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수영

Free! 소스마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중독된 깡 2018. 10. 11. 15:40




어슴푸레한 빛이 비쳤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매무새를 만졌다. 어둑어둑해진 창밖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바깥은 소란스러웠고, 틈을 타 어린 동생들은 노점상을 돈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을 이끈 주범은 다름 아닌 나기사겠지만. 덕분에 오늘 요정에는 적어도 몸을 파는 기생들밖에는 남지 않았다. 

흥겨움에 취해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 하룻밤의 꿈처럼 덧없이 흐려질 하루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오실까. 떠들썩한 축제이니만큼 그 얼굴이 아른거렸다. 술을 마시고 취하고 어쩌면 흥에 겨워 잠자리는 생각지도 못할 손님들이 즐비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만큼은 나도 행복한 날이 되면 좋을 텐데.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축제는 시작되어 있었다.

"늦어, 마코쨩."

"미안. 하지만 나올 필요도 없었던 것 같은걸."

아직 이른 저녁일 텐데. 언제 이렇게 모였을까. 2층, 3층까지 꽉꽉 들어찬 손님들을 보며 절로 쓴웃음이 났다. 이 사회에서 잘나간다 하는 상류층의 사람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이 요정으로 잘도 모여들었다. 버젓한 가정을 두고도 매춘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과연 정상일까. 이런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나는 어떻고.

"필요가 없다니 섭섭하구만, 자네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는가?"

허릿춤에 불쑥 들어온 손에 놀랐지만, 이내 익숙한 목소리에 눈꼬리가 휘도록 웃어보였다.

"아니 오시기에 저 같은 건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나으리."

가슴이 맞닿기도 전에 볼록 튀어나온 물컹한 뱃살이 먼저 닿았다. 돈이 넘치고 넘쳐 넘치다 못해 뱃속까지 돈으로 들어찬 것 같은 남자는 시시덕거리며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무얼 먹고 온 건지 벌어진 입속에서 나는 냄새는 구토감을 일으켰지만, 끝까지 웃음을 유지했다. 

"그럴 리가 있나. 마코쨩 엉덩이가 이렇게 내 손에 착 붙어오는데, 잊을 리가 없잖나."

허리를 감싼 손은 이내 아래로 내려가 이미 한밤중이라도 된 양 엉덩이를 조물거렸다. 웃으며 그 손을 붙잡아 얼굴로 가져갔다. 주근깨며 잡티 하나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 얼굴은 고생조차 모르는 얼굴이었다. 땡볕에 나가 밭을 매고 허드렛일을 하며 당장 내일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고, 식구 중 누군가가 병에 걸려도 의사를 불러 뚝딱 치료하면 되는 그런 사람. 온실 속에서 자라 빛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더러워질 수도 있는데. 측은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직 밤은 멀었으니 오늘은 좀 더 즐기시지요."

헛기침을 몇 번 한 남자는 내가 건네는 잔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는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오늘 밤은 선약이 있나?"

튀어나온 배 만큼이나 부풀어 오른 바지춤을 보고 나는 말 없이 웃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자연스레 떠들고 있자니, 몇몇 얼굴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젊은 사람은 그나마 상대하기 좋다. 또래의 사람들은 그저 여흥을 즐기기 위해 이 자리에 왔을 뿐, 정의와 수치라는 것을 안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기생들이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왔는지, 재주를 파는지 몸을 파는지 그런 것들을 분별할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돈을 주는 것은 자기라며 거들먹거리는 졸부들은 시대에 편승해 물결을 탔을 뿐, 정말로 품위가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귀족이라면 저런 짓은 안 하겠지. 속으로 혀를 차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어 발음을 듣고 있자니 외국에 다녀온 사람 같기도.... 사람들 너머로 빨간 머리가 눈에 띄었다.

"마코토!"

날 부르는 목소리에 눈이 먼저 그쪽으로 향했다. 실례한다며 인파 속을 뚫고 내 앞까지 온 그는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게 마주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손을 붙잡았다. 꼭 붙잡은 손에서 이 요정에서는 드문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이야!"

