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토모.”
또. 또 시작이다.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레이스 중이라 해도 바로 옆에서 부르는 걸 못 들을 만큼 귀가 안 좋진 않았다. 하지만 답할 가치가 없어 대꾸하지 않았다. 들어준다 해도 특별한 용건이 있진 않을 것이다. 몇 번이고 당했었기에 이제는 무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 녀석을 내버려두고 치고 나갈 수도 있는데. 앞서 나가봤자, 뒤에서 귀신이 쫓아올 게 분명하기에 괜히 땀을 빼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냥 부실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연습할걸. 날도 더워 죽겠는데 뭐하러 땡볕 아래 나와서는. 따지고 보면 부실을 박차고 나온 것도 이 녀석 때문인데.
신카이는 최근 들어 내게 이유 모를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야스토모’ 하고 이름을 부른 후에 내 시선이 저를 향하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처음에는 왜, 뭐 정도의 답을 해주었지만, 답을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느니, 그냥 불러 봤다느니 하는 실없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처음엔 다른 부원들이랑 함께 날 도발하는 장난이라도 치나 했는데, 하코네 주전들이 버럭버럭 소리 질러 대는 날 더 화나게 할 정도로 한가로운 녀석들은 아니었기에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신카이의 시비는 부실뿐만 아니라 교실이나 식당에서도 계속됐기 때문에 아마 작당이 아니라, 저 혼자 내게 걸리는 것이 있는 듯했다. 이 새끼가. 그럼 직접 말을 하면 될 텐데. 막상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어주면 입을 열지 않았다.
단순히 장난이라기엔 미심쩍은 구석도 있었다. 항상 답하고 나서는 뭔가 물어보려다 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가. 말을 안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알아 먹냐고. 난 초능력 같은 거 쓸 줄 모른다고. 짜증 나게 진짜. 할 얘기가 있으면 진작 하든가.
“야스토모.”
힐끗 시선을 주자, 신카이는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 대답해봤자, 제대로 이야길 꺼낼 것도 아니면서. 가볍게 바람이나 쐴 겸 나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을 때, 신카이는 기다렸단 듯 같이 가자며 나를 쫓아 나왔다. 그러니까 너! 너 보기 싫어서 나가는 건데. 거기에 대고 또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순 없어서 결국 같이 달리게 됐다. 예상했던 대로 신카이와 같이 달리는 로드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또 이름을 부르는 건가? 입 다물고 자전거나 타면 좋을 텐데. 말 걸지 말라 이거야. 맨날 하던 대로 파워바나 처먹으라고. 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를 털고 난리야.
“그렇게 뚫어져라 내 얼굴 볼 시간 있으면 앞이나 쳐다보고 달려.”
좀 더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으나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가 후끈거리며 올라오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 녀석이 따라 나온 김에 제대로 얘기해두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정상까지 다 올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좋겠다.
생각해보면 녀석이 무엇을 원하고 내게 말을 건지는 짐작이 갔다. 신카이가 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하기 시작한 게 후쿠쨩에게 말을 걸 때였다. 이야기에 끼고 싶은 건가 짐작하긴 했으나, 그런 단순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럼 뭐야. 관심이라도 받고 싶은가. 두꺼운 입술을 꾹 다물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녀석은 생각할수록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아직 여름이 다 가지 않은 터라 후끈후끈 불어오는 바람이며, 옆에 있는 사람이며 열 받는 것투성이였다. 이렇게 된 거 전력으로 밟아서 말하고 끝내주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신카이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할 얘기는 없었던 건가. 그럴 거면 왜 같이 가자고 따라 나온 건데? 용건이 없으면 말을 걸지 마. 기분 나쁘니까. 괜히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던가. 녀석에게 무슨 말을 퍼부을까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신카이가 또 내 이름을 불렀다.
“야스토모.”
“아, 왜!”
“내 이름 좀 불러 봐.”
그러니까 그만 좀 부르라고. 이번에도 대답 안 하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예상을 깨고 뒷말을 덧붙였다.
“…뭐?”
“내 이름 불러 보라고.”
안 그래도 쨍쨍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죽겠는데 신카이의 말 덕에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그나마 내리막으로 돌아선 덕에 바람이 불어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그래도 얼굴에 맞는 더운 바람은 시원한 기분은 아니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일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자긴 이름으로 부르는데, 왜 너는 이름으로 안 부르냐. 뭐 그런 거냐? 그래서 자꾸 나한테 말을 붙이는 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걸로 만족해서 이 녀석의 호명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이라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불렀다.
“신카이 하야토.”
“그거 말고.”
“아? 네 이름 신카이 하야토잖아.”
“아니 그….”
그는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잠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뭔 말을 하느라 뜸을 들여. 하지만 정상까지 오는 동안 참았던 만큼 그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뭔데 여기까지 와서 또 뜸이야! 막 짜증을 내려던 찰나에, 뺨을 긁적거리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후쿠쨩이라던가, 오노다쨩이라던가.”
“하? 뭐?”
그러니까 지금 이 새끼는 나한테 애칭을 불리고 싶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됐다. 후쿠쨩은 후쿠쨩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거기에 지금 오노다를 부르던 것까지 말한 걸 보면 신카이쨩이라거나 불러달라는 말인가. 기가 찼다. 어이가 없어 벌어져 있는 입으로 열기를 실은 바람이 들이닥쳤다. 고작 그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신경 쓰게 만든 거냐고. 아오, 이걸 그냥!
“너 그거 때문에 계속 나한테 깔짝거린 거냐?”
