우주선은 갑자기 사라졌다. 세계의 종말이다, 외계인의 침공이다, 타국의 음모론까지 제기되었지만 지구는 멀쩡한 것 같았다. 인간만 빼고.

주요 도시를 시작으로 점차 사람들은 괴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발열이나 오한 등의 징조도 없이 나타났던 거대 전함처럼 갑작스럽게 변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이 뒤돌아보면 괴물이 되어 있었다. 사지가 뒤틀리고, 얼굴에 있던 눈, 코를 비롯한 감각기관들은 전부 인체의 어딘가로 흩어졌다. 피부가 벗겨져 드러난 괴물도, 팔다리를 감춰 굴러다니는 괴물도 제각각이었다. 개체에 따라 소리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랐는데 입이 달린 괴물에게서 나오는 소리는 괴성뿐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점이었다. 괴물들은 일단 사람을 덮쳤다. 없더라도 생명체에게는 모두 달려들었고, 신체 어딘가에 있는 입을 이용해 인육을 뜯었다. 괴물들끼리도 서로가 적이었기에 온 거리에는 피가 낭자했다. 죽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인간이었던 생물이기 때문에 심장을 쏘면 즉사였다. 하지만 무작위로 변하는 사람 중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려야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군대가 출동하고 폭탄을 터트리는 등 진압을 위해 애썼지만, 대피해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괴물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단 일주일 만에 세계인구는 3분의 1 이하로 줄었고, 주요 도시는 쑥대밭이 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구 희박 지역 거주자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마저도 도시의 주요기능이 마비되자 순식간에 죽어갔다.

저명하다는 연구원들이 괴물을 생포해 DNA를 분석하고 한 가지 사람의 DNA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해냈다. 통칭 바이러스 D. 모든 인류에게 감염된 것으로 보이며, 동식물에게는 전염되지 않고 오직 인간에게만 해를 입히는 인류 멸망의 바이러스. 하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원도 괴물로 변해버렸고, 지방에서 그나마 정보를 전해주던 방송국마저도 전부 파괴되었다.

그게 XX2810월이었다. 1개월 만에 인류는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남은 건 간간히 공용 주파수를 이용해 들려오는 무전뿐.

XX32. 원래부터 살아남은 인류들은 헛소리를 하길 즐겼다. 거의 다 죽어 나간 마당에 윤리라는 게 남아있을 리 없지. 주파수를 통해 들리는 구호 전파 중 다수는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였지만, 지표면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런 전파에 낚여 목숨을 잃은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식량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진작에 떨어진 지 오래였고, 시골에서 밭을 일구거나 채소를 키우는 게 아닌 이상은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오히려 외진 곳에서는 괴물이 된 자만 골라 죽이고 마을 단위로 공동체를 조직해 먹고 살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전파조차도 조금씩 수가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들리면 반가울 정도로 울리지 않았다.

XX40년 어느 날, 전파를 타고 알 수 없는 정보가 들렸다. 폐허가 된 연구소에서 발견한 정보로 바이러스의 숙주만 죽인다면 인류에게 내재된 모든 바이러스 D를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개소리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같이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은 동요한 모양이었다. 당장 숙주를 찾아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다시 인류가 부흥할 수 있다고.

제대로 된 정보라고 해도 숙주를 색출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놈을 죽여서 세상이 멀쩡해진다고 쳐도 이미 인류는 너무 멀리 왔다. 환경 파괴니 뭐니 죽어가던 지구를 진보한 과학기술로 어떻게든 이끌어오고 있었지만, 몇백 년 전과 다르게 햇볕은 사람의 피부로 받아내기엔 너무 뜨거워졌다.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해 질 녘부터 저녁까지. 어두운 밤이 되면 불을 켤 자원도 없는 데다 온도가 너무 낮아져 사람들은 땅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 살았다. 마른 건빵도 없어서 못 먹는 귀중한 식량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대핵대비용으로 건설해둔 지하 벙커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했지만,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애초에 그런 기밀을 민간인이 알 리 없잖아.

