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추웠다. 지역 날씨 탓인지 사무실 안에 있어도 추위는 사람들을 괴롭혔다. 개인 난로를 켜 두지 않으면 바깥에 서 있는 것처럼 찬 공기가 감돌았다. 퇴근 전까지 제출하라는 보고서는 세 개가 넘었는데, 아사히, 스가와 함께 어젯밤을 달린 터라 모니터를 봐도 그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는 띵띵 울리고 눈은 건조해 아프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눈을 비비는 모양새에 옆자리의 카게야마 씨가 커피라도 타다 줄까 묻기까지 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요. 신경 쓰이게 해 미안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날렸다.
그나마 점심시간이라 조금 살 것 같았다. 따끈한 국물이 필요했기에 사내 식당에서 라면을 받아들었다. 다른 것은 언제나와 같이 별 볼 일 없는 식단이었는데도 라면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이거 분명 해장용으로 놔둔 메뉴일 거다. 후루룩 면을 삼키다가 앞사람에게 물었다.
“쿠로오 씨, 나갈 건가요?”
반년 정도 늦게 입사한 그는 회사에서 제일 친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갑내기란 사실이 친해지는데 한몫했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죽이 잘 맞았다. 물론 회사 얘기도. 몇 번의 술자리를 거친 끝에 지금과 같은 사이가 됐다.
“사와무라 씨는 나가요?”
점심을 다 먹은 후 잠깐 짬이 나는 그 시간 동안 산책이라도 하자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팀원들과 같이 움직이곤 하는데 우리 부는 특별히 말이 없는 이상 모이는 법이 없었다. 거기에 다수의 팀원이 회사 안에서 쉬는 것을 좋아했다. 카게야마 씨 역시 다른 자리에서 히나타 씨와 밥을 먹고 있었고, 그 역시 식사를 마치면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었다. 안에 앉아 있는 게 갑갑한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밖을 돌아다니고 싶었기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그럼 나가요.”
시원스레 나오는 답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 입고 내려올게요.”
“와, 진짜 춥네요.”
하 하고 번지는 입김에 쿠로오 씨는 옷깃을 여기며 말했다. 오늘부터 추워진다는 말이 있었기에 잠바와 장갑, 목도리까지 무장한 나로서는 그가 너무나 추워 보였다. 눈보라가 몰아치기까지 했는데 이 사람 챙기지 않은 건가.
“장갑 없으세요?”
“그런 건 워낙 잘 잃어버려서요.”
6층에서 일 처리가 빠르고 꼼꼼하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사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이 추위에 맨손으로 다니려면 힘들 텐데. 거기다 며칠 전에 쌓인 눈 때문에 바닥은 온통 얼음판이었다.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겠지. 나는 장갑 한 짝을 그에게 건넸다.
“자요. 한쪽 껴요.”
“사와무라 씨도 춥잖아요.”
“전 손 따듯한 편이니까 괜찮아요. 쿠로오 씨는 전에 수족냉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용케도 그런 걸 기억한다는 듯 눈을 깜빡이던 그는 내 장갑을 받아들었다. 벙어리장갑을 낀 그는 두어 번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는 따듯하다며 웃었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란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럼 이렇게 하죠.”
뭘?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자, 그는 오른손을 뻗었다. 공기 중에 노출 되었던 차가운 손에 그의 손이 겹쳐졌다. 어, 잠깐, 뭐하는 거야.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그는 내 손을 붙잡았다. 차가워. 엄청 차다. 얼음이라도 만지는 듯한 느낌에 얼굴을 구겼다. 가벼운 악수가 아니었다. 그는 깍지껴 손바닥이 빈 공간 없이 닿도록 꼭 붙잡았다.
와, 사와무라 씨 손 따듯하네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손은 내 잠바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어? 놀란 얼굴로 그를 보자 쿠로오는 웃으면서 답했다. 제 옷보다는 사와무라 씨 옷이 더 따듯할 것 같아서. 확실히. 가볍게 걸친 야상에 비하면 오리털 잠바가 더 따듯할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모양새는 조금 아니지 않나? 남자 둘이 이러고 있다는 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이러다 넘어지면 꼴사나울 텐데.
“아, 춥다.”
하지만 그는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거… 무슨 연인들이 하는 거 같지 않아요?”
“하하, 어때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인근에 있는 다른 회사와는 점심시간이 조금 엇나가기 때문에 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한적한 동네지만, 누가 본다면 오해하지 않을까. 부장님이 본다면 두고두고 농담거리로 놀림받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정색하고 손을 떼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계속 붙잡고 있던 그 손은 점점 더 따듯해졌다. 내 손의 온기를 가져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빼앗긴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역시 추울 때는 사람 온기가 최고인가. 자취방에서 매번 냉기를 느끼며 혼자 잠드는 나로서는 손끝에 와 닿는 따스함 역시 참 오랜만이었다.
“사와무라 씨 같은 애인 있으면 좋을 텐데.”
그저 우스갯소리일 텐데도 미소를 띤 얼굴이 무언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쿠로오는 가끔 이런 얼굴을 한다. 이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한 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는 가장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지만, 그만큼 적이 되면 제일 위험한 사람일 거다. 주고받은 회사 내의 뒷담만 해도 보고서 한 상자는 나올 테니까.
“왜 애인이랑 할 걸 저랑 하고 있어요.”
농담으로 받아넘기자 그가 웃었다.
“그러게요.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사귀어 본 적이 없다? 혹시 여자를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인가? 실례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아니면 모태솔로라는 건가. 입사할 무렵 쿠로오 씨의 외모를 두고 여러 곳에서 말이 많았었다. 여직원들이 탕비실에 모여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사귀어 본 적이 없을까. 하긴 조금 바람둥이라거나 오해받을 인상이긴 하지.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는 길에 카게야마 씨와 마주쳤다.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샀는지 봉지가 빵빵히 들어차 있었다. 그는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옆에 있는 히나타 씨 때문에 편의점에 끌려갔던 모양이었다.
6층과 7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더 돌아다닐 걸 그랬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쿠로오 씨한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잊어버릴까 싶어 손으로 장갑을 가리키자, 그는 잘 썼다며 왼손에 낀 장갑을 돌려주었다. 장갑을 건네받을 때 닿은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분명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더워서 땀이 날 지경인 내 오른손과 달리 그의 손은 차게 식어 있었다.
“아? 두 분 다정하시네요. 장갑도 나눠 끼시고.”
히나타 씨가 한 말이었다. 커진 그 눈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쿠로오 씨는 내 어깨에 손을 걸치며 웃었다.
“하하하, 이제 아셨어요? 사와무라 씨 제 남자친구예요.”
“하핫, 쿠로오 씨 농담도.”
히나타 씨와 쿠로오 씨는 수고하라며 6층에서 내렸고 카게야마 씨와 나는 함께 엘리베이터에 남아 7층으로 올라갔다.
“사와무라 씨? 안 내리세요?”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묻는 그에게 보일세라 나는 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뭐야, 방금 그거. 무슨 진짜 애인처럼 말하고 있어.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묘하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FIN
'글 > 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끝과 시작 (0) | 2014.12.27 |
---|---|
쿠로다이 밤하늘 (0) | 2014.12.17 |
쿠로다이 겨울의 시작 (0) | 2014.12.05 |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꿈 (0) | 2014.11.29 |
하이큐 전력 60분 쿠로다이 할로윈 (0) | 2014.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