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거

겁쟁이페달 신아라 '시비'

중독된 깡 2014. 5. 13. 10:28







 


 

 

 

 

야스토모.”

 

또 시작이다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레이스 중이라 해도 바로 옆에서 부르는 걸 못 들을 만큼 귀가 안 좋진 않았다하지만 답할 가치가 없어 대꾸하지 않았다들어준다 해도 특별한 용건이 있진 않을 것이다몇 번이고 당했었기에 이제는 무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이 녀석을 내버려두고 치고 나갈 수도 있는데앞서 나가봤자뒤에서 귀신이 쫓아올 게 분명하기에 괜히 땀을 빼는 일은 하지 않았다그냥 부실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연습할걸날도 더워 죽겠는데 뭐하러 땡볕 아래 나와서는따지고 보면 부실을 박차고 나온 것도 이 녀석 때문인데.

 

신카이는 최근 들어 내게 이유 모를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야스토모’ 하고 이름을 부른 후에 내 시선이 저를 향하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처음에는 왜뭐 정도의 답을 해주었지만답을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느니그냥 불러 봤다느니 하는 실없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처음엔 다른 부원들이랑 함께 날 도발하는 장난이라도 치나 했는데하코네 주전들이 버럭버럭 소리 질러 대는 날 더 화나게 할 정도로 한가로운 녀석들은 아니었기에 생각을 접었다그리고 신카이의 시비는 부실뿐만 아니라 교실이나 식당에서도 계속됐기 때문에 아마 작당이 아니라저 혼자 내게 걸리는 것이 있는 듯했다이 새끼가그럼 직접 말을 하면 될 텐데막상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어주면 입을 열지 않았다.

 

단순히 장난이라기엔 미심쩍은 구석도 있었다항상 답하고 나서는 뭔가 물어보려다 마는 것 같기도 하고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가말을 안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알아 먹냐고난 초능력 같은 거 쓸 줄 모른다고짜증 나게 진짜할 얘기가 있으면 진작 하든가.

 

야스토모.”

 

힐끗 시선을 주자신카이는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대답해봤자제대로 이야길 꺼낼 것도 아니면서가볍게 바람이나 쐴 겸 나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을 때신카이는 기다렸단 듯 같이 가자며 나를 쫓아 나왔다그러니까 너너 보기 싫어서 나가는 건데거기에 대고 또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순 없어서 결국 같이 달리게 됐다예상했던 대로 신카이와 같이 달리는 로드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또 이름을 부르는 건가? 입 다물고 자전거나 타면 좋을 텐데말 걸지 말라 이거야맨날 하던 대로 파워바나 처먹으라고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를 털고 난리야.

 

그렇게 뚫어져라 내 얼굴 볼 시간 있으면 앞이나 쳐다보고 달려.”

 

좀 더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으나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가 후끈거리며 올라오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그래도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순 없었다이 녀석이 따라 나온 김에 제대로 얘기해두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정상까지 다 올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좋겠다.

 

생각해보면 녀석이 무엇을 원하고 내게 말을 건지는 짐작이 갔다신카이가 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하기 시작한 게 후쿠쨩에게 말을 걸 때였다이야기에 끼고 싶은 건가 짐작하긴 했으나그런 단순한 행동은 아니었다그럼 뭐야관심이라도 받고 싶은가두꺼운 입술을 꾹 다물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녀석은 생각할수록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아직 여름이 다 가지 않은 터라 후끈후끈 불어오는 바람이며옆에 있는 사람이며 열 받는 것투성이였다이렇게 된 거 전력으로 밟아서 말하고 끝내주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상에 올랐다그리고 신카이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할 얘기는 없었던 건가그럴 거면 왜 같이 가자고 따라 나온 건데용건이 없으면 말을 걸지 마기분 나쁘니까괜히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던가녀석에게 무슨 말을 퍼부을까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신카이가 또 내 이름을 불렀다.

 

야스토모.”

!”

내 이름 좀 불러 봐.”

 

그러니까 그만 좀 부르라고이번에도 대답 안 하면… 이라고 생각했는데녀석은 예상을 깨고 뒷말을 덧붙였다.

 

?”

내 이름 불러 보라고.”

 

안 그래도 쨍쨍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죽겠는데 신카이의 말 덕에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그나마 내리막으로 돌아선 덕에 바람이 불어 아까보단 나아졌지만그래도 얼굴에 맞는 더운 바람은 시원한 기분은 아니었다마음 한구석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일까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자긴 이름으로 부르는데왜 너는 이름으로 안 부르냐뭐 그런 거냐그래서 자꾸 나한테 말을 붙이는 건가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할 생각은 없었지만그걸로 만족해서 이 녀석의 호명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이라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불렀다.

 

신카이 하야토.”

그거 말고.”

네 이름 신카이 하야토잖아.”

아니 그.”

 

그는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잠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뭔 말을 하느라 뜸을 들여하지만 정상까지 오는 동안 참았던 만큼 그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뭔데 여기까지 와서 또 뜸이야막 짜증을 내려던 찰나에뺨을 긁적거리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후쿠쨩이라던가오노다쨩이라던가.”

?”

 

그러니까 지금 이 새끼는 나한테 애칭을 불리고 싶은 건가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됐다후쿠쨩은 후쿠쨩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거기에 지금 오노다를 부르던 것까지 말한 걸 보면 신카이쨩이라거나 불러달라는 말인가기가 찼다어이가 없어 벌어져 있는 입으로 열기를 실은 바람이 들이닥쳤다고작 그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신경 쓰게 만든 거냐고아오이걸 그냥!