"린님, 오셨어요?"

간단히 답했지만, 나으리 같은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 돌아온 린은 어렸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단지 쾌락만을 위해 요정에 오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 그리고 린이 왔다는 건....

"그렇게 찾지 않아도 와 있다고, 소스케."

힐끗 그가 눈길을 보내는 방향을 보자 찾던 사람이 있었다. 청록색의 눈동자가 올곧이 나를 향했다. 마주치는 순간 부드럽게 휘는 눈꼬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을 빼입은 훤칠한 남자가 보였다. 왔어. 소스케님이 와주셨다고. 소스케님이...!

"하하, 마코토, 다른 녀석들이 질투해도 괜찮겠어?"

붉어진 얼굴에 손등을 가져다 대며 얼굴을 식혔다. 숨을 고르며 가면을 썼다. 너무 기뻐하지 않도록. 누구도 볼 수 없도록. 그래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지, 린은 계속 나를 보며 웃었다. 그렇게 못 숨겨서 어쩌냐고 웃는 린은 내 옆에 서서 나를 감싸주었다. 마츠오카가의 도련님이 와계시니 쉽사리 손댈 수 없어 기분 나쁜 눈길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나한테도 이런 힘이 있었다면.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곁을 스쳐 가는 알싸한 향에 모든 생각은 그에게로 쏠렸다.

"1시, 정원에서 기다릴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정하게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요정 안에서도 그 목소리만은 달콤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 취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물론 그중 다수는 하나씩 사람을 끼고 잠자리에 들어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을 게 뻔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런들 뭐가 대수겠나. 여전히 요정 안에는 흥에 겨운 사람들이 많았고, 음악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어둑어둑해진 밤하늘 위로 불꽃까지 타오르기 시작했다. 펑펑 터져 오르는 불꽃에 린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만 마셔.' 입 모양으로 건네는 그 말에는 '이따 소스케를 만나야 하잖아'란 말이 숨어 있었다. 확실히. 아까부터 들떠서 너무 마신 것 같아. 하지만 취하지 않으면, 들러붙는 사람이 더 많아서. 린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고.

"린, 고마워."

손님에게는 늘 깍듯하게 '님'을 붙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건 손님이 아니라 내 소꿉친구 린에게 하는 말이니까. 린은 가보라며 손짓했고, 나는 사람들을 피해 다시 내 방으로 갔다. 소스케님을 만나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하니까. 잠깐 눈이라도 붙이는 게 좋겠어.



눈을 떴을 때는 아직 밤이었다. 달은 이제 하늘에 우뚝 올라선 듯 가장 높은 곳에, 또 가장 가깝도록 환하게 땅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지금 몇 시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시계를 봤다. 1시를 넘긴 시간에 나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방을 나섰다. 설마 가버리시진 않았을까. 늦었는데. 치장했던 건 괜찮나. 아직 술기운도 남아있는 것 같아. 머리도 조금 어지럽고. 그래도 빨리 가지 않으면 볼 수 없을지도 몰라.

허겁지겁 달려간 정원에는 인영이 있었다. 부서지는 파란 달빛에 어쩌면 나를 구원하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스케, 소스케님. 보고 싶던 그 얼굴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달려가 와락 끌어안고 싶다는 욕망에도 주춤거리며 머뭇머뭇 다가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나를 품에 안았다. 

단단한 가슴팍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이 사람만큼이나 시원하고 알싸한 향이. 포근한 느낌에 몸을 기댔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소스케님이 보고 싶어 잠도 이루지 못한 날이 셀 수 없었다고.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인지 알 수조차 없다고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맞닿은 손과 팔,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그저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찔끔 눈물까지 났다. 

