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소스케 소방관 마코토
-와아아아아아!!
들려오는 소리에 남자는 움찔거리며 몸을 수그렸다. 휘잉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함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좌우로 움직이는 놀이기구는 올라갈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마코토는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분명 바이킹이 재밌어서 지르는 소리겠지만, 그 소리는 현장에서 종종 듣던 비명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 다시 반대편으로 치솟는 그 움직임에 마코토는 고개를 숙였다. 다시금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두 손으로 귀를 막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자신을 보는 눈동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렸다. 침착해, 마코토. 여긴 놀이공원이니까. 저 자신을 도닥이며 마코토는 마주친 연인을 향해 방긋 웃었다.
마코토의 그 묘한 웃음을 소스케가 모를 리 없었다. 모처럼 비번인 날에 맞춰 놀러 온 터라 소스케는 기분이 좋았다. 마코토와의 데이트도 오랜만이었지만,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라 무서운 놀이기구를 잔뜩 탈 생각으로 그는 아침 일찍부터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그에 비해 마코토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이유는 소스케 역시 방금 깨달았지만, 아마 타치바나 마코토는 무서운 놀이기구는 잘 타지 못하는 듯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바이킹을 가리키며 저거 타러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을 때, 마코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소스케는 놓치지 않았다. 그런 반응이 귀여워 더 억지로 마코토를 끌고 온 것도 있었지만,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무서우면 안 탄다고 하면 될 텐데.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 몇 분도 되지 않는 줄을 서 있는 동안 마코토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셨다.
“마코토.”
보다 못한 소스케가 말을 걸었다.
“괜찮아?”
“으응? 뭐… 뭐가?”
“얼굴 하얗게 질렸다고. 너 바이킹 타 본 적 없냐.”
그의 말에 마코토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더듬거렸다. 긴장했구나. 현장에 출동할 때보다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것 같아 마코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심호흡을 마친 마코토는 꿀꺽 침을 삼키며 미소 지었다.
“아니, 탄 적 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웃는 얼굴 어색하다고. 자존심 같은 건가. 무서운 거 못 타는 게 뭐 어떻다고. 소스케는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내가 옆에 있는데. 그렇게 무서워?”
몇 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파란 눈이 마코토를 보고 있었다. 피할까도 생각했지만, 소스케의 눈을 피해 버리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 되기에 마코토는 두 눈을 깜빡이며 소스케의 팔을 붙잡았다.
“아… 아니.”
팔을 붙잡은 손이 떨렸지만, 마코토는 손에 힘을 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탈 수 있어. 어렸을 때였지만, 탔던 적도 있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다 쓸데없는 거야. 이상한 거야. 여긴 현장이 아니라 놀이공원이니까.
피하지 않고 똑바로 저를 보는 눈빛에 소스케는 웃음을 흘리며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금세 닿았다 떨어진 입술에 하얗게 변해 가던 마코토의 얼굴이 다시 혈색을 띠었다.
“소… 소스케! 사람들이….”
“우리 뒤에 아무도 없어.”
빨갛게 물들어 가는 마코토를 보며 소스케는 다시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뽀뽀 한 번에 이러니까 가만히 둘 수가 없는 거잖아. 머리를 긁적이던 소스케는 마코토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안내요원의 말을 따라 바이킹에 올랐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코토가 그보다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한가운데에 타는 게 마코토에게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었는데, 가장자리에 가깝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 제정신인 건가. 소스케는 자리에 앉은 마코토에게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마코토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 앉아 안전봉을 꼭 쥐고 있었다.
“너 괜찮아?”
“으응, 괜찮아.”
“고집은….”
“고, 고집 아냐.”
“말은 왜 더듬는데.”
“…….”
소스케는 작게 한숨을 뱉으며 털썩 마코토의 옆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지금 이런 반응인 건 겁먹어서 그런 게 맞는데. 소방서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엊저녁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한 마코토의 입에서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일 같은 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괜한 고집 피울 녀석도 아니고. 힐끗 시선을 주자 꾹 입을 다문 마코토가 보였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안전요원이 두어 번 흔들고 가자 마코토의 얼굴은 더욱 굳어 갔다.
“소... 소스케, 이거. 제대로 안 내려간 거 아냐?”
약간 여유 있게 들리는 안전바를 올려 보며 마코토는 불안한 듯 그를 봤다. 그렇게 무서우면 그냥 타지 말지. 이러다가 도중에 내려달라고 하는 거 아냐?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핏기가 가시고 있어 소스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눈앞에 보이는 손에 마코토는 지푸라기 잡듯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출발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마코토는 소스케의 예상대로였다. 바이킹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는 안전바를 꼭 붙잡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힘을 주면 바가 떨어져 나가진 않을까 싶을 만한 힘이었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소스케 역시 그 분위기를 따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마코토의 고개는 바닥을 향한 채였다. 그의 손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에 소스케는 팔로 마코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무서워? 귓가에 속삭인 작은 목소리에 마코토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초록 눈동자가 한가득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말조차 하지 못하는 눈이 깜빡이며 물방울을 토해 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타지 말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침과 동시에 울먹거리는 마코토의 얼굴에 아래에서 반응이 올 것 같아 소스케는 그 얼굴을 제 어깨에 묻게 했다. 그리고 마코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미안, 미안. 괜찮아. 금방 끝나니까.