 

너 그거 때문에 계속 나한테 깔짝거린 거냐?”

주이치한테는 후쿠쨩후쿠쨩 하면서 나한테는 전혀 그러지 않잖아사귀고 있는데.”

 

굳이 사귀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아니 것보다 쪽팔린다고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말란 말야신카이 성격만 봐도 이렇게 쪼잔하게 굴 녀석은 아닐 텐데그럼 그동안 줄기차게 나한테 말 걸었던 게 전부 그거였나내 입에서 나오는 네 이름 듣고 싶어서하긴내가 부르기 전에 이 녀석이 먼저 말을 거니까 굳이 이름으로 부를 기회가 없었지만용건도 없는데 귀찮게 하는 건 짜증 난다고그런 걸 고민할 성격도 아니면서 뭐하러 깨작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질투했다는 거네참나뭔 얘길 하려고 굼벵이같이 뜸을 들이나 했더니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라고직선귀신 이름이 아깝네!”

 

신카이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그러니까 그렇게 쳐다보는 거 부담스럽다고말하지 않는데도 답을 강요하는 거 같잖아난 아무것도 죄지은 게 없는데 꼭 내가 잘못한 것 같고얼굴 닳으니까 그만 쳐다보라고아씨뭐 못 해줄 것도 없는 거지만 겨우 이런 것 갖고 진짜.

 

신카이쨩.”

 

나는 실눈을 뜨고 녀석을 봤다불러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신카이는 얼빠진 얼굴을 했다.

 

됐냐?”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카이는 의아하단 얼굴로 다시 요구했다.

 

한 번 더.”

신카이쨩.”

 

그놈의 쨩 한 글자 붙이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롭다고혹시 인정한 녀석한테 붙이는 거라서 듣고 싶었던 건가그런 거라면 취소할 건데후쿠쨩 외에는것보다 자전거 타면서 이게 무슨 대환데진작 말했으면 몇 번이고 불러줬을 걸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그런데도 신카이는 불만인 건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왜부족하냐더 말해주리신카이쨩신카이쨩! 신카이쨩!!!”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애초에 난 왜 이 새끼 부탁을 다 들어주고 있는 거지의문과 동시에 짜증이 치솟았다괜히 열을 내고 나니 목이 말라 물통을 꺼내 들었다신카이설마 내가 여자처럼 얼굴이라도 붉히면서 하야쨩이라던가 불러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상상해보고는 몇 모금 마시다 소름이 끼쳐 머리에 부어버렸다짜증 나내가 왜 니 새끼 때문에 이 더운 여름에 햇빛이나 받으면서그것도 자전거 타면서 이딴 고민이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놈의 이름이 그렇게 듣고 싶었냐?!”

 

들러붙은 물기를 털어내며 묻자신카이는 시선을 거두고 앞을 봤다입꼬리가 올라가 묘하게 웃고 있었다뭐 때문에 웃어이상한 놈인 건 알았지만생각보다 더한 놈이네.

 

아니됐어.”

뭐야그럼 왜 시켰는데?”

야스토모가 주이치를 부를 때 기분 좋게 웃어서내 이름 부를 때는 어떤가 싶었거든.”

그래서?”

내 이름 부를 때도 네가 웃나 해서웃었으니까 됐어.”

 

뭐가 어째이 새끼는 진짜 이상한 포인트에서 좋다고 웃어 버린단 말야오늘 말하는 와중에 한 번도 웃은 적 없거든너 때문에 짜증 나서 성질만 버럭버럭 내는 거 안 보였냐고시발 그러고 보니 나 며칠 내내 이 새끼 생각만 했잖아뭘 잘못 처먹어서 그러나 하고 괜히 걱정했는데 그딴 시답잖은 이유로 괜히 말이나 걸고아오확 밀어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면서 인상을 썼다.

 

어디가 웃는 얼굴이야눈깔 삐었냐계속 찡그리고 있는 거 안 보여?”

그게 야스토모의 귀여운 점이니까.”

더위 먹었냐?!”

제정신인데.”

 

평소엔 가만있다가 이럴 때만 한마디를 지지 않고 나선다아오내가 왜 이딴 거랑 사귄다고오늘 연습실에 짱 박혀서 롤러 위에서나 타는 거였는데이렇게 능글거리는 아저씨인 줄 알았으면아니 그 전에 이 새끼 고백에 어물쩍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오케이를 해서는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나 괜히 쫄았잖아어쩌지한 대 때려주고 싶네자전거만 안 타고 있었어도 확 날려 버리는 건데.

 

야스토모.”

 

그런데 이 자식은 사람이 얼마나 속 탔는지도 모르고 원하는 신카이쨩까지 몇 번이나 불러줬는데도 장난을 멈추질 않는다태연하게 웃으면서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또 욱하고 열이 올랐다한 번만 더 하면 진짜.

 

하지 마더 하면 진짜 까버린다.”

야스토모.”

하지 말라고 새끼야!”

야스토모.”

아오너 옆에 붙지 마따라오지 마내려병신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녀석의 정강이를 찼다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억 하는 소리가 난 것도 잠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다시금 내 이름을 불렀다. 산에서 내려가면 좀 더 패는 게 좋겠다. 웃기고 있어, 아주. 웃긴 누가 웃는다는 거야남의 이름 부르면서 기분 좋게 웃어 버리는 건 자기인 주제에멍청이.





Fin

아라키타 생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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