어깨에 매달리듯 등을 끌어안자, 그는 살며시 몸을 뗐다. 그것도 잠시 부딪쳐온 입술에 나는 눈을 감았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요정의 소리에도 그 순간만큼은 정적이었다. 살짝 떴던 눈꺼풀 너머로 불타는 듯한 눈이 보였다. 바다도 숲도 세상 모든 걸 담은 그 눈에 나는 홀린 듯이 빠져들어 갔다. 숨이 가빠질 즈음, 겨우 떨어진 그는 내 머리를 감쌌다. 코끝을 맞대고 마주 웃는 그 얼굴에 나는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안 오는 줄 알았어."

"죄송해요. 소스케님을 뵙기 전에 술기운을 지우려다가...."

"잠들었어?"

"네. 깜빡...."

"귀여워라."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투박한 손을 붙잡아 볼을 기댔다.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술기운인지, 그에게서 나오는 열인지 알 수 없었다. 볼을 간질이는 손가락에 미소가 피어났다. 가볍게 입을 맞춘 그는 다시 내 허리에 손을 감았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키스에 다시 눈을 감았다.


무슨 정신으로 방까지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정신을 잃은 것도, 잠이 든 것도 아니란 건 확실했다. 바깥에는 여전히 달이 중천이었고,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의 방에도 손님이 한 명씩은 와있을 터인데, 주변은 이상하게도 고요했다. 마치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새삼 인지했다.

그러니까 소스케님과 하룻밤을.... 옆에 앉아있는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 불 하나 없이 달빛에 의지하는데도 소스케님은 너무나 밝았다. 마치 린이 어릴적부터 눈부시게 빛났던 것처럼. 신비로운 파란 달빛에 취한 건지,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현실이라 나는 그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고 또 기대했다.

"소... 소스케님."

다가오는 얼굴에 또 눈을 감았다. 한두 번이 아닌 일이다. 손님과의 하룻밤은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인데. 그런데도 이렇게나 무섭고 떨리는 건 상대가 소스케님이니까. 입술을 간질이는 느낌에 웃음이 났다. 쪽쪽, 얼굴부터 시작해 목과 가슴까지 입맞춤하며 내려가는 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언제 벗은 건지, 훤하게 드러난 상반신은 예상했던 것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다. 눈을 둘 곳을 몰라 감아버리자 몸에 닿는 감촉이 더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마코토."

머리를 쓱 쓸어넘기는 손길에 눈을 떴다. 사랑스럽다는 듯한 그 눈동자가 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여긴 네 방이고. 아무도 우리 소리는 못 듣지. 그러니까 조금 더 소리 내주면 좋겠는데."

"...읏... 네...."

더 말했다간 이상한 목소리가 나와버릴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입술이 겹쳐졌다. 부드럽게 파고드는 혀에 자연스레 눈이 뜨였다. 감은 와중에도 하반신에 와닿는 불룩한 느낌이 선명했다. 소스케님도 원하고 있고, 나도 소스케님을 원해.

"소리, 내기로 했잖아?"

짓궂은 물음과 함께 버클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몸이 마비된 것처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굳어있는 내 모습에 소스케님은 다시 몸을 겹쳤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저번에 알려줬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밤은 아마도.... 떠올린 순간 밀착된 몸에 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새 까먹은 건 아니지? 응, 마코토?"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울먹이는 내 표정에 소스케님은 다정히 손을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볼을, 또 입가를 쓰다듬던 손은 천천히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엄지를 입에 넣은 채, 나는 천천히 소리를 냈다. 오늘 밤은 잠들지 못할 것 같아.





181011 오늘 꾼 꿈 약간 각색하여 소스마코로.. 

소스케 개멋있다 소스케 잘생겼다 소스케 눈빛에 설레고 두근거리고
아니 진짜 내가 종일 설레가지고 진짜 누나한테 왜 그랬어(벽뿌숨
약간 게이샤 마코토랑 이미 약속된 마음에 둔 사람 소스케 같은 느낌이었음
친구 왜 린이냐면 진짜로 린이 친구처럼 나와서 감싸줬기 떄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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