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뻗었다. 뻗은 손을 꽉 쥐었지만, 현실감 없는 감각에 단번에 꿈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나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여유 있는 얼굴로 웃던 녀석은 손을 흔들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모습에도 나는 반응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눈을 떴을 때, 확실히 꾸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허공에 뻗었던 손을 움켜쥐었다. 역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건 모두가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눈을 뜬 곳은 침대 위, 자취방이었고 귀에 들리는 건 언제나와 같은 아침 알람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알람을 껐다. 멋대로 그 자식이 녹음해 둔 알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아침 대신 먹어버릴 거라는 어이없는 내용에 들으면 졸다가도 정신이 번쩍 나는 알람이었다.
세수만 한 뒤, 급하게 집을 나섰다. 며칠 빠진 걸 생각하면 농땡이 피울 시간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앙키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리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이 이상 빠질 경우에는 과제든 학점이든 큰 타격을 입게 될 게 뻔했다. 사서 고생할 만큼 어리석은 애새끼는 아니니까. 가방끈을 고쳐 매고 비앙키에 올라탔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언제나와 같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았다.
‘아라키타, 괜찮아?’
그 물음이 오늘만 7번을 넘어갔다. 아침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걸려온 후쿠토미의 전화를 시작으로, 오노다쨩에 이어 토도, 마나미, 이즈미다, 쿠로다, 킨조 거기에 어떻게 사정을 들은 이름 모를 동기까지. 그냥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인상을 썼더니 ‘괜찮은가 보다’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여간 인간들은 왜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지. 짜증 나는 얼굴로 이를 갈고 있으려니 킨조 녀석이 후쿠쨩처럼 좋지 않은 습관은 그만두라며 충고했다.
괜찮고 자시고. 왜 멀쩡히 잘 살아 있는 꼴을 못 봐서 난리인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로 이틀 전에 얼굴은 본 녀석들이 이런 반응이라는 것도 짜증 났다. 분명 거기서도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돌아온 게 전부였을 텐데, 왜 다들 나를 걱정하지 못해 안달인 거지. 알 수 없는 짜증에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수업 역시 언제나와 같았다. 교수는 더럽게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킨조 같은 녀석 몇몇은 제대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대다수는 낄낄거리면서 교수 몰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강의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치솟았다.
“괜찮나?”
수업을 마쳤을 때, 킨조가 한 번 더 물었다. 여름 탓인지 어깨에 얹어진 손이 더럽게 뜨거워서 생각할 틈도 없이 녀석의 손을 쳐 냈다.
“앙?”
지금 그거 나한테 물은 거냐? 인상을 쓰며 묻자 녀석은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봤다. 조용했다. 그러나 고요한 가운데 그 눈은 곧게 나를 향해 있었다. 바라보는 눈동자에 꿀꺽 침이 넘어갔지만, 킨죠는 똑바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몇 초간 그렇게 나를 응시하던 녀석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오후 강의가 있는 모양이었다. 수업이 있으면 갈 길 가라고. 괜히 엄한 사람 건드리지 말고. 바깥을 보니 한낮의 태양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 죽일 일 있나. 문득 후쿠쨩을 만나기 전과 같은 기분에 혀를 차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풍기부터 틀었다. 이불은 자고 일어나 나간 그대로였고, 방바닥에는 먹고 난 후 치우지 않은 편의점 도시락과 컵라면 등 쓰레기가 즐비했다. 그중에는 약 일주일 전 돼지 새끼가 먹고 간 빈 과자봉지도 보였다. 방 꼴을 보아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쓰레기봉투를 꺼내 들었다. 바닥에 널린 쓰레기들을 집어넣는데, 방바닥에 놓인 부스러기들을 보니 욕이 절로 나왔다. 씨발 새끼. 좀 치우고 가던가. 더럽게 왜 먹은 흔적들은 남겨놓고….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다만, 아침부터 터질 것 같은 분노를 분출할 상대를 잃어 오갈 데가 없는 탓이었다.
처음이었다. 그 녀석이 없는 채 맞이하는 금요일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화를 건 마나미에게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어디서 몰래카메라 같은 반응 떠보기를 하는지 돼지 새끼라면 충분히 그런 장난을 칠 만하단 생각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말이면 으레 먼저 오겠다고 전화를 걸었을 텐데, 설마 마나미가 한 말이….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바뀌어 갈 때, 마나미의 옆에 있던 후쿠쨩이 말했다. 사실이라고.
옷을 챙겨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하코네 학원의 모두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즈미다는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덤덤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었다. 국화꽃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사진 속의 그는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보지 못했던 사진이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마나미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학교에서 MT 갔을 때 찍은 가장 최근 사진이었대요.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급발진으로 달려드는 대형 트럭에 로드를 타고 있던 녀석이 치였다고 했다. 운전기사 역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간신히 의식을 찾은 상태였다. 기사 측에서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었다. 코너를 돌려는 찰나에 차체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멈춰 있던 신카이를 쳤다고 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상을 치르러 가 한 번쯤은 우는 게 예의라고 하지만, 울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황당하기도 했다. 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끝났고, 남은 것은 기일을 챙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가다 보면 녀석은 이 세상에 없던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잊힐 터였다.
밥 먹었어? 오늘 완전 덥다. 감기 조심해. 이번 주말에 놀러 가도 되지?
매일 같이 울려대던 휴대폰은 조용해진 지 일주일이 넘었다. 녀석과의 대화방에는 ‘잠깐 타고 올게’라고 적힌 것이 마지막이었다. 돼지 새끼가 죽었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마치 그런 사람이 있었냐는 듯이. 언제나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낯설고 무서웠다. 이제 녀석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마치 신카이가 없었던 세상은 전부 처음인 것마냥. 두 번 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한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어졌다. 물방울이 쓰레기가 널려 있는 방바닥으로 퍼져 나갔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결국엔 끅끅 소리를 내며 눈물을 훔쳤다. 씨발. 돼지 새끼. 씨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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