“주이치한테는 후쿠쨩, 후쿠쨩 하면서 나한테는 전혀 그러지 않잖아. 사귀고 있는데.”
굳이 ‘사귀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니 것보다 쪽팔린다고.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말란 말야. 신카이 성격만 봐도 이렇게 쪼잔하게 굴 녀석은 아닐 텐데. 그럼 그동안 줄기차게 나한테 말 걸었던 게 전부 그거였나. 내 입에서 나오는 네 이름 듣고 싶어서. 하긴, 내가 부르기 전에 이 녀석이 먼저 말을 거니까 굳이 이름으로 부를 기회가 없었지만. 용건도 없는데 귀찮게 하는 건 짜증 난다고. 그런 걸 고민할 성격도 아니면서 뭐하러 깨작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질투했다는 거네. 참나! 뭔 얘길 하려고 굼벵이같이 뜸을 들이나 했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라고. 직선귀신 이름이 아깝네!”
신카이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쳐다보는 거 부담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답을 강요하는 거 같잖아. 난 아무것도 죄지은 게 없는데 꼭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얼굴 닳으니까 그만 쳐다보라고. 아씨, 뭐 못 해줄 것도 없는 거지만 겨우 이런 것 갖고 진짜.
“신카이쨩.”
나는 실눈을 뜨고 녀석을 봤다. 불러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신카이는 얼빠진 얼굴을 했다.
“됐냐?”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카이는 의아하단 얼굴로 다시 요구했다.
“한 번 더.”
“신카이쨩.”
그놈의 쨩 한 글자 붙이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롭다고. 혹시 인정한 녀석한테 붙이는 거라서 듣고 싶었던 건가. 그런 거라면 취소할 건데. 후쿠쨩 외에는…. 것보다 자전거 타면서 이게 무슨 대환데. 진작 말했으면 몇 번이고 불러줬을 걸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그런데도 신카이는 불만인 건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왜? 부족하냐? 더 말해주리? 신카이쨩. 신카이쨩! 신카이쨩!!!”
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애초에 난 왜 이 새끼 부탁을 다 들어주고 있는 거지? 의문과 동시에 짜증이 치솟았다. 괜히 열을 내고 나니 목이 말라 물통을 꺼내 들었다. 신카이, 설마 내가 여자처럼 얼굴이라도 붉히면서 하야쨩이라던가 불러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상상해보고는 몇 모금 마시다 소름이 끼쳐 머리에 부어버렸다. 아, 짜증 나. 내가 왜 니 새끼 때문에 이 더운 여름에 햇빛이나 받으면서, 그것도 자전거 타면서 이딴 고민이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놈의 이름이 그렇게 듣고 싶었냐?!”
들러붙은 물기를 털어내며 묻자, 신카이는 시선을 거두고 앞을 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묘하게 웃고 있었다. 뭐 때문에 웃어? 이상한 놈인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한 놈이네.
“아니. 됐어.”
“뭐야? 그럼 왜 시켰는데?”
“야스토모가 주이치를 부를 때 기분 좋게 웃어서, 내 이름 부를 때는 어떤가 싶었거든.”
“그래서?”
“내 이름 부를 때도 네가 웃나 해서. 웃었으니까 됐어.”
뭐가 어째? 이 새끼는 진짜 이상한 포인트에서 좋다고 웃어 버린단 말야. 오늘 말하는 와중에 한 번도 웃은 적 없거든? 너 때문에 짜증 나서 성질만 버럭버럭 내는 거 안 보였냐고. 시발 그러고 보니 나 며칠 내내 이 새끼 생각만 했잖아. 뭘 잘못 처먹어서 그러나 하고 괜히 걱정했는데 그딴 시답잖은 이유로 괜히 말이나 걸고. 아오! 확 밀어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면서 인상을 썼다.
“하? 어디가 웃는 얼굴이야? 눈깔 삐었냐? 계속 찡그리고 있는 거 안 보여?”
“그게 야스토모의 귀여운 점이니까.”
“더위 먹었냐?!”
“제정신인데.”
평소엔 가만있다가 이럴 때만 한마디를 지지 않고 나선다. 아오! 내가 왜 이딴 거랑 사귄다고. 오늘 연습실에 짱 박혀서 롤러 위에서나 타는 거였는데. 이렇게 능글거리는 아저씨인 줄 알았으면…. 아니 그 전에 이 새끼 고백에 어물쩍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오케이를 해서는. 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나 괜히 쫄았잖아. 아, 어쩌지. 한 대 때려주고 싶네. 자전거만 안 타고 있었어도 확 날려 버리는 건데.
“야스토모.”
그런데 이 자식은 사람이 얼마나 속 탔는지도 모르고 원하는 신카이쨩까지 몇 번이나 불러줬는데도 장난을 멈추질 않는다. 태연하게 웃으면서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또 욱하고 열이 올랐다. 한 번만 더 하면 진짜….
“하지 마. 더 하면 진짜 까버린다.”
“야스토모.”
“아, 하지 말라고 새끼야!”
“야스토모.”
“아오! 너 옆에 붙지 마! 따라오지 마! 내려, 병신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녀석의 정강이를 찼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억 하는 소리가 난 것도 잠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다시금 내 이름을 불렀다. 산에서 내려가면 좀 더 패는 게 좋겠다. 웃기고 있어, 아주. 웃긴 누가 웃는다는 거야. 남의 이름 부르면서 기분 좋게 웃어 버리는 건 자기인 주제에. 멍청이.
Fin
아라키타 생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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