지하로, 지하로 내려간 사람들은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채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그중에는 그 지하에서도 배웠던 지식을 이용해 다시 병원이니 학교니 농사니 하는 여러 시스템들이 구축되고 있었지만, 태양열 발전을 이용하는 것도 먹고살기 위한 농사에 주로 이용될 뿐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철문을 들어올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마을이 통째로 지하에 푹 꺼져버린 것처럼 폐자재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즐비했다. 마치 예전의 판자촌을 보는 것처럼.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이제는 어둠이 드리우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지하보다는 지표면이 나았다. 꽉 막힌 공기는 텁텁했고, 어두컴컴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지하에서 빛이 나는 물건은 희귀했다.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는 한 타인을 배제하는 편이 살 확률이 더 높은 데도 사람들은 모여 살았다. 마을 단위를 이루지 못한 개인은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환경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표면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모래바람을 빼고는 그럭저럭 신선한 바람이었다. 낮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찬 공기가 몰아치고 입을 열면 입김이 하얗게 새어 나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지하는 감옥이나 다름없어. 어렸을 적, 초원을 뛰놀았던 게 전부 거짓말 같았다.

 

* * *

 

혹시나 마을에 가선 그런 말 하지 마. 재수 없다고 할 테니까.”

마코토는 손에 쥔 물병을 만지작거렸다.

. 그래도 소스케는 어떨지 궁금했어.”

뭐가?”

내가 숙주라면 소스케는 날 죽여줄 수 있을까. 그런 거.”

괴물로 변한 사람이 사라진 지 반년이 넘었어. 그럼 끝난 거 아냐?”

그건 우리 지구만이잖아. 무전 너머로는 지난달에도 괴물이 나왔다고 했는걸.”

도시락을 꺼내 그 앞에 늘어놨다. 언제나 먹는 감자, 고구마, 그리고 건빵 몇 개. 물이 없으면 도저히 넘어가지도 못할 밥에 일단 침을 삼켰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데.”

그냥. 반대도 생각했어. 소스케가 바이러스 숙주라면 나는 소스케를 죽일 수 있을까. 그런 거.”

그래. 혹시나 숙주를 발견하면 내가 죽일 테니까. 그래서 오늘 할 얘기라는 게 그거였어?”

…….”

눈치를 보는 얼굴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야 할까. 아니면 죽이겠다고 해야 할까. 입안에 넣은 감자는 퍽퍽했다. 전부 식어버렸지만 그래도 미미하게 단맛이 났다. 감자 본연의 맛인지 설탕이라도 넣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선 먹어야 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마코토를 두고 혼자 먹고 있으려니 안 그래도 목이 멨다.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냈을 때, 그가 말했다.

전조는 있었어. 한두 번이 아니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코토는 품 안의 물병을 꺼내 세워두었다.

“3년 전, 그 전파를 들은 후에 생각했어. 바이러스 숙주가 진짜 있는 거라면 뭔가 특징이 있을 거야. 다른 보균자들과 다른 무언가가. 괴물과는 몇 번 마주했었잖아. 그때마다 내가 어땠는지 기억해?”

…….”

5년 전 마을의 한 남자가 괴물이 됐다. 여느 괴물들처럼 갑자기 몸이 변형되어 일그러지는 걸 사람들은 눈앞에서 목격했다. 변이를 마친 괴물은 먹잇감을 노리듯 두리번거리다 4명의 희생양을 냈다. 그리고 마코토 앞에서 괴물은 멈춰 섰다. 그 자리에 있던 건 마코토 한 명. 뒤늦게 소식을 듣고 그 장소에 갔을 때 마코토는 괴물 앞에 서 있었다. 총은 쥐고 있었지만, 그 손은 떨리고 있었고 괴물은 그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팔도 다리도 없어진 모양새였지만 마치 무릎을 꿇은 듯한 모습. 이상하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은 곧 내게 달려왔다. 몇 번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방아쇠를 당겼다. 뭉개진 몸 안, 심장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쏴도 충격은 하나도 없는 듯 내게 달려들던 괴물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거리는 살덩이를 뒤로하고 나는 마코토에게 다가섰다. 마코토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주저앉았다. 끌어안고 다독이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마코토는 내게 말했었다.