그리고 지금. 소스케는 봉지에 머리를 박은 마코토와 마주하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놀이공원에 왔기에 뱃속에 들어간 건 편의점에서 하나씩 먹었던 삼각김밥이 전부였다. 그러니 토해낼 건 없었다. 그런데도 마코토는 연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훔쳐내느라 가장 마지막으로 놀이기구에서 내렸기에 눈치 볼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마코토 같은 사람들을 위해 놀이기구의 출구에는 비닐봉지가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머… 멀미 나….”
“보면 알아.”
소스케는 마코토의 뒤에서 등을 두드려 주며 답했다. 구역질이 좀 사라진 것 같아 소스케는 마코토에게 물을 건넸다. 고마워. 인사와 함께 그는 뚜껑이 따진 물을 받아들었다. 가빠진 숨을 고르며 한 모금 들이키려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다시금 들려오는 함성에 물병을 쥔 손이 떨렸다.
“무서우면 말을 하지 그랬어.”
“그치만….”
마코토는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물을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소스케는 대강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뻔하지. 괜한 고집은 아니야. ‘소스케가 타고 싶어 했으니까’겠지. 그렇게 벌벌 떨면서 눈물 흘리고 멀미까지 나는데도…. 소스케는 바보처럼 착한 제 애인에게 화를 내야 하나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 간신히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입가를 닦는 마코토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내 잘못이지. 오랜만에 놀이동산에 온다고 들떠서는…. 애도 아니고.
“괜찮아?”
“으응, 괜찮아.”
“…이제 놀이기구 안 타도 되니까.”
“에?”
소스케는 마코토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저기… 소스케?”
말로 해 봤자, 타고 싶은 거 타도 된다고 할 녀석이니까. 행동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어리둥절해하는 마코토를 끌며 소스케는 앞장서 걸어갔다.
손을 잡아채 걷기 시작한 소스케는 어딘가 화난 사람 같았다. 차가워진 눈초리와 굳어 버린 얼굴 탓에 마코토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화난 걸까. 오기 전부터 많이 기대했을 텐데. 소스케는 놀이기구 같은 거 잘 탈 것 같으니까. …내가 놀이기구에 겁먹어서, 타지 못하니까 그런 걸까. 높은 곳에 오르는 것정도는 현장에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 구출에서부터 고층 빌딩의 화재까지 마코토도 경력 3년이 다 되어가는 처지였기에 위험상황에는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치만 이건 일이랑은 다르다구. 사람 목숨을 구하는 문제고,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
마코토는 소스케의 등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해해 주지 않으려나. 겁쟁이라고 생각할까. 소스케와 같이 산 지는 1년이 채 안 되었다. 사귄 지는 조금 되었는데. 같이 살기를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처음으로 사귀자는 말을 꺼낸 것도, 망설이는 마코토에게 동거를 제안한 것도 전부 소스케였다. 항상 받기만 하니까, 그러니까 소스케한테는 더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앞서 걷는 넓다란 등이 제게 벽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코토는 눈가를 훔쳤다.
“저기면 네가 그렇게 질릴 일도 없겠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까보다 누그러진 말투라 마코토는 고개를 갸웃 하며 소스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표지판에는 동물원이라는 글자가 두 사람이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 놀이기구 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마코토의 반응에 소스케는 뒤돌아서며 마코토를 봤다.
“싫으면 말해. 가만있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약간 눈을 피하는 모습에 마코토는 눈을 깜빡였다. 예상대로 소스케는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 미안해하고 있는 거네. 소스케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마코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할 때 으레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럴 거 없는데. 우리 요새 얼굴도 잘 못 보고 지냈는데. 나, 소스케랑 같이 나와서 정말 기쁘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려던 마코토는 고개를 저으며 소스케의 말에 답했다.
“에, 으응.”
훌쩍이는 소리에 또 우는 건 아닌가 걱정했던 소스케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까와 같은 등인데, 이번에는 앞장선 소스케의 등이 너무나 듬직해 보였다. 화낼 리가 없나. 이렇게 상냥한 소스케인데. 마코토는 소리없이 웃으며 그를 불렀다.
“소스케.”
“어?”
“고마워.”
방긋 웃으며 옆에 선 마코토의 얼굴에 소스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는 또 연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다시 발그레 달아오른 그를 보며 그는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오늘 왜 이렇게 귀엽냐.
마코른 생일파티 때 내려다 펑난 원고 중 일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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