괴롭다고 했. 살고 싶다고 했어. 죽이고 싶지 않다고. 전부 끝내고 싶다고.’

한 번. 단 한 번이었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코토는 내 얼굴을 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6개월 전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괴물이 생겼을 때도 모두. 괴물들은 마코토 앞에 멈췄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표면에서 만난 괴물들도 모두 그랬다.

차라리 괴물이 무더기로 나타났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어. 그러면 정말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근데 그때도 있었잖아. 지표면에 괴물이 많아졌을 때. 내가 피범벅으로 돌아온 날 기억해?”

XX40년의 숙주 전파 이후, 사람들의 동요 때문인지 괴물이 갑자기 늘어났다. 마코토와는 보초 시간이 다른 날이었다. 살려달라는 무전을 듣고 급히 지표면으로 올라갔다. 찢어진 동료의 시체가 보였다. 마코토는? 주변을 둘러보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마코토를 발견했다. 그 근처에는 살덩이들이 낭자해 있었다.

내가 다 죽였다고 했지. 맞아. 내가 다 죽였어.”

마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른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괴물한테 둘러싸였는데 전혀 공격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야. 그거 알아?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이제 어떡해야 해. 알려줘. 죽여줘. 살려줘. 그냥 그런 소리가 들려. 괴물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마코토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야.

잠깐, 마코토 진정해. 일단 그 총, 내려놔.”

아냐, 소스케.”

마코토는 들고 있던 총을 머리에 가져다 댔다.

내가 몇 년 동안 고민한 게 정말 사실이었다고. 내가 숙주인 거야. 나야. 내가 죽으면 괴물은 전부 사라져. 그래서 괴물들이 나한테 꼼짝 못 하는 거야.”

죽으면! 죽으면 뭐가 되는데. 그 전파가 사실이라고 쳐. 그럼 숙주가 죽는다고 모든 게 해결돼?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네가 죽으면 모든 인간이 다 죽을 수도 있잖아.”

괴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소스케.”

그것만으로 네가 숙주란 증거는 안 돼.”

반년 동안 왜 괴물이 없었을까?”

?”

이곳으로 오는 괴물들. 내가 다 죽였거든. 소리가 먼저 들리니까.”

숨죽인 듯이 평화로웠던 반년이 전부 너 때문이었다고? 내 표정에 마코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엔 우유부단하면서 이상하리만치 단호했다. 정황상 증거는 충분하다. 네가 숙주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널 잃을 수 없어. 너 하나가 사라진다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피하지 마, 소스케. 이게 진실이야.”

그만. 마코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난 너를.”

죽여야 해.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마코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포구가 그를 향하도록 권총을 들고 있었다.

나는, 내 소원은. 이런 생활이라도 계속해서 너와 함께하는 거였어. 그런데 그걸.”

소스케, 나 가끔 꿈을 꿨어. 근데 이제 그게 꿈이 아니란 걸 알겠어.”

…….”

그날의 기억이 없다고 했잖아. 우주선이 나타났던 날. 그때 그들이 말했어. 희망이 있다면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안 거야. 내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숙주라는 걸.”

재촉하듯 총을 건네던 마코토는 내 손을 잡아챘다. 오른손을 펼쳐 개머리를 쥐어주고는 손을 오므리게 했다. 총을 쥔 손이 떨렸다. 기분 나쁜 얘기는 허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이러스 숙주. 그리고 숙주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그게 거짓이라면. 나는 너를 잃고 남겨진 세계에서 뭘 위해 살아가면 좋을까. 그냥 이렇게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냥 모른 척.”

옳은 일을 해야지. 그게 내가 사랑하는 소스케인걸.”

마코토는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덜덜 떨려오는 몸에 나는 마코토를 끌어안았다사방이 멈춘 듯이 고요했다사막의 한기가 고스란히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도 끌어안은 마코토는 이렇게 따듯하다. 이렇게나 따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